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엠텍의 전태원(56회) 대표이사
생판 처음 하는 저런 업체도 되는데 우리도 해보자!
전태원(56회) 동문이 전)(사)중소기업융합경기연합회 남부지회 지회장에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R&D 활성화였다. 이전까지는 아예 실적이 전무했던 중소벤처기업부 R&D 자금을 받을 수 있도록 R&D 설명회 및 기업 맞춤 컨설팅을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S 클라스급 평가 전문 위원들을 초빙한 집합 교육, 과제 발굴·지원, 사업계획서 작성 지도, 발표 평가 실전 코칭으로 이루어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회원사들이 정책 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를 설명하는 전 대표의 얼굴에는 리더로서의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정책 자금을 받게 된 업체에서 자발적으로 일부 발전기금을 내놓아요. 그러면 그 발전기금을 활용해서 전문 평가위원들을 초빙해 10번 넘게 특강을 했어요. S 클라스급 평가 전문 위원들을 모셔서 평가의 기준, 사업 계획서 작성 요령, 선정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포인트 등을 교육했지요. 그랬더니 또 채택이 된 거예요. 그리고 이제 한두 개 잘 된 업체들이 썼던 폼이 있으니까 거기에 자기 기술만 대입하면 되잖아요. 그렇게 해서 작년, 올해 많이 했죠. 대부분 돈 빌릴 줄만 알았지, 선정되면 받은 R&D 자금을 갚을 의무 없이 그냥 사용하는 것을 처음 경험해 보는 거죠. 그러니까 되게 반응이 진짜 좋죠.”
전태원(56회) 동문이 이렇게 할 수 있는 배경에는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중기청 기술혁신개발 전력기기/전기전자분과 기술평가위원, 중소기업 기술정보진흥원 전기전자분과 기술평가위원, 한국 에너지기술 평가원 중전기기/전력기기 분야 기술평가위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인력사업 평가위원(R&D 중간조직 활성화, 이공계 미취업), 한국 전기안전 연구원 전기안전분야 기술 평가위원, 미래부 국가 과학기술 심의위원회 기계소재분과 전문위원(2016년~2017년), 경기도기술개발사업 평가위원(전기전자분과) 등 수많은 평가위원을 하면서 얻은 명성과 인적 네트워크, 회원사를 적극적으로 배려하고 방향을 제시해 주려는 전 대표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국내 최초 세라믹 소재 피뢰기 소자 개발 위해 대기업 뛰쳐 나와
전태원 대표는 현대 계열사인 금강고려페인트에 공채로 입사했다가 “정부 R&D 과제로 획기적인 제품, 피뢰기 소자를 함께 개발해 보자. 이거 하면 네 인생이 바뀔 거다.”라는 삼흥중전기 연구소장의 권유에 가슴이 설레어 입사 6개월만에 안정적인 대기업을 그만두고 삼흥중전기 연구소 창단 멤버로 들어갔다. 당시 세라믹 소재로 만든 피뢰기는 일본에서 전량 생산하고, 국내에는 기술이 없을 때였다. 일본에 가서 6개월간 교육 받고, 학교에 가서도 6개월간 교육을 받는 등 준비를 거쳐, 91년도부터 5년 넘게 연구해서 국내 처음으로 개발에 성공했다. 그 과정이 어찌나 힘들었던지 처음 시작했던 4명 중 3명이 퇴사하고, 전태원 대표만 홀로 남아 후배들을 가르치며 개발했다.
기술 검객, 방랑의 끝은?
개발 성공에도 불구하고 기업 내 파벌로 잦은 마찰을 겪었다. 그 무렵 동일한 사업을 추진하던 삼영그룹 계열의 고려애자로부터 구애의 손길이 뻗쳐 왔다. 2년을 고민하던 전 대표는 마침내 이적을 결심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스카우트비 2억 원과 좋은 연봉 조건으로 32세의 젊은 나이에 연구소장직을 맡아 1997년 9월 자리를 옮겼다. 이 회사는 1995년부터 40억 원을 투자하여 해당 라인을 깔았으나 실패하자 전 대표에게 전권을 주고 손을 내민 것이었다.
