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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6:17
하나님의 복은 형통한 상황만 가져오지 않습니다. 이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살면서 고난과 갈등을 마주합니다.그렇다면 이 순간에 무엇을 붙들거나 내려놓아야할까? 이삭은 반복되는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다툼이 아닌 평화의 길을 선택합니다. 옆 가게 공사가 길어지면서 미세먼지, 소음, 화장실까지 공사판입니다. 무엇보다 진입로 입구를 대형 크레인이 일주일째 막고 있어서 매상에 지장이 많습니다.
God's blessings do not bring only good situations. Because of this, Christians face hardships and conflicts in their lives. So what should we hold on to or put down in this moment? Isaac trusts God's promise in the midst of repeated conflicts and chooses the path of peace rather than quarrels. As the construction of the next store is prolonged, fine dust, noise, and toilets are also construction sites. Above all, a large crane has been blocking the entrance to the driveway for a week, which has hindered s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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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간판 프레임 공사를 한다며 우리 매장 플래카드를 잠시 떼어 놓겠다고 해놓고 하루 종일 매장을 가로 막더니 일언반구도 없이 그대로 철수해버렸습니다. 내가 순둥이 이삭의 우물 소동을 생각하면서 가만있으려고 했는데 아침나절 운동하러 가면서 보니 아무리 8:2라지만 이것은 우리 가게 조망 권을 넘어 완전 나와바리 침범이 아닙니까? 스물 스물 잠복해있던 성질이 올라왔고 결국 제 차(car)를 공사장 입구에 단단히 바리게이트를 쳐놓았습니다.
Yesterday, he said he would remove our store's placard for a while because he was working on the signboard frame, but he blocked the store all day long and withdrew without a word. I tried to stay still thinking about the disturbance in the well of the baby Isaac, but when I went to exercise all morning, it was 8:2, but isn't this a complete invasion beyond our store's view? My temper, which had been latent for twenty years, rose, and eventually, my car was firmly placed at the entrance of the construction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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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사는 것이 여전이 만만치가 않네요. 오후 두시까지 영업하고 시장에 나갔다가 크로우마치 선 그라스를 잃어버리고 혼자서 ‘어쩔 수 없지’를 수 십 번 반복하여 읊조렸는데도 기분이 영 나아지지가 않았습니다. 금테라 돈 백 만원 하는 가치지만 이미 과거가 되었으니 자책하거나 헛 힘을 쓰지 말아야하는데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도 심술부릴 곳이 없으니 환장하겠습니다. 한편, 그랄에 머물러 농사를 지은 이삭은 100배나 수확하는 복을 누립니다.
Well, it's still not easy to live. I was open until 2:00 p.m., went to the market, lost Crow March and recited "I Can't Help It" dozens of times by myself, but I didn't feel much better. It's worth a million won because it's already in the past, so you shouldn't blame yourself or use your energy in vain, but even if it's unfair and upsetting, there's nowhere to be mean, so I'm going crazy. Meanwhile, Isaac, who stayed in the grave and farmed, enjoys a 100-fold harv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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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그 땅에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본문입니다. 제발 나도 돈 벼락 좀 낮고 싶습니다. 그러나 거부 이삭에게는 돈이 득이 아니라 독이 되었지 뭡니까? 블레셋 사람이 시기하여 처음에는 이삭의 우물을 흙으로 메우더니 급기야 그 땅에서 쫓아내버립니다. 보호의 대상일 때는 안전을 보장받았는데 부러움의 대상이 되면서 위협거리로 바뀐다는 것을 너도 나도 왜 모를까요? 그러니 남들을 압도할 만한 부요가 반드시 축복은 아닙니다.
It was quickly rejected on the ground. It's an eye opening text. Please, I want to lower the money, too. But was money poison, not gain? The Philistines were jealous, and at first filled the well of Isaac with soil, and eventually kicked him out of the ground. Why don't you know that safety is guaranteed when it is an object of protection, but it turns into a threat when it is an object of envy? So wealth that can overwhelm others is not necessarily a ble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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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요가 이웃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하겠지요. 순둥이 이삭은 좋은 평지를 떠나가는 곳마다 번번이 우물을 팠는데 빼앗겼습니다. 애급을 내려가지 않고 순종한 대가치고 서글픈 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삭은 싸워서 패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당하는 삶을 선택했고 결국 르호봇의 우물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에섹도, 싯나라도 다툼인데 드디어 다투지 않은 르호봇을 갖게 된 것이지요. 이삭은 애급에서 가까운 쪽에서 이제 가나안 중심부로 점점 올라가 브엘세바에 당도합니다.
