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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사무엘상16장1~23절
제목 : 성령이 떠난 왕, 성령이 임한 왕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신 하나님은 다윗에게 사무엘을 보내셔서 기름붓게 하십니다.
이후 다윗은 사울의 치료를 위해 입궁하여 사울을 섬깁니다.
1. 왕이 될 자를 찾아나서다(1~5절)
1) 이새에게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습니다(1절)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 하나님께서 사울의 왕위를 배척하셨다는 언급은, (1) 사울이 선지자 사무엘의 제사 행위를 침해했을 때(13:8 9,13,14),
(2) 그리고 사울이 이기적 욕심에 따라 아말렉에 속한 것을 진멸치 아니했을 때(15:23, 28) 나타났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의 경우 때에만 해도, 사울은 자신의 이후 행위 여하에 따라 자신의 왕위를 계속 유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의 거역 행위로 인하여 사울에게 선언되었던 '폐위(廢位) 선고'는 완전히 확정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 사무엘의 이같은 깊고 오랜 슬픔은 단순히 개인 사울의 비극에 대한 사적(私的) 심정 때문만이 아니라, 사울의 폐위로 인하여 이스라엘 사회전반에 나타날 부작용을 염려한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그때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사울의 군사적 능력만은 분명히 인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후일 사울의 전사(戰死)를 슬퍼한 다윗의 애가(삼하 1:19-27) 속에서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한편 여기의 '슬퍼하겠느냐'(미트아벧)는 특별한 원인에 따라 심히 애통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사 3:26; 암 1:2; 8:8).
그런데 여기서는 특히 강조적 재귀형으로 사용되어, 그 슬픔을 밖으로 강력하게 표출시킴을 가리킵니다(15:35; 삼하 14:2; 대하 35:24; 스 10:6).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신령한 책망과 더불어 사무엘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심으로써 그의 슬픔을 소망으로 승화시켜 주셨습니다.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 여기서 '뿔'(케렌)은 양의 뿔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왕의 기름 부음을 위해서는 '병'(파크)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10:1).
그러나 '뿔'이 사용되는 경우와 '병'이 사용되는 경우는 분명 어떤 대조점이 암시되고 있는 듯합니다.
즉 '뿔'이 사용될 경우에는 주로 그 왕의 정통성 및 긍정적 성격이 암시되며(왕상 1:39),
반면 '병'이 사용될 경우에는 그 왕의 비정통성및 부정적 성격이 암시되는 듯합니다(10:1; 왕하 9:1-13).
성경이 이처럼 의도적으로 '뿔'의 사용을 보다 긍정적 차원에서 보는 것은, 성경의 여러 문맥상 '뿔'이 왕권(王權)을 상징하고 있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2:10; 겔 29:21; 단 8:3, 21).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 여기서 '보내다'(솰라흐)란 말은 '가기를 강요하거나 허락하다'라는 의미 보다는, 오히려
'사명을 주다'란 의미로 봄이 더 타당합니다(민 14:36; 신 19:12; 삿 6:14).
베들레헴 사람 이새. - '베들레헴'(Bethlehem)은 '떡집'이란 뜻으로,
이곳은 사무엘의 고향인 라마 남서쪽 약 16km, 그리고 예루살렘 남서쪽 약 10km지점의 해발 690m에 위치한 유다의 작은 성읍입니다(룻 1:1).
한편 '이새'(Jesse)는 부호(富豪) 보아스와 모압 여인 룻 사이에서 태어났던 오벱의 아들로서(룻 4:17, 22; 대상 2:12; 마 1:5, 6; 눅 3:32).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사람'입니다(Klein).
이새는 그의 할아버지가 부자였으므로, 그 당시 그 역시 부유했었음이 분명합니다(룻 2:1).
그러므로 사무엘은 인근 마을의 유력한 가문인 이새의 집에 대해 개략적으로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Fay, Smith).
그러나 그가 당시 이새의 막내 아들 다윗에 대해서는 몰랐음이 분명합니다.
