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변 서 (1)
사 건 2004헌나 1 대통령(노무현) 탄핵
청 구 인 국회 소추위원 국회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피청구인 대통령
위 사건에 관하여 피청구인의 대리인은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I. 서론 - 이 사건에 임하는 대리인단의 입장
"탄핵 만세, …."
2004. 3. 12. 11시 55분 박관용 국회의장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의
가결을 선포하는 순간, 투표에 참가한 국회의원들은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였습
니다. 탄핵소추를 주도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탄핵안 가결을 자신들의 "구국의 결단"으로 "헌정질서를 수호"하고, "의회주의와 민주주의의 승리"를 낳았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제286회 국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의결한 탄핵소추의결서에 의하면, 노무
현 대통령이 "민주헌정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초헌법적이고 초법적인 독재자적 태도를 보이고…(중략)…본인과 측근들의 극심한 권력형 부정부패로 인해 국정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국가적 위기상황을 초래하였고…(중략)…국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러 국민을 극도의 불행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에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탄핵사유 없는 탄핵소추를 가결함으로써 헌법과 법률을 유린"(대한변호사협회, 2004. 3. 12.자 성명서).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가 비판한 것과 같이 이번 탄핵소추 의결에 대한 국민여론은 절대적으로 부정적입니다. 수많은 언론기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거의 예외없이 70% 이상의 국민이 탄핵소추 의결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국민에 대한 총칼없는 쿠데타"라는 시민단체의 규정과 더불어 수많은 시민들이 연일 거리로 나와 촛불시위를 통해 행동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드러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한민국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회에 의해 탄핵소추를 당한 상황 자체가 커다란 위기입니다. 국가의 원수이자 대표이고, 정부의 수반인 대통령(헌법 제66조)의 권한행사가 정지된 사태, 그로 인하여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사태 역시 '민주 헌정질서'의 위기입니다. 그러나,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대통령을 "민주헌정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초헌법적이고 초법적인 독재자"로 규정하여 탄핵소추를 의결했는데, 이에 대해 전 국민의 3분의 2 이상이 반대하면서 오히려 국회를 비판하며 행동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말로 진정으로 심각하고 본질적인 위기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국회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그렇다는 어느 국회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국민의 의사와 국회의 의사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현재 상황이 헌정질서의 중대한 위기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 국민이 얼마나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여야 했는지, 현행 헌법이 제정된 과정을 잠시만 돌이켜 보면 지금의 위기상황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 느끼게 됩니다.
우리 국민은, 귀 재판소가 인정한 것과 같이 "헌법질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였고, 그로 인하여 우리의 민주주의가 장기간 후퇴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가 침해되었으며, 전 국민의 자유가 장기간 억압되는 등 국민에게 끼친 고통과 해악이 너무도 심대"하였던 제5공화국의 체제(헌법재판소 1996. 2. 16. 선고 96헌가2 결정)에 저항하여 마침내 민주적 기본질서를 회복해 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우리 국민들이 이제 탄핵소추결의서의 표현대로 "초헌법적이고 초법적인 독재자"를 옹호하며 정의로운 국회에 맞서고 있다는 말인가 하는 질문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탄핵 사건의 피청구인인 대통령의 대리인단은 "잘잘못을 떠
나 국민 여러분께 오늘과 같은 대결 국면에, 탄핵 정국에 이르게 된 것을 참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는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3월 12일)에 무거운 마음으로 함께 합니다. 국민 앞에 무한대의 책임을 져야 하는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대통령은 이와 같은 위기상황이 벌어진 것에 대해 국민들께 죄송하기 이루 말할 수 없으며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국민 앞에 올바르게 책임지기 위하여, 이번 국회의 탄핵소추가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정당한 것이었는지를 따지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에 있습니다.
이번 탄핵심판 절차가 가진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로서, 앞으로 헌법과 법률의 해석 및 제도의 운영에 대한 선례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헌법의 근본질서와 가치를 둘러싸고 국회와 국민의 의사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을 해결할 권한이 헌법재판소의 손에 넘어와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헌법 수호와 현실 정치의 모든 면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방향을 결정지을 것인 만큼, 그 역사적 의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의 탄핵소추는 국민의 대표이자 국가의 원수이고 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직
무수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헌법 제65조 제1항)하였다는 것을 이유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의 대리인단은 대립하는 한 쪽 당사자인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와 국가의 이익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이 사건에 접근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대리인단은 헌법수호의 사명을 띤 귀 재판소가 국민주권의 원리와 입
헌주의의 원칙에 따라, 주권자인 국민의 건전한 상식과 정의감에 토대를 두고 이 사건을 올바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대리인단은 먼저, 극단적인 정치적 언술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이 사건 자체는 물론 이 사건의 배경과 전개과정의 진실을 돌이켜 보는 한편 헌법재판 제도의 본질과 한계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편견을 넘어 진실을 마주 대할 마음가짐을 가질 때에만 이성적 토론이 가능할 것이며, 그것을 통해 민주적 기본질서의 근본 가치를 전제로 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늘의 불행한 사태가 우리나라의 민주 헌정질서를 더욱 공고
히 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대리인단의 믿음입니다. 그런 방향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중대한 역사적 국면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국민과 역사 앞에 책임을 다하는 길일 것입니다. (이를 분명히 하고자 본 대리인단은 이건 답변서를 통해서는 이번 탄핵소추의결의 헌법적, 정치적 의미를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탄핵소추권 행사의 절차적, 실체적 요건과 개별 소추사유의 탄핵사유해당여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답변은 별도의 답변서를 통해 서술하겠습니다.)
II. 탄핵심판제도의 헌법적 의미와 한계
1. 탄핵제도의 헌법적 의의
우리 헌법은 국민주권의 원리를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이 보장되는 국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국가권력의 정당성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모든 국가권력의 행사는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이 보장되도록 행사되어야 하는 본질적이며 내재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헌법은 국가권력을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통치기구에 분산시키고,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막는 권력분립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탄핵제도는 바로 권력분립과 통제를 통해 공권력에 의한 헌법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헌법보호 수단입니다.
탄핵제도는 견제와 균형의 장치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탄핵소추가
있으면 그 대상 공무원의 모든 권한행사가 즉시 정지되며, 탄핵결정이 이루어지면 그 직에서 파면될 뿐 아니라 무려 5년의 기간 동안 공무담임권을 제한당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다른 공무원에 대한 탄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예외적인 수단이며, 그 본질까지 달리합니다. 즉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는 대통령은 스스로 독립하여 입법부와 사법부에 대응하는 국가기관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공무원에 대한 탄핵과 달리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곧 권력분립의 한 축을 무너뜨리고 국가의 대표성을 정지상태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특히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심판권의 행사는 권력
분립의 원칙에 따른 견제와 균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대단히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헌법의 기본원리인 법치주의의 원리에 맞도록, 실체적 탄핵소추요건을 엄격히 갖추어야 함은 물론, 이를 결정하고 판단하는 절차적ㆍ형식적 측면도 헌법의 요청에 적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2. 탄핵제도의 위험성
강력한 기능을 가진 탄핵권이 특히 대통령을 상대로 하여 함부로 사용될 경우 헌법보호수단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여 국정을 혼란에 빠뜨릴 뿐 아니라 권력분립제도를 훼손하며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왜곡하여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할 염려가 있습니다.
탄핵소추의 무분별한 허용은, 탄핵소추 대상기관인 대통령이나 고위공직자를 회의 영향력 아래 두게 하여 권력분립의 원칙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의회의 비위를 거스르면 언제, 어떤 이유로 탄핵소추를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말미암아, 행정부와 사법부 구성원들은 의회로부터 독립하여 정책을 수립하여 집행하고 판결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킴으로써, 대통령 선거에서 표시된 국민의 총의를 사실상 변경ㆍ왜곡시켜버린다는 점에서 더욱 중대한 문제를 낳을 수 있습니다. 국가권력을 입법ㆍ행
정ㆍ사법으로 나누어 법치주의에 따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헌법
적 결단이 무시되고, 탄핵권을 보유한 입법부가 전횡할 수 있는 위험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험성은 탄핵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영국과 미국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근대적 탄핵제도를 처음 도입한 미국의 헌법제정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의회
의 탄핵은 의회의 당파와 민중선동의 도구로 전락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 것은 탄핵제도가 가진 위험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그 제도에 내재된 본질의 하나임을 보여줍니다.
현실적인 적용과정에서도 탄핵제도는 의회가 권력분립의 원리에 기초하여 행정
부와 사법부를 견제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하기보다는 갈등관계에 있는 세력 사이의 정치적 보복이나 당파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영국에서는 1788년 헤이팅스 사건과 1806년 메르빌경 사건을 거치면서, 탄핵제도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고 그 후 더 이상 이를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미국의 Andrew Johnson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건이나 Bill Clinton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건은 모두 의회나 야당이 정치적으로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하여 무리하게 제기하였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볼 때 탄핵제도는, 탄핵대상기관 뿐 아니라 탄핵소추기관
과 탄핵심판기관을 포함하여 어느 통치기구도 헌법이 지향하는 견제와 균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운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3. 한국의 탄핵제도
가. 탄핵사유와 그 해석
(1) 헌법의 탄핵사유
헌법은 탄핵사유에 관하여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만 간단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헌법 제65조 제1항). 헌법재판소법도 마찬가지입니다(헌법재판소법 제48조).