You should also know that my booyo can hurt your neighbors. Isaac, a pure child, has dug a well every time he leaves the good plains and has been taken away. It is a sad reality for a price who has obeyed without going down the level of sorrow. However, our Isaac did not lose by fighting, but chose to live a life that he suffered himself, and eventually received the well of Rehobot as a gift. Esek and Sitna were both in a fight, but they finally had a Rehobot that they did not quarrel with. Isaac moves up from the near level to the center of Canaan and arrives at Beershe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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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밤에 하나님께서 나타나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축복을 이삭에게도 주십니다. 특히 자손과 땅은 물론이고 이삭과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이삭은 이제 의식주문제와 주변의 위협으로부터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랄에서의 깜짝 번성이 축복 약속의 궁극적인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안전한 축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에서 시지포스는 신의 명령을 어긴 죄의 대가로 바위를 산곡대기까지 끌어 올리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From there, God appeared at night and gave Isaac the blessing he had given his father Abraham. In particular, he promised to be with Isaac as well as his descendants and the land. Isaac said there was no need to worry about food, clothing and shelter and threats around him. Come to think of it, the surprise prosperity at Gral was not the ultimate of the blessing promise. You will allow a safe blessing, if at any time. In Camus' "Siegforth Myth", Sigforth is punished by lifting the rock up to the top of the mountain in exchange for violating God's or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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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대기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산 아래로 떨어지는 바위를 지켜보면서 그는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하지만 카뮈는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향해 산 아래로 내려가는 그의 모습에서 다른 것을 봅니다. 그것은 자신의 고통과 불행을 의식하는 자의 위대함입니다. 시지프스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합니다. 그의 힘은 결과에 대한 희망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인생의 부조리를 기꺼이 받아들인 사람은 부질없는 희망을 거부하지만 이 거부와 반항을 통해서 자신이 처해 있는 부조리한 상황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행복에 도달합니다.
How hopeless was he as he watched the rock fall back down the mountain upon his arrival at the top of the mountain? But Camus sees something different in his image of himself going down the mountain towards the falling rocks. It is the greatness of a man conscious of his pain and unhappiness. Sisyphus is superior to his own destiny. His strength does not come from hope for results. A man who is willing to accept the absurdity of life rejects futile hope, but through this rejection and rebellion, he overcomes the absurd situation in which he is facing, and reaches his own happ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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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은 행복합니다. 부조리를 끌어안되, 부질없는 희망을 거부하고 반항하는 자의 행복입니다. 이런 사람을 세상은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결국 브엘세바의 이삭에게 아비멜렉이 찾아와 화친을 청합니다. 겉으로는 이긴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그렇다고 진 것도 아니고 빼앗기지도 않았고, 오히려 더 많이 채워지는 이삭을 보면서 그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후, 나는 왜 손해 보고는 못살까? 우리는 다툼이 아닌 인내와 평화를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Isaac is happy. It is the happiness of those who embrace absurdity, reject useless hopes, and rebel. The world can never beat such a person. In the end, Abimelech comes to Isaac of Beersheba and asks him to be angry. I think it's because I saw the God behind him while seeing Isaac filling up more, although he has never won. Why can't I live with losses? Do we live by choosing patience and peace, not str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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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과 블레셋 백성의 갈등(12-18)
이삭과 그랄 목자들의 우물 분쟁(19-22)
브엘세바로 이주한 이삭(23-25)
이삭과 아비멜렉의 조약(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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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12a)
그 땅에서 농사하여(12b)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12c)
여호와께서(12d)
복을 주시므로(1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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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창대하고(13a)
왕성하여(13b)
마침내 거부가 되어(1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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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14a)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14b)
블레셋 사람이(14c)
그를 시기하여(1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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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15a)
그 아비의 종들이 판(15b)
모든 우물을 막고(15d)
흙으로 메웠더라(1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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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이(16a)
이삭에게 이르되(16b)
네가 우리보다(16c)
크게 강성한즉(16d)
우리를 떠나가라(1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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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 그곳을 떠나(17a)
그랄 골짜기에(17b)
장막을 치고(17c)
거기 우거하며(1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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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18a)
팠던 우물들을(18b)
다시 팠으니(18c)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18d)
블레셋 사람이 (18e)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18f)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18g)
그 아비의 부르던(18h)
이름으로 불렀더라(18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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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종들이(19a)
골짜기에 파서(19b0
샘 근원을 얻었더니(1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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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랄 목자들이(20a)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20b)
가로되 이 물은(20c)
우리의 것이라 하매(20d)
이삭이(20e)
그 다툼을 인하여(20f)
그 우물 이름을(20g)
에섹이라 하였으며(2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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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21a)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21b)
그 이름을(21c)
싯나라 하였으며(2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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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 거기서 옮겨(22a)
