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내 친구 김택, 그 골든 벨 인연
‘인간은 역사를 만드는 동물이다. 역사는 단순한 사실의 축적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유기적으로 잇는 서사가 역사다. 역사는 거대한 집단뿐 아니라 개인의 차원에서도 생성된다.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인생은 '살맛'이 난다.’
2017년 9월 23일 토요일이었던 어제,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내 Daum메일함에 꽂아준 메일의 본문이 그랬다.
‘한 사람의 작은 역사책’이라는 제목의 메일로, 김찬호의 ‘생애의 발견’중에서 뽑아온 문장이라고 했다.
그 문장에서 내가 유의한 것은, ‘인간은 역사를 만드는 동물이다.’라고 한 머리글과 ‘인생은 살맛이 난다.’라고 한 끝글이었다.
내 지금 삶이 꼭 그렇기 때문이다.
어제도 마찬가지로 그랬다.
내 삶의 이력을 짚어보는 자리가 하나 있었다.
40년 인연의 내 친구 김택이 아들 장가보내는 혼사의 자리가 곧 그 자리였다.
내 나이 30세 전후였을 때, 퇴계로 뒷골목의 극장식 식당업소인 ‘홀리데이 인 서울’에서 그곳 상무인 그 친구를 처음 만났다.
그 첫 만남에서 우리 둘은 마음이 통했다.
그때만 해도 두주불사로 술을 마실 때여서, 툭하면 그 업소를 찾았다.
당당하게 술값을 치를 때도 있었지만, 대충 계산하거나 아예 술값을 안 내는 공짜 술도 꽤나 얻어 마셨다.
그렇게 공짜 술을 얻어 마실 때마다, 내 마음이 거치적거리지 않게끔, 이렇게 편한 명분을 갖다 붙이곤 했었다.
“술값 그거 원가로 해봐야 얼마 안 돼. 그리고 어차피 빈자리여서 자리 값도 필요 없는 거고. 오늘은 그냥 가. 내 적당하게 계산 해놓을 게. 나중에 다 갚아.”
그래서 마음 편하게 그 업소를 드나들고는 했었다.
그리고 그 ‘나중’이라고 했던 시기, 그 이후로 따져본 적 없이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또 20여 년 전쯤의 일이다.
그 친구 하는 말이, 월급쟁이가 지겹다면서 독립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장충동 족발집 부근에 ‘골든 벨’이라는 단란주점을 개업했다.
그 개업 기념으로, 그때 마침 칠순을 맞으신 우리 장인어른을 위한 잔치판을 그 업소에서 벌였다.
파격적인 도움을 그때 또 받았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그날 잔치판에서 나와 우리 맏이 둘이 그즈음에 한창 유행을 하던 우리가곡 ‘향수’를 불렀다는 것이다.
우리 온 가족들과 그곳 종업원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은 그 순간의 기억을, 나도 아내도 또 맏이도 지금껏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우린 가슴 따뜻한 우정으로 지금껏 엮은 인연이었다.
그 인연, 내 ‘골든벨 인연’이라고 했다.
황금 종처럼 귀한 만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인연으로 엮어진 친구였으니, 그 친구가 아들 장가보내는 혼사에는, 내 당연히 발걸음 해야 했다.
“저도 갈래요.”
아내도 그리 말하면서 따라 붙었다.
아내도 내 그 친구에게 신세 진 인연의 이력을 훤히 꿰뚫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퇴계로 세종호텔에서 치러지는 그 예식장을 찾아가면서, 어떻게 그 친구를 도울까 많이 많이 생각했다.
몇 푼 축의금을 보태주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이 생각 저 생각 그렇게 생각 끝에 작정한 것이, 바로 예식의 현장을 영상기록으로 남겨주는 것이었다.
틈틈이 내가 찍은 그 영상들을 보면서, 가족들 오순도순 행복한 시간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예식장 초입에서부터 캠코더를 들이댔다.
혼주인 내 친구의 모습도 담고, 그 부인의 모습도 담고, 이날 예식의 주인공인 아들의 모습도 담고, 이미 시집을 간 딸의 모습도 담았다.
그렇게 담아가는 과정에서, 문득 뇌리를 스치는 한 생각이 있었다.
이날의 주인공인 아들이 장가들어 새 가정을 꾸리게 되었을 때, 자칫 부모님에 대한 관심이 멀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예 그러지 못하게끔 아들로부터 특별한 다짐 하나를 받아놓는 것이 좋겠다싶었다.
그 다짐이 앞으로 그 가정을 굳건하게 엮어주는 인연의 고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래서 캠코더를 맏이한테 들이 댔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장가가도, 부모님께 용돈 드릴 거죠?”
내 그 물음에, ‘아니오.’라고는 답할 수 없겠다싶었다.
결국 내 바라는 답을 얻어내고야 말았다.
“그럼요. 당연히 드려야지요.”
내 그 다짐받는 순간, 이날의 혼주인 내 친구가 옆에서 쭉 지켜보면서 빙긋이 웃고 있었다.
내 친구 김택, 그 골든 벨 인연이 빛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