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남자 축구 대표팀(23세 이하)은 26일(한국시각)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U-23 아시안 컵 8강전에서 인도네시아에 무릎을 꿇었다. FIFA 랭킹 23위 한국이 FIFA 랭킹 134위 인도네시아에 2대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10대11로 졌다. 이로서 축구 10회 연속 올림픽 출전기록도 무산됐다.
축구협회는 이번 패배를 겸손한 자세로 받아들이고 제로베이스에서 대한민국축구 중흥을 위한 유효한 해법을 다시한번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축구경기하면 2006년 독일에서 개최된 이태리와 불란서의 월드컵 결승전 경기가 필자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양팀은 정규시간경기에서 1:1 무승부가 된 후 연장 후반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불란서대표팀 지단이 이태리 대표팀 마테리치의 가슴을 박치기로 공격해 쓰러뜨린 바로 그 장면입니다.
지단은 심판의 레드카드를 받고 곧바로 퇴장 당 했고 경기결과는 승부차기에서 불란서가 져 이태리에게 챔피온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그러나 결승전이 끝난 뒤 이태리의 월드컵 우승소식은 묻히고 전세계 언론이 “지단, 왜 그랬나”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경기중 지단이 자신의 유니폼을 자꾸 잡아당기던 마테라치에게 “그렇게 내 유니폼이 가지고 싶냐? 경기 끝나고 주마’라고 말하자 마테라치 가 “니 유니폼 보다 니 창녀 누이가 낫겠다. ( I would prefer your whore of a sister)”라고 모욕을 주었다고 합니다. 마테리치가 지단의 가족을 모욕한 것에 격분하여 박치기로 마테리치를 쓰러뜨린 것이라고 합니다. 마테리치는 경기내내 지단의 어머니를 욕했는데 결승전 당일 지단의 어머니가 아파서 병원에 누워 계셨기 때문에 분노가 컸고 누이에 대한 모욕으로 지단의 감정 뇌관이 순간적으로 폭발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상대와 아무리 심하게 싸우고 있더라도 해서는 안될 막말은 삼가 해야 만합니다. 그 사람의 가족, 그 사람의 신념 그리고 그 사람이 속해 있는 집단을 경멸하는 말을 하게 되면 최악의 개싸움의 연쇄작용을 각오해야만 합니다.
이전투구(泥田鬪狗)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입니다. 의역하면 자기의 이익을 위해 비열(卑劣)하게 다투는 것을 뜻합니다. 지난번 4.10 총선을 통하여 정치권에서 진영으로 나뉘어 피장파장으로 이전투구(泥田鬪狗)를 하는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금 할 길 없었습니다. 정치에 몸담고 있지 않는 사회인들도 개싸움이 일어나는 메카니즘을 알아 두면 일촉즉발의 흥분상태에서도 선을 넘지 않는 자제력을 발휘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까 쉽습니다. “싸움의 기술(정은혜저, 산티)”에서 두사람사이에서 사소한 언쟁이 개 싸움으로 에스칼레이트(escalate) 되는 과정이 잘 정리되어 있어 소개합니다.
1. 어떤 사건이 있다.
2. 그 사건에 대해 화가 난다.
3. 화를 낸다. 처음에는 그 사건에 대한 행동/태도/반응 등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4. 상대방이 인정하지 않으면 항의로 옮겨간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라고 따진다.
5. 그런데 상대방이 별 반응이 없거나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며 반격한다.
6. 사건이 아니라 상대방의 인격을 공격한다. 예를 들면 “네가 그렇지 뭐. 너 같은 인간이 뭘 알겠어?”
7. 이런 공격에도 상대방이 항복하지 않거나 분이 풀리지 않으면 수위를 한단계 높인다. 예를 들면 “하하, 내가 잘못 생각했네. 너같이 못 배운 인간이 뭘 알겠어?”라며 그 사람의 존재자체에 대한 비아냥, 비웃음, 경멸을 담은 표현을 내뱉는다.
8. 이것으로 분이 안 풀리면 이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그 사람의 부모, 인종 등을 욕한다. 이를테면, “네 엄마가 얼마나 이상한 여자 인지 알지? 그래서 네가 그런 거야!”라는 식이다. 태어나기를 잘못 태어나서 아예 회복이나 구원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오바마 대통령은 비록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뽑힌 대통령이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합중국이라는 공동체의 통합을 위해 포용을 강조했습니다.
오바마 전대통령이 2010년 5월 미시간 대학졸업식에서 행한 연설은 공동체의 통합을 위해 상호 포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연설을 읽으면 초당적 대통령의 연설이 어때야 된다는 것을 쉽게 이해 할수 있습니다. 좀 길지만 연설문의 내용을 발췌 인용합니다.
