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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오줌 꿈의 비밀
김원익
1.
세계 각국의 신화에서 물은 여신이나 여성과 관계가 깊다. 물은 여성성을 상징한다는 뜻이다. 시쳇말로 ‘물이 좋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자보다 여자가 눈물샘이 발달한 것도 객관적인 사실이다. 흔히 여자의 마음과 비교되는 갈대도 주로 강가나 늪가에서 자란다.
우리나라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웅의 아내이자 단군의 어머니 웅녀를 생각해 보자. 웅녀는 언뜻 보면 물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곰은 원래 물을 좋아한다. 강둑 물길에 지켜서서 튀어 오르는 연어를 잡아먹는 곰들을 떠올려 보라. 북극곰도 원래가 바다 없이는 살 수 없는 동물이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아내 유화부인도 강의 신 하백의 딸로 물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게다가 유화는 버드나무 부인이라는 뜻인데 버드나무는 시냇가나 호숫가 등 주로 물가에서 자란다. 신라의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정도 우물가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알영정이라는 우물가에 나타난 계룡이 왼쪽 갈비에서 낳아 그런 이름을 얻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강의 요정들은 모두 티탄 12신 중 오케아노스와 테티스가 결합하여 낳은 딸들이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의하면 그들은 오케아니데스라고 불리며 전 세계의 강을 지배하는데 그 수가 오천이 넘는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도 우라노스의 남근이 바다에 떨어져 일어난 거품에서 조개를 타고 태어났다. 아프로디테라는 말 자체가 거품에서 ‘태어난 자’라는 뜻이다.
물은 아기를 품은 ‘아기궁전자궁子宮’ 속 양수처럼 생명의 근원이다. 행성을 탐사하면서 생명체 유무를 따질 때 과학자들은 맨 먼저 물의 존재를 알아본다. 물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물은 또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물이 풍부해야 들판의 곡식이 잘 영글고 농사가 풍년이 든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정안수를 떠 놓고 자식을 점지해달라고 빌었던 것도 같은 이치 아닐까?
어린 시절 우리의 어머니들은 아침이면 밤새 요강에 받아두었던 식구들의 소매(오줌)를 무나 배추가 자라고 있는 채소밭 이랑 사이나 화단에 뿌리곤 하셨다. 오줌은 우리가 먹는 채소나 식물의 영양분이었던 셈이다.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물이 세계 신화에서 오줌으로 좀 더 구체화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2.
『삼국유사』를 보면 김유신에게는 누이동생이 둘 있었다. 어느 날 밤 언니 보희가 꿈에 경주 남산에 올라 오줌을 누었더니 경주 시내가 잠길 정도가 되었다. 이튿날 보희가 동생 문희에게 꿈 이야기를 하자 동생이 언니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언니, 내가 그 꿈을 살게요.” “그 대신 무엇을 주겠니?” “비단 치마를 줄게요.” “좋다.”
문희가 값을 지불한 뒤 치마를 벌리고 꿈을 받을 준비를 하자 언니가 “어젯밤 꿈을 네게 준다.”고 외치며 꿈을 던져주는 시늉을 했다. 그 일이 있은 뒤 열흘 만에 김유신은 집 앞에서 김춘추와 공차기를 하며 놀다가 고의로 춘추의 옷을 밟아 옷고름이 뜯어지게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에 들어가 옷고름을 다시 다시지요.”
춘추가 그를 따라 집에 들어오자 유신은 큰 누이 보희에게 춘추의 옷고름을 달아주라고 했다. 보희가 오빠의 태도를 마뜩찮게 여기고 병을 빙자하며 거절하자 문희가 나서서 춘추의 옷고름을 달아주었다. 춘추는 옷을 건네주는 문희를 보고 첫눈에 반해 마침내 그녀를 아내로 삼았다. 이후 춘추가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으로 왕위에 오르자 문희는 왕비가 되었다.
3.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도 이와 비슷한 오줌 꿈 이야기가 나온다. 때는 페르시아가 리디아를 정복하고 메디아와 소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시기였다. 메디아도 키악사레스라는 왕의 영도아래 스키타이인들의 지배를 물리치고 막 강대국으로 도약한 즈음이었다.
키악사레스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아스티아게스에게는 만다네라는 외동딸이 있었다. 어느 날 아스티아게스는 딸이 오줌을 누자 나라의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고 이어 아시아 전역이 범람하는 꿈을 꾸었다. 그는 마법사인 마고스들로부터 이 꿈의 해몽을 듣고 깜짝 놀랐다. “공주님이 낳은 아들이 왕이 될 것이라는 신탁입니다.”