그 아들 중에서 - 당시 이새에게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다(6-11절).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 여기서 '예선하였다'(라아)는 문자적으로
'보다'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성경 전반에서 이 단어는 '선택하다'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17절; 창 22:8; 41:33; 왕하 10:3).
그리고 여기의 '왕'(멜렉)은 사울에게 적용되었던 단어 '지도자'(나기드)와는 그 의미에 있어 다릅니다<9:16>.
즉 '방백'(方伯)의 의미인 '지도자'와는 달리, '왕'은 명실 공히 한 나라의 군주(君主)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여기 여호와에 의해 왕으로 예선된 자는, 이미 '여호와의 마음에 맞는 사람'(13:14), '사울보다 나은 사울의 이웃'(15:28) 등의 표현으로 암시되어 왔던 다윗을 가리킵니다.
즉 사울은 인간적인 기준에서 백성들에 의해 선발된 왕이었으나(8:5, 20; 11:15),
다윗은 오래전부터 신적인 기준에서 하나님에 이해 선택되고 예비된 왕이었습니다(7절; 행 13:22).
이런 점에서 진정한 이스라엘의 신정적(神政的) 왕정 체제는 사울의 때가 아니라, 다윗의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룩되었다고 봄이 옳을 것입니다(신 17:15).
2) 겁을 먹는 사무엘에게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2절)
“[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사울이 들으며 나를 죽이리이다. - 비록 사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최종 폐위 선언을 당함으로써(15:23, 26) 영적 왕권은 이미 상실된 처지였지만, 그래도 당시 사울은 정치.군사적으로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사무엘이 다른 사람을 왕으로 기름 부을 경우, 그 일은 당연히 역모(逆謀) 행위로 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일이 그런 식으로 전개된다면 자신의 죽음이나 추방이 문제가 아니라, 이새가문까지 화를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사무엘은 그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솔직히 하나님께 아뢰었던 것이다(Smith, Fay).
따라서 사무엘의 이같은 반응은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려되는 불행한 상황을 방지하고, 보다 나은 방법을 하나님께 아뢴 선지자의 사려 깊은 기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그러한 반응을 전혀 책망하지 않으시고, 즉시 지혜로운 방법을 그에게 알려 주셨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입증됩니다(Keil).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 사무엘에게 지시한 여호와의 이 명령은, 여호와께서 당신께 드려지는 거룩한 제사를 사울을 속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라는 명령이 결코 아닙니다.
실로(Shiloh)의 중앙 성소가 훼파된 당시 상황에서, 백성들을 영적으로 지도할 자격과 책임이 있는 선지자 사무엘이 어디에서든지 하나님께 대한 제사를 백성들과 함께 드리는 일은 지극히 정당하며,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사무엘은 여호와의 명령대로 실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아울러 그곳에서 기름 붓는 일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사무엘은 자신이 기름 부으러 간다는 사실을 공개할 필요나 책임은 없었던것입니다.
한편 여기의 '제사'(자바흐)는
(1) 화목제를 가리킬 때 종종 사용된 단어라는점(1:3)
(2) 제물이 암컷이라는 점(레 3:1-5)등으로 미루어 볼 때 화목제를
가리킴이 분명합니다.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그리고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3절).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1)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여기에 언급된 '제사'는 제사 후 함께 나누어 먹는 잔치가 동반되는 화목제였기 때문에, 사무엘이 제사에 그 지방의 사람을 칭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9:22).
그러므로 사무엘에게 있어서 사실상 이새를 청하는 것은 그의 아들에게 기름을 붓는 일이 주된 목적이었지만, 그러나 그 소식을 듣게 될 사울에게는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2)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기름붓는 것은 사울에게 기름 부은 것과는 그 성격.목적에 있어서 전혀 다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즉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던 목적은 백성들의 요청에 따라(8:5, 20),
다만 이스라엘의 군사.정치적 독립을 위한 것이었지만(9:16, 17),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일은 '하나님의 일'로서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렀습니다(4절)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1) 베들레헴 성읍 장로들 떨며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① 당시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서 가장 권위있고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며,
② 또한 사무엘은 사사로서 그 직무상 종종 죄 범한 성읍을 방문하여 책망하고 징벌하는 일을 하는 자였기 때문에, 성읍 장로들은 갑자기 방문한 사무엘을 불안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2)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 "언짢은 일로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공동번역), "어쩐 일로 오셨는지요?
