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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8;1
아브라함은 계단으로, 이삭은 우물로, 야곱은 기둥으로, 요셉은 옷으로 기억됩니다. 언약의 하나님 앞에서 족장들의 신앙 고백은 성막의 제단과 물두명, 성소의 기둥과 덮개로 형상화되어 기억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도망자 야곱, 환상 가 야곱, 서원 가 야곱은 내 청춘의 자화상입니다. 비전을 보고 꿈을 꾸었고 찬송하다가 죽겠노라 던 서원을 내팽개쳐버리고 도망자가 된 세월이 벌써 일곱 해입니다. 여행과 도망의 차이는 자유입니다.
Abraham is remembered for the stairs, Isaac for the well, Jacob for the pillar, and Joseph for the clothes. The chief's confession of faith is embodied in the altar of the tabernacle and the pillar and cover of the sanctuary before the God of the covenant and is used as a tool for remembering. Jacob the fugitive, Jacob the fantasist, and Jacob the seowon are the self-portraits of my youth. Seven years have already passed since I became a fugitive, abandoning the seowon I had dreamed of while praising and saying I would die. Freedom is the difference between travel and fle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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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돌아올 수 있어서 여유가 있지만 도망은 잡히면 끝장입니다. 형 에서에게서 쫓겨 집을 나온 야곱이 브엘세바 발, 하란 행 새벽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형의 축복을 가로채고는 중천에 뜬 태양같이 승리자로서 의기양양하던 야곱이 오늘은 초라한 도망자가 되어 노숙자처럼 잠을 청합니다. 들판 어딘가에서 해가 저물었습니다. 야곱은 돌 하나를 주서다가, 베개를 삼고 겉옷으로 이불을 삼아 잠을 청합니다.
So you can always, anywhere, anytime, you can afford to come back, but if you catch the escape, it's over. Jacob, who had been driven out of his brother's house, boarded the dawn train for Beersheba and Haran. Jacob, who was triumphant as a victor like the sun in the middle of the sky, intercepts his brother's blessing, and today he becomes a shabby fugitive and sleeps like a homeless man. Somewhere in the field, the sun has set. Jacob gives a stone, uses a pillow, and sleeps as a blanket as his outerw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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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나 저나 ‘도 찐 개 찐‘입니다. 삼사일째 몸이 영 무겁고 컨디션이 최악이라서 힘들었습니다. 텐트에 전기장판도 폈고 만, 잠자기가 불편했던지 허리도 아프고 목도 컬컬하고 손발이 부었습니다. “내 고생 하는 것 옛 야곱이 돌 배게 베고 잠 같습니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인생 밑바닥에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천사가 사닥다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라(13)”
It was Jacob or I who were the real steamed dogs. It was hard because I felt very heavy and in poor condition for three days. I even laid out electric pads in my tent, but I had a backache, a curvy neck, and swollen hands and feet, maybe because I was uncomfortable sleeping. "My pain is like a stone's throw from Jacob in the old days. When you call me an angel, I want to go out to the Lord by praising him all the time." At the most hopeless moment at the bottom of his life, God showed a vision of an angel climbing up and down a ladder. "I am Jehovah, the God of Abraham and Isaac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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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 것이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13-15) “ 야곱은 혼자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여태 같이하고 계셨음을 알게 됩니다.
"I will give you and your children the land you are lying in, and they will spread like dust in the land, and you will spread west and east and north and south, and all the people of the land will be blessed by you and your children." I will be with you wherever you go, protecting you and leading you back to this land. I will not leave you until I have done what I have allowed you to do (13-15)." I thought Jacob was alone, but I see that God was with him all this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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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모술수와 눈에 뵈는 자원만으로 자기인생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는 야곱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끈질긴 임마누엘과 사랑뿐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야곱은 그곳을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고 고백 하고, 성전 기둥을 세우듯 베개로 쓰던 돌을 세우고 기름을 발라 구별하여 루스를 벧엘로 부릅니다. 벧엘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은 그의 삶 전체를 지탱하는 기둥이 될 것입니다.