“어떤 정책에 반대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매도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의 견해나 판단에 대해 의심할 수는 있지만, 그의 애국심이나 동기에 대해 의문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사회주의’나 ‘소련과 같은 통치’, ’파시스트’혹은 ‘우파 꼴통’과 같은 말들을 던지는 것은, 정부나 정치적반대자들을 독재정권내지는 살인정권에 비유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중략)
진정한 문제는 이러한 종류의 비방이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을 막아버린다는데 있습니다. 민주적토의를 허약하게 만듭니다. 서로에 대해 배우는 것을 막아 버립니다.(중략)
우리가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연구결과들이 보여 주듯이 우리는 더욱 편향되고 우리나라의 정치적 분열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하지만 가정(假定)과 믿음에 도전하는 다양한 견해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중략)
여러분이 뉴욕타임스(대표적진보신문)사설만 읽는 사람이라면, 때때로 월스트리트저널(대표적보수신문)의 사설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글렌 벡이나 러시림벅(우파정치평론가)의 펜이라면 허핑턴포스트(자유진보매체)의 칼럼 몇 개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화가 날수도 있고, 당신의 견해가 바뀌지 않을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반대쪽 견해에 대해 듣는 것은 가장 효과적이고 핵심적인 시민의식의 실천입니다. 우리 민주주의의 근본입니다. (중략)
여러분이 대도시 출신이라면, 시골출신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십시오.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같은 인종이거나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다른 배경과 인생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여러분의 친구로 만들려고 노력하십시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는 것처럼 불편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분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법을 배울 것입니다.
상대진영에 대해 의견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상대의 동기나 애국심에 의심을 품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오바마대통령이 연설에서 강조하는 것은 상대방의 다른 견해나 접근 방식을 선의로 인정하고 포용하라는 취지의 말입니다. 당신과 생각이 다른 그들도 당신과 같은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입니다.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불란서의 철학자요 사상가인 볼텔르(Voltaire)의 말을 음미 해보시기 바랍니다.
I disapprove o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
나는 당신이 (지금) 한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내 목숨을 걸고 당신이 그 말을 할 권리를 지켜 드리겠습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하게 봉쇄하거나 그런 말을 한 사람을 향하여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악의적으로 매도하는 행위는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명백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한국의 이준관 시인은 ‘구부러진 길’이라는 시에서 한국인 특유의 감성으로 포용을 노래했습니다.
이준관 시인의 시 “구부러진 길” 전문입니다.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모여 살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통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이 시에서 시인은 포용을 형용하는 “품고”를 여러 번 반복합니다.
포용은 이처럼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와 다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수용의지를 함축하는 넉넉한 공동체 정신입니다.
바보를 뜻하는 영어단어 이디엇(idiot)은 그리스어 이디오테스(idiotes)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디오오테스는 ‘자기의 재능을 일반의 복지를 위한 일에 쓰지 않고 자기 혼자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회적 죄악을 저지른 뛰어난 개인’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열린 지성과 인격을 갖춘 인간은 서로를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공동체정신의 함양훈련을 통해 생겨 나기 마련입니다
전문가에 의하면 나와 다른 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포용을 방해하는 여덟 가지 덫은 아래와 같습니다(정현천지음 “포용의 힘” 224쪽-240쪽 참조) :
첫째 매너리즘. 변화하지 않고 자기모방에 빠져 있다. 생명을 유지하려면 매너리즘 즉 타성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둘째 고정관념.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능력이 결여 되여 있다.
셋째 도그마. 독단에 빠져 새로운 주장의 여지가 없다.
넷째 휴브리스. 과거의 경험과 성공만을 절대 진리로 믿고 밀어붙인다.
다섯째 연고주의. 내편의 범위를 필요이상으로 좁게 설정한다.
여섯째 서열매기기. 하나의 기준에 의한 상대평가로 평가대상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지 못한다.
일곱째 동조화. 사회나 집단의 지배적인 의견과 다른 개인의 생각을 말하지 못한다.
여덟째 완벽주의. 작은 것에 집착하고 시야가 좁아져 큰 것을 놓치기 쉽다.
오늘은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개싸움의 전개 과정과 공동체의 보존과 생존에 유익한 포용의 효능과 포용을 방해하는 여덟 가지 덫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오바마 전대통령이 미시간 대학 졸업식에서 한 연설문은 정현천지음 “포용의 힘”에서 재 인용했습니다. 오바마대통령의 연설문 속에 개싸움을 피할 수 있는 지혜가 번뜩이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안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라면 자신의 소속 정당과 상관없이 반드시 낮은 자세로 타인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대화하고 타협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포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의 미국, 보수의 미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듯이 진보의 대한민국, 보수의 대한 민국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미합중국과 하나의 대한민국이 이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을 뿐입니다.
끝으로 비록 피부색은 검지만 미국의 역대 어느 백인 대통령보다 이지적이고 감동적인 글을 써서 미국민들의 심금을 울린 바락 오바마의 자서전 “담대한 희망(The Audacity of Hope)”번역본(홍수원옮김, 랜덤하우스)중에서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며 오늘 글을 마칩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미국과 이나라를 세운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들 건국의 주역은 하찮은 야심과 편협한 타산에서 벗어나 대륙전체에 걸치는 국가 건설을 꿈꾸었다. 한편 링컨이나 킹과 같은 사람들은 불완전한 결합을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목숨을 내던졌다. 또한 이름없는 모든 사람들과 노예, 군인, 재단사, 도살업자들은 벽돌을 쌓고 레일을 깔며 못이 박힌 손을 맞잡은 채, 그들 자신과 자식, 손자들을 위한 삶을 만들어 가면서 우리모두의 꿈이 영그는 풍경을 채워 나가고 있다. 나는 이런 과정속에서 한부분이 되고자 한다. 내 가슴은 이 나라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