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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더 불어라 3
삼숙은 떨어지는 풋 홍시를 바라보며 신랑을 비교했다. 저렇게 많은, 푸르고 싱싱한 감들 속에서 마지막계절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이르게 낙과하는 풋 홍시가 마치 신랑 같다는 생각을 하며 한참 벤치에 더 앉아 있었다.
한두 개 푸른 감이 일찍 떨어진다 해서 감나무에 달려 있는 감들의 숫자가 줄었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신랑도 그럴 것 같았다. 할머니가 말했던 신랑과의 인연이 이것뿐이라면 삼숙은 기억 속에서라도 오래오래 신랑을 붙들어 두고 싶었다. 신랑을 오래도록 가슴에 묻어 둘 수 있는 것은 살아생전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신랑의 추억이라곤 고작 슬픈 기억밖에 없다. 그래 행복추억 만들기 하자. 가자. 가서 우리 신랑과 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추억 만들자.
그래야 할머니가 말했던, 끊어진 신랑의 끈을 다시 이을 때까지 인고의 남은 결혼생활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삼숙은 결심했다. 삼숙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답답한 병실로 돌아갔다. 삼숙의 결심을 의사는 반대했지만 시부모님은 반대하지 않았다.
친구가 삼숙의 전화를 받고 즉시 달려왔다.
“이제 마음이 변했니? 날 다 오라하고? 그렇게 날 못 오게 하더니 언제부터 이렇게 변덕쟁이 삼숙이가 됐지?”
“미안하다 내 사정이 그랬어.”
“그럼 이젠 사정이 나아졌니?”
빈정거리는 친구에게 삼숙은 대답대신 빙그레 웃었다.
삼숙은 친구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삼숙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친구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삼숙의 결혼식장이었던 마을회관에 왔다 간 후 처음 만난 삼숙이다. 삼숙의 여윈 모습이 가슴 아팠고, 삼숙의 비참한 시집생활이 마음 아팠으며 죽어가는 남편의 모습이 슬펐다. 삼숙의 사연을 다 듣고 난 친구가 너무 울어 충혈 된 눈으로 말했다.
“네 시댁은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소굴이고 네 인생은 버뮤다해협마의바다같구나. 삼숙아 친구가 진실로 부탁한다. 미망인 되어 또 후회하지 말고 네 신랑이 살아 있을 때 지금이라도 이혼해라. 네 운명의 액땜 했다 생각해라. 재혼해서 잘사는 사람 참 많다. 고생도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었는데 내 언니친구도 재혼해서 잘 산다.”
삼숙은 친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난 행복해.”
“그게 행복이라고? 너 참 난 애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도 구별 못하는 천치구나.”
삼숙은 친구를 은근하게 바라보며 깊은 눈으로 말했다.
“행복이란 네가 생각하는 것도 맞지만 내가 생각하는 행복도 맞아. 시련을 이겨내고 얻은 행복이란, 갈증에 마시는 찬물보다 더 달콤한 거야. 시련 없는 행복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절대 모를 거야. 그런 사람들의 행복은 빈껍데기야.”
“너 철학자 됐구나.”
“진정한 행복은 겉으로 나타나는 행복이 아니고 속으로 만드는 거야.”
“이런? 그래서 네가 지금 행복만들고 있다는 거야?”
삼숙이 잔잔하게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꺼덕였다.
“내 안의 행복을 불행으로 보는 네 눈과 네가 생각하는 나의 불행을 행복으로 여기는 나의 사고는 다른 것이 아니야. 동질이야. 행복과 불행은 각도에 따라 변하는 프리즘 같은 것이거든.”
친구는 삼숙을 찬찬히 바라보며 감동에 젖었다. 삼숙의 내면에 응고되어 있는 단단한 삶과 인생의 이념을 느꼈다. 보통여자들이 가질 수 없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친구라고 생각했다. 친구지만 존경스러웠다. 훌륭한 설교에 감동받은 성도처럼 친구가 한 풀 꺾고 삼숙에게 말했다.
“날 부른 이유가 뭐냐?”
삼숙은 어느 정도 마음을 갈아 앉힌 친구에게 신랑과의 이별여행을 말했다.
친구는 이별여행의 추억만들기를 의사처럼 반대했다. 신랑의 기억이 삼숙의 가슴에 추억으로 남아 있을수록 삼숙은 더 깊은 불행에 빠진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의사와 달랐다.
“신랑과 이별여행하고 싶어. 단 하나의 추억이라도 내가 오래 간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추억 만들고 싶어. 그런데 신랑이 지금 무척 힘들어. 둘이 떠나는 건 불안해. 네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저 몸으로?”
“그러니까 부탁한다. 한번만 도와다오.”
“어디로 갈 건데?”
“동해!”
“구체적으로 말해봐. 동해 어디?”
“글쎄 아직 거기까진 결정 못했다.”
친구가 잠시 생각하더니 생각난 듯 뻔쩍거리게 말했다.
“아! 울진 어때? 오색약수터도 있고 바다도 있고, 내 언니친구가 홈스테이하고 있어.”
“홈스테이?”