아스티아게스는 그 꿈을 내내 기억하고 있다가 만다네가 혼기가 되자 자신의 지위에 어울리는 메디아인이 아니라 캄비세스라는 페르시아인에게 딸을 주었다. 캄비세스는 페르시아에서 가문도 좋았고 인품도 훌륭했지만 아스티아게스는 그가 메디아의 중류층보다 훨씬 낮은 신분이라고 생각했다.
아스티아게스는 딸 만다네를 페르시아로 시집보낸 뒤 다시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딸의 성기에서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자라더니 금세 아시아 전역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포도나무는 성기에서 솟아났기에 오줌과, 포도주의 원료인 포도를 생산하기에 물과 연결된다. 아스티아게스는 마고스들로부터 첫 번째 꿈과 똑 같은 해몽을 듣고 손자가 태어나면 가만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어 딸이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녀를 페르시아로 불러들여 엄중 감시하게 했다.
이윽고 달이 차서 딸 만다네가 손자를 낳자 아스티아게스는 충복 하르파고스를 불러 강보에 싼 아기를 내밀며 은밀하게 죽이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하르파고스는 후일이 두려워 그 일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만일 후사가 없던 아스티아게스가 죽는다면 왕위는 만다네에게 넘어갈 것이 분명한데, 나중에 자신이 그녀의 아들을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르파고스는 궁리 끝에 아스티아게스의 소치기 중 하나인 미트라다테스를 불러 자신이 맡은 일을 떠맡겼다. “아스티아게스 왕께서 네게 이 아기를 데리고 가 될 수 있으면 인적이 드문 산 속에 버려 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라고 명하셨다. 만약 네가 이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이 아기를 살린다면 극형을 당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 아이가 죽었다는 증거를 꼭 가져오도록 하라.”
미트라다테스의 아내는 때마침 임신 중이었는데 남편이 없는 사이 아들을 낳다가 사산하고 말았다. 남편이 아기가 담긴 바구니를 갖고 집으로 가져가 사연을 이야기하자, 아들을 잃어 우울했던 아내는 크고 잘 생긴 아기를 보고 탐이 난 나머지 남편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여보, 마음은 아프지만 우리 아기를 산속에 버리고, 대신 만다네 공주님의 아기는 우리 아이로 삼아 기르도록 해요. 그러면 일거양득 아니겠어요? 우리 아기는 왕자의 예우를 받으며 장사지낼 수 있고, 만다네 공주님의 아기는 목숨을 건질 수 있을 테니까요.”
미트라다테스는 아내의 말이 아주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얼른 두 아기의 옷을 바꾸어 입힌 뒤, 죽일 생각으로 데려왔던 아기는 아내에게 건네주고 자식의 사체는 아기를 담아온 바구니에 넣은 다음 가장 인적이 드문 곳에 버렸다. 이틀이 지난 뒤 미트라다테스는 부하들 중 가장 충실한 둘을 골라 하나는 아기의 사체를 지키게 하고, 다른 하나는 하르파고스에게 보내 사체를 확인하라고 기별을 보냈다. 하르파고스는 부하 하나를 보내 사체를 확인한 뒤 소치기의 아들 시신을 예의를 갖추어 매장하게 했다.
이렇게 소치기의 아들은 매장되고 만다네의 아들은 키루스라는 이름으로 소치기의 아들로 길러졌다. 후일 장성한 키루스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지만 다행히 목숨을 부지하여 메디아를 정복하고 페르시아가 소아시아 전역을 통일하는 초석을 닦는다. 신탁대로 외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 것이다.
4.
제주도 신화에 선문대할망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할망’은 ‘할머니’의 제주 방언으로 그리스 신화의 기간테스만큼이나 엄청난 거구였다. 그녀가 빨래를 할 때 엉덩이는 한라산을 깔고 앉고, 한쪽 발은 관탈섬에 놓고, 다른 한 발은 서귀포 앞바다 지귀섬에 놓은 채, 성산봉을 빨래 바구니로 삼고, 우도를 빨랫돌로 사용했을 정도라니 그 키를 짐작할 만하다.