이 규정은 너무 모호하여 어떤 종류의 위법행위를 어떻게 범해야 탄핵할 수 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탄핵대상기관의 지위와 성격에 따라 탄핵사유가 다르게 해석ㆍ적용될 수 있는지도 분명하지 아니합니다.
이를 근거로 아주 사소한 위법만 있어도 대통령에 대하여 탄핵소추를 할 수 있으며 소추기관인 국회가 탄핵소추 의결을 하면, 당연히 탄핵결정이 내려져야 한다는 견해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래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헌법의 기본질서와 가치, 그리고 권력기관들을 둘러싼 제도적ㆍ현실적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적어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사유인 "헌법 또는 법률의 위배"는 "헌법적 가치와 기본질서를 침해하였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중대하고도 명백한 헌법과 법률 위배"로 한정하는 것이 옳습니다.
(2) 탄핵사유의 제한적 해석 근거
(가) 우리나라의 정부형태는 대통령이 의회로부터 독립하여 직무를 수행하고
의회에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대통령 중심제입니다. 헌법은 국회에 정부에 대한 불신임권을 주는 대신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하고 국민에 대한 책임정치를 실현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탄핵제도가 함부로 남용될 경우 헌법이 채택한 대통령제도의 근본이념을 무시하고 권력분립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선제는 헌정사상 최초로 국민적 합의에 따라 이루어진 제9차 개정(1987년 개정)의 핵심 내용으로 이는 국회 뿐 아니라 대통령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아 국민의 대표기관으로 삼겠다는 헌법적 결단이었습니다. 국민 대표성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다수당 총수의 자격으로 임명되는 영국 수상이나, 간접선거로 선출되는 미국 대통령과 큰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 탄핵소추권을 국회에 준 것은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통령 역시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어 일정한 임기가 보장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대통령은 대표성이라는 측면에서 국회와 동등하거나 더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은 국가원수인 동시에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막중하고
도 광범위한 권한과 의무를 수행합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직무권한을 정지당하거나 파면될 경우 국정의 심각한 공백을 피할 수 없으며, 그 자체만으로도 국가적 혼란을 초래할 염려가 있습니다.
헌법이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한 재직 중에 형사상 소추
를 받지 않게 하고, 다른 고위직 공무원보다 훨씬 더 가중된 결의를 거쳐야만 탄핵소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통령의 신분을 보장하는 것은 이 같은 심각한 국정공백과 국가혼란을 피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국민이 직접선거로 위임한 대통령의 권
한을 즉시 박탈하지 아니하면 안될 만큼 중대하고도 심각한 경우가 아니면 안됩니다.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임면하겠다는 헌법적 결단에 예외를 인정할 만큼 중대하고도 심각한 사유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사소한 위법이나 정치적 사안을 이유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국회가 임기 중에 임의로 교체할 수 있게 한다면, 이는 국민주권의 원리와 이에 기초한 대통령 직선제를 파괴하는 셈이 되어 허용될 수 없습니다.
(나)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자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막강한 권한을 갖고
국정 전반에 걸쳐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과 집행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은 법률위반 혹은 정책실패의 위험에 노출되게 됩니다.
반면 탄핵소추를 당하면, 파면 이외의 다른 경미한 제재조치를 받을 가능성
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으며, 일단 탄핵이 되고 나면 탄핵결정을 받은 날부터 5년 동안 공무담임권이 제한되고, 전직대통령으로서 예우를 받을 수 없게 되는 등 엄청난 불이익이 따르게 됩니다.
이상과 같은 점들을 종합하여 볼 때,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위와 같은 불이
익을 주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중대하고도 명백한 위법행위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인정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다) 헌법은 국회가 탄핵소추의 결의를 하는 즉시 대통령의 권한행사를 정지
시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종적인 탄핵결정이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직무가 정지되는 미국이나 원칙적으로 직무가 정지되지 않고 예외적으로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는 독일과 다른 점입니다. 진정으로 대통령을 탄핵하지 아니하면 안될 만큼 중대하고도 명백한 위헌ㆍ위법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하여 최종판단이 내려지기 전이라도, 국회의 의결만 있으면 언제든지 대통령을 정치적 식물인간의 상태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탄핵소추의 효과로 인하여 대통령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정당이 탄핵소추의 요건을 넘는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있을 경우, 탄핵제도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유혹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탄핵소추에 대한 협박의 단계이건 실제로 탄핵소추 의결에 이르는 단계이건, 이로 말미암아 필요이상의 정치적 분쟁이 정치권과 국민들 사이에 초래되어 불안정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이 사건 탄핵소추 의결 후 정치권 및 국민들 사이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와 대립반목을 통해 우리는 이와 같은 문제점을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탄핵사유의 존재는 탄핵심판시 뿐만 아니라, 탄핵소추시부터 엄격히 요구되어야 하며, 이를 지키는 것은 탄핵소추권한을 가진 국회의 헌법적 의무라고 하겠습니다.
(3) 소 결
이상과 같은 점들에 비추어 볼 때, 헌법상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인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때'는 모든 위헌, 위법행위를 포괄하는 것이 아니며, 권력분립제도의 원칙 및 국민주권의 원리에 예외를 인정하고, 국가원수 및 행정부 수반의 부재에 따른 국정공백을 감수하며, 나아가 대통령 개인에게 막대한 불이익을 주어야 할 만큼 중대하고도 명백한 위헌·위법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위법의 정도가 헌법의 기본질서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고 명백하여야 하며, 위반의 결과가 헌법의 가치와 기본질서를 침해하여 공직 유지를 도저히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4) 국회의 헌법관행
실제로 국회 역시 탄핵제도를 운영해 오는 과정에서 헌법 또는 법률의 위배
라는 요건을 헌법 또는 법률의 중대하고 명백한 위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관행을 형성해 왔습니다. 국회는 1985. 10. 18. 대법원장이 부당한 인사권 행사를 통해 판사의 독립성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당시 대법원장에 대해 제기된 탄핵소추안을 법사위에 회부하자는 제안에 대하여 '탄핵의 사유가 되는 위법행위는 중대하고도 명백한 위법행위라야 하며, 탄핵의 요건을 엄격·신중하게 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부결시킨 바 있습니다. 1994. 12. 15. 12·12 군사반란 행위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한 당시 검찰총장에 대해 탄핵소추가 발의되었는데 당시 발의서는 위법행위의 정도가 중대하고 명백하므로 헌법 제65조, 국회법 제11장, 검찰청법 제37조 소정의 탄핵사유에 해당한다고 한 바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 탄핵소추를 한 국회 스스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헌법의 기본질서와 가치를 무너뜨릴 정도로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이 있을 경우에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탄핵소추의결서는 대통령이 "민주헌정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초헌법적이고 초법적인 독재자적 태도를 보이고 극심한 권력형 부정부패로 인해 국정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국가적 위기상황을 초래하였고…(중략)…국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러 국민을 극도의 불행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을 탄핵사유로 내세움으로써, 일반적인 위헌·위법행위가 모두 탄핵사유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헌정의 근간을 침해하는 정도의 심각한 위법행위만이 대통령의 탄핵사유가 된다는 법관념을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의회의 탄핵소추와 민주적 정당성
(1) 의회주의의 전제조건과 탄핵소추권
앞서 살펴본 것처럼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헌법이 정하고 있는 권력분립의 원칙 및 국민주권의 원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심각하고도 중대한 조치입니다. 그런데 다른 권력통제 장치들과 달리,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권에 대하여 자신을 방어할 만한 균형적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아니합니다. 그런 점에서 무기평등의 원칙에 대한 중대한 예외이기도 합니다.
우리 헌법이 이와 같이 막강한 탄핵소추의 권한을 국회에 부여한 것은, 국회
가 국민의 의사를 가장 잘 반영하는 헌법기관, 즉 국민주권의 원리를 수호할 수 있는 최선의 기관이라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4년마다 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국회는 국민의 뜻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가지고 있고,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를 가진 국민들로부터 선출된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개개인의 헌법적 양심과 이성을 통해, 공개와 토론의 원칙에 따라 국가대사를 숙의하는 과정에서, 다수결로 결정을 할 때에 국민들의 의사를 가장 잘 반영하는 최선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가정 아래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국회로 하여금 국민들을 대변케 하여, 헌법을 침해하는 권력기관을 통제하겠다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의회주의의 원리와 전제가 지켜질 때, 국회의 탄핵소추 결의는 비
로소 헌법상 정당한 권한 행사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2) 다수결 원리의 전제 - 공개와 토론의 원칙
다른 모든 회의체에서와 마찬가지로 국회의 의사결정은 다수결에 의하여 이
루어집니다.
그러나 다수결 원리가 정당성을 얻기 위하여는 의회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공개와 토론의 원칙'이 지켜져야 합니다. '다수결의 원리'는 소수에게 토론에 참가하여 다수의 견해를 비판하고 반대의견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다수와 소수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할 때에만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입니다.
국회법 제93조가 "안건심의를 함에 있어서 그 안건을 심사한 위원장의 심사보고를 듣고 질의 토론을 거쳐 표결한다."고 규정한 것은 단순한 훈시적 규정이 아니라 의회제도의 본질인 공개와 토론의 원리를 법률로 확인하고 의회 내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3)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투표와 복수정당제
공개와 토론, 그리고 그에 따른 다수결이 의미를 가지려면, 토론과 투표에 참가하는 자들의 자유로운 의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하여야 합니다(국회법 제114조의2). 무기명 투표로 표결되는 탄핵소추안(동법 제130조 제2항)은 국회의원들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과 표현을 보장함으로써 국회의원들이 정당 지도부의 거수기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 의회의 본질적 기능을 확보하는 장치입니다.
