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를 처단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들 합니다. 그럴까요? 그 한 사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 자리를 넘보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를 이겨내고 다시 세워지는 사회가 또 다른 독재를 생산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폭력을 없애려고 폭력으로 이겨내면 결국 폭력을 정당화해주는 역할밖에 안 됩니다. 소위 악순환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을 간파하면 그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겠지요. 한 독재자를 처단하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를 이을 또 다른 사람이 기다리고 있음을 눈치 채야 합니다.
아직 어린 캣니스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아차렸을까요? 하기야 죽음의 사냥을 두 번이나 이겨낸 경험이 그를 성장시키고 지혜롭게 만들어주었을 것입니다. 독재자 처형을 맡긴 또 다른 독재자를 캣니스는 보았습니다. 주민들의 원성을 담아 캣니스가 처리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주민의 감정을 모두 담기에는 그릇이 작습니다. 대통령 대기자는 그것을 노렸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경쟁자를 처리하려 했겠지요. 주민들의 원성과 불만을 담고 사라지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눈치 챈 캣니스가 화살의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그러리라 누가 짐작했겠습니까?
아마도 누군가 그 뒤를 이어 사회를 책임지고 나갈 것입니다. 그것은 주민들이 결정하게 됩니다. 정말 독재를 이긴 그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정식 투표로 말입니다. 그것을 모두 바라고 기다리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 앞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감내하였던 것입니다. 남은 사람들에게는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갈 책임이 주어진 것이고요. 그들이 흘린 피가 고귀해질 수 있는 것은 남은 사람들이 하기에 달려있습니다.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말 그대로 숭고한 핏 값으로 인정받을 것입니다. 또 다른 독재자가 그 자리를 차지해도 일단 인정은 받겠지요. 그러나 인정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 그렇게 숨겨진 사람들도 꽤나 되리라 생각합니다. 소위 역사학자들이 연구하고 캐낼 일이지요.
간단히 소개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두 번의 헝거게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캣니스 에버딘. 그런 그녀를 향한 스노우 대통령의 공격은 더욱 거세지고 캣니스의 분노는 폭발한다.
캣니스는 그를 멈추고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임을 깨닫고, 13구역 군단에 합류한다. 철저하게 준비를 끝낸 캣니스와 최정예 요원들은 캐피톨 입성에 성공하지만 스노우 대통령이 설치한 함정들로 인해 목숨을 위협받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희생된 동료들을 뒤로한 채 가까스로 스노우 대통령과의 대결을 앞둔 캣니스에게 또 다른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두 번의 헝거게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캣니스 에버딘’은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영웅이지요. 대통령보다 인기가 높아 주민들의 대변인 노릇을 합니다. 더구나 대통령의 통치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캐피톨의 스노우 대통령도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통치가 훼방을 받으니 가만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야말로 마지막 사생결단을 해야 합니다. 캣니스는 주민들을 대표하여 앞장서 스노우 대통령을 암살할 계획을 시행하려 합니다. 주민들이 나선 것은 아니지만 마음은 통하였습니다. 그래서 혼자만의 계획임이 탄로 났을 때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위기와 고난을 지나 스노우 대통령의 마지막 카드조차 실패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온 주민의 원성을 담고 처형대에 서게 되지요. 그 처형의 방아쇠를 캣니스가 당길 수 있도록 권력의 실세가 그 권한을 넘겨줍니다. 캣니스의 활이 스노우 대통령을 향하여 겨냥됩니다. 주민들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가족이고 친구요 이웃들입니다. 가슴마다 아픔이 간직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한 사람이 다 짊어질 수 있을까요? 사실 영웅의 마음은 그보다 더 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목숨을 걸고 싸워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건 사고들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작품들 속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일 수 있고 돈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권력일 수도 있고 보다 숭고한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 이념이나 종교적 신앙일 수도 있지요. 만약 그렇게 해서 그 목적한 바를 얻었다면 그 다음은 어떤 삶이 이어집니까? 물론 사회적 유명인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자기 원하던 대로의 삶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객관적으로 고귀하든 평범하든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삶일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 뒤 캣니스의 삶이 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식을 낳고 단란한 가족을 이룬, 그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볼 수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투쟁과 전쟁,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치러야 했던 무시무시한 사건들은 이미 과거의 일입니다. 인생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엄청난 고난과 고통의 때를 이겨내고 얻은 결과물이 어쩌면 초라해 보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꼭 그런 때를 만들 필요는 없겠지요. 그래서 평범하게 주어진 인생도 자기가 하기에 따라서는 남다르게 꾸밀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영화 ‘헝거게임 - 더 파이널’을 보았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 좋은 하루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