할망이 언젠가 치마에 흙을 담아 나르다가 치마에 구멍이 나는 바람에 흙이 아래로 흘러 내렸다. 바로 그 때 땅으로 떨어진 흙이 쌓여 현재 제주도에 산재하는 삼백여 개의 오름이 생겨났다. 할망은 왜 치마에 흙을 담아 날랐을까? 그녀는 태초에 그 흙으로 현재의 제주도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스 신화의 가이아처럼 세계 각국 신화의 태초에 등장하는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모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제주도 성산 근처 우도의 생성에도 선문대할망의 입김이 작용한다. 입김이라기보다는 정확히 말해 오줌기운이다. 할망이 언젠가 오줌이 마려웠다. 그래서 그녀는 한쪽 발은 선상면 오조리의 식산봉에, 다른 쪽 발은 성산 일출봉에 딛고서 오줌을 눴다. 그러자 세찬 오줌 줄기에 육지가 파여 그 일부가 바다 쪽으로 밀려가 우도가 되었다. 현재 우도와 성산 사이의 파도가 거센 것은 그 때 그곳이 할망의 우레와 같은 오줌기운에 아주 깊게 파인 탓이다.
5.
서정주 시인의 시집 중에 『질마재 신화』라는 시집이 있다. ‘질마’의 표준어는 원래 ‘길마’로 소에 안장처럼 얹어 물건을 나르는 기구를 뜻한다. 길마는 지역에 따라 ‘지르마’, ‘질매’, ‘지르매’, ‘질마’로 부른다. ‘질마재’는 결국 ‘길마의 모양을 한 고개’라는 뜻으로 서정주 시인의 고향 ‘선운리’의 속칭이다.
「질마재 신화」는 시인이 고향 질마재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토속적이다 못해 비속적인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어 시집 제목처럼 신화적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 중 ‘소자小者 이李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의 첫 단락은 이렇다.
소자小者 이李생원네 무우밭은요, 질마재 마을에서도 제일로 무성하고 밑둥거리가 굵다고 소문이 났었는데요. 그건 이 소자 이 생원네 집 식구들 가운데서도 이 집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이 아주 센 때문이라고 모두들 말했읍니다.
이 시에서 이생원네 마누라의 오줌은 마을에서 가장 튼실한 무를 만들어주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한낱 어느 시골 마을의 소소한 일화에 불과했던 이야기가 신화가 되는 순간이다. 얼마나 기발한 상상력인가.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이르다. 서정주 시인은 이생원네 마누라를 곧바로 ‘장고만한 똥’을 누었다는 이유로 신라의 지로도 대왕의 왕비가 되는 행운을 거머쥔 여인과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옛날에 신라 적에 지로도 대왕은 연장이 너무 커서 짝이 없다가 겨울 늙은 나무 밑에 장고만한 똥을 눈 색시를 만나서 같이 살았는데, 여기 이 마누라님의 오줌 속에도 장고만큼 무우밭까지 고무시키는 무슨 그런 신바람도 있었는지 모르지.”
지로도 대왕은 지철로 혹은 지대로 대왕이라고도 불렀으며 즉위 13년에 우산국을 점령한 지증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대왕은 물건의 길이가 너무 커 배필을 구하느라 애를 먹다가 전국에 사신을 보내 짝을 찾았다. “사신이 모량부 동로수 아래에 이르렀을 때 개 두 마리가 북만큼 커다란 똥덩어리의 양쪽 끝을 다투어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왕은 사신의 보고를 받고 곧 그 똥을 눈 여인을 수소문해서 왕궁으로 맞아들여 왕후로 삼았다.
서정주 시인의 시나 『삼국유사』에서 평범한 여인을 지증왕의 왕비로 만들어 준 ‘장고만한 똥’과 ‘북만큼 커다란 똥덩어리’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바로 질마재 마을에서 가장 옹골찬 무를 키워낸 이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기운, 동생 문희를 삼국통일의 기초를 쌓은 태종무열왕의 왕비로 만들어준 보희의 오줌기운, 페르시아 제국의 국부 키루스를 낳은 만다네의 오줌기운, 제주도를 만들어낸 선문대할망의 오줌기운을 비유한 것이 아닐까? 그만큼 커다란 똥을 눌 수 있었다면 오줌 기운도 대단했으리라.
김원익 / 문학박사, 신화 연구가. 연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부르크 대학에서 수학했다. 역서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의 『아르고호의 모험』, 평역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 저서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서양 문화』(공저), 『신화, 세상에 답하다』, 『신화, 인간을 말하다』,『신들의 전쟁』이 있다. KBS 2 TV에서 ‘신화, 인간의 거울’로 ‘TV 특강’, 삼성전자 등에서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차 한 잔의 향과 시 ?___김승희
김원익1.