This God's persistent Immanuel and love are the only things that can change Jacob, who does not give up on making his life with only Kwon Mo sul and visible resources. Jacob, who has experienced God's presence, confesses that it is God's prelude and the gate to heaven, stands up the stone that was used as a pillow like counting the pillars of the temple, applies oil, and distinguishes Ruth as Beth-el. Meeting with God in Beth-el will be the pillar that supports his entir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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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가고 오는 이 여정에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지켜주시면 자신도 하나님을 위해 전을 세우고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을 했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께 결박해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미래를 벧엘의 하나님께 결박하면서 (조건 절)을 제시합니다. 1.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2.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3.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고 4.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1.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고,
Jacob made a vow that if God kept him safe on this journey, he would build a war for God and give him eleven trillion won. He bound his future to God he met in Beth-el. He presents his future by binding himself to the God of Beth-el. 1. God is with me, 2. He protects me on this path I am going, 3. Give me rice cakes and clothes to wear, 4. If I go back to my father's house in peace, 1. Jehovah will be my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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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고 3.내게 주신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니 과연 나의 야곱답습니다. 사람을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희망이 없을 때입니다. "나는 발전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열라 읊조리며 오늘도 발전하기 위해 달리고, 읽고, 생각하고, 쓰고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내가 죽을 만큼 미워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본래 의도는 숨긴 채 적당한 명분으로 속임수를 쓰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억하는가? 어떻게 기념하는가?
2.This stone that I have erected as a pillar will be the house of God, and 3.I will give one tenth of everything that God has given me, which is truly my Jacob. It is when there is no hope that makes one despair. I am still running, reading, thinking, and writing to improve today, reciting ten times, "I am improving." Who do I hate to the point of death? What is it that you are deceiving with a reasonable cause while hiding your original intentions? Remember meeting with God? How do you celebrat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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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내는 리브가(1-5)
에서의 추가적인 아내들(6-9)
꿈에서 하나님을 본 야곱(10-12)
야곱에게 언약을 주심(13-15)
하나님을 알게 된 야곱(16-19)
하나님께 서원하는 야곱(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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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 야곱을 불(1a)
러 그에게 축복하고(1b)
또 부탁하여 가로되(1c)
너는 가나안 사람의(1d)
딸들 중에서(1e)
아내를 취하지 말고(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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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2a)
밧단아람으로 가서(2b)
너의 외조부(2c)
브두엘 집에 이르러(2d)
거기서 너의 외삼촌(2e)
라반의 딸 중에서(2f)
아내를 취하라(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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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이(3a)
네게 복을 주어(3b)
너로 생육하고(3c)
번성케 하사(3d)
너로 여러 족속을(3e)
이루게 하시고(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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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에게(4a)
허락하신 복을(4b)
네게 주시되(4c)
너와, 너와 함께(4d)
네 자손에게 주사(4e)
너로 하나님이(4f)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4g)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4h)
유업으로 받게(4i)
하시기를 원하노라(4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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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이삭이(5a)
야곱을 보내었더니(5b)
밧단아람으로 가서(5c)
라반에게 이르렀으니(5d)
라반은(5e)
아람 사람(5f)
브두엘의 아들이요(5g)
야곱과 에서의 어미(5h)
리브가의 오라비더라(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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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가 본즉(6a)
이삭이(6b)
야곱에게 축복하고(6c)
그를(6d)
밧단아람으로 보내어(6e)
거기서 아내를(6f)
취하게 하였고(6g)
또 그에게(6h)
축복하고 명하기를(6i)
너는 가나안 사람의(6j)
딸들 중에서 아내를(6k)
취하지 말라 하였고(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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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야곱이(7a)
부모의 명을 좇아(7b)
밧단아람으로 갔으며(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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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가 또 본즉(8a)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8b)
그 아비 이삭을(8c)
기쁘게 못하는지라(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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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에서가(9a)