혹 무슨 잘못한 일이라도 있습니까"(what is wrong? why have you come? - Living Bible).
베들레헴 장로들의 이같은 질문은 사무엘이 자신들의 잘못을 징치하기 위하여 오지는 않았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왕상 2:13; 왕하 9:17, 19)
5)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합니다(5절).
“[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 부정한 상태에서 벗어나 몸과 의복을 깨끗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에 합당하도록 준비하는 것을 뜻합니다(출 19:10; 수 3:5; 7:13; 욥 1:5; 요일 1:7-10).
2.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다(6~13절)
1)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습니다(6절).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 여기서 '보고'(야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을 선택할 때 그의 탁월한 신체를 중시했던 것처럼(9:2; 10:23, 24),
*9:2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10:23,24 “[23]그들이 달려 가서 거기서 그를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컸더라[24]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여기서 지금 사무엘도 그같이 외모를 중시했음을 암시해 줍니다.
한편 '앨리압'(Eliab)은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란 뜻이며, 그는 블레셋의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 사울을 따라 종군하였습니다(17:13, 28).
*17:13,28 “[13]그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으니 싸움에 나간 세 아들의 이름은 장자 엘리압이요 그 다음은 아비나답이요 셋째는 삼마며[28]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2)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마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십니다(7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처음 외모를 중시하여 왕을 선택했던 일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던 사실을 사무엘로 하여금 회고하게 함으로써 그같은 실수의 재발을 방지하려고 하십니다.
(1)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여기서 '용모'(마르에)는 얼굴 생김새나 풍채 등 내면은 관계없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appearance) 자체를 가리킵니다(창 2:9; 12:11; 민 8:4).
*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12: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따라서 본 문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머리에 기름부을 자를 택할 때 결코 외적인 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용모나 신장은 무조건 배격하고 무시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것이 결코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2)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여기서 '외모'(아인)는 직역하면 '눈'(eye)이란 뜻으로서,
곧 '육신의 눈'(肉眼)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중심'(레브)은 직역하면 '마음'(heart)이란 뜻으로서,
곧 '마음의 눈'(靈眼)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러한 원문의 뜻에 맞추어 본절을 해석하면,
"사람은 (육신의) 눈으로 보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의 눈)으로 보느니라"란 뜻이 됩니다(Klein).
즉 이것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에 있어서 인간의 척도와 하나님의 척도가 전혀 다름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는 비록 인간(人間)은 육신의 눈을 가지고
사람의 외적 용모, 신장, 배경 등을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사람의 내적 겸손, 신앙, 인격, 진실성 등을 감찰하신다는 의미입니다(대상 28:9; 시 7:9; 눅 16:15)
*대상28:9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시7: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눅16: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3) 계속해서 아비나답, 삼마, 이새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택하지 아니하였습니다(8,9,10절)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사무엘은 이새의 여러 아들들 중 누가 하나님에 의해 왕으로 선택됐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이새의 아들들을 차례로 자기 앞으로 지나게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으나, 그러나 이새의 일곱 아들들 중에는 왕으로 선택된 자가 끼어있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사무엘은 그러한 사실을 하나님께서 주신 내적 음성 또는 내적 확신을 통해 알았을 것입니다(Fay).
아비나답...삼마. - 이 두 사람은 모두 형 엘리압과 함께 블레셋의 골리앗이 침범했을 때 사울을 따라 종군했었습니다(17:13, 28).
한편 여기서 '아비나답'(Abinadab)은 '아버지는 훌륭하시다'란 뜻으로서,
이새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의 둘째 아들 이름도 '아비나답'이었습니다(31:2).
