쫙쫙 갈라진 가뭄의 뼛속으로
단비가 수혈처럼 흘러들어가듯
헛헛한 빈가슴에 영성을 채우려
문경땅 일박이일 순례를 떠났다.
작년 낙엽이 떨어지던 11월,
천주교 안동교구 소속으로
문경의 가톨릭 순교성지 3곳인
진안리성지, 마원성지를 비롯해
여우목 성지까지 홀로 찾았다.
운전순례로는 미진한 아쉬움에
도보순례로 느긋이 걷고 싶었다.
6월 17일 금요일 아침 8시
동서울터미널에서 문경터미널을
향한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10시 반에 도착해 터미널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문경성당
성전안에 들어가 인사를 드린다.
첫째날인 금요일은 홀로 걷는다.
문경성당에서 출발, 문경읍의
진안리 성지를 향해 가는 길에
고 박정희대통령 하숙집과
그곁의 문경초등학교를 지난다.
산엔 밤꽃이 하얗게 눈 내리고
마을 길가엔 접시꽃이 눈부시다.
진안리성지는 우리나라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이
선교하시다 쓰러져 선종하셨다.
문경새재(조령) 이화령, 하늘재,
경상도에서 서울로 가는 통로에
문경관문 방향 1km지점에있다.
영남대문을 지나 산길을 오르니
이화령 고개는 찻길의 연속이다.
백화산을 넘어 문경일대 신앙을
전파한 순교자들 한실교우촌을
홀로 찾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백두대간 백화산은 현재 정비가
되지 않아 입산을 만류한다.
백화산을 경유하는 2박3일
종주코스 프로그램에 차후
신청해서 다녀오려 한다.
5년 전 문경새재 자전거길로
오르던 이화령 정상 가는 길을
땡볕 속 지열의 고통을 참으며
문경새재 정상 이화령에 섰다.
백두대간의 조령산 등산로 안내,
백화산 등산로입구는 보이지만
혼잔 정말 큰일나겠다 싶었다.
차후 동행으로 다시 오마 하고,
걸어올라온 이화령 포장 고갯길
찜통 더위 속을 원점회귀한다.
내리막길 라이딩의 짜릿함 달리
급경사 도보 내리막길은 쏠림이
심해 자칫 엎어질 듯 불안하다.
기도로 천천히 조심해 내려와
한우타운 시원한 냉면 한그릇에
몸을 식히고 무릎과 발목을 쉰다.
문경읍 마원리의 교우촌인
마원성지에 도착, 성지를오른다.
험준한 산악지대에 형성된
마원성지에는 우정의 길이 있다.
박상근 마티아 순교자가
30세 나이로, 선교에 앞장서신
프랑스 칼레 강 신부님을 끝까지
피신시키려다 잡혀 순교한 묘가
우정의 길 한켠에 남아 있다.
22km 8시간을 도보로 순례하고
첫날의 종착지 문경성당 숙소에
들어가니, 포근한 침실이 반긴다.
모든 것을 통째로 내맡기며
잠에 드는 백퍼센트 신뢰는
그분이 지켜주신다는 믿음이다.
설치기도하고, 생각도 많았지만
성당교육관 숙소의 안온한 잠은
순례의 샘물이고, 충전에너지다.
6월 18일 둘째 날 아침 8시,
문경성당 마당에 양들이 모였다.
10명 미만으로 소규모 순례다.
서울과 상주, 각 지방에서 온
아홉마리 양들은, 착한 목자이신
성지 담당 정베드로 신부님의
안내와 인도를 따라 출발한다.
잘 다듬어진 나무지팡이를 받고
김밥 한 줄 일용할 양식도 받아,
여우가 나온다는 무서운 고개를
아홉마리 양들은 목자를 따라서
여우목성지 묘소 앞에 다다른다.
묘소 앞 야외제대 큰 바위에
생명의 말씀이 새겨져있다.
''나는 굳게 믿나이다''
흐릿해진 신심을 단단히 한다.
문경 땅에 교우촌을 형성하고
가톨릭신앙을 전파하다 순교한
이윤일 요한 성인 상 앞에 서서
사제의 인도로 기도를 바친다.
