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1위곡
나무 위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1위곡]에서 전재(轉載)함
사랑하기 때문에
- 유제하
젊은 나이에 아깝게 세상을 떠난 가수들이 있습니다. 술과 담배, 불규칙한 생활, 보통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중압감으로 인해 여러 가수들은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아깝게 세상을 등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수들의 노래 중에는 죽기 직전 불렀던 곡이 큰 성공을 거둔 경우가 있습니다.
김현식은 1958년 태어나 1990년 11월 1일 서른셋이라는 나이로 아깝게 세상을 떠난 가수입니다. 김현식은 술과 담배, 그리고 나중에는 대마초까지 피우면서 몸을 혹사시켰다고 합니다. 그는 데뷔하던 시절만 하더라도 굉장한 미성을 자랑하는 가수였습니다. 하지만 활동을 계속하면서 목소리가 달라졌고, 나중에는 쇳소리가 나는 창법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김현식은 힘 있는 창법을 구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고, 여기에 더해서 평소에 즐기던 술과 담배 때문에 거친 목소리로 변했다고 합니다. 김현식과 가까운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술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이문세 같은 친구는 그에게 "아프면 약을 먹어야지 왜 술을 먹냐?"고 충고를 했지만, 김현식은 그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술을 들이켜 댔습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그의 몸은 점차 약해져 갔습니다. 1989년 영화앨범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녹음할 때부터 그의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기 시작했고, 1990년 5집 앨범을 발표할 당시, 의사가 ‘술을 한 방울이라도 마시면 죽는다’고 경고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마지막 6집 앨범을 녹음하다가 간암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됩니다. 1990년 11월 1일 김현식은 병원에서 소속사인 동아기획의 김영 사장에게 "사장님, 저 괜찮으니까 오늘 퇴원해서 내일 녹음에 들어가야겠어요."라고 밝은 목소리를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전화를 끊고 겨우 2시간 뒤 김영 사장은 김현식의 죽음을 전화로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6집 음반은 그의 유작이 되었지만 200만장이 넘게 팔리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김현식이 세상을 떠난 날짜는 1990년 11월 1일입니다. 이 날은 공교롭게도 후배 가수인 유제하가 세상을 떠난 날이기도 합니다. 유제하는 대학을 졸업한 뒤인 1986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 활동한 인연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고 싶었던 유제하는 이듬해인 1987년 8월 작곡, 작사, 편곡, 노래 등 모든 과정을 혼자 해결하며 음반을 발표합니다. 유제하는 2집 음반에 대한 구상을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는 등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1987년 11월 1일에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술취한 친구가 몰던 차를 얻어 타고 돌아오다가 나무를 들이받는 사고가 났던 것입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5세였습니다. 김현식은 유제하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고 통곡하며 한동안 술에 절어 지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3년 뒤 같은 날, 김현식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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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의 자주(自主)를 선포한 기념비적 음반
글 - 임진모
1987년에 발매된 유재하의 1집 앨범.
유재하의 첫 앨범인 동시에 유작으로 모든 곡을 유재하 본인이 직접 작사·작곡·편곡을 담당했다.
이문세의 최전성기 작품인 3집, 4집, 5집과 함께 한국 발라드의 고전이자 최고의 명반으로 손꼽히며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앨범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이 앨범으로 한국 팝 발라드의 스타일이 결정되었고, 지금까지 나온 대중음악 팝발라드도 이문세-이영훈 콤비의 앨범들과 유재하의 본작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다.
유재하는 가수 데뷔 이전부터 다양한 뮤지션들의 세션으로 활동했고 그 시절 타 뮤지션에게 제공했던 곡을 본인의 창법과 음색에 맞게 커버하기도 했다. 이문세에게 제공했던 '그대 내 품에', 위대한 탄생 활동 시절 조용필에게 제공했던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활동 시절 김현식에게 제공한 '가리워진 길' 세 곡이 그것이다.
정작 유재하는 해당 앨범 노래들을 방송국에서 라이브로 거의 부르지 못했는데, 이는 당시 가요방송 시스템이 (신인) 가수들은 PD들 앞에서 일종의 가창력 심사를 받았는데, 이때 유재하가 음정 불안 등의 이유로 가창력 미달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4] 그래도 한번은 합격했는지 활동 당시 방송 '젊음의 행진'에 나와 딱 1번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부르긴 했다.