이스마엘에게 가서(9b)
그 본처들 외에(9c)
아브라함의 아들(9d)
이스마엘의 딸이요(9e)
느바욧의 누이인(9f)
마할랏을(9g)
아내로 취하였더라(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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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10a)
브엘세바에서 떠나(10b)
하란으로(10c)
향하여 가더니(1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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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 이르러는(11a)
해가 진지라(11b)
거기서 유숙하려고(11c)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11d)
베개하고(11e)
거기 누워 자더니(1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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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본즉(12a)
사닥다리가(12b)
땅위에 섰는데(12c)
그 꼭대기가(12d)
하늘에 닿았고 (12e)
또 본즉(12f)
하나님의 사자가(12g)
그 위에서(12h)
오르락내리락 하고(1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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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본즉 여호와께서(13a)
그 위에 서서(1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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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13c)
너의 조부(13d)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13e)
이삭의 하나님이라(13f)
너 누운 땅을(13g)
내가(13h)
너와 네 자손에게(13i)
주리니(13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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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손이(14a)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14b)
동서남북에 편만할 찌며(14c)
땅의 모든 족속이(14d)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14e)
복을 얻으리라(1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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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와 함께 있어(15a)
네가 어디로 가든지(15b)
너를 지키며(15c)
너를 이끌어(15d)
이 땅으로(15e)
돌아오게 할 찌라(15f)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15g)
다 이루기까지(15h)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15i)
하신지라(15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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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잠이 깨어(16a)
가로되 여호와께서(16b)
과연 여기 계시거늘(16c)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1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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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두려워하여(17a)
가로되 두렵도다(17b)
이곳이여(17c)
다른 것이 아니라(17d)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17e)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1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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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아침에(18a)
일찍이 일어나(18b)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18c)
기둥으로 세우고(18d)
그 위에 기름을 붓고(1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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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이름을(19a)
벧엘이라 하였더라(19b)
이 성의 본 이름은(19c)
루스더라(1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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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20a)
하나님이 나와(20b)
함께 계시 사(20c)
내가 가는 이 길에서(20d)
나를 지키시고(20e)
먹을 양식과(20f)
입을 옷을 주사(2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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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평안히(21a)
아비 집으로(21b)
돌아가게 하시오면(21c)
여호와께서(21d)
나의 하나님이(21e)
되실 것이요(2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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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둥으로 세운(22a)
이 돌이(22b)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22c)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22d)
모든 것에서(22e)
십분 일을(22f)
내가 반드시(22g)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22h)
하였더라(2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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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단아람으로 도망하다_flee to Badan-Aram_
벧엘에서 언약을 확증받다_to be affirmed in Bethel_
벧엘에서 서원하다_make a vow at Beth-el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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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취약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셨던 주님을 봅니다. 도망자가 되어 더 이상 전진할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야곱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이여 찬양을 받으소서.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 베게 베고 잠 같습니다. 내주를 가까이하려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길 원합니다.
I see the Lord who expanded the kingdom of God through Les Misérables (vulnerable people). Praise be praised, God, who has come to Jacob, who has become a fugitive and cannot advance or return any further. My suffering is like a stone cut by Jacob in the old days. Trying to get close to the Lord is always calling me an angel even though I have a crucifixion or a journey to nature, so I want you to go further to the Lord while praising me.
