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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82년생 인물
82년생 김민희
82년생 도도맘
82년생 에이미
82년생 고유정
대상을 ‘일반인’ ‘80년대생’까지로 잡으면 ‘82년생 김악마’ 같은 소설도 얼마든지 출간할 수 있다. 그래놓고 ‘82년생 김지영’처럼 소개글에 ‘보편적인 한국 여성의 인생’이라고 적어두면 기분이 어떨까?
먼저 남성 독자들은 '남성을 너무 나쁘게 묘사한다', '있지도 않는 사례나 희소한 사례를 보편적이라고 왜곡한다."고 비판했는데 이에 대해 조남주 작가는 '실제보다 상황이 안 좋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어찌 생각하든 거짓말 같은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모호한 표현으로 답했다.
# 그러나 실제로 겪을 수 없는, 불가능한 요소들이 상당히 존재해 고의적으로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과장도 문제지만
[30] 특히 위에서 서술한 아침식사, 복장 규제, 급식문제 등은 명백한 왜곡 내지 오류이다.
상업적으로는 흥행했다. 구매층의 성비는 압도적인
여초로, 2~30대 여성 구매자가 특히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30대는 그렇다치고 2019년대 기준으로 20대 여성은 여권신장이 80년대보다 훨씬 더 진행된 시대에 태어나서 발전한 여권신장의 수혜를 누리며 살아온 편이다. 물론 이런 차별을 전부 겪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한두 가지 정도는 살면서 당해본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런데도 김지영 등 무작정 여성이 피해를 입어왔다 주장하는 것에 대해 마치 자기들이 겪은 일인마냥 공감한다. 일각에선 이를 거짓 공감이라 부를 정도.이를 기반으로 남성혐오와 비난 등을 한다고 역으로 비판받는다. 그러나 문학적인 흥행은 문학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평이 갈린다.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성서 취급을 받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런 소설도 아닌
봉인소설/
불쏘시개 취급을 받는다. 당장 여성에만 구매층이 몰려있다는 사실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모든 성별과 연령으로부터 공감을 얻었다고 절대 볼 수 없다.
또한 '작품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과장'이라는 주장이 많다. 김지영은 사회비판적 소설인데 현실 사회를 부풀리며 왜곡해놓고 현실 사회를 비판하는 것은 오류라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회참여 소설들은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 극단적인 경우를 집어주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일례로,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극단적인 일들을 종합하여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큰 과장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책 소개에서부터 "한국 여자의 인생 현장 보고서", "서민들의 일상 속 비극을 사실적이면서 공감대 높은 스토리로 표현하는 데 재능을 보이는 작가", "고백을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자료와 기사들을 또 다른 축으로 삼아 30대를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일상을 완벽하게 재현" 등 소설 내용이 사실적이며 보편적이라고 주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에 기반하여 소설 내용이 사실적이며 보편적이라고 했다가 과장이 심하다고 비판하면 소설이라 과장이 허용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즉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일부에 한해서 일어나는 일을 사회 모두에 해당되어 일어난다는 식으로 과장 및 왜곡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단지(웹툰)처럼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그대로 적었고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다 직접 겪으며 살았다'고 밝혔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여성 문제와 관련된 통계를 구체적인 맥락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인용하였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또한 서사성을 무시한 여성 문제 에피소드의 나열과 통계를 이용한 주장 강화로 작품 내에서
독자의 사고를 제한하고 무조건적 수용을 암묵적으로 요구한다. 이것은 판소리에나 등장할 법한
"아, 주인공이 얼마나 불쌍한가!" 식의 서술자적 논평에 가깝고,
작가놈 거동 보소 소설이라기보단 성별 갈등 문제를 토론하는 곳에 나와서 역설한 주장에 내러티브를 부여하여 글로 옮긴 것에 가깝다. 이에 대해 작품이 세련되지 못하다는 평이 있으며, 이것을 문학 혹은 소설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도 일어난다.
무엇보다도 82년생 김지영에선 남자들이 주된
악당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생각 없이 성차별주의를 행할 뿐인 '나쁜 놈들'이다. 하지만 남성을 김지영과 비슷하게 해석한
델마와 루이스처럼 작품 자체가 흥미로운 서사성을 갖고 있거나, 그렇다고 주인공이 능동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는 찍 소리만 내고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설정해 동정심을 유발하고, 남자와 가족은 그런 불쌍한 여자를 의도했든 아니든 자연스럽게 괴롭히는 순수악으로 설정했는데, 여성이 계속 당하기만 하는 존재로 설정했다는 것은
여성이란 당하기만 하는, 남자에 비해 연약한 존재라는 걸 본인 스스로 인정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체적으로 글 수준은 괜찮냐면 그것도 아닌게, 이야기는 서로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일 없이 단편적으로 서술만 할뿐이다. 주인공을
학대하고 학대하며 학대하다가 끝나며, 이야기가 따로따로 노는 고전소설에서나 볼 법한 평면적인&지루한 이야기 구조다. 여성, 남성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격하시켰으며, 여자들을 능동적이지 못한 데다 오직 피해자 입장에 선 존재로 설정했고, 여성들에게 남성과 사회를 향해 편협하고 적대적인 시선을 갖도록 부추겼다. 남성을 적대적으로 설정했다는 것에서 보듯이 이건 명백한 사회 갈등 및 성별 갈등 조장밖에 되지 않으며, 가장 큰 문제점으로써 심지어 이 소설은
기승전결도,
결말조차도 없다.