(4) 의회주의의 원칙에 반한 탄핵소추 의결의 의미
위와 같은 의회주의의 근본원칙, 즉 국회를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인정하기
위한 전제조건들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탄핵소추의 권한을 국회에 부여한 헌법적 근거도 무너지게 됩니다.
탄핵심판제도가 국회와 대통령 그리고 헌법재판소라는 3자 간의 권력균형을
통해 국민주권과 법치주의의 원리를 지키는 제도적 장치라는 점에서,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 지켜야 할 본분을 망각한 채 탄핵소추를 의결하였다면 이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고려하여야하는 하나의 절차적 위법 요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회주의의 보장에 반하는 절차는 그 탄핵심판의 근거, 즉 국민이 대통령의 탄핵을 원한다는 국민주권적 기초를 송두리째 제거해 버린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따라서 탄핵사유의 존재여부를 떠나 탄핵심판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사유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다. 헌법재판소에 의한 사법적 통제
우리 헌법은 탄핵소추와 탄핵심판의 권능을 분리하여, 후자를 국회가 아닌
헌법재판소에 전속시키고 있습니다.
탄핵소추와 심판의 권능을 두 개의 헌법기관에 나누어주었다는 것은 각각의
절차가 별개로 독립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헌법적 의지의 표현입니다. 정치적 대의기관인 국회로 하여금 탄핵절차 개시여부의 필요성에 관하여 판단케 하고, 사법적 헌법수호기관인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탄핵사유의 존부 및 탄핵소추의 헌법 적합성을 심사케 하여 이중으로 통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헌법재판소는 탄핵소추대상자에게 탄핵사유가 있는가를 심사하
여 판단하기도 해야 하지만, 탄핵소추기관의 절차가 헌법에 합치하는가를 엄밀히 심사함으로써 헌법을 보호하는 중요한 국가작용인 탄핵소추절차 역시 헌법의 원칙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탄핵사유의 존재여부 및 탄핵소추 절차의 적법성을 심사하는 헌법재판소의 기능은 정치적 기능이 아니라 사법적 기능이므로 엄격한 법률적ㆍ규범적 판단과정을 통해 행사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헌법재판소가 자신의 사법적 성격에 내재된 한계를 넘어 정치적 판단자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면, 탄핵심판의 권한을 헌법재판소에 전속시킨 헌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며, 헌법재판소의 존재근거를 부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헌법보호장치의 하나인 탄핵제도가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헌법의 기본질서와 가치를 유지하는 길이라 하겠습니다.
III. 이 사건 탄핵소추의 위헌성
1. 서 설
이 사건 탄핵소추는 국회의원의 3분의 2를 넘는 압도적 다수에 의하여 의결되었
습니다. 혹자는 이를 근거로 이 사건 탄핵소추가 참다운 의회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이 사건 탄핵소추가 헌법원리의 정당한 구현이었는지, 그와 반대로 국민주권주의 등 헌법원리를 침해한 위헌적인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 대통령에게 탄핵사유가 있는지를 판단하기에 앞서 검토해야 할 문제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 탄핵소추는 ① 실질적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한 국회가 임기만료를 목전에 두고, ② 국민이 위임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 당리당략과 감정만을 앞세워 한 것이며, ③ 탄핵을 할 정도의 실체적 사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④ 신중한 조사와 숙고, 민주적 토론, 국민에 대한 설득과정을 거치지 않고 졸속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한 절차상 하자 또는 요건의 흠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회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고 국민주권의 원리를 뒤흔드는 것으로 헌법의 기본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헌법을 보호하기 위한 절차를 이용하여 계속 진행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2. 제16대 국회의 민주적 정당성 문제
가. 민주적 정당성의 의미
국회는 국민의 대표로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소추하는 것은 권력분립의 실현으로 정당하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국회가 국민에 의하여 선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시종일관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국회가 국가와 국민의 이익보다 당리당략을 앞세워 국민의 압도적 비판과 불신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다고 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른바 '민주적 정당성'은 국회를 비롯한 통치권의 '창설' 뿐만 아니라 '존속'을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통치권에 관한 민주적 정당성의 요청이란 통치권의 창설은 물론이고, 국가 내에서 행사되는 모든 권능이 언제나 국민의 동의(Konsens)에 바탕을 두어야 할 뿐 아니라, 국민의 동의에 귀착될 수 없는 통치권 행사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원리입니다.
탄핵소추를 한 제16대 국회는 4년 전 총선거로 선출되어 이제 그 임기를 거의 다 마친 반면 1년 전에 선거로 뽑힌 대통령은 아직 4년 가량의 임기를 남겨 두고 있으므로 제16대 국회와 대통령이 가진 민주적 정당성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의회와 대통령의 임기가 다른 경우, 두 개의 국민적 정당성이 병존하는 헌정체제하에 그 권력의 정당성의 우위는 국민이 최후에 한 선택에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대통령이 국회보다 우월한 국민적 정당성을 가진 상황에서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소추한 경우 더욱 엄격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국민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 탄핵소추를 의결한 16대 국회의 민주적 정당성
임기가 만료되어 가는 제16대 국회는 '차떼기'로 상징되는 불법 대선자금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부정부패로 얼룩져 국민의 지탄을 받아 왔고 당리당략만을 앞세운 정치행태로 인하여 국민의 신임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시민단체의 공천반대자 명단에 오른 현역 국회의원이 무려 109명에 이르며, 이번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의원 중에도 비리 또는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었거나 수사를 받는 의원이 17명이나 되고, 자의 또는 타의로 출마가 확정되지 않은 의원도 38명에 이른다는 사실이 제16대 국회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16대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을 정도로 민주적 정당
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국민여론에 반하는 탄핵소추 의결의 문제
탄핵소추의 발의를 앞둔 시점에 국민의 압도적 다수는 탄핵에 반대하였으며, 의
결 이후에는 반대하는 국민이 더욱 늘어났습니다(별표 참조).
이처럼 국민의 압도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탄핵소추가 과연 정당성을 가
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국회는 국민의 현실적 의사에 구속되지 않으며, 국회와 국민의
관계는 기속위임이 아닌 자유위임관계라는 이유로, 압도적 반대여론에도 불구하
고 탄핵소추 의결은 정당하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국회에 대한 위임이 자유위임이라고 하더라도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헌법 제46조 제2항은 국회의원이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즉 자유위임의 의미는 선거인이나 정당의 지시에도 구속되지 아니하며, 국가의 이익을 우선한 양심에 따라 그 직무를 집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대의기관이 국민의 경험적 의사에 구속되지 않고, 국민의 추정적 의사에 따르게 한 것은 국민의 의사가 비이성적이거나 바르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때로 국가 이익과 배치될 수도 있으며, 국민의 의사가 특정 집단이나 지역의 이익만을 앞세운 부분의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그와 반대의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국민대표론의 이름을 빌려 국민의 의사와 동떨어진 독단적 권력행사를 합리화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겠습니다.
헌법재판소 역시 "국민주권론과 국민대표제를 정치적 구호용으로만 인식하고 이용해서는 안되는 시점에 왔고 근대생활의 지표가 되는 헌법규범이 지켜지지 않을 때 오는 그 저항과 비판을 무엇으로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제도적으로 확립하여야 할 역사적 단계에 왔다…(중략)…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헌법체제하에서의 국민주권론은 실질적인 국민주권론이 되지 못하고 형식적인 국민주권론을 합리화하는 데 공헌하였으며, 국민대표론은 민의를 실제로 반영하는 현대적 대표론이 되지 못하고 민의와 동떨어진 권력의 자의적, 독단적 행사만을 합리화하는 전근대적 대표론에 머무르고 있는 점이 적지 않았다…(중략)…헌법의 해석은 헌법이 담고 추구하는 이상과 이념에 따른 역사적, 사회적 요구를 올바르게 수용하여 헌법적 방향을 제시하는 헌법의 창조적 기능을 수행하며 국민적 욕구와 의식에 맞는 실질적 국민주권의 실현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헌법의 해석과 헌법의 적용이 우리 헌법이 지향하고 추구하는 방향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 때에는 헌법적용의 방향제시와 헌법적 지도로써 정치적 불안과 사회적 혼란을 막는 가치관을 설정하여야 한다…(중략)…국민에게 주권의 보유만을 인정하고 그 행사를 부정하는 형식적인 정치용 국민주권론은 이념적 통일체로서의 추상적 전체국민을 주권자로 보려는 자연법적 이념성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념만을 명분상 주장하는 것은 허구적 이데올로기 내지 환상으로 이용되는 데 그칠 수 있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주권의 보유와 행사를 일치시키는 방향으로 국민주권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것이 되도록 권력과 인권, 주권과 자유의 필연적 상관관계에 대한 종합적인 결론에 부합하는 타당한 헌법해석을 하여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겠다"라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1989. 9. 8. 88헌가6 결정).
