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People-시인 김병중, 그의 ‘새재 아리랑’
늘 머릿속에는 ‘고향’이라는 시어가 낮에는 회귀성 언어로, 밤에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여우로 출몰하곤 했다.
어느 시인의 실토가 그랬다.
깊은 고향 사랑이 읽힌다.
우리 고향땅 문경 농암 출신의 김병중 시인이 바로 그 고향 사랑의 주인공이다.
그가 그렇게 그리던 고향을 주제로 틈틈이 시를 썼다고 했다.
그렇게 쓴 한 편 한 편 시를 하나로 엮어 펴낸 시집이,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인 ‘새재 아리랑’ 그 시집이다.
그 시집을 펴낸 때가 2012년 9월의 일이었으니, 어언 다섯 해 세월이 흘렀다.
시인이 그 시집을 펴내던 그 즈음에 나도 그 시집 한 권을 손에 넣었다.
그 다음해인 2013년 1월 31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중구 을지로 입구 프레지던트호텔 18층 산호실에서, 우리 고향땅 문경 출신 공무원들의 모임인 ‘문공회’ 신년모임이 있었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였다.
당시 시인은 관세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이기도 해서, 그 자리에 참석해서 자신이 쓴 ‘문경의 족보’라는 제목의 시를 낭송했었다.
그 시가 실려 있는 시집이 ‘새재 아리랑’이라는 그 시집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 시집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시인인 그때 낭송했던 그 시, 곧 이랬다.
점촌에 가면
영강 은씨銀氏들이 산다
이끼 먹고 살아 청빈한 양반 피가 흘러
끝내 잊지 않고 고향으로 회귀하네
맑은 강을 위해 모래무덤도 만들지 않는
은빛 물고기의 후손들
가은에 가면
구랑리 오씨烏氏들이 산다
봉황이 몸 씻은 물 먹고 자란 오석烏石들이
천년의 둥지 틀고 물여울 노래를 부르네
산수 어우러진 세상에 나와 바람의 귀를 여는
눈부신 까마귀의 후손들
문경에 가면
새새 조씨鳥氏들이 산다
백두대간 배꼽 굴에는 호랑이가 으르렁대도
선비들은 박달나무 지팡이 짚고 고개를 넘고 있네
책바위 앞에서 소원 빌고 기쁜 소식을 듣는
생의 고개 잘도 넘는 대붕大鵬의 후손들
마성에 가면
태극 진씨鎭氏들이 산다
경북팔경 중 으뜸 고을에 삼형제가 사는데
산태극 물태극 길태극으로 우애도 으뜸이네
고구려 백제 신라 장수들이 고모산성 요새를 지키던
역사를 휘날리는 태극의 후손들
농암에 가면
청화 산씨山氏들이 산다
속세를 떠난 속리산과 도를 간직한 도장산道藏山 아래
심원사 병풍계곡엔 착한 나무꾼과 선녀가 쌍룡과 같이 사네
산겹겹 물층층 우복동이 있어 풍진 속세 떠날 수밖에
시루봉 떡냄새 맡고 푸르게 사는 청화의 후손들
조령산록에 가면
낙동 강씨江氏들이 산다
한 방울의 물이 칠백 리를 휘돌아 큰 강물 되어
천만이 먹고도 남는 한민족 젖줄이 되네
초점 草岾의 물씨가 사벌국 가랑이와 을숙도 치마까지
처음보다 나중이 창대한 낙동의 후손들//
고향땅 온갖 성씨들을 다 꿰뚫을 정도로 고향 사랑이 깊은 시인이다.
문득 그 시인 생각을 했다.
엊그저께인 2017년 9월 22일 금요일의 일로, 시인이 SNS 페이스북에 글 한 편을 게시한 것으로 그랬다.
‘시간의 냄새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한 편 시였다.
다음은 그 시 전문이다.
시간의 냄새를 맡으려고...
헌책방엘 간다
책을 고르다
날개도 없이 단칸에 누워 있는
단기 4293년 출간된
노천명 시집을 펴자
악취도 향기도 아닌
목이 긴 사슴의 몸내음이 난다
뿔밖에 없는 사슴은
노루라 불러도 아무 대꾸도 없고
종이는 썩어도
시인의 슬픔은 썩지 않아
여적 그 책에서는
첫이슬 맞은 나뭇잎 냄새가 난다
늦은 오후 서울역 지하
단속원의 눈을 피해
천원짜리 좌판대 위에 쫒기듯 누워있는
노숙자 냄새나는 내 첫시집은
헌책방보다 붐비는 좁은 통로에서
눈 큰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니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언제쯤 유통기한 없는
썩지 않는 시집 한 권이 나올지
가끔씩 헌책방에서
정가표도 붙지 않은 책을 뒤척이며
낯선 나를 찾아본다//
5년 전으로 거슬러, 고향사람들 모인 자리에서 시를 낭송하던 그 모습처럼, 헌책방을 넘나보는 시인의 모습도, 마치 지금 내 앞에 두고 보듯, 눈에 선하다.
내 책상 위 책꽂이로 손을 뻗쳤다.
그래서 책 한 권을 뽑아냈다.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이라는 ‘새재 아리랑’ 그 책이다.
수시로 들춰보면서 고향생각에 빠질 요량에서, 처음 선물 받았던 그때부터 지금껏 바로 눈앞인 책상 위 책꽂이 꽂아 놨었다.
펴들었다.
그리고 책갈피 꽂아놓은 쪽을 펼쳤다.
‘새재길’ 그 시가 있었다.
시를 읽기 전부터 그 고개에 담겨 있는 추억의 갈피들이 떠오른다.
또 고향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