[31]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이어지는 흐름이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라 봤을 때 냉정히 말해서 이건 소설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물건이다.
[32]이 소설의 또다른 큰 문제점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이후로 남녀평등이나 인권 문제의 대두로 사라지거나, 적어도 사회 통념상 옳지 않은 행위로 여겨지기 시작한 과거의 악폐습들을 묘사한 것까진 '그 당시를 묘사한 이야기라면' 상관없는데 2010년대에도 아직 존재하는 것마냥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여성을 차별하거나, 성희롱을 하는 일부 남성들의 행태를
마치 모든 한국 남성들의 특징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작가는 '거짓말 같은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아직도 이러한 악폐습들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듯이 언급하고 있다. 이에 반례를 들자면 여아를 대상으로 한 낙태의 경우 남녀 성비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으며, 부모들이 역으로 아들보단 딸을 선호한다는 통계가 증명하듯 점차 사라져가는 악폐습이다.
#적어도 2010년대에 일반인 사이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사고방식은 아니며, 그런 사고방식을 지닌
기성세대들은 적어도 수십 년 후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니 그마저도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대학 내의 성희롱과 같은 경우는
미투 운동에 대한 남성들의 지지를 통해 남성들 역시 성희롱이 잘못된 행위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성희롱 피해자에게는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증명되었다. 하지만 미투 운동이
래디컬 페미니즘 성격을 띄고 성범죄에 대한 개념 자체가 모호하면서 지나치게 확대 되는 탓에 억울한 남성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인식이 퍼져서 역으로 한국에서 (넓은 의미의)
펜스 룰 또는
성폭력 무고죄 같은 부작용도 생겨나기도 했다.
전업주부들은 문명의 발달로 일이 줄어들어서 하는것 없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 의사나 기타 직종 사람들도 일이 줄어든 것은 매 한가지 아니냐고 반박하는 부분이 있는데,이는 작가의 착오적인 발상이다. 전업주부들은 한 가정 내에서 일만 처리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일의 파이가 커지지 않았다. 오히려 핵가족, 저출산을 통해 한 가정내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의 양은 전체적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타 직종의 경우는 개개인의 업무 효율이 올라서 처리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집안일의 분담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전업주부가 결코 폄훼되어야 할 쉬운일은 아니지만,(자녀의 수가 줄었다 하더라도 각 자녀에게 들이는 시간이나 정성은 늘어났다.) 저런식으로 단순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공통된 비판은 "작품의 내용이 현 세태와 비교했을때 굉장히
시대착오적이고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 시대적 고증도 엉망이며 보편적인 상식에도 어긋나게 서술되어 있다.
[33]인터넷 방송인
액시스마이콜은 이 책을 직접 읽어보고 내용의 모순점에 대해 "누군가에게 있을
수도 있는 일을 작중의 한 사람에게 몽땅 몰아넣어서
[34] '허구헌날 이런 일을 겪는 불행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붙이고는 이것을 '보편적인 실제 여성들의 실상'으로 만들려 한 판타지 소설"이라며 비판했다.
#,
블로그 리뷰이 책은 소설의 기본인 서사성이 상당 부분 결여되었다. 옴니버스 구성이나 단편집의 영역을 벗어나, 일종의 '사례 모음집' 같은 구성을 띠고 있어서 소설로 봐야 할지 상황을 지어냈다는 것을 미리 밝히고 들어가는 '가상 사설'로 봐야 할지 헷갈리는 수준이다. 사실도 아닌 여성 문제에 대한 허위 데이터를 근거처럼 삽입하여서 더욱 사설이나 기사 같다.
몇몇 부분에 있어 여성 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내용과 그 시대적 현실이 동떨어져 있다. 급식 같은 경우는 시범 급식 학교들은 대부분 급식소를 따로 마련하지 못해 급식차를 사용하였고, 급식차를 복도 혹은 교실안에 가져와서 학생들이 순차적으로 배식 받게 된다. 이때 번호순서대로 급식을 받게 되면 동선이 심하게 꼬여서 -특히 저학년의 경우- 책상 혹은 학우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되어 음식을 흘릴 확률이 매우 크다. 대부분 동선 효율화 때문에 분단, 모둠등의 자리 배치에 따라 급식을 받게 된다. 이 당시 자리 배정의 기준은 대분이 키 순서 대로 였고, 완전 랜덤의 경우도 간혹 있다. 즉, 번호 순서대로 급식을 받아서 번호가 뒤인 여학생들이 차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초등학교-일부 시범 학교들은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이 바보도 아니고 굳이 문제가 생길 '번호순'급식을 할 이유가 없는 것. 78년 생인 작가 입장에서는 90년도 이후에나 시행 되었을 시범 급식을 직접 경험하였을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작가 뇌피셜일 가능성이 크다. 숙제 검사나 복장 단속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 후반부에 나오는 직장에서의 여성 차별이나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은 상당히 현실적이고 공감할 사람이 많은데 반해 학창 시절은 상당 부분 작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