이 여우목으로부터 문경관아로
압송돼 끌려가며 관덕정 등에서
참형으로 순교한 신앙선조들,
순교의 그길을 따라 걷는다.
그곳은 문경사과가 익어가는
향기롭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목자는 양들을 한시도 놓칠세라
언덕길, 고갯길, 찻길의 위험과
낙엽더미와 덩굴식물 얽힌길엔
앞장서서 양들이 가기 편하도록
길을 열고, 가지들을 쳐주셨다.
산딸기, 오디, 벚지도 따주시고
뱀 조심의 주의도 잊지않으셨다.
물소리가 반가운 개울에 이르자
목자의 배낭에서 쏟아져나온 것,
그건 바로 양들을위한 것이었다.
사제는 코펠, 버너, 보온병의 물,
라면, 컵, 수저 등을 꺼내신다.
우린 개울물에 발 담그라 하시고
사제는 땀으로 라면을 끓이신다.
김밥 향기에 끓여주신 뜨끈한
라면을 함께 먹는 기쁨이여!
눈썹같은 산세의 잔잔한 대미산,
여인이 누운 듯 자태 고운 주흘산,
문경마을에 많은걸 주는 백화산,
옛 사람들이 믿는다는 성주봉,
치마 펼친 듯한 포암산 하늘재,
문경 땅은 사방을 에워 싼 산들,
그 속에 포근히 안겨 있다.
끌려가며 혹독한 매질을 당할 때
멀리 참형을 당할 관아가 보이면
''나는 이제 죽었구나!'' 절망할텐데
순교자들의 눈빛은 빛났다고 한다.
''천국으로 가니 얼마나 기쁜가.''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순교자들 핏빛정신을 본받으며
양들은 '순교의 길'을 완주해냈다.
진안리성지 근처 작은 성당에서
끝맺음 미사 내내 뭉클했다.
행복이란 어떠한 여건에서도
누구에 의해 주어지는것이 아닌,
굳은 믿음에서 스스로 느끼는 것!
눈을 감고 눈을 뜨는 순간을
과연 의지대로 할 수 있을까.
하루를 닫고 새로이 여는 일은
그분의 섭리임을 새삼 깨닫는다
혼자 하루, 양들과 함께 또 하루
문경성지 순례는 참 행복했다.
가슴으로 가만가만 되뇌었다.
''나는 굳게 믿나이다.''
❤문경성당 인사, ''평화가 너희와 함께!''
❤ 성당 안과 성모상 앞에서 기도 드리고
❤ 박정희 전대통령 하숙집 '청운각'
❤ 청운각 옆 문경초등학교
❤ 잘 단장해 산뜻해신 문경 진안리성지!
❤ 밤꽃 하얗게 눈처럼 내린 사기박물관
❤ 저 문경새재 넘던 '새재자전거길 추억'
❤ 문경약돌한우타운에서 시원한 냉면을
❤ 문 한쪽엔 영남대로, 반대편엔 문경새재
❤ 백두대간 이화령 고개 정상에 서서
몇 년 전 자전거로 라이딩하던 추억을!
❤ 각서리 타령을 정말 신명나게 불렀다
❤ 오후 햇살 받는 접시꽃의 눈부심이
❤ 문경약돌한우타운 냉면 참 시원하고
❤ 진안리성지 근처 문경힐링휴양촌
❤ 문경 마원성지, 칼레 강 신부님과
순교자 박상도 마티아의 우정의 길도
❤ 다양한 성지 순례 프로그램과 인증함
❤ 둘째날 문경 여우목성지를 걷고
❤ ''나는 굳게 믿나이다.''
단단한 바위처럼 탄탄한 믿음을 구하고
❤ 문경성지 담당하시는 젊은 사제는
길 걷는 양들의 목자로 길을 인도하시고
❤ 모세 지팡이 느낌의 긴 나무지팡이로
뱀, 해충, 나무덩쿨도 헤치며 숲길을 걷고
❤ 문경은 마을 전체에 사과가 익어가고
❤ 뱀이 있으니 조심하라면서도
산딸기를 따 주시는 목자의 뒤를 따라서
❤ 문경의 3번째 성지 여우목성지까지
일박이일 도보순례로 40km를 완주했다.