한편 대의제도는 국민의 신임을 전제로 한 책임정치의 실현을 본질로 삼고 있습
니다. 그런데 불과 한달 뒤에 있을 선거에서 국민에게 책임과 신임을 물어야 할 국회가 불과 1년 전에 선출되어 아직 4년의 임기를 앞둔 대통령을 탄핵하여 직무집행을 정지한 것은 도저히 책임정치의 실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대의제의 현대적 실현형태는 국민의 경험적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고, 이를 국정에 수용하기 위한 여러 가지 통로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에 하나 현재 국민의 경험적 의사에 다소의 오류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회가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려면 막연히 국민을 비난해서는 안되며 국회의 탄핵소추가 정당하고 필요하다는 점에 관하여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여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불과 1년 전에 이루어진 대통령 선거에 나타난 국민의 주권행사 결과를
뒤집으려 하면서 민주적 정당성을 얻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건 탄핵소추 의결의 위헌성을 증명한다고 할 것입니다.
4. 탄핵소추 이유의 부존재
가. 탄핵소추이유에 대한 전체적 논평
탄핵소추의결서는 대통령에 대해 "민주헌정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초헌법적이고 초법적인 독재자적 태도를 보이고…(중략)…본인과 측근들의 극심한 권력형 부정부패로 인해 국정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국가적 위기상황을 초래하였고…(중략)…국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러 국민을 극도의 불행에 빠뜨리고 있"다는 전체적인 평가를 한 다음 구체적인 이유를 크게 세 개의 항목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의결서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법적 평가 하나하나에 대하여는 별도의 서면을 통하여 상세히 반박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탄핵소추의결서의 전반적인 문제점만을 지적해 두는 데 그치고자 합니다.
첫째, 왜곡되었거나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사실, 증명되지 않았거나 아직 확
인된 바 없는 사실을 이미 확인된 기정사실인 것처럼 단정하여 탄핵사유로 삼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04년 2월 18일 경인지역 6개 언론사와 가진 합동회견에서 대통령이 한 발언[탄핵사유 첫째, (가)]에 대해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이하 '선거법')위반이라고 '결정'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결서는 이를 기정사실로 제시한 다음 이에 대한 대통령의 견해 표명을 "헌법파괴적 행위"라고 단정하는 논리적 비약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또 열린우리당의 총선전략문건[탄핵사유 첫째, (다)]의 경우 대통령은 그 문건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의 조직적 선거개입이 확인"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탄핵사유의 두 번째 항목인 이른바 '측근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검찰은 물론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가 장기간에 걸쳐 철저히 이루어지고 있으나 대통령이 그들의 범죄에 가담하였다는 사실은 확인된 바 없습니다. 또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에 일체 개입하거나 지시한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의결서는 대통령이 '측근' 범죄의 '공범'이며 "검찰과 국민을 협박하고"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왔"다고 자의적으로 재단하고 있습니다.
둘째, 의결서에 기재된 내용이 모두 진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헌법의 탄핵요
건에 해당하지 않는 내용을 다수 제시하여 대통령에 대한 감정적 비난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둘째 탄핵사유인 '측근비리'의 상당수는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의 일들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그 직무수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헌법 제65조 제1항)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셋째 탄핵사유인 이른바 '국정파탄'의 내용들 역시, 많은 부분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한 평가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이지만, 사실이라 가정하더라도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에 해당하여 그 자체 탄핵사유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 탄핵사유로 제시한 행위 자체는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행위가 이루
어진 전반적인 맥락을 거두절미하거나 상황을 왜곡 과장하여 원래 취지와 정반대로 의미를 단정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예컨대, 첫째 탄핵사유인 이른바 '선거법 위반' 행위라는 것의 상당수는 기자회견 등에서 나온 질문에 대해 법을 위반하지 않겠다는 전제아래 자신의 정치적 선호도나 희망을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적극적으로 선거법에 위반되는 방법을 동원하여 특정 정당을 돕겠다는 뜻으로 한 것처럼 의미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넷째, 법률 조항과 법률 개념 혹은 법률 개념처럼 혼동될 수 있는 용어를 마구 섞어 사용함으로써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것이 사실인 것처럼 오도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탄핵사유와 전혀 무관하거나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별다른 법적 효과가 없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견해 표명에 대해 "공식제재조치를 받"았다거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이라고 표현하거나, 단순한 정치적 의견 표명을 "국민을 협박"하는 행위라거나 "헌법파괴적 행위", "국헌과 국법 자체를 부인"하는 행위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책집행의 결과와 원인에 대해 일방적으로 재단한 다음 그것이 위반한 구체적 법조항을 제시하지 않고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국가에 의한 기본권 보장의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10조를 위배하고 헌법 제69조에 명시된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의 성실한 수행' 의무를 방기"하였다고 함으로써 추상적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정치적 가치판단이 서로 달라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안과 헌법 및 법률에 위반하는 행위를 구별하지 못한 채 혼동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한 명의 국민이자 정치인으로서 당연히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발언들에 대하여 "법불복종 운동을 조장한 국가문란 행위", "부정선거운동 고무", "헌법파괴적 행위", "국헌과 국법 자체를 부인", "다른 헌법기관에 대한 경시", "법치주의와 삼권분립 원칙을 부정하는 초헌법적 행동" 등으로 규정한 것이 하나의 보기라면, 예컨대, 고영구 국정원장의 임명은 헌법이 보장한 정당한 권한 행사임에도 마치 헌법을 파괴하는 행위인 것처럼 비난하면서 "법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의 행보요 민주주의와 민주헌정의 존립자체를 뒤흔드는 위험천만한 헌법파괴 행동"이라고 과장된 수사를 동원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탄핵소추 사유를 입증하는 "증거 기타 조사상 참고자료"의 문제입니
다. 이 중에 국가기관의 자료라고 할 수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공문과 국회 속기록, 검찰의 수사결과 브리핑 조차도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탄핵사유를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대부분의 탄핵사유에 관한 "증거 기타 조사상 참고자료"는 신문기사뿐입니다. 진실여부를 떠나, 신문 기사 몇 장을 주된 증거로 삼아, 아무런 추가 조사도 하지 않은 채 일국의 대통령을 탄핵소추하여 그 직무집행을 정지시키는 것이 과연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인지, 국민의 건전한 법감정과 상식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곱째, 의결서의 내용과 문장은 이 탄핵소추가 감정적 적대감을 기반으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기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근거가 미약한 사실을 토대로 한 과도한 법적 규정과 의미 부여, "최소한의 도덕의식과 준법정신 결여"와 같은 비법적인 표현들은 물론, 불법 정치자금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검찰이 이른바 '살아있는 권력'의 권력형 부패사건을 파헤칠 수 없다는 것은 불문가지일 것입니다"라고 하여 탄핵사유로 내세운 사실관계가 주관적 추측에 의한 것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점, 그리고 "검찰수사에 대한 노대통령의 간섭과 방해는 결코 정치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수준에 달했습니다"라거나 탄핵요건에 대한 법적 판단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노대통령의 사과거부와 정계은퇴 공약 위반을 탄핵소추의 주된 이유로 제시하는 점 등이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여덟째,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앞에서 본 바를 통해 드러나는 국회의 부정적 헌법 의식입니다. 국정원장의 임명이나 법률안 거부권의 행사와 같이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으로서의 정당한 권한 또는 기본권의 행사를 헌법 파괴의 범죄라도 되는 것처럼 극단적인 수사를 동원하여 몰아 부치는 것이 바로 그런 보기입니다.
나. 이른바 '선거법 위반'의 문제
(1) '선거법 위반' 문제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문서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이른바 '측근비리'와 '국정파탄'을 명분으로 한 탄핵사유
들은 대통령 취임 전의 일이거나 증명된 바 없는 사실 또는 정치적 논쟁의 여지는 있으나 법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정책집행 결과에 대한 평가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 자체 헌법이 정한 탄핵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합니다. 따라서 첫째 탄핵사유인 '선거법 위반'이 탄핵사유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선거법 위반이라고 '결정'했다는 점을 그 논리적 출발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 문제에 관하여만 지적해 두고자 합니다.
우선 이 발언은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기자회견에서 기자가 한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과정에서 한 것입니다. 더구나 대통령은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라고 하여 구체적인 법률을 위반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명백히 하는 가운데 열린우리당에 대한 정치적 선호를 표시하였습니다. 대통령은 정당 가입이 허용되는 정치적 공무원이라는 점에서 이런 정도의 일반적 견해 표시는 선거법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사실 선관위는 특정한 행위가 선거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확정적으로 판단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아니합니다. 최종적인 판단권을 가진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법을 위반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법원의 판결이라고 하여도 그 판결은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로 집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최종적일 뿐 그에 대해 내심으로 불복하는 당사자가 법원의 판결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선관위의 '결정'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견해를 표명하였다고 하여도, 법적으로 하등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일국의 대통령을 탄핵하는 중요한 국가문서가 이처럼 지극히 초보적인 법이론 조차 무시한 채 작성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개탄할 만 합니다.
(2)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위협
진정으로 문제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진상을 알고 보면 이 사유야 말로 존재하지도 않는 탄핵사유를 야당이 다른 헌법기관을 협박하여 억지로 얻어낸 것으로 이 사건 탄핵소추가 얼마나 위헌적인 수단과 방법을 통해 조작된 것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탄핵소추의결서에서 언급한 대로 2004년 2월 24일 대통령은 방송기자클럽 초청 특별회견에서 "열린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2월 26일 새천년민주당은 위 발언을 선거법 위반으로 단정하고 선관위에 조치를 요청하였습니다. 다음날인 2월 27일 민주당 조순형 대표는 "선관위원장이 엄격하게 할 자신이 없다면 선관위원장부터 탄핵에 착수해야 한다."고 위협하고 이어 국회 본회의에 유지담 선관위원장의 출석 요구안을 제출해 통과시켰습니다.
