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리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곤 합니다.
고학력과 스마트 기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문해력 감소’라는 ‘글 읽는 까막눈 현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단어는 사물과 현상의 특성을 가장 핵심적으로 축약한 기초개념입니다.
우리는 단어의 뜻을 찾아가면서, 지식의 본질과 핵심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학교를 떠난 이들의 지식 인싸력도 레벨업됩니다.
너도나도 잘난 척하는 300명 선출직들이 언어구사력이 실소를 자아내는 국정감사 기간입니다.
지난 한 주도 숨가쁘게 흘러갔고, 나라 안팎의 문제점은 줄어들 기미도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푸르렀던 시절보다 쉽사리 지치는 게
신상 스마트폰의 팔팔했던 배터리가 100% 충전을 해도 금세 방전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 봅니다.
최다선 의원의 반말 구사가 실소를 자아냈습니다. 이마의 나이테도 무색해진 장면이 도드라졌습니다.
나이테를 한자어로 ‘연륜(年輪: 나이/해 년, 바퀴/동그라미 륜)’이라고 부릅니다.
정수리를 기준으로 원을 그릴 때, 주름살은 나이테처럼 이마에 깊어집니다.
주름이 연륜이고, 연륜은 베테랑의 내공과 실력을 의미합니다.
그래도 자꾸 ‘고물(古物: 옛 고, 사람/물건 물)’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서운하고 아쉽습니다.
이런 저런 기사에서 산불 피해지역 송이생상량이 늘었다는 게 눈기을 끌었습니다.
송이 포자가 ‘수분(受粉: 받을 수, 가루 분)’이 잘 이루어졌나 봅니다.
그동안 식물의 번식은 씨를 뿌리는 ‘파종(播種: 뿌릴 파, 씨종)’이라고만 여겼습니다.
하지만 진짜 번식은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전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움직이는 동물은 액션으로 짝짓기를 치르고, 뿌리 심긴 식물은 ‘배달의 종족’이 꽃가루를 날라줍니다.
새삼 벌과 나비와 새들에게 고맙습니다.
‘물기(水分)’와 ‘액체 분(水粉)’의 의미 ‘모호성(ambiguity)’이 있는 ‘수분(受粉)’보다는
‘가루받이’란 말이 대중적 공감을 이끌어내기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가루받이’ 수분의 영어 단어는 ‘pollination’입니다. Pollen이 ‘꽃가루’를 의미합니다.
우리말 ‘가루’는 ‘갈다’에서 나왔다는 어원설이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가루란 말에 불현듯 ‘가루지기’가 떠올랐습니다. 짝짓기 몬스터 변강쇠와 옹녀가 등장하는 그 가루지기가 맞습니다.
식물번식의 핵심인 꽃가루와 번식능력자 강쇠 형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을 거라 짐작합니다만...그게 아닙니다.
가루지기는 ‘가로로 진다(橫負: 가로 횡, 짐질 부)’는 뜻이더군요.
옛날에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시신을 거적에 싸서 지게에 짊어지고 날랐답니다.
가루란 가로세로 ‘가로’의 옛말이랍니다. ‘(시신) 가로로 지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끝나 온 나라가 굶주릴 무렵,
변강쇠는 마을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쓴 탓에 저주를 받아 심한 병을 앓았다네요.
결국 부인 옹녀에게, 새서방을 들이면 그 서방을 죽이겠다는 저주를 남기고 삶을 마칩니다.
옹녀는 변강쇠의 시신을 집에서 내가려고 도와줄 사람을 찾지만,
오는 사내들마다 모두 저주로 죽고 집안은 시체들로 가득찹니다.
이 시체들을 옮기는 ‘시신 나르기’가 이야기의 제목이고 핵심 사건인데,
이제껏 주연 배우들의 힘찬 활동들만 떠올렸기에 인구에 회자되었지요.
2008년 연약해보이는 남자 배우가 주연을 맡았던 ‘가루지기’도 변강쇠의 육체능력에만 초점을 맞춰서
가루지기의 원뜻은 드러나지 않았더라구요.
가읇 장마가 이어지는 바람에 몸도 마음도 지치는 것이 아마도 또 방전됐나 봅니다.
배터리로 시작해, 나이테와 가루받이를 거쳐, 가루지기까지 갔군요.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풀이 방식을
‘의식의 흐름(the stream of consciousness)’이나 ‘일련의 생각(a train of thought)’으로 부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