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냄새 가득한 경기도 용인시 고기동에는 전망 좋은 전원주택, 초향루가 있다. 초향루는 노부부의 삶에 맞게 아담한 크기이면서도 주변의 전망을 폭넓게 즐길 수 있다. 특히 다실과 손님방의 전망은 비할 데가 없이 좋다. 건축가 구승민 소장은 주변의 풍부한 전망을 현대적인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초향루는 이름처럼 풀냄새가 가득한 경기도 용인시 고기동에 자리를 잡고 있다. 낮고 단아한 바라산의 산세가 마을을 둘러싼 집터는 이전에는 텃밭이던 자리였다. 건축사 꾸씨노의 구승민 소장은 처음 찾은 집터에 가득했던 마른 햇살과 풋풋한 풀 내음에 영감을 얻어 지금의 초향루를 지을 수 있었다.
그는 비록 심하게 기울어졌지만, 아름다운 경관에 둘러싸인 이곳에 빛과 자연, 인공미를 결합한 집을 짓고 싶었다. 인근에 살다 새집을 짓기로 마음먹은 노부부는 이전에 살던 집보다 좀 더 깔끔하고 현대적인 집을 원했다. 구 소장은 자연의 은근한 무게감에 현대적이면서도 율동감이 넘치는 집을 설계했다. 우선 심하게 경사진 땅을 돋우고 집 후면의 긴 옹벽을 따라 가늘고 긴 ‘ㄱ’자 형태로 건물을 앉혔다. 수평적인 1층의 흐름에 수직으로 솟은 2층을 두터운 가벽으로 묶어 일체화된 느낌을 줬다.
가벽에 그어진 선은 사선 형태로 배치해 수직선 문양을 두른 집에 율동감을 부여했다. 건물은 부분적으로 화강암을 사용해 묵직하면서도 동시에 백페인트글라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가볍고 현대적인 느낌을 줬다. 백페인트글라스는 외장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드문 재료다. 구 소장은 화강암과 백페인트글라스를 대비해 조화와 대비를 이루면서 빛에 따라 주변의 색감과 함께 조응하는 백페인트글라스가 초향루를 시시때때로 달라 보이게 했다.
빛과 시선이 교차하는 중정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에는 천창이 있어 인공의 조명 대신 자연광을 받는다. 자연광은 집 안에서도 이어진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넓게 열린 거실과 더불어 집안을 환하게 비추는 중정을 볼 수 있다. 유리벽으로 둘러져 집안 깊숙이 들어온 중정은 밝은 채광을 제공하는 동시에 실내에 있는 사람들이 마당의 아름다운 조경과 멀리 보이는 바라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 건축면적 121.89㎡으로 넓지 않은 실내가 탁 트여 보이는 것은 집안으로 빛을 끌어들이면서 시선은 밖으로 내보내는 중정 덕분이다.
초향루는 인근에서 전원주택에서 살던 노부부가 좀 더 편하고 현대적인 집에 살기를 원해 지은 집이다. 집의 동선을 단순화하고 구조체를 두지 않는 방식으로 건축주의 나이를 배려하면서 현대적인 모양새를 갖췄다. 집의 중심인 거실에서 오른쪽에 있는 좁고 긴 복도를 따라가면 화이트 컬러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주방이 나오고 주방 앞에는 안방이 있다. 주방과 안방이 가까워 주방으로 왕래가 잦은 노부부의 생활이 매우 편리하다. 안방의 위치가 다소 구석진 느낌이지만 안방에서 바라본 전경은 거실 못지않게 화려하다. ‘ㄱ’자 형태의 끄트머리에서 마당을 품는 위치에 있는 안방은 정원의 아름다운 조경과 바라산의 산세를 두루 살필 수 있는 초향루의 또 다른 명당이다
재미있는 전망이 돋보이는 손님방과 다실
중정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삼각형으로 이어져 역동적인 느낌이다. 계단 위에도 천창을 내 빛이 자연스럽게 내부의 조형을 드러내도록 했다. 2층 계단 앞에 놓인 손님방에는 넓은 창과 더불어 양옆으로 슬릿창(Slit Window)이 2개 있다. 천정에 가까운 슬릿창으로는 주변의 자연경관을 볼 수 있고 바닥에 붙은 슬릿창으로는 초향루의 중정과 그 주변을 볼 수 있다. 손님방에 머무는 손님이 초향루가 속한 자연과 더불어 초향루 자체를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안배한 것이다. 기울기를 준 천창과 마름모꼴의 바닥, 예각 형태로 놓인 테라스 역시 긴장감과 율동감을 주면서 주변의 경관을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차에 관심이 많은 노부부를 위한 다실은 누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다. 보통 건축에서는 서쪽 빛을 차단하지만, 코너를 모두 창으로 열어서 두 방향에서 빛을 받아 밝고 운치 있는 공간이 됐다. 창턱의 높이는 전통 한옥의 그것처럼 앉은 사람의 팔 높이 정도로 올려서 적당히 기대거나 걸터앉기에 좋도록 했다. 미닫이문을 설치해 전통적인 느낌을 주면서 동선의 불편함을 해결한 것도 한옥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길게 놓인 초향루의 전면을 보면 그 크기가 121.89㎡라는 것이 다소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건축주와 구 소장의 선택은 현명했다. 만약 2명의 노부부가 사는 집을 지나치게 넓게 지었다면 유지비도 많이 들고 청소 역시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건축가는 넓은 대지를 관리하기 쉬운 단순한 정원으로 조경하면서 건물의 크기를 줄이고 대신 중정을 비워 충분한 채광과 전망을 확보했다. 줄이고 비우는 일, 바로 전원생활의 핵심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라산의 멋진 경관이 초향루의 손님방과 다실에 찾아든다.
건축가 구승민
건축은 조화와 파격의 조합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 현대적인 전원주택을 짓는 것은 다소간 조화를 깨는 것만 같다. 하지만 사선 무늬 백페인트글라스를 역동적으로 두른 초향루는 주변의 자연경관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건축가이면서 시인이기도 한 구승민 소장은 자못 철학적인 접근으로 이러한 해법에 도달했다.
“건축과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것은 적당한 배려와 조율이 있어야 합니다. 건축은 공간과 자리를 맞추는 작업이에요. 자연과 자연 사이에 인간이 끼어들 자리를 맞추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멋이 스며들 장소를 맞추는 일입니다.”
자연, 인간, 멋 어느 하나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건축주의 생활이 편하면서 자연을 누릴 수 있는 데에 더해 미적인 완성도 역시 갖춰야 한다.
“배려와 경쟁이라는 이중성 속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지금의 건축 현실에서 진지한 자기고민은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지속적으로 남이 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면서도 상대적인 입장에서 보편성의 눈으로 나를 신중하게 살펴야 합니다.”
건축가로서 철학과 미의식을 고집하면서도 건축주의 요구사항과 주변 자연환경을 끊임없이 배려한 진지한 작업방식 덕분에 자연을 풍부하게 누리면서도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전원주택이 완성됐다.
주소: 경기도 용인시
면적: 대지 610.66㎡, 건물 121.89㎡
건축비용: 평당 500만원
특징: 훌륭한 자연환경을 누리는 현대적인 모습의 전망 좋은 집
건축가: 구승민
건축사무소: 꾸씨노(02-3142-7222)
출처 이코노믹리뷰 유주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