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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히 11:1-12)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가리켜, “성도”, “교인”, “신앙인”,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창조자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원자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진짜 믿음이 되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이 되어야 하고,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칭찬 들을 수 있는 큰 믿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 다녔던 제자들과 이방인인 백부장 중에, 누구의 믿음이 더 클까요? 누가 예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았을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라고. 제자들의 믿음이 적음을 책망하셨습니다. 반면에, 백부장을 향하여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 8:10)라고.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이 작은 자”라는 책망을 받아서는 아니되고,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라고 칭찬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읽은 히브리서 11장을 가리켜, “믿음장”이라고 부르는데,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보배롭고 존귀한 믿음, 반석과 같은 든든한 믿음,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 말씀은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귀하고 소중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의 능력에 대하여,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은 결코 시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라는 말은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면,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은 우리 앞에 실제 상황으로 바뀌어진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는 말은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면, 절대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우리 눈앞에 현실적으로, 분명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바랄 수 없는 것들을 바랄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아!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아라. 너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땅의 티끌처럼 많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미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이기 때문에, 육신적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그의 후손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땅의 티끌처럼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랄 수 있게,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
베드로는 “주여! 내가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었던 어부였습니다. 지금까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잡는 일로 그의 생애를 바쳤습니다. 그의 견지에서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정말 쓸데없는 말이었습니다. 도저히 가능성이 없는 허황된 말이었습니다.
간혹, 바다에 나가, 낚시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넓고 넓은 바다 아무 곳에서나 낚시를 하지 않습니다. 새벽에는 어디, 아침에는 어디, 오후에는 어디, 그런 식으로 이동하면서, 낚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시간에는 그 장소에, 어떤 종류의 고기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낚시를 해야,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낚시배를 운항하는 선장은 그러한 사실을 훤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를 너무 잘 알고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습니다. 왜 낮이 아니라,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겠습니까? 낮보다는 밤에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아침, 그 시간에, 깊은 곳에서, 고기가 잡히겠습니까? 그물을 깊은 데에 가서 던진다고, 밤새도록 잡히지 않던 고기가 잡히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가 왜 그물을 던졌겠습니까? 어차피, 한 마리도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물을 던졌겠습니까? 아니면,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면, 많은 고기가 잡힐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물을 던졌겠습니까?
베드로는 어떤 마음으로 그물을 던졌겠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그의 말을 따르고 있으니, 그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니, 안 던질 수도 없고, 어차피 한 마리도 잡히지 않겠지만, 그냥 또 한번 허탕친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그물을 던졌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물을 던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졌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다른 배를 불렀습니다. 잡은 고기가 두 배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란, 바라는 것을 현실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 줍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바랄 수 없는 것들을 바랄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 판단해서,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말씀하신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왜, 거기에 인간의 지식이 들어가고, 인간의 경험이 들어가야만 합니까? 그런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우리는 믿음으로,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순종할 때, 우리의 믿음은 바라는 것을 현실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요단강을 건너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우리를 두렵게 하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아무리 요단강이 넘치도록 불어났다 할지라도, 우리 눈앞에서, 요단강물이 갈라지는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너희는 여리고 성을 돌라. 그리하면 무너지리라”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돌고, 또 돌아야 합니다. 도저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커다란 문제들이 우리의 나아갈 길을 가로 막고, 방해한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순종하면, 우리 눈앞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너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라”라고 말씀하시면, 아무리 우리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이 어둡고 캄캄하더라도, 오직 믿음으로 전진하면, 우리 눈앞에 축복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땅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반드시, 그 약속의 땅, 축복의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과거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베드로의 하나님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믿는 것이요, 베드로가 만났던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라고 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분이 아닙니다. 지나간 역사 속에 등장하여, 큰 활약을 펼쳤던 영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과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가 믿고 바라는 대로,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절 말씀입니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이 말씀을 쉬운 말로 하면, “옛 믿음의 사람들도,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라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증거를 얻었다”라는 말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다”라는 말입니다.
4절을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고 하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5절을 보면,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라고 하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에게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6절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므로,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겉모습이 아무리 초라하다 할지라도, 우리의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우리 속에 보배로운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많이 배우고, 학식이 좋은 사람을 칭찬하셨습니까? 아니면, 믿음이 좋은 사람을 칭찬하셨습니까?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았습니까?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그곳에 사는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와,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말하며, 중풍병으로 고생하는 자기의 하인을 고쳐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라고 말씀하시자,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말을 듣고서, 놀라셨습니다. 그의 믿음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인정하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를 기뻐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을 보면,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나와,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흉악한 귀신에 사로잡혀 있는 자기의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대답하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에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네 믿음이 크도다”라는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 믿음으로, 흉악한 귀신 들렸던 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성령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지금 당장은 우리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반드시, 우리의 꿈과 소망대로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계속 읽어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믿음으로 에녹은”, “믿음으로 노아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믿음으로 이삭은”, “믿음으로 야곱은”, “믿음으로 요셉은”,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그리고, 39절을 보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과 같은 믿음의 조상들처럼,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날마다, 힘쓰고 애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방주를 만들 수 있고, 홍해를 건널 수 있고, 광야 생활을 견딜 수 있고, 요단강을 건널 수 있고, 여리고 성을 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다 보면,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고, 인간의 경험으로는 설명되어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가 나의 말을 이해하느냐”라고 묻지 않고, “네가 나의 말을 믿느냐”라고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해를 구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12명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보냈습니다. 그 12명의 정탐군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의 구석구석을 자세하게 살펴보았습니다.
돌아온 뒤, 10명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우리는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1,33)라고 말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 13:30)라고 말했습니다.
12명의 정탐꾼은 똑같은 곳을 정탐했습니다. 똑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결론은 달랐습니다. 똑같은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눈으로 보고, 믿음으로 고백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믿음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환경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할 때,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바라는 것들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꿈이 단지 바랄 수 없는 꿈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이 우리의 현실의 삶 속에서,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바랄 수 없는 희망 사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우리의 꿈이 단지 꿈으로만 남아 있고, 우리의 소망이, 단지, 우리의 희망 사항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꿈과 소망을 현실에서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합니다.
꿈과 소망을 품고, 달려가는 우리를 격려하고, 그 꿈과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의 꿈과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하나님이 주시고자 예비해 놓으신 복을 풍성하게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오직 주님을 바라봅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주여, 주님의 강한 손으로, 연약한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에게 큰 믿음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