세계 각국의 신화에서 물은 여신이나 여성과 관계가 깊다. 물은 여성성을 상징한다는 뜻이다. 시쳇말로 ‘물이 좋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자보다 여자가 눈물샘이 발달한 것도 객관적인 사실이다. 흔히 여자의 마음과 비교되는 갈대도 주로 강가나 늪가에서 자란다.
우리나라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웅의 아내이자 단군의 어머니 웅녀를 생각해 보자. 웅녀는 언뜻 보면 물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곰은 원래 물을 좋아한다. 강둑 물길에 지켜서서 튀어 오르는 연어를 잡아먹는 곰들을 떠올려 보라. 북극곰도 원래가 바다 없이는 살 수 없는 동물이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아내 유화부인도 강의 신 하백의 딸로 물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게다가 유화는 버드나무 부인이라는 뜻인데 버드나무는 시냇가나 호숫가 등 주로 물가에서 자란다. 신라의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정도 우물가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알영정이라는 우물가에 나타난 계룡이 왼쪽 갈비에서 낳아 그런 이름을 얻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강의 요정들은 모두 티탄 12신 중 오케아노스와 테티스가 결합하여 낳은 딸들이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의하면 그들은 오케아니데스라고 불리며 전 세계의 강을 지배하는데 그 수가 오천이 넘는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도 우라노스의 남근이 바다에 떨어져 일어난 거품에서 조개를 타고 태어났다. 아프로디테라는 말 자체가 거품에서 ‘태어난 자’라는 뜻이다.
물은 아기를 품은 ‘아기궁전자궁子宮’ 속 양수처럼 생명의 근원이다. 행성을 탐사하면서 생명체 유무를 따질 때 과학자들은 맨 먼저 물의 존재를 알아본다. 물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물은 또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물이 풍부해야 들판의 곡식이 잘 영글고 농사가 풍년이 든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정안수를 떠 놓고 자식을 점지해달라고 빌었던 것도 같은 이치 아닐까?
어린 시절 우리의 어머니들은 아침이면 밤새 요강에 받아두었던 식구들의 소매(오줌)를 무나 배추가 자라고 있는 채소밭 이랑 사이나 화단에 뿌리곤 하셨다. 오줌은 우리가 먹는 채소나 식물의 영양분이었던 셈이다.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물이 세계 신화에서 오줌으로 좀 더 구체화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2.
『삼국유사』를 보면 김유신에게는 누이동생이 둘 있었다. 어느 날 밤 언니 보희가 꿈에 경주 남산에 올라 오줌을 누었더니 경주 시내가 잠길 정도가 되었다. 이튿날 보희가 동생 문희에게 꿈 이야기를 하자 동생이 언니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언니, 내가 그 꿈을 살게요.” “그 대신 무엇을 주겠니?” “비단 치마를 줄게요.” “좋다.”
문희가 값을 지불한 뒤 치마를 벌리고 꿈을 받을 준비를 하자 언니가 “어젯밤 꿈을 네게 준다.”고 외치며 꿈을 던져주는 시늉을 했다. 그 일이 있은 뒤 열흘 만에 김유신은 집 앞에서 김춘추와 공차기를 하며 놀다가 고의로 춘추의 옷을 밟아 옷고름이 뜯어지게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에 들어가 옷고름을 다시 다시지요.”
춘추가 그를 따라 집에 들어오자 유신은 큰 누이 보희에게 춘추의 옷고름을 달아주라고 했다. 보희가 오빠의 태도를 마뜩찮게 여기고 병을 빙자하며 거절하자 문희가 나서서 춘추의 옷고름을 달아주었다. 춘추는 옷을 건네주는 문희를 보고 첫눈에 반해 마침내 그녀를 아내로 삼았다. 이후 춘추가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으로 왕위에 오르자 문희는 왕비가 되었다.
3.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도 이와 비슷한 오줌 꿈 이야기가 나온다. 때는 페르시아가 리디아를 정복하고 메디아와 소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시기였다. 메디아도 키악사레스라는 왕의 영도아래 스키타이인들의 지배를 물리치고 막 강대국으로 도약한 즈음이었다.
키악사레스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아스티아게스에게는 만다네라는 외동딸이 있었다. 어느 날 아스티아게스는 딸이 오줌을 누자 나라의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고 이어 아시아 전역이 범람하는 꿈을 꾸었다. 그는 마법사인 마고스들로부터 이 꿈의 해몽을 듣고 깜짝 놀랐다. “공주님이 낳은 아들이 왕이 될 것이라는 신탁입니다.”
