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 갔더니 솔직히 우편물의 양이 너무 적어서 놀랐습니다. 매주 화요일은 '애드보'라고 불리우는 광고 메일이 나오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그것까지 합쳐서도 우편물은 겨우 기본적으로 여덟 시간 근무할 수나 있을까 싶은 양이었습니다. 다른 라우트 30분을 도와주라는 수퍼바이저의 말에 고개를 끄덕하고 일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이 일은 30분은 훌쩍 넘기는 양이었지만, 그래도 여덟시간이 되기 전에 일을 끝낼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우편물의 양은 경기 상황의 바로미터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솔직히, 개인과 개인간의 편지는 이미 이메일이나 텍스트 문자로 대치된 지 오래고, 청첩장 같은 거나 개인적인 우편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소포와 이런 개인적인 편지가 우편물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이젠 채 10%도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고지서 아니면 광고 우편물입니다.
사람들이 우습게 여기는 광고 우편물들은, 실은 우체국 입장에서 보면 가장 큰 수입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엔 오래 전부터 카달로그 샤핑과 디렉트 메일 등의 광고가 발달해 있었는데, 이젠 그것조차도 온라인 샤핑이 대체하고 있는 형편이라 우편물의 양이 그러잖아도 많이 줄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경제한파가 오래 지속되면서 기업들은 운영경비를 어떤 식으로든 절감해야 하는 지경이 됐고, 광고야말로 그들의 첫 예산삭감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먼저 없어지기 시작한 것은 신문광고였습니다. 이미 종이신문은 TV 와 다른 온라인 매체들에 비해 속보성이 떨어지는데다, 전문적인 뉴스가 아니라면 지역 방송과 신문의 차이가 그다지 크게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종이 신문에 광고할 기업들이 나가 떨어지자 당연히 그 충격은 그대로 종이신문으로 전가됐습니다. 이 지역에서 150년동안 운영돼 오던 허스트계의 시애틀 포스트 인텔리젠서 지가 폐간되고나자, 이 지역엔 시애틀 타임즈 하나만 달랑 남게 됐습니다.
그리고 많은 기업들이 우편 광고인 '디렉트 메일'을 중단했고, 연방우정국의 수입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USPS 의 올해 예상손실액은 65억달러. 이미 올해만 해도 지금까지 2만 5천여명의 직원이 감원된 상태입니다. 한때 80만명에 달했던 연방우정국의 직원이 현재는 65만 5천명 정도이며, 직원 추가 고용은 아예 없다고 봐야 합니다.
연방공무원 신분인 우리도 상황이 이럴 정도이니, 일반 사기업들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사기업들의 감원 바람은 그동안 감원이 잦았던 제조업 분야는 물론, 감원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IT 쪽에까지 미쳐서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워싱턴주의 대표 기업에서도 수천명의 직원이 해고를 당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것은 요식업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바깥에서 밥 먹는 걸 꺼리니, 식당들은 파리만 날리고 있는 셈입니다. 자주 찾았던 레드몬드의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인근 '토다이' 시푸드 부페가 문을 닫은 사건은 개인적으로도 충격이었습니다. 지난 10일 갑자기 문을 닫은 건데, 렌트비 8만달러가 밀려 이 식당이 입주해 있는 '레드몬드 타운 센터'에서 소송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지금까지 이 식당의 인기로 볼 때 8만달러면 겨우 며칠 장사하면 만들 수 있는 수입이었을텐데, 상황이 더 이상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메뉴의 특수성으로 볼 때 한인들도 당연히 많이 찾는 곳이었고, 인기도 있던 곳이었지만 경기 불황에는 장사가 없는 법. 결국 폐점이라는 운명을 맞고야 말았습니다.
그나마 이 '먹는 장사'가 잘 되고 있는 곳은 저렴한 햄버거집들 정도인데, 불황이 깊어갈수록 맥도널드나 버거 킹 같은 패스트푸드 점이 잘 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입증된 바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수퍼마켓에서 직접 먹을 것을 사서 '샌드위치를 싸 가지고 다니는' 시대가 된 겁니다. 우체국에서도 도시락 가지고 다니는 친구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러나, 수퍼마켓들도 불황을 직접 체험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이 붐비던 코스트코 같은 곳도 평일엔 매장이 썰렁하다는 것을 피부로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일단 '소비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닌데다가, 고르고 골라서 필요한 것만을 사는 알뜰 쇼핑족이 엄청나게 늘어난 까닭입니다. 하긴, 아예 직장이 떨어져 버린 사람들이 천정부지로 늘어난 상태에서는 그저 '생필품'만이 팔릴 뿐입니다. 이런 까닭에 일부 수퍼마켓들은 잘 나가던 한 때 잔뜩 쟁여 두었던 비 생필품들을 싼 값에 쳐서 없애버리는 경우가 많아 알뜰 쇼핑족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있긴 합니다만.