❤ 성지순례 끝맺음 미사 드리는 작은성당
벽 맨 위의 최양업 신부님 말씀이 각인되고
''해마다 제가 다니는 거리는 7천 리가
넘습니다.''
❤ 성당 정원에 웃음주는 꽃이 사랑스럽고
❤ 아홉마리 양들은 원두막 정자에서 쉬고
❤ 가뭄에도 문경 마을엔 논에 물이 찼다
❤ 밭두렁 길엔 농부의 땀이 보이고
❤ 아, 목자이신 사제가 지고 와 끓여주신
우렁이 라면, 그렇게 맛있는 라면은......
❤ 문경터미널 마지막 19시 4ㅇ분 버스로
상경을 하며 감사의 기도를!
❤ 성지 순례 완주 선물로 받은 폰 꽂이대!
목자가 직접 매일 30개씩을 만들어
완주한 순례자에게 선물과 축복을 주신다.
첫댓글 온화한여자님!
지난 6월 17~18일 1박 2일 여정으로 천주교 안동교구 문경 성지 - 진안리, 마원, 여우목 성지 - 40여 km를 첫날 혼자, 다음날 신부님과 함께 다녀 오셨군요.
신실함이 뚝뚝 묻어 나는 천주교 성지 순례 모습을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아. 사진이 앞뒤로
엉키는 바람에 수정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어느 사이 앵베실님이
다녀 가셨군요.
두해 전부터 시작해
작년 11월에 전국성지순례
167곳을 모두 완주했지요.
그때에 운전으로 와서
딸꾹 성지로 들어가는
운전순례는 아무리 지방이라
멀다해도, 순교자들이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던
그길 몇 성지는 이어서
걸으며 느낌을 받고싶었어요.
기도가 힘이 되고
순례는 깨달음이 되는
시간들이 실로 소중했어요.
백화산 정상 가는 길을
정비해 밧줄도 매달아놓으면
2박 3일 종주코스 프로그램
실시한다고 하셔서
가을 경 담당신부님 연락을
기다리려 합니다.
1박2일 문경 성지 도보순례를 다녀오셨군요
첫날은 홀로 다음날은 순례객들과 함께
더위에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멋진후기 즐감하고갑니다
네. 물안개님.
마치 제 신앙의 공간처럼
작성한 성지순례 후기로
카페 회원님들께
다른 종교 믿으시는 분,
특히 종교 없는 분들께
제가 누를 끼치는 건 아닌지
조금 주춤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성지순례의 곳곳이
신앙 스토리라서
최대한 신앙을 배제해보려
했지만, 제게는 무리이더군요.
멋진 후기로
즐감하셨다는 말에
그저 위로받아 봅니다.
행복이란 어떠한 여건에서도 누구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닌,
굳은 믿음에서 스스로 느끼는 것!
눈을 감고 눈을 뜨는 순간을 과연 의지대로 할 수 있을까.
하루를 닫고 새로이 여는 일은 그 분의 섭리임을 새삼 깨닫는다.
참 좋은 말이네요.
멀리 문경까지 가셔서 1박 2일로 성지순례를 다녀 오셨군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 가곡님이
제 순례 이야기에
공감을 해주시네요.
고맙습니다.
다 두고 갔어요.
지금 제게 일어나고 있는
복잡하고 힘든 것
나를 돋보이게 할 것 등
훌훌 털고 고속버스에 올랐죠.
지방에서 만나는
성당이나 성지는 참으로
그 의미가 깊게 다가옵니다.
늘 반복적 일상적으로 오가는 주거지의 성당 느낌과 다른
신비스러움과 감동이 있어요.
어쩌면 서울을 떠나
멀리 갈수록 곤경이 더하니
이겨내는 울림은 더 큰가 봐요.
또 다른 먼 곳의 성지로
순례를 떠나야 할까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