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살후1:1-12)
갈등
1. 사도 바울의 삶은 매우 극적이었습니다. 그의 삶을 장편 소설이나 영화로 만들어도 될 만큼 수많은 에피소드가 이어졌어요. 바울의 인생 터닝포인트-전환점은 다메섹에서 있었습니다. 당시 바울의 이름은 사울이었고, 그는 대제사장의 위임장을 받아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데 선봉에 섰습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이,“포항 땅을 거룩하게 통일 후 선봉”입니다. 이 땅을 거룩하게 하며 열심히 섬기다가 통일이 되면 선봉에 서서 북한에 복음의 능력으로 나아갈입니다. 선봉은 아무나 세우지 않아요. 준비된 자만 세웁니다. 사울은 유대교를 대표하는 신세대 거장이었습니다.
사울이 기독교인들에게 무소불위의 권세를 발휘하며 나아갈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메섹에서 그의 길을 막았습니다. 사울을 고꾸라뜨렸어요. 사울이 꼼짝하지 못하고 주님께 붙잡혔어요. 이후 사울은(큰 자) 자신의 이름을 바울로 바꾸고(작은 자), 새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핍박하던 예수님과 교회를 세상 무엇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는 결혼도 포기하고, 오직 복음 전도에 남은 평생 전력을 다했어요.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시리아 안디옥을 거쳐 소아시아 지역(터키)으로 선교 여행을 다녔습니다. 가는 곳마다 복음의 능력으로 전도를 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2.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여하고(세계 최초 교회연합 회의), 다시 전도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2차 선교 여행이 시작되었어요. 그는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터키의 넓은 땅을 순회하며 전도를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아시아만 다니던 바울을 유럽으로 이끄셨어요. 드로아에서(터키 서북쪽-그리스 건너편 항구) 밤에 바울이 환상을 보았어요. 마게도냐 사람이 바울에게,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이 환상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믿고 지체하지 않고 마게도냐-그리스 땅으로 배를 타고 건너갔습니다.(네압볼리-빌립보 인근 항) 제가 이곳에 4년 전 터키 선교지 순회 사역을 하며 보았습니다.
이곳에 가서 제가 참 가슴 벅찼습니다. 12년 전, 2011년 11월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팔렘방 신학대학 이규대 선교사님이 저에게 와서 개강 사경회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때 일이 바울의 드로아에서 경험과 같았습니다.(그 때 일이 생각이 나서 현장에 감동이... 이후 저도 아시아에서-유럽-아프리카로) 성령께서 바울과 함께 하시며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교회를 세우게 하셨어요. 이곳은 불가리아 선교지 순회 사역을 하며 가볼 수 있었어요. 바울이 갇혔던 감옥도 보고요.(내년 봄에는 프랑스 리옹과 콩고인데-파리를 볼 수 있을 것) 성령께서 바울을 통해서 빌립보에서 복음 전도를 하며 세례를 주게 하셨습니다.(행16장-루디아와 간수장 가족들)
3. 성령님은 이어서 바울을 데살로니가로 이끄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게도냐 지역에 두루 복음이 전파되었어요. 성령께서 데살로니가에서도 크게 역사하셔서 복음 전도가 잘 이뤄졌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을 비롯하여 당시 복음 전도를 하는 자들을,“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라고 불렀어요.(행17장) 유대인들이 바울과 그리스도인들을 시기하여 복음 전도를 방해하였습니다. 전도와 선교가 행해지는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사탄의 권세가 훼방을 합니다.
바울은 순회 선교사이었기에 한곳에 머물러 목회하지 않고 어느 정도 복음이 전파되면 지도자를 세우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그가 데살로니가를 떠나서 다른 지역에서 사역하며 교회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몸으로 가지는 못하고 편지를 보낸 것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고린도에서 보냄) 주후 50년, 마가복음과 더불어 최초로 기록된 신약성경이었어요.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소문이 좋게 났습니다.(살전1:3-8)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들의 믿음이 더욱 자랐다고 칭찬했습니다.(3절)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이 얼마나 좋았기에 바울이 이렇게 칭찬했을까요?
갈등 심화
4.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오순절 성령께서 강림하신 후, 제자들이 성령에 충만하여 각기 부르심을 따라 세계에 흩어져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은 베드로와 바울의 여정만 소개해줍니다. 저자인 누가가 바울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도들의 이야기는 전해오는 기록들이 없어서 알 수 없습니다.(도마복음 정도만 내려옴) 바울은 유럽으로 건너갔지만, 대부분의 사도들은 아시아로 흩어졌어요. 초대 교회 시대는 곧 박해 시대였어요. 초기 교회 시대의 박해는 크게 두 부류에 의해서 이뤄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유대교인들이, 또 한편으로는 로마 제국이 황제숭배를 강요하며 박해를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도 박해 상황에 있었습니다. 4절,“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초기 교회 성도들은 박해 가운데에서도 인내하며 복음 전하기를 그치지 않았어요. 로마 황제들 가운데 기독교 박해를 제일 심하게 한 것은 네로(재위 기간이 주후 54년-68년)와 도미티안(재위 기간이 81년-96년)입니다. 데살로니가서를 기록할 때는 네로 황제의 재위 기간이었고, 요한계시록의 경우는 도미티안이 통치할 때였습니다.