2026.4.21.tue. Clay
신학 비평//
나는 지금 여행자입니까, 도망자입니까 —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나를 어디서 만나시는가? 당신의 글은 창세기 28장을 해설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야곱의 도피를 자기 청춘의 자화상으로 끌어와 버립니다. 그래서 이 글은 단순한 본문 요약이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이 어떻게 도망자의 생애 한복판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는가를 묻는 신학 비평이 됩니다. 특히 “아브라함은 계단으로, 이삭은 우물로, 야곱은 기둥으로, 요셉은 옷으로 기억된다”는 첫 문장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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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장들의 삶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기억의 표지들**로 남는다는 통찰이기 때문입니다. 계단, 우물, 기둥, 옷. 이것들은 한 시대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신앙의 구조물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께 오르는 약속의 길이 있었고, 이삭에게는 생명을 길어 올리는 우물이 있었으며, 야곱에게는 도망자의 밤을 버티게 한 기둥이 있었고, 요셉에게는 수치와 영광을 함께 입는 옷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이것을 성막의 제단과 물두멍, 기둥과 덮개에 연결한 것은 아주 좋은 묵상입니다. 하나님은 늘 추상으로만 남지 않으시고, 기억 가능한 형상과 사건 속에 자신을 새기시는 분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1) 벧엘은 승리자의 기념비가 아니라 패배자의 침상입니다
창세기 28장의 야곱은 아직 우리가 아는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그는 믿음의 영웅도, 순종의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일단 도망자입니다. 형의 축복을 가로챈 직후까지는 승리자 같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사람입니다. 집을 떠나고, 가족을 떠나고, 안전을 잃고, 내일을 잃었습니다. 당신이 “여행과 도망의 차이는 자유”라고 쓴 대목은 아주 날카롭습니다. 여행은 돌아올 수 있는 여백이 있지만, 도망은 붙들리면 끝장입니다. 여행에는 선택이 남아 있지만, 도망에는 선택지가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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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에서 벧엘은 아름다운 순례의 장소가 아닙니다. 벧엘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존재가 처음으로 하늘을 본 자리>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돌베개는 중요합니다. 돌은 편안함의 상징이 아니라, 생존의 최소 조건입니다. 그는 침대도, 집도, 가족도, 보호도 없이 돌 하나 베고 자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님의 계시가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신학적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정돈된 예배당에서만이 아니라, <더는 꾸밀 수 없는 궁지에서>자신을 드러내십니다.
2) 야곱의 변화는 회개에서보다 먼저 임재의 충격에서 시작됩니다
본문의 중심은 야곱의 서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선언입니다. “나는 여호와니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은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계산이 남아 있고, 아직도 거래적 사고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야곱에게 먼저 다가오십니다. 이것이 은혜의 비대칭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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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준비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오시기 때문에 인간이 비로소 변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권모술수와 눈에 뵈는 자원만으로 자기 인생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는 야곱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끈질긴 임마누엘과 사랑뿐”이라고 한 부분은 정확합니다. 야곱을 바꾸는 것은 야곱 자신의 결심이 아닙니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하나님의 동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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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혼자인 줄 알았지만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버림받은 줄 알았지만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쫓겨난 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 길 위에 와 계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는 말은, 단순한 놀람이 아니라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데려오는 능력이 아니라, 이미 와 계셨던 하나님을 뒤늦게 알아보는 눈입니다.
3) 벧엘의 사닥다리는 인간의 상승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벧엘의 사닥다리를 인간이 하늘로 올라가는 상징처럼 읽지만, 본문은 그보다 먼저 <하나님 편에서 열린 길>을 보여줍니다. 사닥다리는 인간의 영적 성취를 자랑하는 구조물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가 끊기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표지입니다. 야곱은 올라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 윤리적으로도 떳떳하지 않고, 상황적으로도 추락 중이며, 영적으로도 미성숙합니다. 그런데 하늘이 그에게 열립니다. 이건 대단히 복음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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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문은 올라갈 수 있는 자에게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올라갈 힘도 자격도 없는 자에게 먼저 열리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당신이 벧엘을 “삶 전체를 지탱하는 기둥”이라 읽은 것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사닥다리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비전이라면, 기둥은 그 만남을 땅 위에 기억하게 하는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비전은 순간이고, 기둥은 기억입니다. 감동은 지나가도 기념은 남습니다. 그러니 야곱은 꿈을 본 뒤 돌을 세웁니다. 그는 그날 밤을 그냥 지나가게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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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만난 자리는 반드시 표식을 남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서원은 아직도 야곱답습니다 당신이 “과연 나의 야곱답습니다”라고 평한 대목은 아주 적절합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서원은 감동적이면서도 동시에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나를 지키시고/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평안히 돌아오게 하시면 그때 여호와가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고,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고,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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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원은 대단한 헌신처럼 보이면서도, 여전히 조건절을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지만, 아직 완전히 맡기지는 못한 것입니다. 은혜를 경험했지만, 아직 거래의 언어를 버리지는 못한 것입니다. 이 점에서 야곱은 우리와 닮았습니다. 우리는 눈물로 기도하고도 속으로는 계산합니다. 감동을 받고도 조건을 붙입니다.“하나님, 이렇게 해주시면 제가…”라는 식의 서원을 반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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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경은 이런 미숙함을 즉시 잘라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서툰 신앙도 받아 훈련하십니다. 야곱은 완성된 성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길들여져 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야곱의 위대한 믿음”보다 “야곱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인내”를 더 크게 보여줍니다.
