妺喜(말희)
桀王(걸왕)은
중국 夏(하)나라의 악명 높은
폭군 중 한 명이다.
걸왕 때
궁중에는 여악과 여 자 배우가
3만이나 되었다.
이들과 잔치를 벌이면
풍악소리가 어찌나 요란했던지 새벽부터 궁궐
문 앞이 시끄러웠음은 물론
큰 삼거리
밖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
였다고 한다.
하나라 걸왕과
말희의 인연은 걸왕이 有施氏(유시씨)의 소국을
정벌하면서 시작되었다.
힘이 약 했던
유시씨의 나라에서는 많은 진상품과 함께
‘말희’라는 미녀를 바쳤다.
걸왕은
말희를 매우 총애하여 그녀를 위해 옥으로 장식한 집(瓊室;
경실)과 상아로 장식한 회랑인 象廊(상랑),
보석과 상아로
장식한 瑤台(요대)라는 궁궐을 짓고 옥 침대(玉床; 옥상)
를 만들어 밤마다 향락에 빠져들었다.
고기로
산을 만들고 육포로 숲을 조성했으며 배가
다 닐 수 있는 술 연못을 만들고
땅을
파서 夜宮(야궁)을 만들어 남녀를
섞어 놓았다.
잔치와
놀이가 매일 계속되자 하나라는
점점 기울어갔다.
이를 보다못한
신하 關龍逢(관용봉)이 충 심으로
간했지만
그의 목을 베었고, 伊尹(이윤)이 목숨을 걸고
간하였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후 목숨의 위협을 느낀
이윤은 殷(은)나라로 도망쳐서 湯王(탕왕)을
받들어 섬겼다.
탕왕은
걸왕의 향락으로 하나라가 기울어간다는 이윤의 말을
듣고는 이윤을 앞세워 夏(하)나라로 쳐들어왔다.
과거 걸왕은
탕왕을 구금했다가 석방해 준 일이
있었다.
그래서
탕왕이 쳐들어오자 걸왕은 그를 죽이지 않고
풀어 준 것을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鳴條(명조)의 싸움에서 탕왕에게 크게 패하고 말희와 함께
보석을 챙겨서 배를 타고 南巢(남소)로 도망갔다.
그러나
추격해온 탕의 병사들에 사로잡혀
추방되었다.
시중드는 사 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사치가 몸에 배어 있던 걸왕과
말희는 굶어도 스스로 일할 줄 몰랐 다.
결국
두 사람은 臥牛山(와우산)에서
굶어죽게 된다.
이렇게
470여 년을 이어오던 하왕조 는
멸망했다.
[출처] 妺喜(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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