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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는 전도연·고현정과 달리 여왕의 체면 지킬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JTBC 드라마는 올해 들어 계속 화려하다. 드라마 주인공이 국가대표급 배우들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인간실격' 전도연, '너를 닮은 여자' 고현정, '구경이' 이영애 등 여왕급 배우 3인의 드라마가 연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전도연은 5년, 이영애는 4년만의 드라마 복귀작이다.
'인간실격'은 남주인공으로 류준열, '너를 닮은 사람'은 여성 상대역인 신현빈이 카운터파트지만 드라마 전개의 비중을 고려하면 모두 여주인공 원톱 드라마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런 클래스의 배우가 등장하는 드라마는 전지현이 나오는 tvN '지리산' 정도를 빼면 견줄 작품을 찾기 힘들다. JTBC는 남자 배우 중에도 연초 '허쉬'에 황정민을 출연시켰다.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없는 빅스타 배우들의 캐스팅으로 다른 방송사와 차별화하고 있다. 황정민만큼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지는 않지만 '시지프스' 조승우나 '괴물' 신하균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는 거물급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빅캐스팅 전략의 성적표는 기대에 못 미친다. 시청층이 보편적이기 힘든 장르물이 많아진 요즘 성공 드라마 시청률의 기준을 5%(이하 닐슨 코리아) 정도로 낮춰서 본다면 최종회에 이를 넘긴 드라마는 '괴물' 정도다. 나머지 중에는 초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1~2%대를 못 벗어나고 고전한 경우도 꽤 된다. 시청률은 좀 낮더라도 작품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 그나마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 그런 경우도 적다.
최근으로 돌아와 다시 '여왕 배우 3연작'으로 한정해 따져보면 '인간실격'과 '너를 닮은 사람'은 비슷한 특성이 있다. 전도연과 고현정의 연기는 여전히 압도적이고 드라마 자체가 지향하는 고급스러움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다. '인간실격'은 종영했고 '너를 닮은 사람'은 아직 후반부를 남겨 놓고 있지만 두 드라마 모두 문학적이고 고상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내레이션 등 산문적인 설명 장치가 잦거나 종종 비유나 비약 등 순수 예술에서 좀 더 자주 사용되는 연출 기법이 등장하는 점 등에서 그러하다.
이 경우 자세한 서술을 생략했다가 이어지는 전개에서 설명해주는 드라마의 떡밥 회수 기법인 경우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대중적이기보다 예술 지향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른 대중 드라마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불륜 기반의 막장 설정들도 등장하기는 하지만 두 드라마를 휘감은 고급진 분위기를 뚫고 대중들이 편하게 접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예술성과 작품성을 선호하는 소수의 시청자들을 감동시키지도 못한 듯하다. '디어 마이 프렌즈'나 '나의 아저씨'에서처럼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드라마적인 전달을 통해 만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실격'과 '너를 닮은 사람'의 이런 특징은 어쩌면 전도연과 고현정의 배우로서의 위상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배우들을 캐스팅하려면 다른 드라마와 차별성이 필요할 듯하다. 이를 위해 말초적 재미보다는 예술 지향적인 기획을 내세웠는데 원래 의도를 깊이 있게 성취하지 못하고 문학스러움과 고상함이 표면적으로만 흘러버렸을 수 있다.
'인간실격' 연출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인 점, '너를 닮은 사람'은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 원작이라는 점도 이런 추정을 부추긴다. 이런 상황에서 이영애의 '구경이'만 좀 다르다.
단순히 씻지도 않고 사는 폐인처럼 등장하는 이영애가 우아하지 않은 모습이라 그러한 것이 아니다. '구경이'는 연쇄살인범과 탐정인 이영애의 대결을 다루는데 하드보일드한 웹툰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전반적으로 경쾌하게 흘러가면서 코믹하고 때로는 잔혹하다. 벌어진 사건의 미스터리를 이영애의 천재적인 추리력으로 파악해가는 과정을 뒤따르는 재미가 일단 있다.
빌런도 신선하다. 김혜준이 연기하는 연쇄살인범은 한국 드라마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순수한 악이다. 청소년 느낌이 덜 가신 김혜준은 죄책감이나 망설임 전혀 없이 태연하게 죽일 놈을 찾는다. 살인마가 된 인간적 사연도 없고 고등학생 시절부터 살인을 놀이하듯 태연하게 저지른다.
'구경이'는 '인간실격'이나 '너를 닮은 사람'과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갖지만 그렇다고 철저히 대중적인 느낌만은 아니다. 때로는 그로테스크하거나 기괴한 설정도 등장하고 19금 드라마로 제작돼 시청층의 제약이 있다.
이영애는 앞서 전도연과 고현정이 택한 JTBC 드라마의 고급진 늪에는 발을 담그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구경이'가 4회를 마친 현재 시청률과 대중들의 평가에서 어떤 성취를 이룬 것도 아직 아니다. 3회까지는 살인 방법이 복잡해 쉽게 즐기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이영애가 '구경이' 종영 후 받아들 최종 성적표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 JTBC의 드라마 빅캐스팅 방향성에 계속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JTBC]이영애는 전도연·고현정과 달리 여왕의 체면 지킬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