*31: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그리고 '삼마'(Shammah)는 '황무지'란 뜻으로서, 삼하 13:3; 대상 2:13에서는 '시므이'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삼하13:3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대상2:13 “이새는 맏아들 엘리압과 둘째로 아비나답과 셋째로 시므아와”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지나게 하나 - 대상 2:13-15에 기록된 다윗의 가계에 따르면, 이새의 아들은 다윗까지 포함하여 도합 7명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다윗까지 포함하면 이새의 아들은 도합 8명이 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분명 이새의 8아들들 중 한 사람이 어려서 일찍 죽었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Smith, Fay).
4)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다하니 그를 데려오라고 합니다(11절).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막내가 남았는데. - 여기서 '막내'(하카탄)는 '가장 어린'이란 의미 외에
'가장 작은'이란 의미도 있다는 점에서, 당시 다윗의 모습은 사울의 '큰 키'와는 너무나도 대조족이었습니다(9:2; 10:23).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 이것은 그 당시 이새의 가족들이 다윗을 아직 어른으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풍속으로 볼 때, 어른만이 제사의 초청에 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왕은 고대 중근동에서 종종 '목자'로 인식된다는 점에서(De Vaux),
여기서 다윗이 양무리 가운데 있는 것으로 언급된 것은 다윗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예시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Klein).
앉지 아니하겠노라. - 이 말은 그때까지 사무엘이 앉아 있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의 '앉지'(사바브)는 '둘러싸다', '에워싸다'란 의미로서(삼하 22:6; 대하 33:14; 시 17:11; 전 9:14), 곧 식사하기 위하여 식탁에 둘러앉는 것을 가리킵니다(Keil, Smith, Fay).
따라서 그때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후 식사를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5) 다윗을 데려오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십니다(12절)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그의 빛이 붉고 '빛이 붉고'는 머리털 색깔이 붉음을 뜻합니다.
대부분 검은 머리털 색깔을 지닌 중근동에서 이 붉은 색 머리칼은 귀한 것으로서, 그 지역에서는 아름다움의 한 조건이었습니다(Keil).
눈이 빼어나고. -여기서 '빼어나고'는 '아름답고', 또는 '반짝이고'란 뜻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총기어린 아름다운 눈을 가리킵니다.
이것도 뛰어난 얼굴 모습의 소유자가 갖추어야 했던 한 조건이었습니다(창 29:17).
*창29: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얼굴이 아름답더라. - 이것은 단지 외적 아름다움만을 의미치 않고,
내면에서 풍겨 나오는 아름다움을 뜻합니다.
(25:3; 창 41:5; 신 1:25; 9:6; 삼하 18:27; 행 7:20).
그러나 여기 '얼굴'(로이)은 분명 '겉모양' 혹은 '외모'란 의미도 있는 바, 이는 또한 그 외적 얼굴도 아름답게 잘 생겼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6)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습니다(13절).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부었더니 - 다윗은 모두 3차에 걸쳐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즉 여기 첫번 기름 부음은 비공식적으로 이새의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은밀히 부어졌고,
두 번째의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으로 올랐을 때(삼하 2:3, 4) 기름 부음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마침내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했을 때(삼하5:3) 받았습니다.
그 형제 중에서 - 이것은 형제들이 목격하는 가운데서 다윗이 기름 부음 받았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때 이새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은 그 장소에 아무도 없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형제들은 사무엘의 엄중한 부탁과, 그리고 사울의 보복등을
우려해 그 사실을 비밀로 유지한 듯합니다(Leon Wood).
이 날 이후로.- 이것은 여호와의 영이 다윗에게 즉각적으로 임했고,
또한 영속적으로 임재하고 계셨음을 시사하는 문구입니다(Fay).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신정 국가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치적.도덕적.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역량과 은사를 허락하셨음을 뜻합니다.
그 결과 다윗의 행동과 말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18절).
*18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한편, 이처럼 기름을 붓는 객관적 의식(儀式)의 결과로 여호와의 영이 주관적으로 임했다는 이 사실은 사울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났었습니다(10:1, 10).
*10:1,10 “[1]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10]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그러나 사울의 경우와는 달리, 다윗의 경우는 이 같은 일이
(1) 기름 부음의 의식 직후에 있었으며
(2) 임재하신 여호와의 영이 끝까지 떠나지 않으셨으며
(3) 여호와의 영이 임할 때 발작적이지 않았다는 점에서(10:9-12; 11:6, 7) 사울의 경우와는 구별됩니다(Klein).
