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6 주일설교
본문: 마 25:31-41
제목: 양과 염소의 구분
1. 주님은 영광의 보좌에 앉아 양과 염소를 구분하실 것이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25;31-33)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병들어서 늙어서 죽음을 맞는 사람도 그렇고 여러 연유로 자살하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 후 영생과 영벌의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됨을 예고하고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7-28)
죽음 후 심판에 대하여 계시록은 크고 흰 보좌의 심판으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20:11-15)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책들에 기록된 대로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다.
둘째 사망의 심판은 영원한 불이 타는 불못에 던져지는 것이다.
사망과 음부도 마귀도 던져지는 곳이다.
첫째 사망에서는 음부로 가고, 둘째 사망에서는 영벌의 불못으로 간다.
현대의 과학도 상식도 도무지 생각도 못하는 심판과 형벌의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과학이 없다고 하면 없는 것이 아니니 문제이다.
과학은 아는 것만 말하고 철학은 모르는 것만 묻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로 사실과 진리를 말하고 있다.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믿음이 없으면 믿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전적으로 믿어진다.
계시록 20장의 보좌 심판은 요한 사도에게 보여준 모습이다.
마태복음 25장의 보좌 심판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바로 오른편의 양의 무리이고,
책들에 기록된 자들이 바로 왼편의 염소의 무리인 것을 알 수 있다.
여러분은 과연 어느 편에 속하게 될까요?
예수님을 십자가 형벌로 죽인 사람들은 하나님 안 믿는 사람들이었나요?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16:21)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확실해진 때로부터 주님은 비로소 자기의 십자가 죽음을 나타내셨다.
신앙고백과 십자가 죽음은 직결된 하나라 할 수 있다.
신앙고백은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동참한다.
초대교회와 발도인들은 신앙고백을 죽음의 불사로 나타냈다.
유대인들의 어르신이요 대표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이다.
나라의 본 자손들인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을 따랐고 뜻을 같이 했고
그들은 천국에 가는 줄 알았는데 그들은 염소의 무리로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 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23:33)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기적으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다수가 광야에서 멸망 당하였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천국에 있을까요?
여호수아를 통한 하나님의 기적으로 요단을 건넌 이스라엘 다수가
가나안 땅에서 멸망을 당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요?
천년 동안 전 유럽을 다스린 교황과 신부들, 그들을 믿고 따른 천주교인들 어디에 가 있을까?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 속하여 크고 넓은 문과 길로 간 사람들은요?
다 천국에 가 있고, 또 천국에 갈까요?
양의 무리일까요? 염소의 무리일까요?
어느 시대고, 그것이 유대교회든 로마교회든 개혁교회든 현대교회든,
교회의 장로들 대제사장들(유명 목사들) 서기관들(유명 신학자들) 믿었다가는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다.
주님의 말씀이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24:24)
사도 바울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11-12)
주님의 보좌 심판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양의 무리에 속할 것인지
책들에 기록된 염소의 무리에 속할 것인지 판단도 착각도 여러분의 몫이다.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6;13-14)
주님 분명히 말씀하셨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14-21)
2. 양의 무리는 주께 한 것으로 축복을 받는다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오른편에 있는 자들이 그들의 삶 가운데 행한 것을 이어서 말씀하신다.
내가 주릴 때에, 목마를 때에, 나그네 되었을 때에, 헐벗었을 때에, 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가 나를 돌보아 주었다는 것이다.
의인들이 무어라 대답하는가요?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그러하신 것을 보고 돌보았나이까 하리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주님은 ‘교회 생활 얼마나 열심히 하였느냐’, ‘성경과 교리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
‘무슨 직분을 가졌었느냐’, ‘얼마나 헌금을 많이 하였느냐’ 묻지 않으신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무엇을 하였느냐만 물으신다.
‘내 형제’라 하셨는데 믿음의 형제가 우선이지만
크고 둘째 되는 계명이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어려운 이웃 또한 포함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웃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고 모든 번제물과 제물보다 나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뜻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만이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할 수 있으니
이 선한 행실은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이 하는 행실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 교훈과 책망을 받고 바르게 되고 하나님의 의로 교육을 받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무조건 선행이면 다 되는 것이 아니고, 선행으로 구원 받는 것도 아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헛것이다.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나야 하고 사랑으로 역사하여야 한다.
말만 앞세우고 교리만 강조하면 그것이야말로 바리새인의 의이다.
너희가 이런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도 바로 이웃 사랑의 실현인 것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렘22:3)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가운데서 돌보는 것이 공의와 정의라고 하신다.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는 것,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는 것.
그것이 정의이고 공의이다.
너희가 이 말을 준행하면 나라와 백성들이 번영할 것이고,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그들이 황폐하고 말리라 하신 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다.
이사야 58장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 곧 공의인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6-7)
그리하면,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한다고 하셨다.
그리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라 하셨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것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을 것이라고도 하셨다.
이 말씀은 오래 황페된 것들을 다시 세우는 것도,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는 것도,
어려운 이웃을 돕고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는 자들에 의해서
또 그 선한 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교회는 더 이상 지성주의에서 벗어나고 말뿐인 바리새인 누룩에서 벗어나
이웃의 결박과 어려움을 돌봐주는 선한 행실로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행함으로 돌아가야 한다.
초대교회가 보여주고 맺었던 열매들을 우리도 보여주어야 하고
발도인들이 보여주고 맺었던 열매들을 우리도 보여주어야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같은 열매를 보여주지 못하는 교회가 되었는지 성도들이 되었는지
철저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우리는 염소의 무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3. 염소의 무리는 주께 하지 아니한 것으로 저주를 받는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41)
생명책에 이름이 없고 책들에 행위들이 기록된 염소의 무리들이 갈 곳은
영원한 불이 있는 곳이다.
거기는 마귀와 그 사자들도 함께 있는 곳이다.
영원한 불이니 꺼지지 않고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이다.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는 곳이다.
나라의 본 자손들이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이다.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 하신다.
이로 인하여 이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간다고 하신다.
영원한 운명이 영벌이냐 영생이냐 그 갈림이 믿음의 행함에 달려 있다.
왜 나라의 본 자손들이 영원한 불에 들어가고 마는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유명하고 권세좋은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을 조심해야 한다.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나 노략질하는 이리들인 거짓 선지자들을 주의해야 한다.
성경을 붙들고 성령을 구해야 한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말씀으로 거듭나야 한다.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코페르니쿠스적인 회심을 해야 한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참으로 위대하고 영적인 변화가 하늘로부터 없다면, 생명책에는 이름이 없고,
그야말로 책들에만 기록된 사람이요, 왼편의 염소들의 운명과 신세가 되고 만다.
주님은 반드시 영광 중에 천사들과 함께 다시 오셔서 보좌에 앉으시고 심판하실 것이다.
그때에, 아버지께 복을 받고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는 자가 되기 바란다.
오늘 본문의 마태복음 25장 양들의 행함과,
이사야 58장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으로,
야고보서 1장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으로,
우리의 믿음의 행동 강령으로 삼고 실천하자.
우리의 믿음 생활과 사역이 이제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행함으로 채워지게 하자.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는 비결도 같다.
고아와 과부와 객을 위하여, 곡식 벨 때에 잊어버린 한 뭇을 두고 오는 것,
감람나무 열매 딸 때 남겨 두는 것, 포도원 포도 딸 때 남겨 놓는 것이다.
곡물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않는 것, 떨어진 이삭도 줍지 않는 것이다.
듣고 행함으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듣고 행하지 않음으로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자.
보좌의 마지막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놀라운 것인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3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