연구소가 마산에 있었는데, 당시 삼영화학 이종환 회장이 거의 매주 내려올 정도로 이 사업을 중요하게 여겼다. 전 대표를 이종환 회장에게 연결해 준 사람이 LG 금속에 있었는데, IMF가 터지면서 이 팀이 해체되어 이 사람도 연구소에 함께 근무하게 되었다. 이종환 회장이 기술적인 것을 물어보면 전 대표는 즉답을 하고, 이 사람은 답을 못 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회장의 신임을 잃게 되었고, 이로 인해 소외감을 느낀 이 사람과 많이 부딪히게 되었다. 이런 갈등에 마음 고생이 심했던 전 대표는 1년 정도 지내다가 사표를 던지고, 서울로 올라와 스카우트비로 받은 2억 원을 고스란히 돌려주고 나와 버렸다. 계약 기간 3년을 채우면 스카우트비 2억 원을 지킬 수 있었지만 젊은 혈기가 용납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벤처기업 창업을 해서 100억 원 투자를 받았으나 동업자가 투자 받은 돈을 개인적으로 빼돌리는 데 열중해서 지분이고 뭐고 다 주고 나와 버린 일. 동업으로 창업했다가 설비 빼앗기고 7,500만 원짜리 어음 부도 맞고, 집 담보로 5,100만 원 대출받아 지분 정리한 일. 1년새 연달아 1억 원 부도 맞은 일 등 곱상한 용모와 다르게 많은 풍파를 견뎌야 했다. 검 하나로 무림을 평정하고 마음에 맞지 않으면 표표히 떠나버리는 검객의 모습이 연상된다.
삶의 위기마다 돌파구가 되어준 R&D
그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헤쳐나올 수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쉽지 않았죠. 진짜 아주 캄캄했어요. 그나마 R&D 자금을 받았으니까 급한 것은 이 자금으로 버티고, 업체 부도 갚아야 될 것은 업체를 찾아가서 한 두 달씩 유예를 부탁하면서 끌고 간 거죠. 고생했어요. 남들이 보면 되게 그냥 순탄하게 간 줄 알아요. 제가 수업료를 얼마나 냈는데요. 2010년도에 기계를 샀는데, 일이 뚝 떨어져서 현장에 근무하던 분들은 잠시 쉬라고도 보내고. 진짜 고생했죠. 그런데 우리가 유지할 수 있는 거는 R&D 자금이었어요. 그걸 받아가지고 그나마 연구소는 두세 명, 서너 명씩, 지금 우리 6명이거든요. 연구소를 계속 운영하고 있는 바람에 견뎌 온 거지요.”
5년 내 코스닥 상장 목표
갖은 고생을 하며 기술 개발의 열정을 멈추지 않았던 전 대표는 2008년 10월 23일 ㈜에스엠텍을 창업하였다. 전 대표가 전력기기 관련 국내 초창기 멤버이고, 회사 설립 시부터 항상 연구소를 운영해 오다 보니 관련 특허 8건, 실용신안 5건으로 차별화된 기술을 가지고 국내 선두 주자를 오랫동안 견지해 왔다. 피뢰기의 경우 한전 전체 물량의 40%, COS(컷오프스위치)도 올해부터 전체 물량의 한 40% 정도를 담당하고 있으며, COS는 향후 70%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품질과 가격 경쟁력에서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회사는 안정적 궤도에 올라와 있는데 COS의 성장과 최근 개발 완료된 전기적 특성 및 내환경성이 향상되고 3상 동시 차단이 가능한 배전선로용 폴리머 Drop Out(COS Type)형 고장구간 자동 분리 장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한전에 사용 예정이고, 인도네시아 전력청에 구매 조건부로 끝나 있는 상태이다. 앞으로 3년 안에 비슷한 규모의 회사와 M&A를 해서 5년 후에 코스닥 등록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知足常樂 能忍自安(지족상락 능인자안)
생을 마감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것’을 설문조사 하였다. 70~80%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투자하지 않은 것.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은 것’을 꼽았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 대표는 자신에게 투자하는 의미로 재미있게 살려고 한다. 골프 치는 것을 좋아해서 80타, 싱글을 칠 정도로 실력자다. 그리고, 조직의 장을 맡아 어떤 일을 기획해서 실행하고, 회원들이 잘 호응해 줘서 효과적으로 잘 끝나는 것을 재미있어 한다. 조직의 리더가 제격인 사람이다.
전 대표는 도덕경에 나오는 知足常樂 能忍自安(지족상락 능인자안)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만족함을 알면 항상 즐겁고, 참고 인내하면 편안함을 아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출처] 화성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