선관위는 3월 3일 전체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하였는데 조순형 대표는 다시 한번 선관위가 법적 수단을 총동원해 관권선거를 중단시키지 않는다면 선관위원장을 직무유기로 탄핵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3월 3일 선관위는 대통령에게 '대통령의 선거 중립의무 준수 요청'이라는 제
목의 공문을 발송하였는데 대통령이 수령한 공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위원회는 이에 대하여 3월 3일 전체회의에서 논의한바, 기자회견에서의 대통령님의 발언이 사전선거운동 금지규정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님께서는 선거에서의 중립의 의무를 가지는 공무원이심으로 앞으로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날인 3월 4일 선관위는 민주당에 '선거법위반행위 조치요청에 대한 회신'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발송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254조(선서운동기간위반죄)의 규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음. 그러나 대통령은 정치적 활동이 허용된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위 발언은 같은법 제9조(공무원의 중립의무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를 위반한 행위로서 앞으로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를 준수하여 줄 것을 2004. 3. 3. 대통령에게 요청하였음."
여기서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됩니다.
첫째, 선관위가 하나의 사안에 대해 명백히 서로 다른 내용의 문서를 대통령과 민주당에 보냈고 이것이 사실상 혼란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국가기관이 자신의 권한범위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어떤 판단을 할 때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명확하게 자신의 판단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둘째, 법적이든 정치적이든 선관위의 결정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 효
과는 당사자인 대통령에게 발송된 문서의 내용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받은 선관위의 문서에는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어떠한 기재도 없는 것은 물론 적극적으로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단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대통령님께서는 선거에서의 중립의 의무를 가지는 공무원이심으로 앞으로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라는 표현을 담고 있는바, 이는 누가 보아도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장래를 향한 권고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선관위 조차도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으므로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을 선거법 위반이라고 생각했을 리 없습니다.
셋째, 선관위가 정치적 갈등이 고조된 사안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서로
다른 문서를 쌍방에 따로 보내 혼란과 대립을 증폭시켰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일이 생긴 경위입니다. 선관위가 이처럼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문서를 보내 이중적으로 행동하게 된 것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민주당 대표인 조순형 의원이 선관위원장에 대한 탄핵을 위협하면서 국회 본회의 출석을 요구하는 등의 압력을 가한 것과 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여 관철한 야당이니 선관위원장에 대한 탄핵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고 선관위원장은 이러한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즉, 가장 중요한 탄핵사유로 제시되어 있는 '선거법 위반'의 핵심적인 내용조차 사실은 의회 다수를 장악한 야당 연합의 힘을 바탕으로 다른 헌법기관에 대한 위협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하나는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의사결정에 위법 부당하게 압력을 가하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함으로써 존재하지도 않는 탄핵사유를 억지로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태는 이 사건 탄핵소추가 내용상 근거가 없고 절차상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는 차원을 넘어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내용과 방법으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다. 이른바 '측근비리와 권력형 부정부패'의 문제
(1) 두번째 탄핵이유인 이른바 '측근비리'에 대해 대통령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주변인물들이 비리에 연루된 사실 자체를 부끄럽고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이 도덕적 책임을 벗으려 해서는 안된다고 느끼고 그런 사죄의 뜻을 국민에게 밝힌 바 있습니다.
탄핵소추의결서도 인용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주변인물들의 비리 소식을 듣
고 "눈앞이 캄캄했다"고 심정을 밝힌 바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재신임을 묻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와 같은 의사를 밝힌 것은 탄핵소추의결서가 주장하듯이
대통령 자신이 그 범죄에 가담하였기 때문이 아니며 "나라를 뒤흔들고 국민을 협박하"기 위한 것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하다고 느꼈던 것은 대통령과 그 주변인물들이 누구보다 높은 도덕성을 가지기를 기대하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주변인물들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책임을 국민 앞에 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도덕적 자각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여러 복잡한 문제들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은 채 재신임 문제를 거론한 것이 과연 정치적으로 올바른 일이었는가에 관하여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은 '재신임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뭔가 책임을 지고 재신임을 받지 않으면 국민의 열망인 정치개혁을 이루고자 하는 자신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없겠다는 마음으로 우선 국민 앞에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재신임을 묻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일 뿐입니다. 당시 대통령의 제안을 즉각 받아들이면서 '재신임 국민투표'로 몰아간 것은 사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었습니다. 그러나 국민 다수가 대통령을 재신임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내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돌연 태도를 바꾸어 재신임 국민투표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반대하기 시작했으며 그리고는 아예 대통령직에서 하야하는 방향으로 대통령을 몰아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탄핵소추의결서도 이 점에 관하여 대통령이 "자신의 정계은퇴 공약조차 무시하면서 하야하지 않고 버티기 때문에 절박한 심정으로 법적 절차에 따라 탄핵을 소추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라고 하여, 속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온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대통령은 누차 공언하였듯
이 자신이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것은 주권자로서 대통령을 뽑아 준 국민이지 야당들이 아닙니다. 더구나 자신이 저지르지 않았지만 주변인물들의 비리행위에 대해 국민에게 부끄럽게 생각하고 도덕적 책임을 지려는, 선의에서 나온 말의 뜻을 왜곡하여 고도의 책략을 가지고 저지른 범죄행위라도 한 것처럼 몰아 부치는 것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갖추어야 할 품위에도 어긋난다고 할 것입니다.
(2) '측근비리'에 대해 대통령은 이를 교사하거나 방조하는 등 가담한 일이
없습니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그러한 사실이 밝혀진 바도 없고, 국회가 이에 대해 조사한 바도 없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내용을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로 삼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야당의 주도하에 추진된 특별검사의 수사결과도 기다리지 않은 채 없는 사실을 기정사실인 양 일방적으로 재단하고 있을 뿐입니다.
(3) '측근비리'에 관한 두번째 탄핵사유는 명백히 탄핵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가담한 바 없는데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도덕적 책임은 별론으로
하고 다른 사람의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는 우리 헌법 제13조의 정신에도 반하는 것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측근비리는 대통령 취임 전의 일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탄핵요건에 해당하지도 않습니다.
(4) 더욱 중요한 것은 '측근비리'가 대통령이 검찰을 독립시키고, 정치부패에
대하여 성역없는 수사를 하게 하여 정치개혁의 길을 여는 과정에서 밝혀졌다는 사실입니다. 정치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은 온 국민의 열망입니다. 그러나 치밀하게 짜여진 부패의 구조와 유착의 카르텔은 같이 더러워지지 않은 자가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자리에 가지 못하도록 배척해 왔으며 그 자리에 올라간 자는 이미 더럽혀진 자신의 손발로 인하여 더 이상 개혁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온 것이 저간의 현실입니다. 그리하여 국민들은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허무주의에 빠져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자신의 가장 부끄러운 치부까지도 드러내겠다는 각오로 취임 후 검찰의 독립과 공정한 수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실이 밝혀졌고, 많은 부분에서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많은 음성적인 일들이 더 이상 자리를 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검찰과 정부, 그리고 대통령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 '측근비리'도 밝혀진 것입니다.
(5) 정치부패 척결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야당들이 어떻게 하였는가를
여기서 돌아보는 것은 단순히 그들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점을 바로 보아야만 이 사건 탄핵소추의 중요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야당은 검찰이 대통령의 측근비리를 밝힐 때에는 검찰을 부추기다가, 한나라당 대선자금을 수사하자, 검찰이 대통령의 꼭두각시가 되었다며 비판해 오고 있습니다. 아무런 근거없이 대통령이 검찰에 개입을 하거나 간섭하였다면서 비방하는 이 사건 탄핵소추의결서가 증거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측근비리 특검법'을 제정하여 검찰이 수사중인 사건을 빼앗아 특별검사에게 넘겨주는 사태를 벌였던 것입니다. 원래는 한나라당 자신에 대해 검찰 수사를 막으려고 했으나 국민 여론의 강력한 비판에 부딪쳐 대통령 측근비리만 특별검사가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6) 이처럼 야당이 탄핵소추사유로 삼고 있는 대통령 측근비리는 사실 대통령이 검찰을 독립시키고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얻은 소중한 성과입니다. 따라서 이를 빌미로 대통령을 탄핵하여 파면하려는 것은 검찰을 정치권력에 다시 예속시키고 부정부패를 밝히지 말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즉, 이 사건 탄핵소추는 측근의 비리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을 추궁하는 듯한 겉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부정부패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저지하려는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7) 우리가 이 답변서를 통하여 야당과 야당이 지배하는 제16대 국회가 사실
상 국민적 정당성을 상실하였으며, 대통령의 허물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국민만이 추궁할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원론을 되풀이하거나 탄핵소추의 상대방인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편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탄핵소추가 가진 본질, 즉 정치부패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고 정치개혁을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제기된, 위헌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한 합법적 형식의 도구라는 점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5. 탄핵소추 절차의 위헌성
가. 의회민주주의의 본질을 침해한 탄핵소추 의결
이 사건 탄핵소추 의결 과정은 어떠하였습니까?
국회법을 위반하여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지 않은 채 개의시간을 일방적으로 변경하였으며, 의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제안설명을 생략하고 질의와 토론을 전혀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한편에서는 의원들이 강제로 끌려나가고 절규하는 가운데, 반대편에서는 군사 작전을 펼치듯 일사천리로 표결을 강행하였습니다.