아스티아게스는 그 꿈을 내내 기억하고 있다가 만다네가 혼기가 되자 자신의 지위에 어울리는 메디아인이 아니라 캄비세스라는 페르시아인에게 딸을 주었다. 캄비세스는 페르시아에서 가문도 좋았고 인품도 훌륭했지만 아스티아게스는 그가 메디아의 중류층보다 훨씬 낮은 신분이라고 생각했다.
아스티아게스는 딸 만다네를 페르시아로 시집보낸 뒤 다시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딸의 성기에서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자라더니 금세 아시아 전역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포도나무는 성기에서 솟아났기에 오줌과, 포도주의 원료인 포도를 생산하기에 물과 연결된다. 아스티아게스는 마고스들로부터 첫 번째 꿈과 똑 같은 해몽을 듣고 손자가 태어나면 가만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어 딸이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녀를 페르시아로 불러들여 엄중 감시하게 했다.
이윽고 달이 차서 딸 만다네가 손자를 낳자 아스티아게스는 충복 하르파고스를 불러 강보에 싼 아기를 내밀며 은밀하게 죽이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하르파고스는 후일이 두려워 그 일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만일 후사가 없던 아스티아게스가 죽는다면 왕위는 만다네에게 넘어갈 것이 분명한데, 나중에 자신이 그녀의 아들을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르파고스는 궁리 끝에 아스티아게스의 소치기 중 하나인 미트라다테스를 불러 자신이 맡은 일을 떠맡겼다. “아스티아게스 왕께서 네게 이 아기를 데리고 가 될 수 있으면 인적이 드문 산 속에 버려 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라고 명하셨다. 만약 네가 이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이 아기를 살린다면 극형을 당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 아이가 죽었다는 증거를 꼭 가져오도록 하라.”
미트라다테스의 아내는 때마침 임신 중이었는데 남편이 없는 사이 아들을 낳다가 사산하고 말았다. 남편이 아기가 담긴 바구니를 갖고 집으로 가져가 사연을 이야기하자, 아들을 잃어 우울했던 아내는 크고 잘 생긴 아기를 보고 탐이 난 나머지 남편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여보, 마음은 아프지만 우리 아기를 산속에 버리고, 대신 만다네 공주님의 아기는 우리 아이로 삼아 기르도록 해요. 그러면 일거양득 아니겠어요? 우리 아기는 왕자의 예우를 받으며 장사지낼 수 있고, 만다네 공주님의 아기는 목숨을 건질 수 있을 테니까요.”
미트라다테스는 아내의 말이 아주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얼른 두 아기의 옷을 바꾸어 입힌 뒤, 죽일 생각으로 데려왔던 아기는 아내에게 건네주고 자식의 사체는 아기를 담아온 바구니에 넣은 다음 가장 인적이 드문 곳에 버렸다. 이틀이 지난 뒤 미트라다테스는 부하들 중 가장 충실한 둘을 골라 하나는 아기의 사체를 지키게 하고, 다른 하나는 하르파고스에게 보내 사체를 확인하라고 기별을 보냈다. 하르파고스는 부하 하나를 보내 사체를 확인한 뒤 소치기의 아들 시신을 예의를 갖추어 매장하게 했다.
이렇게 소치기의 아들은 매장되고 만다네의 아들은 키루스라는 이름으로 소치기의 아들로 길러졌다. 후일 장성한 키루스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지만 다행히 목숨을 부지하여 메디아를 정복하고 페르시아가 소아시아 전역을 통일하는 초석을 닦는다. 신탁대로 외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 것이다.
4.
제주도 신화에 선문대할망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할망’은 ‘할머니’의 제주 방언으로 그리스 신화의 기간테스만큼이나 엄청난 거구였다. 그녀가 빨래를 할 때 엉덩이는 한라산을 깔고 앉고, 한쪽 발은 관탈섬에 놓고, 다른 한 발은 서귀포 앞바다 지귀섬에 놓은 채, 성산봉을 빨래 바구니로 삼고, 우도를 빨랫돌로 사용했을 정도라니 그 키를 짐작할 만하다.