다른 우물을 팠더니(22b)
그들이 다투지(22c)
아니하였으므로(22d)
그 이름을(22e)
르호봇이라 하여(22f)
가로되 이제는(22g)
여호와께서 우리의(22h)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22i)
이 땅에서 우리가(22j)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22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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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23a)
거기서부터(23b)
브엘세바로(23c)
올라갔더니(2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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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에 여호와께서(24a)
그에게 나타나(24b)
가라사대 나는(24c)
네 아비 아브라함의(24d)
하나님이니(24e)
두려워 말라(24f)
내 종(24g)
아브라함을 위하여(24h)
내가 너와 함께 있어(24i)
네게 복을 주어(24j)
네 자손으로 번성케(24k)
하리라 하신지라(24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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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25a)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25b)
거기 장막을 쳤더니(25c)
그 종들이 거기서도(25d)
우물을 팠더라(2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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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이(26a)
그 친구 아훗삿과(26b)
군대장관 비골로 더불어(26c)
그랄에서부터(26d)
이삭에게로 온지라(2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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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27a)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27b)
나로 너희를(27c)
떠나가게 하였거늘(27d)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2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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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가로되(28a)
여호와께서(28b)
너와 함께 계심을(28c)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28d)
우리의 사이(28e)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28f)
맹세를 세워(28g)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28h)
말하였노라(28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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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우리를(29a)
해하지 말라(29b)
이는 우리가(29c)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29d)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29e)
너로 평안히 가게(29f)
하였음이니라(29g)
이제 너는(29h)
여호와께(29i)
복을 받은 자니라(29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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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30a)
그들을 위하여(30b)
잔치를 베풀매(30c)
그들이 먹고 마시고(3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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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찍이 일어나(31a)
서로 맹세한 후에(31b)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31c)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3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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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32a)
자기들의 판(32b)
우물에 대하여(32c)
이삭에게 와서(32d)
고하여 가로되(32e)
우리가 물을(32f)
얻었나이다. 하매(3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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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 이름을(33a)
세바라 한지라(33b)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33c)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3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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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이 가져온 위기_ a blessing crisis
거룩한 후퇴 끝에 얻은 쉴 자리_ a place to rest after a retreat to faith.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 후퇴_ a retreat that proved the existence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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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채움을 위해 필요한 것이 믿음에 의한 비움이며 물러남이나이다. 순종에 자만하지도 실패에 절망하지도 않는 착한 백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삭처럼 물러터진 게 속 편할 뿐 아니라 주의 뜻인 것을 배우겠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채우심을 기대하면서 자기 부정과 순종의 비움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O LORD, what is needed for filling is emptiness by faith and retreat. I hope to be a good people who are neither proud of obedience nor frustrated by failure. I will learn that it is the LORD'S will to lose money like Isaac. Let me continue to practice the emptiness of self-denial and obedience in the hope of God's fulfillment.
2026.4.17.fri.Clay
신학 비평//
왜 하나님은 후퇴하는 자를 이기게 하시는? 나는 지금 싸워야 할 자리에 있는가, 아니면 물러나야 할 자리에 있는가? “백배의 수확 → 시기 → 추방” 이 흐름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역설 구조입니다. 복을 받으면 평안해질 것 같지만 오히려 갈등이 시작됩니다. 매상은 막히고, 길은 차단되고, 억울함은 쌓이고 그런데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상황이 실패인가, 아니면 다른 종류의 인도인가?
1) 우물의 신학: 존재를 파는 사람
이삭은 계속해서 우물을 팝니다. 에섹 (다툼) 싯나 (대적) 르호봇 (넓음) 이건 단순한 지명이 아닙니다. 인생의 단계입니다. 에섹...싸우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자리, 싯나...억울함과 분노가 깊어지는 자리, 르호봇...다투지 않아도 되는 자리, 여기서 핵심은 이것입니다. 이삭은 “이긴 적”이 없지만 “잃은 적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물을 빼앗기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파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 당신의 ‘바리게이트 사건’에 대한 정직한 평가
차를 세워 공사장을 막은 행동—이건 단순한 분노가 아닙니다. “정당한 경계 설정”과 “감정적 대응”이 섞여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의하지 않았고, 싸우지 않았고 그냥 떠났습니다 이건 약함이 아니라 방향 선택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합니다. 모든 싸움을 피하는 것이 믿음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싸움에 반응하는 것도 믿음이 아닙니다.
3) 카뮈와 이삭: 부조리와 순종의 차이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스와 이삭을 연결한 통찰은 흥미롭지만, 여기서 중요한 차이를 짚어야 합니다. 공통점...반복되는 상황-부조리한 현실-포기하지 않는 태도 결정적 차이...시지프스는 “버티는 인간”이고 이삭은 “맡기는 인간”입니다. 당신은 지금 이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이삭이 쫓겨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너가 너무 강해졌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이 나옵니다. 복은 나를 높이는 동시에 타인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복은 단순한 “많이 가짐”이 아닙니다. 나는 감당할 수 있는가, 흘려보낼 수 있는가?
4) 브엘세바: 후퇴의 완성
이삭은 계속 물러나다가 결국 브엘세바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여기서 모든 것이 정리됩니다. 백배 수확이 핵심이 아니고 르호봇도 종착지가 아니며, 하나님의 임재가 결론입니다. 쫓아냈던 아비멜렉이 다시 찾아와 화친을 요청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보았다” 이건 싸워서 얻은 결과가 아닙니다. 물러섬이 증명이 된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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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손해 보고는 못 살까? 이 질문은 아주 정직합니다. 답도 분명합니다. 아직 “결과를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달랐습니다. a. 우물 → 하나님이 주신다 b. 자리 → 하나님이 넓히신다 c. 안전 → 하나님이 지키신다. 그래서 그는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싸워서 지키는 삶보다 맡겨서 지켜지는 삶이 더 강합니다. "하나님은 싸워 이긴 자보다, 물러나 맡긴 자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