이처럼 이 사건 탄핵소추 의결과정은 의회민주주의의 요체로서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다수결의 원칙'과 '공개와 토론의 원칙' 그리고 국회법상의 제반 절차를 무시한 채 국회의원들의 안건심의권과 표결권을 침해하고 편파적으로 진행된 위법한 절차입니다.
특히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아무런 토론과 논의도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제16대 국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건 탄핵의결 과정은 소수에게 토론에 참가하여 다수의 견해를 비판하고 반대의견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지 않은 채 이루어졌기 때문에 의회주의의 본질을 위배한 것입니다. 더구나 국가 원수인 대통령의 권한정지로 이어지는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토론을 통한 의견개진과 설득을 통한 민주적 의사형성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 탄핵의결 절차 전반을 위헌적인 것으로 만들만큼 중대한 하자라고 보아야 합니다.
나. 다수당의 물리력에 의한 의결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복수정당제도는 다원사회에서 다양한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고, 정당을 통해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시키며, 권력행사의 정당성을 언제나 국민과 이어지게 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따라서 다수당과 소수당이 견제와 균형,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정치적 의사를 민주적으로 형성시켜야 할 뿐 아니라, 정당의 내부도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이 사건 탄핵소추의 과정은 어떠했습니까?
강제퇴거조치를 당한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이 눈물로 절규하거나 심지어 부상당하고 졸도하는 가운데 감표위원을 지정하면서도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배제하였습니다. 야당 의원들의 투표가 종료되자 일방적으로 투표 종료를 선포하여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투표할 의사가 있어도 할 수 없게 원천 봉쇄를 하였습니다. 국민의 뜻에 반하여 국가의 위기를 불러올 중차대한 절차를 진행하면서 국회의장은 누군가를 향하여 시종 일관 '자업자득'이라는 등의 냉소적이고 불공평한 언동을 하면서 야당 의원들의 뜻에 따라 회의를 진행하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의결 과정에서 투표의 기본원칙인 자유투표, 무기명·비밀
투표의 원칙이 공공연하게 무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의결 하루 전인 2004년 3월 11일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회에서는 "당론에 따르지 않고 탄핵안을 거부할 경우 출당 및 공천박탈 등 강경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정하여 탄핵소추 의결에 소극적인 소속의원들을 협박하고 탄핵소추에 찬성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그리고 의결하는 과정에서는 기표소에 커튼을 치지 않아 기표하는 의원들이 기표내용을 다 드러내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기 전에 기표 내역을 소속 정당 총무에게 보여주기까지 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국민의 다양한 견해와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복수정당 사이의
대화와 토론, 타협을 통한 다수결이라는 의회주의의 원칙을 침해하였을 뿐 아니라 국회의원의 표결권과 자유투표, 무기명·비밀투표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다. 최소한의 숙고과정도 거치지 않은 비이성적 절차
탄핵소추 의결이 이루어지면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즉시 정지되므로, 탄핵소추에 앞서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며, 신중한 숙고의 과정이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국회법이 법제사법위원회에 국정감사및조사에관한법률에 의한 조사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 탄핵소추의 과정은 어떠했습니까?
탄핵사유 중의 하나인 측근비리 문제에 관하여 야당이 무리하게 도입한 특별검사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를 기다려보지도 않고 탄핵소추의 절차를 밟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사건 탄핵소추의 절차는 충분한 조사, 신중한 숙고와 토론을 통한 의사형성과정을 전혀 밟지 않은 채 속전속결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과를 하면 탄핵을 하지 않고 사과를 하지 않으면 탄핵을 하겠다는 것이나 탄핵소추 이후에 다시 탄핵사유를 추가하겠다는 것, 탄핵소추안에 명백한 허위 사실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 등을 보면 이 사건 탄핵소추가 얼마나 졸속으로 처리되었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현행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자율권이 이런 방식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
하는 것을 용인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라. 최소한의 절차적 기본권 조차 인정하지 않은 절차
근로자의 해고절차는 물론 일반 공무원에 대한 징계절차에서도 당사자에게
변명 또는 항변의 기회를 부여하는 등 충분한 사실조사를 거친 후 해고 또는 징계사유가 증거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하고, 징계위원회 등에 의한 신중하고 진지한 심의와 의결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해고 또는 징계절차에 있어서 하자가 있으면 그 해고 또는 징계는 그 이유만으로 무효 또는 취소될 수 있습니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국회가 탄핵하여 직무를 정지시키는 경우에 요구되
는 절차적 정당성의 정도는 극히 높아야 합니다. 국가의 원수이며,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다는 현실과 그것이 동시에 대통령 개인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탄핵소추 의결 절차의 정당성은 다른 어떤 경우보다도 더욱 엄중하게 요구된다고 할 것입니다. 만일 사안을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하여 조사하게 하였다면 이 요청을 충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절차적 요건을 위반한 탄핵소추의결은 효력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지 않으면 헌법에 의하여 어느 누구보다도 더 보호를 받는 대통령
이 정작 일반 공무원만도 못한 절차에 의하여 그 직무를 정지당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그 결과는 한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주권의 원리를 부정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에 헌법보호의 관점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무엇엔가 쫒기기라도 하는 듯, 서둘러서 탄핵소추
의결을 하였는바, 진실이 무엇이든 어떻게 해서든지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보는 것이 최대의 목표인 듯 하였습니다. 그 위헌성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으며 우리 헌법질서와 어울릴 수 없습니다.
마. 의결 절차상 하자의 의미와 효과
이 사건 탄핵소추 의결은 절차에 중대하고도 명백한 위헌·위법성이 있어 그 형식적 요건조차 갖추지 못하였으며, 그러한 하자는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위헌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며, 결국 헌법의 기본가치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았으므로 당연히 무효라고 할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2항에 의하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는 형사소송
법의 규정이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우선하여 적용되는바, 탄핵소추의 적법성 여부는 탄핵심판청구 사건의 절차개시 요건으로서 형사소송법상 형식적 소송요건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이 무효인 경우에는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1호 '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인 때'에 준하여 형식판단으로 국회의 탄핵소추를 배척해야 할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도 이미 "법치주의의 원리상 모든 국가기관은 헌법과 법률에 기속
되므로 국회의 자율권도 이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용되나, 국회의 의사절차나 입법절차에 헌법이나 법률의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흠이 있는 때에는 자율권 또한 부정되어야 한다" 라고 하여 국회의 의사절차를 위반한 경우 의회의 자율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법리를 확인한 바 있습니다(헌법재판소 1997. 7. 16. 96헌라2 결정).
한편, 이러한 탄핵소추 의결 절차의 위헌적인 하자는 단순히 절차상의 하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결 내용의 부당성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이 사건 탄핵소추안에 적시된 탄핵사유가 정당한 탄핵사유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질의ㆍ토론, 법사위의 조사 절차 등 국회법에 규정된 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였으며, 소속 의원들을 협박하고 표결의 기본 원칙도 무시해 가면서까지 파행적으로 강행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목적이 대통령의 위헌 또는 위법행위를 막아 헌법질서를 보호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국회의 다수의석을 이용하여 정치적으로 보복을 가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줍니다.
Ⅳ. 이 사태의 배경과 본질
1. 문제의 제기
제16대 국회는 5월 29일로 4년의 임기를 마치게 됩니다. 새로운 제17대 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거가 4월 15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원래 예정된 국회의 의사일정에 의하면 3월 2일 제245회 제11차 회기에서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중개정법률안, 정치자금법중개정법률안 등 선거와 정치개혁 관련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모든 의사일정을 종료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선거 준비가 시급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국회는 촉박한 선거준비 일정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률 개정안을 처리하
지 못하여 3월 6일부터 12일까지 제246회 임시국회를 소집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현직 국회의원들과 그들이 소속한 정당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법개정을 미루고 있다는 일반 국민과 언론의 따가운 비판이 있었던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눈앞에 다가온 임기만료와 함께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의
효력도 실질적으로 소멸해 간다고 볼 여지도 없지 않은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볼 경우 이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옳은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제16대 국회와 국회의원 일반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평가를 따지지 않더라도, 국민의 상식에 맞는 방안은 제17대 국회에 맡기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탄핵은 국민주권의 상징인 대통령 선거 결과를 무효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임기를 거의 끝낸 국회가 총선거로 구성될 새 국회와 비슷하게 4년이나 임기를 남겨 놓은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안을 의결한다는 것은, 적어도 정치적인 의미에서 국민주권의 원리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국회는 제17대 국회에 맡기는 대신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발의하
고 황급하게 의결하여 그 직무를 정지시켰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첫째는 새 국회의 구성을 도저히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하고도 긴급한 위
헌·위법의 사태가 발생하였을 가능성입니다. 둘째는 새로 긴급한 사태가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에 의한 위헌·위법 상태가 오랫동안 누적되어 대통령 선거에 나타난 국민의 주권행사 결과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을 가능성입니다.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 가운데 "민주헌정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초헌법적이고 초법적인 독재자"라는 표현은 전자의 사정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이고, "국정실패, 잃어버린 1년"이라는 표현은 후자의 사정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의결서의 표현에 따르면 두 가지 경우에 다 해당한다는 것이 국회의 판단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2.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일반 국민에게 이번 사태는 참으로 갑작스럽고 예측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판단에는 많은 근거를 제시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탄핵을 주도한 국회의원들과 정당들이 대통령이 사과하면 탄핵의결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을 뿐 아니라, 탄핵소추의결서 역시 "절박한 심정으로 . . . 탄핵을 소추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이유로 대통령이 반법치주의적 발언을 계속하면서 끝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입니
다.