할망이 언젠가 치마에 흙을 담아 나르다가 치마에 구멍이 나는 바람에 흙이 아래로 흘러 내렸다. 바로 그 때 땅으로 떨어진 흙이 쌓여 현재 제주도에 산재하는 삼백여 개의 오름이 생겨났다. 할망은 왜 치마에 흙을 담아 날랐을까? 그녀는 태초에 그 흙으로 현재의 제주도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스 신화의 가이아처럼 세계 각국 신화의 태초에 등장하는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모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제주도 성산 근처 우도의 생성에도 선문대할망의 입김이 작용한다. 입김이라기보다는 정확히 말해 오줌기운이다. 할망이 언젠가 오줌이 마려웠다. 그래서 그녀는 한쪽 발은 선상면 오조리의 식산봉에, 다른 쪽 발은 성산 일출봉에 딛고서 오줌을 눴다. 그러자 세찬 오줌 줄기에 육지가 파여 그 일부가 바다 쪽으로 밀려가 우도가 되었다. 현재 우도와 성산 사이의 파도가 거센 것은 그 때 그곳이 할망의 우레와 같은 오줌기운에 아주 깊게 파인 탓이다.
5.
서정주 시인의 시집 중에 『질마재 신화』라는 시집이 있다. ‘질마’의 표준어는 원래 ‘길마’로 소에 안장처럼 얹어 물건을 나르는 기구를 뜻한다. 길마는 지역에 따라 ‘지르마’, ‘질매’, ‘지르매’, ‘질마’로 부른다. ‘질마재’는 결국 ‘길마의 모양을 한 고개’라는 뜻으로 서정주 시인의 고향 ‘선운리’의 속칭이다.
「질마재 신화」는 시인이 고향 질마재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토속적이다 못해 비속적인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어 시집 제목처럼 신화적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 중 ‘소자小者 이李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의 첫 단락은 이렇다.
소자小者 이李생원네 무우밭은요, 질마재 마을에서도 제일로 무성하고 밑둥거리가 굵다고 소문이 났었는데요. 그건 이 소자 이 생원네 집 식구들 가운데서도 이 집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이 아주 센 때문이라고 모두들 말했읍니다.
이 시에서 이생원네 마누라의 오줌은 마을에서 가장 튼실한 무를 만들어주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한낱 어느 시골 마을의 소소한 일화에 불과했던 이야기가 신화가 되는 순간이다. 얼마나 기발한 상상력인가.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이르다. 서정주 시인은 이생원네 마누라를 곧바로 ‘장고만한 똥’을 누었다는 이유로 신라의 지로도 대왕의 왕비가 되는 행운을 거머쥔 여인과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옛날에 신라 적에 지로도 대왕은 연장이 너무 커서 짝이 없다가 겨울 늙은 나무 밑에 장고만한 똥을 눈 색시를 만나서 같이 살았는데, 여기 이 마누라님의 오줌 속에도 장고만큼 무우밭까지 고무시키는 무슨 그런 신바람도 있었는지 모르지.”
지로도 대왕은 지철로 혹은 지대로 대왕이라고도 불렀으며 즉위 13년에 우산국을 점령한 지증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대왕은 물건의 길이가 너무 커 배필을 구하느라 애를 먹다가 전국에 사신을 보내 짝을 찾았다. “사신이 모량부 동로수 아래에 이르렀을 때 개 두 마리가 북만큼 커다란 똥덩어리의 양쪽 끝을 다투어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왕은 사신의 보고를 받고 곧 그 똥을 눈 여인을 수소문해서 왕궁으로 맞아들여 왕후로 삼았다.
서정주 시인의 시나 『삼국유사』에서 평범한 여인을 지증왕의 왕비로 만들어 준 ‘장고만한 똥’과 ‘북만큼 커다란 똥덩어리’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바로 질마재 마을에서 가장 옹골찬 무를 키워낸 이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기운, 동생 문희를 삼국통일의 기초를 쌓은 태종무열왕의 왕비로 만들어준 보희의 오줌기운, 페르시아 제국의 국부 키루스를 낳은 만다네의 오줌기운, 제주도를 만들어낸 선문대할망의 오줌기운을 비유한 것이 아닐까? 그만큼 커다란 똥을 눌 수 있었다면 오줌 기운도 대단했으리라.
김원익 / 문학박사, 신화 연구가. 연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부르크 대학에서 수학했다. 역서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의 『아르고호의 모험』, 평역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 저서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서양 문화』(공저), 『신화, 세상에 답하다』, 『신화, 인간을 말하다』,『신들의 전쟁』이 있다. KBS 2 TV에서 ‘신화, 인간의 거울’로 ‘TV 특강’, 삼성전자 등에서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