생명 있는 것들은 업에 매어있다.
불교는 부처님의 교설敎說.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의미의 불교입니다.
부처님이 무엇을 가르치셨는가?
부처님의 생애를 통해,
부처님이 설법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셨던 그 내용은 무엇인가?
이러한 부처님의 내용을 불법佛法이라고 합니다.
불법佛法이란,
‘세상의 진실한 모습을 그대로 심도 있게
끝까지 추구함으로써 그 해결점을 제시해 주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진실한 모습’을 부처님은
“모든 중생들이 탐닉하고 있는 세간,
그 진실한 모습을 추구해 본다면 온통 괴로움뿐이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이 같은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
“모든 세간에 충만한 괴로움의 원인은 업業 뿐”이라고
단정을 지으십니다.
업業이란?
우리의 일상적인 모든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행위’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신체적은 행동[신업身業],
언어표현의 행위[구업口業],
의지적인 사려[의업意業],
이 세 가지를 삼업三業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고,
다시 서로를 완성시켜 주는 상호 동시적 관계에 있으면서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순간순간 창조해 나가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을 속박하고 지배하기도 합니다.
한 개인에 의한 행위의 결과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가를 분류 해 봅시다.
◈ 개인에게 국한된 행위입니다.
이를 불공업不共業이라고 하는데,
이는 공업共業과 상대되는 개념으로
어떤 한 사람의 행위로 인한 과보를
한 사람이 감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죄를 짓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복을 짓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 그러한 행위를 각각의 개인이 지은 것일 뿐
다른 사람과 함께 공동으로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함께하지 않은 행위를 불공업不共業이라 합니다.
◈ 타인과 함께 행위인데 이를 공업共業이라고 합니다.
이는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어떤 일을 공동으로 하는 경우입니다.
작게는 개개인의 가정생활이 공동체로 유지되는 것으로부터,
크게는 국가 사회의 조직이 유지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는 전체가 합심하여 공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를 공업共業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불공업不共業과 공업共業은
그 성질이 외형상 동일하지 않더라도
이는 상호 연관관계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살펴보면
어떤 한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까지 연향을 미치게 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사람의 건축업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여러 공사를 맡았으나
적절한 재료와 기술을 투입하지 않고 공사를 했습니다.
그러한 부실 공사로 인하여 그 다리가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무너져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 업자로 인해 구속되어 그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 업자를 조사해 보니,
그 공사를 맡고 준공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관계자들에게 많은 뇌물을 바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고 그러한 뇌물은
그 사회의 관행이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럴 경우 부실한 공사를 한 책임을 지고 구속되어서
죗값을 치른 것은 불공업不共業에 대항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관행화된 뇌물로 인해
부실공사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그로 인해 발생한 사고는 공업共業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한 개인의 행위는
다른 사람에게 까지 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그 행위를 신중히 해야 합니다.
그것을 보고 업業과 과보果報라고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업業과 과보果報를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것이 오늘 드리는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차시기 바랍니다.
2024년 01월 27일 오전 05;17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운월야인雲月野人 진각珍覺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