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20240720
하종강의 “우리가 몰랐던 노동 이야기”는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노동에 대해 여러 질문을 한다. 이 중 저자에게 몇몇 고등학생들이 한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종교적인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하나씩 구원하면 결국 이 세상이 살기 좋은 하나님 나라가 될 것이라는 ‘개인구원론’과 아무리 인간의 영혼이 개인적으로 거듭나도 사회의 모순된 억압구조가 그대로 존재하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니 종교인들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 데 앞장서서 불의한 세력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회구원론’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서 등장하는 종교는 기독교 계통의 종교이며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에 관해 묻고 있다. 고등학생이며 기독교인인 나는 기독교인이 사회적 행동을 할 때는 굉장히 신중해야 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기독교는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기독교는 노동문제에 관한 이 책의 주장에 반대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물에 빠진 사람에 필요한 것은 복음을 들으며 맞이하는 죽음이 아니라 구조임을 인지하고 있다. 오히려 다른 종교와 사상보다 희생과 이웃 사랑을 강조한다. 성경은 반복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고 불의를 없애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명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는 지상낙원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핵심은 타락한 인간에 대한 신의 구원이며 인간이 악하기에 이 세계에서 폭력, 차별, 고통이 없는 사회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개인 구원의 목적은 구원 그 자체이며 이 세상이 살기 좋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교리는 이상적인 사회를 어떻게 구성할지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으며 그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 질문의 의도는 답하는 사람의 기독교 세계관 판단이 아니라 정치사상 판단이다. 고등학생들은 사회 구조 변화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알기 위해 기독교를 사용하고 있으며 특정 사상의 정당성을 위해 기독교를 비틀고 있다. 이 질문의 주체는 기독교가 아니라 자신들의 사상이다.
저자는 인간의 기본 권리와 그 권리를 무시할 때 생기는 사회적 부작용을 근거로 대한민국의 노동 환경 개선을 촉구한다. 이 책의 말로 표현하자면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굉장히 멋지고 마땅히 실현해야 하는 생각이다. 또한 책에서 등장하는 가슴 아픈 사연들은 독자의 정의감을 건드린다.
하지만 분명히 인지해야 하는 것이 있다. 학생들이 기독교를 사용한 것처럼 위의 멋진 사상 또한 이용되기 쉬우며 이미 빈번하게 이용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질문에 나온 것처럼 “종교인들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 데 앞장서서” 불의한 세력과 맞서 싸운다면 종교인들과 노동자 뒤에서 함께할, 혹은 그들의 지지를 받을 동역자들은 누구일까? 이 책의 내용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누구에게 표를 던질까?
또한 저자는 인간답게 사는 것은 행복하게 혹은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노동문제 해결이 행복의 길, 인간답게 사는 길이라고 약속한다. 또한 책에는 노동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것 같은 나라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우리가 이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놀랍게도 인간다운 삶과 천국을 제시하는 점에서 종교의 형체가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다.
기독교인은 누구보다 사회적 약자를 돌볼 의무를 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보다 앞서면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다할 때 우리는 기독교 그 자체가 개인의 의도와 사상보다 중요함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