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에는 울림이 있다 오름의 울림은 껍질이 아니라 속살의 가락이다 야성의 혼이 부르는 노래이다 저 한라산정에서 발원하여 심산유곡을 에돌아 흘러 바다에 이르는 유장한 음악이다 시초에 울림이 태어나면서 타올랐을 용암의 불꽃이 내면으로 침잠하여 면면히 흐르고 있듯이 그것은 정적 속에서 안으로 흘러든다 그리하여 오름의 울림은 잠든 우리 혼을 흔들어 깨운다 끊어질듯 이어지는 오름과 오름의 파노라마 그것은 차라리 울림의 악보樂譜다 오름과 오름이 서로 화답하고 오름과 사람이 내통한다 오름은 살아있다 촌스런 고향이 죽도록 싫어서 기어이 떠난 사람, 머리카락 희어가는 어느 날 홀연히 그의 가슴에서 고향의 오름은 되살아난다 그것은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모성의 울림
오름에는 바람이 있다 지난 밤의 그 지독했던 바람에 한없이 떨어야 했던 풀잎들의 휘인 모습은 어쩌면 삶에 지친 나 자신의 모습으로 눈에 밟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꽃은 불평 한 마디 없이 꽃봉오리를 열어 세상을 바라보려한다 그 삶에의 경건함이 마음의 옷깃을 다시 여미게 한다 오름에서 만나는 돌멩이 하나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몇 천만년의 세월을 살아왔을 것이냐 자신이 그럴듯한 산악山嶽도 아니고 하다못해 바위도 못되고 그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하찮은 돌멩이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곳에 불평 한 마디 없이 있다 거기 그렇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떳떳하다는 듯이 어제도 불었고 오늘도 불고 있는 바람 속에서 마음의 검은 구름이 날아 간다 집이 없는 설움이 날아간다 찢어진 사랑이 날아 간다 외토리의 소외감이 날아간다 돈과는 영 인연이 없는 찌그러진 날들이 날아간다 외상장부가 날아간다 세간의 명성이 날아간다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야멸차게 때로는 간지럽게 때로는 독살스럽게 오름에서 부는 바람은 우리 마음에 켜켜이 쌓인 찌꺼기와 때를 속속들이 쓸어내고 털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