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JAPAN RAIL PASS(이하 JRP) 가격인상 공지
혹시나 설마 했는데, 결국 JRP 공식 홈페이지에도 가격인상에 관한 공지가 떴군요.
가장 널리 쓰이는 보통차 7일권 29,650엔 하던 것이 무려 50,000엔으로 수직상승한 것을 비롯하여, 패스 전반의 가격이 거의 1.7배 안팎으로 올랐습니다. 기존의 소비세 인상분 찔끔 오른것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수준이지요. 이는 기존 JRP에 대한 JR 그룹의 정책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 왜 올렸을까?
한마디로 더이상 외국인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면서 유인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네요. 왜 그랬을까요. 제가 JR 그룹 담당자는 아니라서 추측에 불과하지만, 몇 가지 생각을 해 볼수는 있겠습니다.
첫째로, 사실 기존의 JRP의 가격이 지나치게 낮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KORAIL PASS 5일권이 21만원입니다. 서울-부산을 2번 왕복해야 본전이 나오는 가격입니다. 반면 JRP 7일권으로 도쿄-오사카를 1번 왕복하면 본전의 거의 대부분은 회수합니다. 게다가 공항철도, 지역의 로컬선 등까지 비교하면 솔직히 효용성에서는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었지요. 그런걸 생각하면 기존 JRP의 가격은 너무 저렴했던 것도 사실이기는 했지요. 같은 일본 내에서 2만엔이 넘는 여러 지역패스들과 비교해 봐도, JRP 전국패스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긴 했습니다.
둘째로, 많이들 하시는 추측이신데 아마도 JR도카이에서 JRP를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입니다. JR도카이는 그저 도쿄-오사카 셔틀(?)일 뿐, 관할구역 내에 관광수입이 많은 것도 아니고 딱히 파격적인 혜택을 줘가면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이익이 별로 없겠지요. JRP의 연원은 국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분할민영화 이후에도 어떻게 유지는 하고 있었지만 JRP를 둘러싼 각 지역의 사정과 이해관계가 모두 제각각이고 판매수익의 정산에도 불만을 가진 회사도 있었을 겁니다. 내심 없애버리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당장 폐지는 좀 그렇고. 결국 가격을 대폭 올리면서 살테면 사고 말테면 말아라는 식으로 기조가 변경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셋째로, 주변국들의 경제성장입니다. 과거 일본은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독보적으로 부유한 동시에 물가도 비싼 나라였습니다. 자기네들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JRP와 같은 가격차별(price discrimination) 정책이 불가피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요. 일본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진 동안 한국, 대만, 중국에서 오는 관광객의 구매력은 일본보다 크게 떨어질게 없는 수준까지 올라섰기 때문에, 더이상 외국인 관광객에게 특혜에 가까운 요금제를 제공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3. 앞으로도 구매할 가치가 있을까?
하드하게 열차를 타지 않는 한, 이제 JRP는 일반적인 관광객에게는 계륵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보통 7일권으로는 두 권역 정도를 둘러보는게 적당한데, 앞으로 이 정도 가지고는 본전 뽑기가 간당간당할 겁니다. 차라리 장거리 이동은 국내선 항공을 이용하고 권역 내에서만 철도를 이용하는 게 더 저렴한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앞으로도 JRP를 구매하는 분들이 있겠지요. 일일히 승차권 구매할 필요 없어서 편리하고, 비용 측면에서도 예전처럼 두세배 이상 남기는 건 어렵더라도 손해만 안보면 괜찮다는 생각으로 JRP를 구매하는게 나은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노조미 이용 불가가 걸리는군요. 지금까지는 워낙 할인이 많이 되어 있으니 노조미 못타는 불편함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만 했는데, 50,000엔이나 내고도 여전히 노조미를 탈 수 없다면 좀 그렇기는 하네요. 개편 이후에는 추가요금 내고 노조미는 탈 수 있는 걸로 바뀐 거 같긴 한데, 구태여 50,000엔에다가 이 돈을 더 내고 타고싶은 마음은 전혀 안 들게 하는 가격입니다. 이래저래 참 애매해졌습니다.
4. 지역 패스들은 어떻게 될까?
지역 패스들의 가격도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지역 패스들은 몇천엔 정도의 소폭 인상은 몰라도 이번의 JRP처럼 가격이 수직상승하는 일은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JR 각 회사의 입장에서는 JRP 전국패스보다는 지역 패스를 더 많이 팔고 싶었을 겁니다. 전국패스는 아무리 팔아봐야 다른 회사와 판매수익을 정산해야 하는 반면, 지역 패스는 온전히 자사의 매출이 되니까, 수익성 면에서도 훨씬 낫지요.
물론 JR도카이처럼 패스 그딴거 안키우는 회사도 있지만, 그 외 대부분의 JR 회사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자사 구역내의 지역 패스를 개발해 왔습니다. 그 종류만 해도 수십 종에 달하는데 가격도 낮은 편은 아닙니다. 홋카이도 레일패스 7일권이 25,000엔, JR동일본 도호쿠 패스 5일권이 20,000엔, JR서일본 전지역 패스 7일권이 23,000엔, 올 시코쿠 레일패스 7일권이 20,000엔, 규슈 레일패스 전규슈 7일권이 20,000엔 등, 오히려 7일권이 29,650엔 하는 JRP 전국패스가 그동안 지나치게 낮은 가격이 매겨져 있었다면, 각 지역 패스들의 가격은 이미 적정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JRP 전국패스의 입지가 애매하진 대신, 앞으로는 JR 각 회사들이 지역사정에 맞게 발행하는 지역 패스가 오히려 주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JR도카이에서 예나 지금이나 패스는 찬밥이지만, 그동안 패스에 진심이었던 JR서일본이 갑자기 정책기조를 급선회하지는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상품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질 정도로 지역 패스의 급격한 가격인상을 단행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물론 사실은 희망사항이기도 하지만요.
첫댓글 저도 이번에 JR패스 가격이 오른 것이 아쉬운데요. 단계적으로 시차를 두고 조금씩 올리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이렇게 올라도 본전은 하니까 특히 큐슈부터 홋카이도까지 전국 훑으시는 분은 아직 이만한 패스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네요. 게다가 자동발권기로 쉽게 예약할 수 있게 된 것과 자동개찰기 통과가 쉬워져서 어쩔 수 없이 앞으로도 이용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도카이에서도 신칸센 관련있는게 없어서 그렇지 권역별 관광패스는 제법 쓸만하다는게[…]
본전을 뽑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JRP 한장 손에 들고 일본 땅에 발을 디뎠을때의 그 행복감. 이거 한 장이면 무슨 암행어사 마패마냥 난 어떤 열차든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다라는 무한대의 해방감. 그 느낌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일본의 항공사들도 외국인에게 상당히 저렴한 가격을 제공하고 특히나 JRP 가격인상 이후에는 JRP만 고집할 게 아니라 항공편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만은 하다 생각합니다만, JRP 여행은 미리 예약해 놓은 항공편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자유가 있지요.
저는 도카이도•산요 구간 노조미, 미즈호까지 이용할 수 있었더라면, 이번 가격 인상에 80%는 납득됐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본에 거주하게된 이후로 쓸 수도 없는 입장이라 어쩔 수 없네요. 항상 신칸센, 특급을 많이 타고 다녀서 본전이상은 뽑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