따라서 본서 저자는 위의 두 경우를 암시적으로 비교함으로써,
사울에 대한 다윗의 우월성을 강조하려고 한 듯합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여호와의 영(靈)을 부어주신 까닭은
(1) 다윗이 왕의 신분에 합당한 도덕성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며,
(2) 왕의 고유한 직무를 감당할 능력을 소유토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삼하 5:4에 이하며,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에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처음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 받을 때,
그의 나이를 레온 우드(Leon Wood)는 15세 가량으로,
그리고 카일(Keil)은 20세 가량으로 추정합니다.
아무튼 당시 다윗이 제사 의식에 공식 참여치 못했다는 사실은
그가 만 20세 이상의 성년 남자가 되지 않았음을 시사하므로(11절),
따라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마침내 등극될 때까지 약 10-15년 가량을 예비 왕으로서 연단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혹자는 사무엘의 생전에 다윗이 라마의 선지 학교에서 일정 기간 동안 훈련받았다고 추정하기도 합니다(R. Payne Smith, f.r. Fay).
3. 다윗이 사울을 섬기다(14~23절)
1)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14절)
(1)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났습니다.
사울에게 임했던 '여호와의 영'은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왕직을 제대로 수행토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11:6>.
따라서 이제 사울의 왕위가 폐위된 이상,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더 머물 이유가 없었습니다.
(2) 여호와의 부리신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하였습니다.
원문은 '여호와께로부터 온 악영'(an evil spirit from Jehovah)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이 '악령'(루아흐 라아)은 인간의 도덕적.영적 생활을 고양시키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과는 본질상 뚜렷이 대조되는 사단의 영으로서,
곧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억누르고 파괴하는 사단의 사악한 영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사단의 영은 하나님과 허락과 지배하에서만 활동할 수 있습니다(욥 1:12).
*욥1: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따라서 이것은 선악(善惡) 간의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주재권 아래 있다는 구약의 전반적 사상과 잘 조화됩니다(신 13:2-4; 삿 9:23; 삼하 24:1; 왕상 22:19-22; 대상 21:1; 욥 1:6-12).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이같은 악영이 활동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그것은
(1) 사울의 왕위가 폐위되었다는 사실을 가시화(可視化)하여,
(2) 새로이 여호와의 령을 받은 다윗과 대조시키며,
(3) 또한 악신에 시달리는 사울로 인해 다윗이 수금 연주자로 성경이 무대에 공식 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듯합니다.
한편 여기서 '번뇌하게 한지라 (바아트)는 '두렵게 하다', '놀라게 하다'란 의미입니다(삼하 22:5; 욥 18:11; 사 21:4).
즉 이것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 혹은 정신병적 우울증이나 착란증 현상을
가리킵니다(Pulpit Commentary).
2)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하므로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하여 수금을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15,16절)
“[15]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16]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본절은 사울 주변의 신하들에게도 사울의 폐위가 가시화되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수금(킨노르) - 이 악기는 음량을 크게 하기 위한 소리통 곧 본체에서 뻗은 두 개의 가지가 달린 현악기로서<10:5>, 이 두개의 가지 사이를 가로지른 막대기와 본체의 끝에 동일한 길이의 현(絃)들이 여러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한편 약 B.C. 1400년 경의 겻으로 추정되는 바로 이와 같은 모양의 악기가, 최근에 일단의 성서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므깃도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 이것은 사울에 대한 악령의 활동이 간헐적(間歇的)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가...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 당시 사울이 당하던 고통은 원인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정신 심리적 현상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고대 사회에서 흔히 사용되던 음악을 통한 심리적 치료요법이 어느 정도 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10:5; 왕하 3:15>.
그러나 사울에게 나타난 현상은 근본적으로 영적(靈的)인 원인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에서, 음악을 통한 심리적(心理的) 요법은 임시방편에 불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3) 신하들이 이새의 아들 다윗을 추천합니다(17,18절)
“[17]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하니[18]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여기서는 장차 왕위에 오를 자로서, 다윗의 여러 뛰어난 자질이 주위 사람들에게서 이미 어느 정도 널리 인정되기 시작하였음을 시사해 줍니다.
