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읍의 청운각을 알고 계시나요 ?
1. 박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의 영정과 교사재직 당시 사진, 책상ㆍ가방 등의 유품이 전시되고 있는 경북 문경읍의 청운각에는 매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일을 맞아 당시 제자와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제사)이 열리고 있습니다.
금년(2009년)에는 당일 11시에 열리는 제사에 문경시장도 참석한다고 합니다.
추모에 관심있는 외부인들도 많이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2. 문경 청운각은 박정희 대통령께서 문경초등학교에 교사로 근무하시던 시절 하숙하시던 집입니다.
교사시절 박대통령께서는 방학 때에도 구미 생가에 안가시고 이곳에 머무르셨으며 만주군관학교 재학 할 당시에도 휴가를 나오시면 이곳에 즐겨 머무셨다고 합니다.
청운각내에는 1978년 박정희 대통령께서 기념식수한 전나무가 있으며 1979년 서거하시던 해에도 청운각을 찾으셨으며 옛제자들을 만나 교사시절을 회고 하셨다고 합니다.
청운각은 박정희 대통령께서 생가만큼이나 사랑하신 유서깊은 장소입니다.
현재 청운각은 문경시청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3. 문경하숙집(청운각)의 유래 <내용전문>
이곳 청운각은 박정희 대통령께서 1937년 대구 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그해 4월 이곳 문경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하시어 1940년2년9개월간 거처하시던 곳이다.
20세의 젊은 나이로 교편을 잡으셨던 무렵은 일제의 식민통치가 극에 이르렀으며, 한민족 말살정책은 교육계 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의 말과 글, 그리고 역사는 가르치지도 못하게 하였음은 말할 것도 없을 때다. 그러나 민족정신이 남달리 강한 박정희 교사는 여러 제자들을 밤에 놀러 오게 한 다음 우리는 한민족(조선사람)이다. 우리글, 우리역사를 알아야 한다. 하시면서 단군 후손의 뿌리 를 일러 주셨으며, 문화민족임을 강조하셨고, 충무공 이순신의 호국정신과, 일장기에 태극선을 그리시어 민족혼을 일깨워 주시다가 일본인 교사에게 발각되어 엄청난 수난을 겪다가 급기야 집단폭행 등 대충돌로 천직으로 알았던 교직에서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때 눈물과 공포에 쌓여 있는 우리 제자들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선생으로는 그놈들을 도저히 이길 수 없으니 총칼을 차고와서 이겨주마......하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와 같은 결과가 만주로 피신케 된 동기가 되었고 군생활이 시작되는 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이다.
가난속에 어렵게 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배고픔도 면하고 대접도 받을 수 있는 그 때의 그 좋은 교사직에 연연치 않고 조선인으로서는 극히 위험한 행동을 연속적으로 하셨던 것이다.
몇몇 제자들도 일본인 교사로부터 매도 많이 맞았던 그 현장이 바로 이곳 청운각인 것이다.
그후 군시절이나 대통령 재임시에 10여차례 못잊어 찾아 오시다가 1978년 11월 24일 마지막 다녀 가시고는 파란 많은 생애를 국민의 비통속에 그 많은 치적을 남기신채 1979년 10월 26일 서거하셨다.
사심없고, 굳은 의지와 철학을 가진 민족주의자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곳 청운각은 교사에서 군인으로, 그로인한 후일의 대통령으로서......숙명적 가난을 물리치고 국력신장의 기틀을 마련하시고 비운의 생을 마치게 된 근원적인장소이기에......우리들은 보존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흘러갈 것이다. 수 천년 수 만년 우리의 역사속에 우리의 스승인 박정희 대통령은 사심없이 오직 구국위민의 일념으로 일하셨다고 기록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곳 청운각을 보존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협조를 바라면서......
서기 1986년 7월 1일
청운각 보존관리 위원회(제자들의 자원단체)
4, 청운각의 신령목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시고 난 뒤에 하늘도 슬퍼하고 땅도 슬퍼한 탓인지 예사롭지 않은 자연현상이 몇건 발생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1979년 10월 28일 박대통령의 사랑이 담긴 청운각 담벼락에 있던 살구나무가 때아닌 꽃을 피운 것입니다..
60여년생 고목이 두 송이의 연분홍 살구꽃을 피운 날입니다.
박대통령 서거 이틀후, 제철도 아닌 살구꽃이 피는 것을 지켜본 문경읍민들은 "젊은 시절 박대통령과 이집에서 함께 지낸 살구나무가
그 분의 서거를 비통히 여겨 두 송이 꽃을 피운뒤 순절하였다."고 했답니다.
꽃을 피운 그 나무는 곧 말라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10월, 그것도 하순에 살구꽃이 핀것은 당시 모든 중앙 일간지에도 게재 되었습니다.
박대통령 서거로 인한 큰 슬픔을 하늘도 무심치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 듯 합니다.
그레서 사람들은 이 나무를 이름하여 "충절"의 나무라고 불렀다 합니다.
살구꽃을 피운 후 고사하여 '지금은 그루터기만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난 지금 이상하게 나무 뿌리에서 새싹이 솟아 낫다고 합니다.
첫댓글 훌륭한 제자님들 두셨습니다. ~~~~~!
아~~그랫군요?잘~알겠습니다
훌륭하신 스승만큼이나 제자분들도 훌륭하십니다~~^^*
정말로 의미가 깊은곳 입니다 잘 보존하고 가꾸고 홍보를 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