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섬 그늘에 구울~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아서 가끔씩 귓가를 맴돌며 가슴을 아리게 하는 추억 속의 섬으로
그냥 훌쩍 떠나고 싶어 바지자락 붙드는 홍도의 울음을 뿌리치듯 무작정 또 길을 나선다.
저 먼 남쪽나라 땅끝마을로---
벼르고 길을 떠났는데 비바람이 몰아치니(?) 다들 웅크리고 있는데다
신분증마저 깜빡 하여 입으로 뱉는 소리에 힘까지 빠져있는 기색이라
애초의 계획에서 거금(왕복 5만원?)을 추가로 들이대고
청산도 슬로길을 승용차와 함께 행동하기로 하고 한발 물러선다.
오후에는 분명코 날씨가 갠다고 했는데 당장 지금의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하니까~~~
징징거리는 날씨를 핑계 삼아 먼저 도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하는데
비는 그칠 듯 말듯 길손을 놀리며 권덕리에서는 범바위 접근을 아예 말리고 있다.
하여, 어디 마땅한 장소를 찾아 아침 겸 점심요기를 때우려고
비바람이 덜한 곳을 고르다 보니 어느새 진산해변이 멀리서 가물거린다.
<초당에서 바라본 상산포 원경>
어디 하루 이틀 배운 솜씨인가?
제주도로 울릉도로 하한반도의 크고 작은 섬을 휩쓸면서(?)
섬 사랑에 미치면서도 살아남은 우리의 의기투합이
청산도에서도 녹슬지 않아 비바람이 몰아쳐도 아줌마의 근성이 꿋꿋하게 되살아난다.
<워매! 라면 맛에 자빠지겠네>
하늘이 파랗고, 바다가 파랗고, 덩달아 봄이면 산마저 파래지니 바로 靑山이다.
봄이라면 온몸이 근질거려 미쳐 날뛰고 싶은 계절인데
늦으막한 가을이니 날뛰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 참 다행스럽다.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거닐면서 청산도에 하루라도 머물러 달라고 조르는 눈치를 멀리하고
어느새 조급한 마음이 되어 승용차로 헐레벌떡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우리가 정말 우습다.
그래서 해 뜨는 마을 진산리 깻돌해변에서 달팽이를 닮자고 두 발로 느림의 미학을 새겨보니
집나온 방게가 반가워서 어쩔줄 몰라 하면 손님맞이가 분주하다.
<집나온 방게의 손님맞이>
깻돌은 바로 몽돌로 이곳 섬에서만 통용되는 방언이다.
자갈돌이 세월에 씻겨서 모나지 않은 둥근 돌이 되기까지
파도는 불평 없이 자그락거리며 되풀이되는 세월을 참아왔으리라.
그 깻돌해변에서 바라보는 노적도가 한없이 한가로워 발길을 붙들고 있다.
<진산깻돌해변에서 바라보는 노적도>
지금이야 1000만 관객이 예사롭게 들리는 한류세상이 되어버렸지만
1993년 당시야 외화에 눌려
한국영화치고 100만 관객이라며 박수를 오래오래 칠 성공작이요
아마도 남의 것을 흉내 내며 버텨오다
우리 것이 제대로 먹힌 대단한 상품이 바로 서편제 일 것이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풍광을 누구라도 길게(5분 30초) 담고자 내숭을 떨었는지도 모른다.
억지로 꾸며 만드는 막춤이 아니라 덩실덩실 어깨춤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 조화를 예상하면서 임권택 감독은 진도아리랑을 흥얼거렸을지 누가 알겠는가?
흘러나오는 자진모리장단에 저절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문경 세재는 웬 고갠가~ 굽이야 굽이굽이가 눈물이 난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흠흠흠 아라리가 났네~~
저기 있는 저 가시나 가슴팍을 보아라. 넝쿨 없는 호박이 두덩이나 달렸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흠흠흠 아라리가 났네~~’
청산도 슬로길은 1~11코스까지 42.195Km니 바로 마라톤 코스가 아닌가?
다행스럽게도 날씨는 개어 길 걷기에는 안성맞춤이지만
그 길을 달팽이 걸음으로 완보할 수는 없고
그저 서편제길만 돌아보기로 하고 완도로 향한다.
너무 억울해 할 것도 없이 진도아리랑 가락에 흥이 겨워 실컷 놀아나지 않았는가?
<서편제 촬영지에서 바라보는 도락리 해안선 풍광>
<서편제 촬영지에서 바라본 구들장논과 도청항 원경>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손들이 자동으로 덩실거리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완도타워로 가는 길에 가을국화가 노랗게 반기며 축제준비가 한창이고
경로우대로 완도타워 승강기를 공짜로 오르며 묘한 웃음을 짓는다.
맑은 날에는 태종대에서 대마도가 보이듯이 먼빛으로 제주도를 살피기 위해~~
<완도타워에서 바라본 신지대교 원경>
<국화아줌마의 하루는 끝나가는데~>
<국화축제가 열리는 완도타워를 배경으로>
<막걸리도 한잔 하면서 분위기를 맞추고~>
완도까지 왔는데 해신촬영장을 지나치며 안 된다는 생각으로
경로우대라고 슬쩍 생색만 내는 산책로를 따라 청해포구로 발길을 옮겨본다.
고증으로 잘 다듬어진 청해진 본영을 중심으로 해신에서 정도전까지
꽤나 많은 영화나 드라마를 찍는다고 아담한 포구를 배경삼아 한동안 시끌벅적 했을 터인데
평일이라 듬성듬성 보이는 경로우대만 마주칠 뿐 밥집마저 문을 걸어놓은 상태라
오늘은 완도읍내에서 푸짐하고 뜨끈뜨끈한 감자탕으로
허기진 밥통을 달래며 소란스런 하루를 접는다.
<해신 세트장이 있는 청해포구로>
<고증으로 복원된 청해진 본영입구 망루>
<고증으로 복원된 청하장원>
<세트장 양진포구 가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