소년 중 한 사람 - 이 소년(네아림)도 사울의 신하 중에 있었다는 점에서, 사울의 신하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의 연소함은, 또한 연소했던 다윗에 대하여 잘 알 수 있었던 한 요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 다윗에 대한 이같은 호칭은 하나님께서 1절에서 직접 사용하셨던 것으로서, 다윗을 소개하려고 한 그 소년 신하가 다윗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 다윗에 대한 저자의 이같은 언급은 사울에 대한 다윗의 탁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용기(勇氣)'는 문자적으로 '능력있는 용사'(a mighty valiant man, KJV)란 뜻입니다.
이것은 말할 나위 없이 다윗이 자신의 가축을 해치려던 사자나 곰 등을 쳐죽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17:33-37).
그리고 '무용'(武勇)은 '전사'(戰士, a man of war;)란 뜻입니다.
또한 '구변'(口辯)은 '매사에 분별력 있는'(prudent in matters, KJV),
'말을 신중하고 현명하게 하는'(prudent in speech, RSV)이란 뜻입니다.
특히 이러한 자질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매우 귀중히 평가되던 덕목(잠 23:9; 25:9, 11, 15; 29:20)인데, 이것은 시편 기자로서의 다윗의 작시(作詩) 능력을 염두에 둔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준수한'(토아르)은 '잘 생긴 미남자'(a finelooking man, NIV; a man of good presence, RSV)를 가리키는 말로서, 특히 이 점에 대한 묘사는 이미 12절에 언급되었었습니다(25:3; 창 29:17; 39:6; 신 21:11; 에 2:7).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 기름부음 받은 결과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된(13절) 다윗은, 이후 그의 행적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되었습다.
즉 내적으로는 겸손, 성실, 진실함으로, 그리고 외적으로는 사자나 곰을 맨손으로 물리치는 호기와 무용으로 그 증거를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게신다는 이 사실은 이후 모든 면에서 다윗에게 승리가 보장되어 있음을 가리키는 어구입니다(3:19; 10:7; 18:12, 14)
4) 사울이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합니다(19절)
“[19] 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셨던 바대로(8:11-18), 사울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백성들을 징집하는 일을 거침없이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5) 이새가 그의 아들 다윗을 사울에게 보냅니다(20절)
“[20] 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의 아들 다윗을 시켜 사울에게 보내니”
이새가...보내니 - 당시 이새는 왕의 권위를 존중하였으며 - 또한 자신의 아들이 왕실의 일에 종사케 되었음을 명예롭게 여겼기 때문에(Klein), 자신의 아들을 기꺼이 사울에게 보냈을 것입니다.
특히 이때 이새는 자신의 아들이 미래의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았던 사실(13절)을 상기하고, 자신의 아들이 왕실에서 일하게 됐다는 사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을 것입니다.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 - 이와같은 예물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1)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을 표명하거나(9:7, 8),
(2) 또한 상대방에게 감사를 나타낼 때(창 14:18).
(3) 그리고 상대방을 진정시킬 목적(25:18)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왕에 대한 예의라는 점에서 첫번째의 경우에 해당될 것입니다.
6)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니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았습니다(21절).
“[21]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그 앞에 모셔 서매 - 이것은
(1) 분부를 받기 위하여 가까이서 기다린다(왕상 3:16),
(2) 또는 본격적으로 신하의 한 사람이 되어 일을 하다(창 41:46) 등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분명 다윗은 사울이 악령으로 고통당 할때 수금을 타 그의 마음을 위로함으로써 봉사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사울의 마음을 매우 흡족하게 하였고, 또한 사울에게 크게 사랑받는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입니다(23절).
자기의 병기 든 자를 삼고. - 처음 수금 연주자로 사울에게 봉사한 다윗은 얼마 후 사울의 병기 든자(armor - bearer, RSV)로 승격되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시사합니다.
