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5 By 20021003 유쾌한씨
유쾌한씨의 영화 씹는 방법
column.daum.net/art79
한국영화에서 스포츠 영화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계산기를 두들겨 보니 수지가 안 맞는 장사이니 굳이 찍을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상업성이 깊이 베어 있는 현대 스포츠를 상대로 누가 예술영화를 찍겠어. 스포츠를 사랑하지 않고서야 어림도 없는 얘기지. 그 사랑은 깊고도 깊은사랑이어야 하리라. 그런데 한국영화계에 그런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 영화의 감독 김현석이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각본을 쓰고 조감독까지 했던 그의 야구에 대한 애정은 그칠 줄 몰랐다.
막가는 코미디 영화의 홍수 속에 2002년을 보내고 있는 한국 영화판에 휴먼 코미디로 도전장을 내놓은 "YMCA 야구단". 이 영화를 보면 300만을 넘었다는 <가문의 영광>이 얼마나 오버하는 코미디 영화임이 단번에 드러난다. (가문의 영광에 대해서 욕할 생각은 없지만) 많은 영화 제작사들이 오버하고 막가는 코미디를 만들어야 흥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관객들을 우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계속해서 그러한 영화들을 내놓고 팔린다는 명분 하에 이렇게 만들어야 흥행할 수 있다는 규칙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이런 상황 속에서 "YMCA 야구단"은 신선한 충격이다. 우리나라 코미디 영화에서 이처럼 잔잔하고 자연스러웠던 영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유쾌한씨는 기억을 아무리 되짚어 봐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박장대소는 아니지만 피식 피식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그 웃음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우선 이 영화의 웃음은 소재에 있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나 철저한 상업주의의 메이저리그에서 맡을 수 없는 신선한 냄새가 난다. 도대체 구한말 조선인들은 어떻게 야구를 시작했을까 하는 재밌는 상상력은 영화 보기 전 한번 봤을법한 예고편과 맞닿아 영화에 대한 흥미를 조성해 놓고 있다. 두근두근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는 구한말의 배경들이 우리에게 신선하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선다. 영화 <취화선>이나 요즘 인기리에 방영하는 <야인시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배경의 묘미라고나 할까. "YMCA 야구단"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정감있게 복원해내면서 새롭게 유입되는 문화에 대해 인물들이 느끼는 문화충격을 곳곳에 배치하면서 그 묘미를 살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붕떠있지 않고 한지에 먹 스며들 듯 잘 스며들어 있다. 특히 송강호의 연기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다.
솔직히 이 영화는 잘 정제된 보석 같아 할 말이 없다. 단점을 말하자면 끝도 없이 쏟아낼 수 있겠지만 별루... 그리고 "YMCA 야구단"에서 역사를 읽어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러한 영화가 아니니까.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항을 전연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를 바라보아야 할 포커스는 그것이 아니다. 유쾌한씨는 역사학도로서 역사를 생각하면 영화의 따뜻함이 모순적으로도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그게 아니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는 영화 자체를 떠나서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 "YMCA 야구단"의 감독은 김현석이라는 신인감독이다. 물론 그가 신인이기는 하지만 그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며>과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그의 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았다. 그러니 ‘명필림’에서 투자를 했지. 그런데 영화 잡지나 영화 사이트를 둘러봐도 초점은 김현석이라는 사람에 맞혀져 있지 않고 송강호와 김혜수, 명필림에 주로 맞혀져 있다는 사실이다. 의심이 나면 한번 잡지나 사이트를 뒤져봐라. 한마디로 말해 이 영화의 주체는 김현수가 감독이 아니라 명필림이었다. 후후... 참 재밌어.
"YMCA 야구단"과 함께 눈여겨 볼 영화가 장선우 감독의 영화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다. 한국 영화사상 최대의 제작비인 110억을 쏟아 부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실패 덕분에 장선우 감독은 온갖 욕을 혼자서 다 먹고 있다. 아니 그 돈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자꾸 돈 찔러 넣어 준 사람이 어딘데 말이야. 바로 ‘튜브’ 아닌가. 참 어이가 없는 일이지. 장선우에게 브레이크를 걸지 못한 튜브 잘못이 더 크면 컸지 어찌 장선우 감독의 잘못 뿐이겠는가. 결국 우리는 이 두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잘되면 제작사 덕이요 잘못되면 감독 탓이라는 것이다. 이제 한국 영화판도 인제 이렇게 가는 것이다. 감독 보다는 제작시스템으로...
"YMCA 야구단"의 흥행성적을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이제 명필름은 어떻게 흥행작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노하우를 어느 정도 쌓은 듯 하다. 영화를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관객을 읽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지.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