요컨대, 이번 탄핵소추 의결은 대통령이 사과만 했다면 피할 수 있는 수준의 것
이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탄핵소추의결서에 기재된 '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진정한 탄핵사유인지, 그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아 야당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는 것이 진정한 탄핵사유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이번 탄핵이 총선거를 앞둔 정치세력 간의 정치적 투쟁의 수단으로 제기되었다는 주장에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탄핵소추 의결이 전적으로 정략적인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성
급하게 단정하기 보다는 그 일에 이르게 된 일련의 과정을 차분하게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탄핵소추 발의를 전후하여 정당 간의 대립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었으나 국민들
이 보기에 이는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언제나 있어 온, 일상적 갈등에서 크게 벗어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검찰의 수사를 통해 지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여야 후보와 정당의 불법 정치자금과 부정부패의 일단이 확인되어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대통령 '측근인사'들의 비리가 드러나 다수가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측근인사'들의 비리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에 관한 논쟁이 가열되는 와중에서 '측근비리특검법'이 제정 공포되어 수사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한편, 대통령의 정책과 집행 및 그 결과를 놓고 다양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모든 사정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외교·통일 등 어떤 부문에서도 일반 국민들이 위기감을 느낄 만한 새로운 상황이 갑자기 나타난 일은 없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미있을 정도의 국민으로부터 대통령을 탄핵해서 파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일도 없다는 데에는 다툼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국민의 다수 여론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 자체를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을 파면해야 할 위헌 위법 사태가 국민이 느낄 수도 없을 정도
로 일상화되어 있었던 것인가? 대통령이 취임한지 불과 10일밖에 지나지 않은 2003년 3월 7일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점하고 있던 한나라당의 원내총무 이규택 의원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거론하며 위협한 이래 야당들은 이번 탄핵소추안 의결에 이르기까지 공식·비공식으로 적어도 65회 이상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해 왔습니다. 한나라당 대표인 최병렬 의원이 2003년 7월 8일 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공언한 것을 비롯하여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이 답변서에 차마 옮길 수 없을 정도로 대통령을 모욕한 사례는 열거할 수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취임 즉시 중대한 위헌·위법행위를 자행하여 도저히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었던 것인가 하는 점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두고 정치적 논란이 여러 번 제기된 것은 사실이
지만, 탄핵사유에 해당하는 헌법과 법률에 위배하는 행위를 취임 초부터 했다고 볼 만한 자료는 찾을 수 없습니다.
일반 국민의 처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제기해 온
대통령에 대한 탄핵 위협이나 모욕적인 발언들은 그 언어의 극렬함으로 인하여 국민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었을지언정 내용의 진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발언들은 정치인들이 흔히 구사하는 저열한 언사 이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발언을 한 국회의원들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문제제기가 정확한 사실인식과 올바른 법 해석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제기해 온 탄핵 주장은 물론 이번 탄핵소추안 발의와 의결에 대해서도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이 하는 행위의 엄중함과 그것이 초래할 결과의 중대함에 값할 만큼 성실하게 국민을 설득하려고 노력한 일이 없습니다.
3.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문제를 해명하는 하나의 열쇠로 우리는, 한나라당 대표 최병렬 의원의 발언
을 참담한 심경으로 인용하고자 합니다.
"지금 상황은 진보세력의 가면을 쓴 노무현 정권과 사회단체를 위장한 급진세력
이 한 깃발아래 결합, 중도보수 세력을 파괴하려는 절체절명의 위기. . . (17대 총선은) 친노·반노의 사생결단적 전쟁이 될 것"
'친노·반노'의 '노'란 이 사건 피청구인인 노무현 대통령을 말합니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이 '사생결단적 전쟁'을 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진보세력의 가면'을 썼고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은 사회단체를 위장한 급진세력이고 자신들은 '중도보수 세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탄핵소추안 의결을 주도하였고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 대표의 인식입니다.
우리는 그의 이런 인식이 전혀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
는 극단적 이분법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첫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일방적으로 '친노세력'이라고 재단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탄핵소추안 의결 전후를 불문하고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여전히 낮은 반면 대략 70%를 넘는 국민이 탄핵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재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는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라기 보다는 현실을 그런 방향으로 형성해 나가겠다는 정치적 의지의 반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 정치적으로 자기와 다른 편에 서 있다고 해서 '진보세력의 가면'을 썼다거
나 "사회단체를 위장한 급진세력"이라는 따위의 규정 역시 사실의 인식이 아니라 주관적 적대감의 발로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한나라당이 대통령에 대해 ‘좌파’니, ‘친북세력’이니 하는 비방을 계속해 온 사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규정이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1). 이것이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자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 . .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정치적 결사체”인 정당(정당법 제2조)의 대표로서 할 수 있는 발언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째, ‘사생결단적 전쟁’이라니, 도대체 누구를 상대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참으로 놀랍고도 무섭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
다. 적대감으로 가득 찬, 너무도 생경하고 섬뜩한 언어 앞에서 차라리 귀를 막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한나라당의 대표인 그의 발언이 이번 탄핵소추안 발의와 의결의 성격은
물론 그 법적 효과를 규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보고 있으나, 여기
서는 앞으로 이 사건 탄핵소추 의결의 적법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당사자 본인에
의하여 진지하게 해명되어야 할 문제임을 지적해 두는 데 그치고자 합니다.
4. 선거 후 탄핵에 이르기까지 대통령과 야당의 관계
가. 선거결과 부인과 국정 운영에 대한 비협조
앞에서 본 것처럼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탄핵소추안 발의와 의결
의 배경과 의미를 파악하려면 대통령 선거 후 지금까지 어떤 일이 있어왔는지 잠
시 돌이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12,014,277표를 얻
어 11,443,297표를 얻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57여만표차로 제치고 당선되었습
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자마자 ‘개표조작설’이 제기되었는데, 중앙선거관리위원
회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이를 근거로 12월 24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상대로 대법원에 투표함에 대한 증거보전신청과 대통령당선무효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2003년 1월 16일에는 당선무효소송에 대한 청구취지 및 원인변경신청을 하면
서 선거무효 소송을 추가로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재검표 결과 두 후보의 득표수 차이는 극히 미미하여 선거
결과에 아무런 영향도 없음이 밝혀졌고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서청원 의원은 대
국민 사과를 발표하였습니다.
나. 개헌 주장
한나라당이 대통령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이를 뒤집을 방안을 모색해 온
사실은 대통령이 취임도 하기 전에 개헌 논의를 제기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
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보름밖에 지나지 않은 2003년 1월 3일,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 회의는 2월 임시국회에서 내각제 문제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논의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취임도 안한 대통령을 두고 대통령제를 변경하겠다는 것은
대선결과 불복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언론이 비판한 바 있습니다.
그 후에도 한나라당은 내각제 개헌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함으로써 권력구조
를 흔들려고 하였습니다.
다. 국정에 대한 발목 잡기
사실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 보다 국회와 야당을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정을 수행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통령의 노력을 야당
은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은 2003년 4월 2일 취임 후 처음으
로 국회를 방문하여 국정연설을 하고 국회의장 및 각 정당의 대표의원들과 회담하
였습니다. 이 때 한나라당 국회의원 상당수는 자신들과 인사하려는 대통령을 맞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앉아서 악수를 하는 무례를 저지르기도 하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1월 8일에도 법안통과 부탁을 위해 국회를 방문하였
고 박관용 국회의장은 헌정사에 특별한 일로 국회를 찾은 최초의 대통령이다. 아주
좋은 기록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여야 간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인사청문회 대상을 야당의
주장에 따라 경찰청장, 검찰총장,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에게 확대하는 인사청문
회법 개정에 동의하였고 여당은 물론 국민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시 한나라
당의 의견을 존중하여 ‘대북송금 특검법’을 공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당시 고건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처리를 거부하여 새 정부의 출범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였습니다. 그
런가 하면 이념적으로 문제가 많다거나 '친북 언론인'이라는 색깔론을 제기하며 자
신 등이 반대한 고영구 국정원장과 정연주 KBS사장을 임명하자 “반민주주의 반의
회주의이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해야 한
다’는 헌법조항을 위배한 것으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검토해야 한다”거나
“방송장악을 통한 언론독재로 가려는 의도가 있다고 판단, 결코 좌시하지 않겠
다”며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영구 국정원장에
대하여는 국회가 인사청문회 결과 반대의견을 송부하기는 하였으나 국정원장 임명
에 대한 국회의 의견은 법적 구속력이 없으므로 [헌법 제78조; 국회법 제46조의3,
제65조의2(인사청문회); 인사청문회법 제11조 참조] 그 임명은 정치적 논쟁의 대상
이 될 수는 있겠으나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이었고 KBS 정연주 사장은 KBS이
사회가 후보자를 심사하여 임명을 제청하였으므로(방송법 제50조 제2항) 임명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한편 2003년 9월 3일, 국회는 대학생들이 미군 기지 근처에서 벌인 시위에 적
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상한 명분을 붙여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에 대해 해임
건의안을 의결하기도 하였습니다.