즉 (1) 다윗에 대한 사울의 사랑과 신임이 더욱 두터워졌으며,
(2) 또한 사울이 다윗의 무예를 어느 정도 인정하였음을 암시합니다.
왜냐하면 '병기 든 자'는 주인의 창칼이나 방패 등을 가지고 다니는 일종의 부관으로서(Smith, Keil), 주인으로부터 가장 신임받는 정예군 중에서 임명되었기 때문입니다(14:1; 17:41; 31:4-6; 삼하 18:15).
이처럼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로 말미암아, 마치 모세처럼 다윗도 사울이 전
혀 눈치 채지 못한 상황 가운데서 왕실의 보다 고상한 직책을 감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왕궁의 여러 법도와 국사를 익히게 하셨는 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 착실히 준비시켜 나가셨습니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172).
7)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22절)
“[22] 또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원하건대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본절에서 사울은 다윗을 계속적으로 자신의 곁에 두겠다고 이새에게 고지(告知)함으로써, 다윗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신임을 강력히 표명하고 있습니다.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 문자적으로는 '그가 나의 눈에서 은총을 발견하였느니라'란 뜻입니다.
이것은 결국 다윗이 사울 자신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21절).
이처럼 사울은, 다윗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이 생기기 전에는 그를 진정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 대한 백성들의 칭송이 자신을 앞지르자(18:7),
이후로 사울은 이전에 다윗을 사랑한 것 이상으로 그를 적대하게 되었습니다.
8)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23절)
본절은 다윗이 사울에게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21, 22절) 중요한 이유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부리신 악령 - 이는 하나님의 허락과 지배하에서 주로 악인들에게 활동하는 사단의 영을 가리킵니다. 14절 주석 참조.
다윗이 수금을...탄즉 사울이...낫고 - 굳이 현대 의학적으로 사울의 병명을 분류하자면, '심한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 착란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
따라서 심리학상 좋은 음악을 통한 치료법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사울을 번뇌하게 한 원인은 사단의 활동이므로 일반 음악 요법으로는 결코 그를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다윗의 수금연주가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령에 감동된(13절) 다윗이 수금을 통한 음악으로 그것을 표현했기 때문에, '악령' 곧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사단의 영이 사울에게서 일시적으로 떠나간 결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16절 주석 참조.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사람은‘겉’을 보지만 하나님은 ‘속’을 보십니다(6~9절).
사람의 기준은 ‘화려한 외형’이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순종의 마음’입니다.
조건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세우십니다.
하나님이 내 속마음과 우리 공동체의 속사정을 들여다보시면무엇이라 말씀하실까요?
2) 하나님을 버린 사울에게 하나님도 자기 영을 거두십니다(13,14절).
그리고 새로운 왕으로 예선된 다윗에게 하나님의 영이 강력하게 임합니다.
이제 ‘이날 이후로’ 하나님의 영은 혹독한 광야에서 그를 순종의 사람으로 연단하실 것입니다.
성령의 개입이 아니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3)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흐릅니다(14~23절).
사울에게 임한 악령, 다윗을 추천한 무명의 입궁, 다윗과 사울의 만남은 모두 우연 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사건 뒤에는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이 필연처럼 숨어 있습니다.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 내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들 속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 있습니다.
내 작은 삶에 일어나는 수 많은 일들이 어떤 필연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지 더듬어 살펴보십시오.
4) 다윗이 궁에 들어간 것은 그를 사울에게 추천한 무명의 소년 때문입니다(18절).
오래전 사울을 사무엘에게도 이끈 것도 무명의 사환입니다(9:3).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이름 없는 이들의 수고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어쩌면 이름도 빛도 없이 섬기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의 영웅인지도 모릅니다.
나의 묵묵한 수고와 헌신도 구원 역사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사무엘은 하나님이 만드시는 새로운 역사(28,29절)를 보지 못하고 사울을 잃은 슬픔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1절).
사사로운 감정(정, 사랑, 관계 등)이 필요하지만, 그런 감정들이 내 눈을 가려 하나님의 뜻을 읽지 못하게하고, 또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