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사랑방야화 (31)
포목점 오집사
박참봉은 상주에서 으뜸가는 부자다.
호탕한 성격의 박참봉은 돈벌이에 매달려 골치를 썩이지 않았다. 농사일은 이집사에게 맡기고 포목점은 오집사, 해산물 도매는 남집사, 소금 도매는 김집사에게 각각 맡기고 박참봉은 주로 선비들과 어울려 풍류를 즐겼다.
박참봉은 애첩 추월이에게 맡겨 널찍한 요리집도 운영했다.
상반기 결산일이 되었다. 집사들은 모두 장부를 가지고 요리집으로 모여 박참봉 앞에서 상반기 영업실적을 보고했다.
농사 담당 이집사는 작황을 보고하며 올 가을에도 천석은 문제 없다고 큰소리치고, 해산물 도매 남집사는 상반기 이익이 육백오십냥이 났다고 보고하고, 소금 도매 김집사도 칠백이십냥 흑자를 보고하는데, 포목점 오집사는 삼백사십냥 적자를 보고했다.
이유인즉슨 백부상에 다녀왔더니 창고에 엽연초 연기소독을 하지 않아 쌓아둔 포목에 좀이 슬었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불찰이라 고개 숙였다.
박참봉은
“싸움에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요, 장사에 돈 벌고 밑지는 것은 상가지상사요.”
하고 껄껄 웃으며 오집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질펀한 술판이 벌어졌다
술고래 박참봉이 돌리는 매실주·감로주·산삼주에 모두가 대취했을 때 한줄기 바람이 불어와 촛불을 꺼버렸다.
그때
“엄마야”
하는 박참봉 애첩, 추월의 비명이 들리고 곧이어 불이 켜지고 술판은 이어졌다.
이튿날 아침, 추월이 꿀물을 타서 박참봉에게 들고 왔다.
“나으리 소첩이 어젯밤에 왜 비명을 질렀는지 아십니까? 오집사라는 인간이 포목점도 적자 낸 주제에 불이 꺼지자 소첩의 허벅지에 손이 들어오지 뭡니까.”
박참봉은 허허 웃으며
“추월의 허벅지에 들어간 손은 오집사 손이 아니고 내 손이야.”
박참봉은 오집사 짓이란 걸 알았지만 덮어버렸다.
상주고을에 돈을 주고 벼슬을 산 악덕 원님이 새로 부임했다. 박참봉을 들들 볶기 시작했다. 돈을 바쳐도 바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더니 급기야 소금 도매상과 건어물 도매상을 원님의 종형에게 넘기라 협박했다.
거절한 지 닷새 만에 박참봉은 옥에 갇혔다.
춘추가 두번이나 바뀌고 박참봉이 출옥했을 때 옥사 앞에 오집사가 생두부를 들고 기다렸다. 부인은 친정으로 가버렸고 추월이는 원님의 애첩이 되어 있었고 이집사는 논을 다 팔아먹고 도망갔고 남집사와 김집사도 해산물 도매상과 소금 도매상을 헐값에 원님 종형에게 팔고 도망가버렸다.
그날 밤 촛불 아래서 오집사가 장부를 펼쳤다.
“아직도 참봉 어른은 부자이십니다. 2년 동안 포목점 이익이 이만오천칠백오십냥입니다.”
허허 웃는 박참봉의 두눈에 눈물이 고였다.
"참봉어른, 이 좁은 상주바닥에서 고생만하지 마시고 한양으로 진출하셔서 큰 물에서 큰 뜻을 펼쳐보시지요."
"소인이 이곳에서 포목점을 운영해 참봉 어른 뒷배를 보좌하겠습니다."
박참봉이 오집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한양으로 진출해 상주 비단을 좌지우지하는 거상이 됐고 상주의 포목점은 오집사에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