라. 한나라당의 선거전략
한나라당은 진작부터 다가올 4월 15일의 총선거를 이른바 ‘친노’와 ‘반노’의
대결로 몰고 가려는 선거전략을 세워놓고 있었습니다. 총선거에 임하는 국민 여
론을 대통령을 중심으로 이분법적 대결구도로 몰고 가 반사적 이익을 얻겠다는 것
입니다. 이처럼 당리당략을 위하여 국민을 이분법적으로 분열시키는 행위는 입헌
민주주의 제도에서 의회와 정당의 본질을 왜곡하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는 이 사건 탄핵소추가 이처럼 무리하게, 위헌적인 내용과 방법으로 졸속 추진된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할 것입니다.
Ⅴ. 결론 - 이 사건의 의미
1. 답변의 요약
이상에서 한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 현재 상황에 대한 평가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아 직무가 정지된 현재의 상황은 그 자체가 국가의 위기입니다. 더구나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대통령을 “초헌법적이고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아 직무가 정지된 현재의 상황은 그 자체가 초법적인 독재자”로 규정하여 탄핵소추한 데 대해 주권자인 국민 절대다수가 이를 반기기는커녕 국회를 규탄하면서 저항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위기는 한국 민주주의의 중대한 위기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 탄핵제도의 의미와 한계
이 사건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에 따라 판가름나게 되었습니다. 탄핵심판은 현행 헌법에서 헌법보호기관으로 도입한 헌법재판소가 진행하는 헌법재판의 일환입니다. 따라서 이 심판의 결론은 결국 헌법의 근본 가치와 기본질서를 수호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기준으로 내려야만 합니다.
탄핵제도는 국민주권을 바탕으로 한 입헌민주주의 원칙과 권력분립, 견제와 균형, 국민의 기본권 보호 등의 원리에 의하여 제한을 받습니다. 그런가 하면 의회가 탄핵소추권을 남용함으로써 국정의 혼란을 초래하고 국민주권의 상징이자 핵심인 대통령 선거결과를 무효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탄핵심판은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헌법이 탄핵의 최종 심판권을 국회에 주지 않고 헌법보호기관인 헌법재판소에 준 것은 이러한 점을 고려한 헌법적 결단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탄핵의 실체적 이유와 절차에는 내재적인 한계가 설정된다고 볼 것입니다. 비록 헌법은 탄핵사유를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추상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 위반은 헌법재판의 헌법보호기능에 걸맞는 내용의 것이어야 하며, 위반의 방법이나 위반의 정도 등이 모두 중대하고 명백하여야 합니다. 나아가 탄핵절차가 가진 위험성과 그 대상자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탄핵과정의 절차적 요건 역시 보다 엄격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이 사건 탄핵소추의 경우 탄핵사유의 중대명백성과 절차의 준수요건은 더욱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합니다. 여론조사 결과 약 40%의 국민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탄핵에 반대하고 있는 사실은 곧,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매우 중대한 사유에 한하여 국민의 여론을 반영할 수 있는 정당하고 신중한 절차에 따라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국민의 헌법적 확신을 반영한다고 할 것입니다. 헌정질서의 근본적 문제에 관한 국민의 헌법적 확신을 헌법보호기관들이 법의 해석과 적용과정에서 존중하지 않는다면 “헌법의 창조적 기능을 수행하여 국민적 욕구와 의식에 알맞은 실질적 국민주권의 실현을 보장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고 국민주권론은 “허구적 이데올로기 내지 환상으로 이용되는 데 그칠” 것입니다(헌법재판소 1989.9.8. 88헌가6결정 참조).
다. 이 사건 탄핵소추의 위헌성
이 사건 탄핵소추는 실체적인 면과 절차적인 면에서 모두 적법성을 갖추지 못한 위법한 것이며, 그 위법성의 정도가 매우 중대하여 오히려 헌법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우선 탄핵사유로 내세운 것들은 허위 또는 과장되었거나 근거가 미약한 경우가 많고, 설령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그 자체 탄핵사유가 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법률적 평가 역시 과장되었거나 왜곡된 것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법위반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위반의 태양과 정도가 극히 경미하거나 논란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필요한 중대 명백한 위반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런 문서를 놓고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킨 다음 파면을 논의한다는 것은 대통령을 뽑은 국민을 모욕하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탄핵소추 절차는 법률에 정한 절차를 크게 위반하여 의회주의의 본질을 침해하였을 뿐 아니라 대상자인 대통령의 기본권을 완전히 박탈할 정도로 위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탄핵사유가 헌법이나 법률 위반을 구성하지 않거나 한다고 하여도 극히 경미한 데 비하여 그 결과는 국민이 선출한지 일 년밖에 되지 않은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는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 제16대 국회는 실질적으로 임기가 끝나 국민으로부터 받은 위임의 효력이 거의 소멸되어 가는 상태에 있고, 그동안 쌓인 부정부패 등으로 국민적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 탄핵소추는 그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마땅히 기각되어야 하지만, 내용적으로나 절차적인 위법성이 너무나 중대하여 헌법을 침해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각하되어야 합니다.
라. 탄핵의 배경과 본질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취임한지 불과 열흘이 지난 2003년 3월 7일 처음으로 대통령의 정당한 권한행사에 대해 탄핵을 위협한 이래 이번 탄핵소추 의결에 이르기까지 무려 100회가 넘게 탄핵을 언급해 온 사실, 대통령에 대한 저급하고 근거없는 모욕, 그리고 대통령선거 결과에 대한 근거없는 재검표 요구와 당선무효소송 제기 등 대통령선거 결과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하여 온 점을 함께 고려하면 야당은 처음부터 대통령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이를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거나 만들어내려 한 것이라고 추측할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습니다.
대통령의 취임 후 검찰에 대한 개입과 간섭이 없어져 정치부패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가 이루어짐으로써 야당의 불법 정치자금과 부정부패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자, 야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고 이 사건 탄핵소추 역시 그 일환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과거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이 분열하여 사실상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야당인 새천년민주당으로 나누어지는 과정에서 쌓인 감정적 적대감과 4월 15일로 다가온 총선전략이 함께 결합하여 탄핵소추안 발의와 의결이라는 결과를 가져 온 것입니다. 사실 탄핵소추의결서에 나타난 문장 자체가 이 사건 탄핵소추는 당리당략에 근거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 탄핵소추는 대통령의 헌법침해 행위를 중지시켜 헌법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위헌적인 절차와 내용으로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국민주권의 상징인 대통령 선거결과를 뒤집으려는 반헌법적 시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탄핵소추권을 남용한 것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탄핵사유에 관한 본안 심사를 할 것도 없이 이 사건 탄핵소추는 각하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이 사건의 헌정사적 의미
가. 현행 헌법의 제정과정과 핵심가치
현행 헌법은 지난 1987년 6월 이른바 제5공화국 헌법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당시 정권에 대하여 수많은 시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거리를 메우고 저항한 결과 제정된 것입니다. 제5공화국의 체제가 얼마나 반민주적인 것이고 그로 인한 국민의 고통이 컸던가는 이미 헌법재판소 스스로 1996. 2. 16. 선고 96헌가2 결정에서 상징적으로 확인한 바 있습니다. 현행 헌법은 이처럼 왜곡된 한국 반세기 헌정사의 흐름을 바로잡아야 하는 시대적 당위성에 의해 태어난 것입니다.
1987년 6월 거리를 메우고 저항한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 외친,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구호가 상징한 것은 대통령 직선제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었습니다. 따라서 현행 헌법에 반영된 대통령 직선제와 기본권 보장은 국회가 아무렇게나 바꿀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 현행 헌법의 핵심이자 뼈대를 이루는 근본적인 가치이며 주권자인 국민의 헌법적 결단에 해당합니다.
한편 헌법제정 과정에서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하여 민주적 기본질서를 후퇴시키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강력한 견제권을 확보하는 한편, 최후의 헌법수호기관으로 헌법재판소를 도입하여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독립하여 활동하도록 하였습니다. 요약하면, 대통령 직선제와 기본권 보장이라는, 현행 헌법의 존재근거에 해당하는 헌법적 결단을 수호하는 기관으로 헌법재판소가 도입된 것입니다.
나. 이 사건의 헌법적 의미
이 사건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와 대통령이 대립 갈등하는 과정에서 생긴 분쟁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비록 대통령에게 아무런 허물도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하더라도, 대통령 선거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야당들이 정치적 대립관계에서 발생한 사건을 빌미로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대통령을 탄핵소추함으로써 대통령 선거결과를 뒤집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국민의 주권행사를 무효화하고, 헌법의 존재근거를 무력화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 민주주의의 중대한 위기상황인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헌법 제정 당시 최종적인 탄핵심판권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주지 않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에 부여한 것은, 국회가 국민의 정치적 대표기관이라는 속성으로 인하여 정치적 이해관계에 휩쓸려 비이성적으로 국가의 문제를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음을 고려하여 헌법제정권자인 국민이 내린 헌법적 결단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건은 국민이 위임한 의회권력을 비이성적으로 행사하고 남용함으로써 국가의 정상적인 기능수행을 가로막고, 현행 헌법의 존재근거이자 핵심가치인 대통령직선제를 통해 드러난 국민의 주권행사의 결과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사건 탄핵소추의결은 오로지 정략적인 목적으로 절차, 방법 및 내용에 있어서 전체적으로 헌법을 경시한 데서 비롯된 것이므로 더 나아가 위 의결이 법률적 요건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살펴볼 필요도 없이 각하되어야 마땅하고 이로 인해 정지된 대통령의 직무권한은 신속히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2004. 3. 22.
피청구인 대 통 령 노 무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