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식물 /임이랑/코난북스
PLATFORM P에서 ‘정원의 언어’라는 주제로 진행된 강연을 들었다. 식물을 매개로 창작 작업을 하는 ‘시각의 정원’, 식물을 기르는 식집사들의 에세이와 최근 서점가에서 떠오른 식물서적들의 성향을 톺아보는 ‘쓰기의 정원’, 자연·생태 전문 출판사와 식물학자이자 식물 세밀화가인 연구자들의 시선으로 주변 식물을 다시 보기 하는 ‘탐구의 정원’ 이렇게 세 개의 시리즈로 3일 동안 하루 5시간씩 진행된 강연이었다. 모두 집중해서 들을 수는 없었지만, 강연 중 <아무튼, 식물> 책을 쓴 임이랑 작가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임이랑 작가는 밴드 ‘디어클라우드’에서 노래를 짓고 연주하는 음악가이기도 하다. 삶에서 도망치고 숨고 싶었던 때에 만난 식물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식물을 들이고부터 변화된 이야기를 <아무튼, 식물>에 담았다. 강연을 들으면서 임이랑 작가는 식물 전문가인가보다 했지만,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식물 전문가는 아니고, 식물 키우고 돌보는 것을 사람 돌보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튼, 식물>은 작가가 식물을 키우면서 든 생각과 에피소드를 담았다. 책을 읽다보면 필레아 페페로미오이데스, 아레카야자, 칼라데아 오르비폴리아 등 혀가 돌아가지도 않는 식물 이름들이 나온다.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서 검색을 해 보면서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딱 하나 식물 사진이 나온다. 바로 표지에 있는 디온 에둘레 소철인데 이것도 검색해보고 이름을 알았다. 식물들 이름도 많고 식물 설명도 자세하게 나오지만, 그 식물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유튜브에서 ‘임이랑’을 검색해봤더니 임이랑 작가가 테라스에서 분갈이하는 영상이 나왔고, 책에서 나왔던 식물들을 볼 수 있었다. 지인이 나눠 준 줄기 하나를 물꽂이 해서 뿌리가 내리면 화분에 옮겨심고, 식물이 자라면 조금 더 큰 화분에 옮겨주고 물관리 통풍관리를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이 나왔다. 새벽의 영감을 얻어 글을 쓰다 보니 한낮이 되어야 일어났는데 식물들을 하나둘 들이게 되면서 식물에 물을 주고 보살펴야 해서 오전 9시에 일어나야 할 정도로 삶의 루틴도 변화되었다고 한다.
식물들을 하나둘 집으로 들이면 그 식물이 원래 살던 환경과 비슷하게 만들어줘야 하고, 그 식물의 특성을 잘 알아야 오래도록 나와 같이 살 수 있다. “그냥 물만 줘도 잘 사는 식물이라도 내 손에 오면 다 죽어.” 하면서 식물을 죽일 때마다 낙담하고 식물에게 미안해서 더 이상 키우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임이랑 작가는 ‘식물과 사람 사이에도 분명 궁합이 존재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식물과의 궁합은 생년월일만으로는 알아볼 수 없다. 나에게 어떤 식물이 가장 잘 맞는지는 많이 키워보고 또 많이 죽여보며 알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많이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수십 개의 화분에서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살고 있다. 십 년이 넘은 식물도 있고, 잎꽂이 되어 있는 다육식물도 있고, 외목대로 키우기 위해 젓가락을 기둥 삼아 자라고 있는 장미허브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궁합을 맞추기 위해 오늘도 내 실험에 응해주고 있는 식물들이 고마웠다. 식물 돌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냥 식물 키우는 것만이 아니라 식물과 내 삶을 연결해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고, 식물 키우기가 처음인 사람은 나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김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