“민박 말이야 민박. 허지만 민박이라도 장급이래. 호텔 수준은 안 되고 모텔 급은 되나봐.”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신랑은 어린아이 같았다. 삼숙의 손을 한시도 놓지 않았다. 지나가는 차창 밖의 풍경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을 듯 나무 한그루 집 한 채도 유심히 바라봤다. 심지어 화장실 갈 때도 삼숙과 동행했다.
시댁화장실에서 놀란 이후 언제나 신랑을 혼자 화장실에 보내는 법은 없었지만 고속도로 남자화장실에 함께 들어가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허지만 삼숙은 신랑을 부축해서 대담하게 남자화장실까지 따라 들어갔다. 갑작스런 여자의 등장에 놀란 남자들이 물줄기가 남아 있는데도 후닥닥 지퍼를 올리는 사람도 있었고, 빙그레 웃는 묘한 남자들도 있었다. 삼숙은 그런 시선들이 조금도 창피하지 않았다.
화장실 남자들에게 신랑의 다리가 세 개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 같았다.
친구 언니친구의 민박집은 울진항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망양정해수욕장 근처였다. 민박집은 생각만큼 깨끗했다. 펜션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한 시즌이라 방이 없었지만 친구가 간곡히 부탁해서 가장 좋은 전망의 안방을 얻었다.
바다가 바로 코앞에서 시작된 안방에 여장을 푼 시간부터 삼숙의 이별추억 쌓기는 시작됐다. 민박에서 저녁을 제공했지만 삼숙은 일일이 손수 요리해서 신랑에게 먹였다. 친구는 가능한 삼숙과 신랑의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묵묵히 두 사람의 그림자처럼 행동했다.
첫날은 신랑의 체력 안배를 위해 일찍 잠들었다.
둘쨋날.
어둠속에서 서서히 여명이 벗겨지고 수평선의 윤곽이 들어나기 시작했다. 일출이 시작되는 과정은 오프닝 하는 극장무대 같았다. 어둠이 걷혀갈 수록 무대의 후면조명 같은 광채가 수평선 바깥쪽에서 점점 퍼지고. 곧 이어 붉고 강렬한 붉은 빛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구름도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구름이 완전히 붉게 물들었을 때 태양의 머리가 수평선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유리기술자들의 쇠파이프에 매달린 유리가 거꾸로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울진의 새벽바다 일출은 동영상으로 보던 보통 일출과 달랐다. 강렬한 장관이었다.
스크린만한 안방유리창 너머에서 펼쳐지는 일출광경의 하이라이트에서 신랑이 냅다 바다를 향해 소리쳤다.
“여보. 너무 찬란해요.”
그 순간 삼숙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신랑의 호칭 때문이었다. 삼숙씨. 잘하면 자기. 용기가 생기면 당신까지는 한두 번 불렀던 신랑이 ‘여보’ 라고 소리치는 것은 의외였다. 평생 들어보지 못할 호칭이었을지 모를 신랑의 여보란 호칭에 왈칵 목이 메었다. 이별여행을 참 잘 왔다고 생각했다. 여보라 불러 놓고 쑥스러웠는지 삼숙을 보고 신랑이 혀를 내 밀었다. 삼숙은 두 팔로 신랑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당신에게 처음 여보라고 불렸어요. 이제부터 저도 당신을 여보라고 부를 거에요.”
삼숙의 가슴에 묻혀버린 신랑의 머리가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사이 붉은 태양은 서서히 허리를 수평선에 붙여 놓고 있었다. 허리를 수평선에 걸친 붉은 태양이 삼숙의 가슴에 묻힌 신랑의 머리처럼 이글이글 흔들리고 있었다. 수평선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붉은 아침태양이 빠른 속도로 수평선에서 부양했다. 마치 김장밭에서 뽑히는 김장 무처럼.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여보 너무 멋져요.”
“환상이야. 여보.”
울진 새벽바다의 일출이 끝나고 일상의 아침바다가 되었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바다를 지켜보고 있었다. 죽음과 이별을 위한 추억만들기 첫날 아침이 그렇게 밝았다.
점심은 친구가 사온 대게로 요리했다. 영덕대게도 유명하지만 실제 대게의 원생산지는 울진이다. 울진대게는 영덕대게와 똑 같이 생겼지만 훨씬 육질이 단단했다. 민박집 아주머니, 아니 친구의 언니친구가 가져 온 전용대게 쑤시개로 대게의 살을 발라 신랑에게 먹이는 삼숙을 보고 친구가 말했다.
“삼숙아. 이제 네가 말하던 행복이 어떤 건지 조금 이해가 된다.”
신랑이 친구에게 고개를 숙였다. 친구가 신랑을 보고 처음으로 부드럽고 친절하게 말했다.
“행복하세요?”
대답대신 신랑은 친구에게 고개를 세 번 꺼덕였다. 친구의 눈에도 신랑의 모습이 철부지 같이 보였다. 친구가 신랑의 고개를 따라 세 번 웃었다.
식사가 끝나고 삼숙은 작은 쇼핑백을 신랑의 눈앞에 내밀었다. 대게 사러갈 때 친구에게 부탁했던 쇼핑백이었다.