4) 에서는 순종의 본질을 모르고, 야곱은 은혜의 깊이를 아직 모릅니다
28장 초반부에서 에서가 아버지의 기쁨을 사려 이스마엘 계열의 아내를 더 얻는 장면도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뒤늦게 부모의 취향은 눈치챘지만,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여전히 모릅니다. 겉모습은 맞추지만 중심은 빗나갑니다. 반면 야곱은 언약의 계승자로 부름받지만, 아직 그 언약을 값없이 주어진 약속으로 받기보다 자신의 생존과 연결된 보증처럼 다룹니다. 그러니 에서는 순종의 본질을 모르고, 야곱은 은혜의 깊이를 아직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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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조는 우리를 찌릅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만 맞추고, 어떤 사람은 은혜조차 계산적으로 받습니다. 둘 다 미숙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둘의 실패를 넘어 자기 언약을 밀고 가십니다. 이게 창세기의 무서운 위로입니다. 인간은 늘 삐끗하는데, 언약은 삐끗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본문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몸과 정서와 현실로 끌어옵니다. “몸이 무겁고, 허리가 아프고, 목이 컬컬하고, 손발이 부었다.” 이 대목은 중요합니다. 신앙은 늘 거대한 진리로만 오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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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육체의 감각 속에서 더 절박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찬송 인용이 아닙니다. 당신이 지금 벧엘을 지나는 중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 본문의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성숙했기 때문에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그가 지치고 외롭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무거움과 불편함과 흔들림이 하나님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임재를 배울 자리일 수 있습니다.
5) 신학적 핵심: 벧엘은 서원의 장소이기 전에 약속의 장소입니다
이 본문을 읽을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벧엘을 “내가 결단해서 하나님께 헌신한 자리”로만 축소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야곱은 서원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약속하셨고, 먼저 함께하겠다고 하셨고, 먼저 지키겠다고 하셨습니다. 즉 벧엘의 본질은 인간의 맹세보다 하나님의 약속이 먼저인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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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신앙을 나의 결심으로 붙들려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결심이 나를 붙들고 있습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붙잡은 것은 자기 미래가 아니라, 자기보다 먼저 미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벧엘의 돌기둥은 “내가 이만큼 헌신했다”의 표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여기서 나를 놓지 않으셨다”의 표지입니다.
6) 결론: 하나님은 여행자보다 도망자를 더 깊이 만나신다
당신의 질문이 참 좋습니다. 내가 죽을 만큼 미워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본래 의도는 숨긴 채 적당한 명분으로 속임수를 쓰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억하는가? 어떻게 기념하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도덕 점검이 아닙니다. 야곱의 이야기 속에서 내 얼굴을 찾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여행자로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도망자일 때가 많습니다. 미움에서 도망치고, 죄책감에서 도망치고, 실패의 후폭풍에서 도망치고, 하나님 앞에 정직해지는 순간에서 도망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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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창세기 28장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도망자의 길목에서도 하늘의 문을 열어 두신다고. 돌베개 하나 베고 누운 자리, 아무 희망도 없어 보이는 밤, 앞도 뒤도 막힌 인생의 중간지대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것이 야곱의 복음이고, 동시에 오늘 우리에게 주는 벧엘의 약속입니다. 여행자인 줄 알았으나 실은 도망자였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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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돌베개 베고 누운 밤에도 하늘의 문을 닫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 서원이 신실해서가 아니라, 주의 약속이 신실해서 오늘도 버팁니다. 벧엘의 돌기둥처럼, 내가 주를 만난 자리들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도망의 세월마저 언약의 여정으로 바꾸시는 주의 손길을 끝내 붙들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