저는 와인을 좋아해서 디렉트 메일로 배달되는 마켓 광고지에서 와인 가격을 유심히 쳐다보는 편입니다. 제가 잘 찾는 와인은 병당 10달러 대의 저렴한 것들인데, 불황을 반영하듯 대중주인 맥주의 소비는 늘고 와인은 재고가 쌓였는지 대폭 세일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때 10달러 선에 팔리던 '콜럼비아 크레스트 그랜드 에스테이트' 급 와인이 병당 7달러대로 가격이 뚝 떨어지고, '병당 20달러 이상 와인 무조건 가격 20% 할인' 이라는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방식의 '와인 땡처리' 가 열린 곳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래도 안 팔린다는 겁니다.
제일 안된 사람들은 집값이 가장 비쌌던 2-3 년 전에 막차를 탔던 사람들입니다. 그때 제 배달구역에 있는 콘도미니엄, 그러니까 우리나라 개념의 매매 가능한 아파트들은 35-40만달러 정도가 기본이었습니다. 그랬던 매물들의 가격은 지금은 20만달러선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로케이션에 따라서는 1/3 이상 빠진 곳들도 꽤 되는 셈입니다. 이미 입주해 있는 사람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집값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계속 집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건데, 여기서 모기지 페이먼트가 한두달만 밀리면 바로 은행에서 차압 통보가 날아온다는 것입니다.
이 수많은 일들이 모두 해결되기엔 시간은 요원해 보입니다. 앞으로 1-2년 안에 이같은 상황이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적어도 시애틀 지역은 아직도 바닥을 치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그러나 이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이들 중 대다수가 2년 전 '부동산 불패론'을 외치며 가시적으로 붕괴의 조짐이 있었던 부동산 거품에 투자를 권했던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수많은 일들이 이렇게 불확실성 아래 놓여 있는 상태에서, 미국의 '구매력' 은 당연히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어 있는 상태이고, 그 때문에 세계 경제 자체가 쪼그라들어버리는 상황입니다. 사실, 어쩌면 이런 것 때문에 우리는 무분별한 신자유주의의 도입을 피해야 한다는 큰 교훈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 세계 각 경제블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거나 맺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 쓸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의 FTA는 그것이 과연 경제 활성화에 어느정도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듯 합니다. 게다가 우리가 이를 통해 주력 수출 상품으로 만드려는 자동차 같은 것은 불황에 절대로 나가지 않을 상품들이고, 특히 소형차가 강세인 유럽에서는 더더욱 판매가 쉽지 않을 터이고... 반면 '생필품'에 가까운 유럽산의 의약품, 농산물 등은 분명히 국내 기업과 농가의 어려움을 배가시킬텐데, 이 같은 상황에서도 이른바 '성과지상주의'가 논의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 건지, 재삼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애틀에서...
첫댓글 우리 벌 받는 겁니다. 흥청 망청 빚내서 쓰던 옛날의 빚을 갚는거지요...문제는 갈길이 아직 멀다는 이야깁니다. 동경 부동산 시세는 80년대의 5분의 1로 주저 앉았는 데... 미국은 거품이 빠지려면 아직 멀었지 싶네요.. 거품이 꺼져야 재기를 할수 있는 데 말입니다. 다~ 레이건 시대 렌트 콘트롤 없앤 것,. 바보 그린 스펀인지 하는 멍충이가 경제 이론을 무시하고 이자율 싸게 해서 만든 거품 덕분입니다. 거의 달러가 휴지가 될 날이 멀지 않았지 싶네요...상업용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아주 큰 파도가 밀려 오고 있습니다. 이 럴 때는 촌에 작은 땅(5 에이커 정도)에 먹는거 자급자족하는 게 길게 살아 남는 방법입니다. 철밥통이라던
시청 공무원도 레이오프 당하는시절이라... 어느 데도 철밥통 없네요..시청 공무원하다 감원된 내 아이, 알바하면서 엄청 고생합니다....언제나 이 불황이 끝날런지...
중국 달러 보유고가 2조 달러가 넘었고, 그 반이 미국 국채라든가 하던데... 달러가 휴지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
제가 처음 미국 땅을 디덪을 때도,,, 불경기... 한해...한해....넘겨 갈때마다,,,불경기,,,, 올해도 불경기... 내년 되면,,,또 불경기,,,, 휴~~ 언제나 불경기 소리 안 듣고 살지 모르겠습니다. 전,,, 지금 단호히,,, 말합니다. 불경기...불경기,,, 말로만 많이 들었지,,, 전 피부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영원한 백수(?)니깐염~~~!! ㅎㅎㅎㅎㅎㅎㅎ 즐거운 하루 되세염~~~!!!^^*
불경기라는 말을 들은지가 벌써 몇년째인지...이젠 이 흐름이 경제의 흐름인듯 이러고 삽니다. 정말 피부로 느껴지는 호경기가 언제나 올지..아님 이렇게 세월은 흐르고 말지....어쨋든......생활의 바퀴는 구릅니다........다들 힘내시고 화이팅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