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연순의 「외나무다리에서」 감상 / 박윤배 외나무다리에서 한연순 기린과 사자가 만났을 때 가던 길을 멈추고 두려움을 외나무다리에 단단히 의지한 채 먼저 서로의 눈을 찬찬히 바라봐야 한다 누가 더 아픈지 슬픈지 위태로운지 그래야 둘 다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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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과 선(禪)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다. 이 시에서 외나무다리는 현실이고 눈은 결국 시인의 정신일 것이다. 아니 그 무엇으로 해석해도 된다. 외나무다리가 그렇고 목이 긴 기린이나 이빨이 사나운 사자가 아니어도 다리의 난간 아래는 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현실이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하는 어떤 사회의 잘못된 구조 속에 우리는 길이 든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이다.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서 나와 경쟁자로 느껴지는 누군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나쁜 비하의 습성이 생겨나는 건 아닌지, 인정할 건 인정하는 정도만 되어도 둘 다 살아남을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누가 더 슬픈지, 아픈지, 위태로운지를 안다면 그게 바로 둘 다 살아남는 방법이라 이 시는 알려준다. 상대의 눈을 더 잘 바라보기 위해서는 억지와 아집의 내 눈을 먼저 맑게 씻고 볼 일이다.
박윤배(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