5.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비롯한 초대 교회 성도들은 고난을 받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이 보낸 편지들 가운데 성도들의 고난-신앙 박해 이야기가 없는 것이 거의 없어요.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받는 고난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받는 것이라고 말했어요.(5절) 바울은 교회가 받는 고난과 환난을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의 재림 이야기로 전환했습니다. 7절,“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도 예수님의 재림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부활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전했어요. 바울은 주님의 재림을 말하며,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그것도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했습니다.(8-9절) 바울이 주님의 재림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실마리
6. 오늘 우리가 평화로운 자유 대한민국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과 초대 교회 박해 시대에 주님을 믿는다는 말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오늘도 평화롭지 못하고 자유가 없는 지역에서 믿는 이들이 적지 않게 있어요. 북한과 같은 공산 체제 아래서, 이슬람교나 힌두교 등 타 종교의 박해 가운데서 어렵게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내가 예수를 믿는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Credo)은 순교를 각오하거나 심한 박해를 감수하겠다는 마음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신앙 박해가 심하면 그만큼 종말 신앙이 크게 일어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그들 시대에 재림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기대 가운데 그들은 주님이 승천하신 후 20년 가까이 복음서를 기록하지도 않았어요. 주후 50년이 넘어서야 마가복음이 처음 나왔어요.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베드로의 나이도 많아지면서 베드로와 가까이 있었던 마가(베드로의 헬라어 통역자)가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첫 복음서를 기록하다 보니 거칠고 분량도 많지 않습니다. 이 시기에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편지를 보냈습니다.(성경의 첫 서신서)
7. 이후 다시 20년이 지날 때까지 다른 복음서들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주후 70년이 되어서, 주님의 재림이 더욱 지연되자 마태와 누가가 붓을 들었어요. 마가복음을 보고 분량을 늘렸어요. 보다 세련된 문장도 만들고요. 데살로니가후서는 52년경에 바울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에 바울이 말하는 종말은 차이가 있습니다. 전서에서는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것이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피하지 못하리라.(5:1-3) 바울은 종말이 임박했다고 하며,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리라(6절)고 편지했습니다.(임박한 종말론)
하지만 후서에서는 2:2-3,“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라.”전서와 말하는 분위기가 전혀 달라졌어요. 재림이 지연되고 있고 언제 있을지 모르니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고 권면했습니다.(지연된 종말론) 전서와 달리 후서를 쓸 때의 상황이 전환된 모습입니다.
8.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할 때와 지연되고 있다고 할 때, 사람들의 자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임박했다고 하면 긴장감이 고조되지만, 지연된다고 하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긴장감이 풀어져요.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이 좋았다고 사도 바울이 전서와 후서에서 칭찬을 한 것을 보면, 그들이 잘 견디면서 지냈습니다. 그들은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했습니다.(3절) 사랑도 넘쳤어요. 바울은 그들의 이런 점을 여러 교회에서 자랑했습니다.(4절) 물론 데살로니가가 완전한 교회는 아니었어요. 바울은 그래도 다른 교회보다 칭찬하고 인정해주었습니다.
세상 어느 교회가 완전하겠습니까? 다 불완전하고 약점이 있습니다. 3장에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에 종말을 핑계로 일을 하지 않고 먹는 이들이 있었어요. 바울은 그들을 향해서 명령했습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 바울은 게으른 성도들, 일은 하지 않고 문제만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경고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점이 있었지만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하고 격려했습니다. 박해 시대에 재림이 지연되고 있었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도록 동기부여를 주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항상 기도한다고 밝혔습니다.(11절) 바울은 참 목회자 중의 목회자입니다.
복음 제시
9.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유대 종교인들의 박해 가운데도 인내하시며 끝내 십자가를 감당하셨습니다. 그가 희생제물이 되기를 자원하심으로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받고 자유하게 되었어요.(속죄의 은혜) 주님의 십자가 희생은 패배나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승천하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어요. 대역전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고난받으시고 하늘에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이렇게 되실 것을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모든 것을 이루셨어요.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빌2:9-11에 정확하게 정리해주었습니다.“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인내하며 올바른 종말 신앙으로 승리하면 12절,“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기대
10. 오늘은 우리 교회가 정기적으로 지키는 성례주일입니다. 잠시 후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새해를 맞으며 첫 성찬식을 갖고, 사순절 종려주일에 두 번째 성찬식, 그리고 11월 둘째 주일에 추수감사절을 한 주 앞두고 세 번째 성찬식을 가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하며,“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있다”고 선언한 것처럼 우리 교회의 믿음도 더욱 자라가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종말이 지연되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성례주일에 종말론과 믿음 이야기를 나눈 것은 참 좋은 기회입니다. 성찬식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 찬송하며 기도합니다. 주님이 고난당하시고 영광을 얻으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주님과 같이 고난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자부심을 갖고 당당히 맞아 승리하게 하소서. 승리한 후 주님이 주시는 영광을 받을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오늘 찬양: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