초기 앨범 2종에는 B사이드 마지막 트랙에 건전가요 정화의 노래(조영남 곡)가 수록되었다.
한국 대중음악사상 가장 중요한 단일 작품
유재하에 관해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하는 게 이제는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의 상대적으로 짧은 인생과 절대적으로 짧은 이력은 단 한 장의 앨범으로 남았을 뿐이고, 우린 그걸 지난 30년 동안 거듭해서 청취하고 반복해서 논의해 왔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유재하의 음악이 끊임없이 새로운 관객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아니, 어쩌면, 관객들이 유재하의 음악에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발견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옳을지 모르겠다. 비평가 척 클로스터먼(Chuck Klosterman)은 로큰롤 즉, 현대 대중음악이 작가의 의도보다 관객의 반응으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그렇게, 다른 뛰어난 작품들이 그렇듯,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관객으로부터 새로운 평가를 획득하며 훌륭하게 연륜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사랑하기 때문에]에 대한 평가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 대중음악의 유산들을 선정한다는 취지로 지난 20년 사이 평균 10년 간격을 두고 진행된 세 차례 조사에서 이 앨범은 1998년 7위(음악지 "서브" 조사)를 거쳐 2007년 2위("경향신문" 조사)에 선정됐고, 여기 2018년에는 집계결과 목록의 맨 윗자리를 헌정 받았다. 물론 여론조사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은 누구나 알다시피, 저기서 순위란 불변의 가치가 아니라 가변적 위치로 보는 게 맞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변화한 세상은 변화한 기준으로 대두하게 마련이니까. 그게 별볼 일 없는 숫자놀음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건 특정한 시점의 지표로 기능한다는 의미다. 요컨대, 이 또한 여론조사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은 누구나 알다시피, 순위를 지정하는 숫자들의 작은 차이는 당대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유효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 여기서라면 [사랑하기 때문에]가 한국 대중음악사의 가장 중요한 단일 작품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기본적으로 훌륭한 노래들의 집합이다. 앨범 전체가, 'Minuet'의 우아한 일탈을 제외하고, 팝 송라이팅의 새로운 전범이라기에 모자람이 없다. 클래식으로 훈련된 이성과 팝으로 경사된 감성을 아우른 작곡가로서 유재하는 뛰어난 만큼이나 달랐는데, 조용필이 부른 '사랑하기 때문에'와 김현식 버전의 '가리워진 길'이 무미한 범작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에 대한 반증인 셈이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를 당대의 수작쯤에서 멈춰 세우지 않고 시대의 걸작으로까지 견인한 가장 강력한 동인은 편곡자로서 유재하의 능력이다. 작곡가로서 유재하의 재능과 짝을 이룸으로써 궁극의 시너지를 발휘한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에]가 요즘의 젊은 관객들에게도 신선하게 들리도록 만든 보이지 않는 손이다. 예컨대, 기타 솔로가 마치 의무처럼 삽입되던 시대에 기타 연주를 완전히 배제해버린 '가리워진 길'이나 재즈의 연주 구조와 클래식의 악기 구성을 통해 통속가요로 오인될 만한 선율에 차별성을 부여한 '우울한 편지'는 그에 대한 증거와 다름 아니다. 모던한 발라드의 어법을 완성형으로 제시한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과 '그대 내 품에', 그리고 타이틀 트랙 '사랑하기 때문에'는 말할 것도 없다.
혹자는 이 앨범을 가리켜 한국 대중음악사상 최초로 한 사람의 가수가 작사와 작곡과 편곡을 ‘혼자서’ 완수해낸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유재하가 그 모든 것을 ‘제대로’ 성취해냈다는 측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싶다. 음악적 감동은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들리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가 앞으로 십 년쯤 뒤에도 변함없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면 그건 관객들이 여기 담긴 노래들에서 여전히 감동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와 다름 아닐 테니까.
나무위키 [사랑하기 때문에]에서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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