“이게 뭐죠?”
“직접 열어 보세요.”
신랑이 조심스럽게 쇼핑백속의 물건을 꺼냈다. 그리고 의아한 눈으로 삼숙과 친구를 번갈아 봤다.
“남자 수영복이잖아요? 이건 여자꺼구요.”
이빨이 들어나도록 삼숙이 웃었다. 신랑이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놀리지 마세요. 저더러 이걸 입으라는 건 아니죠?”
삼숙은 신랑을 향해 명령조로 말했다.
“당신꺼에요. 우리 함께 바다에 들어갈거에요.”
“네에? 제가요?”
신랑이 입을 크게 벌렸다.
“안됩니다전안돼요.”
신랑이 단숨에 거절했다. 삼숙이 한쪽 눈을 반쯤 감으며 말했다.
“왜 안 되죠?”
“전 다리가 없잖아요.”
“바다에 들어가는데 다리 두 개가 다 필요합니까?”
“그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삼숙은 신랑을 향해 딱 부러지게 말했다. 엄숙하다 못해 경건했다.
“당신은 지금 깨닫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
“당신의 머릿속에 박삼숙이란 아내생각은 전혀 없군요. 오로지 이목과 체면으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신의 잃어버린 다리를 박삼숙이 가지고 있는데도 당신은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박삼숙이는 슬픕니다. 박삼숙은 머릿속에도 가슴에도 오로지 당신 생각으로만 가득 채웠는데.”
거기까지 말했을 때 고개 숙이고 있던 신랑이 말했다.
“입겠습니다. 당당하게 입겠습니다. 당신이 아닌 저를 위해서 입겠습니다.”
신랑과 삼숙을 번갈아보며 친구가 감동의 한 방울. 꼬리가 긴 눈물을 뺨으로 흘려 내렸다.
사고 이후 신랑은 처음 바다에 들어갔다. 삼숙도 시집 온 이후 처음으로, 참 오랜만에 몸을 바다에 적셨다. 바다에 들어간 세 사람 중 신랑이 제일 즐거워했다. 파도를 타며 물싸움하는 세 사람 모두, 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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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울진의 바다가 물속에들어가면 불구자인지 모르겠죠.
현명한 추억만들기 바로 그방법인것 같슴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울진여행 에서 박성기 화장 만나는것은 아닌지?~~ㅎㅎㅎ
잘보앗슴니다.
일찍 일어나셨군요.착한 어른 아니 중년?...ㅎㅎㅎ
박회장 만날수도 있고 못만날 수도 있는 우연일 수도 있겠지요....ㅋㅋㅋ
오늘도, 비오는 날이지만 행복하세요
삼숙의 결혼한지 며칠 되지안았는데.
신혼여행의 단꿈에서 이제 리별을 고하는 마지막 여행길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나드래님도 부지른한 아침이군요.
이곳은 아침에 비가 내렸습니다.
비만큼 삼숙의 마음도 젖겠지만 운명이란 그런거니까....
허지만 나드래님은 항상 행복하기만 하세요
몹시 안타까운 신혼생활입니다.
작가님 천성이 보이는듯합니다.
삼숙이의 그런상황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삼숙이의 효부상을 그대로 그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소설속의 주인공을 리해 못할것 같슴니다./
ㅎ
나이든 분들도 이해 못하긴 마찬가지죠
허지만 나타나진 않지만 이런 여자 있습니다 실제로 있습니다.
젊은 사람에도 나이든 중년들에게도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그런 효부를 몇 사람 봤습니다..바보스럽지만 그렇게 생각되지만 그런 사람이 있어 인생이 윤택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비교하니까요....ㅎ
고운 월요일되세요
같은 여자입장으로 볼때 가수록 산넘어산이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신혼여행 떠날때도 시누이롸 셋이서 떠났는데.
여행 갈때도 친구와 함께 해야만 하는 기구한 운명 ~!
오늘따라 마음이 더욱 짠합니다.
항상 느끼지만 느티나무님의 감성이 참 부드럽다고 여깁니다
같은여자의 입장에서....그저 전 죄송하다는 말밖에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세상엔 알지 못하는 슬픔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삼숙이도 그렇고...저도 그렇고...ㅋㅋㅋ
이제 어느듯 소설 기성회비도 마감해야 할 시간에 그렁저렁 도착해 가야 하는가 봅니다
끝까지 지켜 봐주세요
오늘도 행복하시구요
하나의 운명이려니 하고 채념한듯 하네요..
여행가서 추억좀 만들고 얼마남지안은 신랑 저세상에 고의 보내드릴려구요..
초혼님 ..운명....체념....추억....
왠지 제가 마음이 착잡해 집니다....ㅎ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저내리는 듯한 절망감
이어서 슬픈 가락의 멜로디 마저 감동 되어 갑니다.
송파사장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느듯 이제 이 소설도 종반으로 갑니다
쉴틈없이 달려 왔네요..벌써 두달....
소설 한권 쓰는데 보통 6개월 이상 걸리는데 매일연재라 쉴수도 없었습니다
허지만 송파사장님 같은 분이 있어 덜 힘들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완독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