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의 핵심교리 중에는
삼법인三法印이 있습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이 삼법인 입니다.
이 삼법인은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으로 불경 속에 삼법인의 가르침이 들어있으면 불법의 도리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요의경了義經이라 하고 삼법인이 담겨 있지 않으면 불요의경不了義經으로 판단 합니다.
이 토록 중요한 가르침이 삼법인 인 것입니다. 그런데 삼법인 가운데 제해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이 덧 없이 변해 간다는 가르침은 크게 어럽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 사바세계의 삶이 괴롭고 생노병사生老病死등의 변화를 직접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열반적정涅槃寂靜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자리이기 때문에 깊은 이해를 요하는 사항이 아닙니다.
문제는 제법무아諸法無我입니다.
모든 것이 무아이다. 이 무아無我야 말로
중생인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이자 숙제입니다.
제법무아諸法無아는 무슨 의미인가?
제법諸法이란 모든 사물이나 존재를 일컫는다. 무아無我란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모든 존재는 홀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관계를 맺으며 생겨나고 사라진다.
나 자신도 고정된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 다르다.
나의 연속적인 행위만 있지 고정된
나의 실체가 없다.
다시 말하면 나가 분명히 있는데 왜 나가 없다고 하느냐?
사람들은 이것 부터 이해가 되지않습니다. 10년전의 나의 겉 사람과 속 사람.
현재의 나의 겉 사람과 속 사람.
10년후의 나의 겉 사람과 속 사람.
이 중에서 참 나는 과연 누구이고 무엇 입니까?
이렇듯이 고정되어 멈춰져있는 나가 없어 끊임없이 윈인과 조건에 의해 변해 가는데도 불구하고 변해가는 가짜 나를 참 나라고 오인하고 착각하는 현상을 전도몽상顚到夢想
이라고 합니다.
나가 있다고 생각하니 너가 있다고 착각합니다.
너와 내가 있으니 여기에서 부터
괴로움이 시작됩니다.
시기와 질투.
편가르기.
오만과 교만.
탐착과 싸우고 빼앗고. 등등
괴로움의 근본 원인은 탐貪.진嗔.치痴.지요.
즉 어리석음과 탐욕과 성냄 입니다.
가짜 나를 참 나로 착각하여 사는 것이 어리석음 입니다.
이 제법무아의 근본적인 진리를 깨달으면
이 괴로움의 근본적인 원인이 해소 됩니다. 무아無我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으면 열반적정을 이룰 수 있는데도 무아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열반의 낙樂을 누리지 못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제법무아라고 할 때의
그 나는 과연 무엇인가?
아주 깊은 내용보다는 중생의 입장에서 당장 극복해야 할 나에 대한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기적인 나 입니다.
이기심으로 움직이는 나가 본래 없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불교공부를 계속하여 깊은 경계에 들어가면 주관과 객관이 사라지게 됩니다. 주관과 객관이 사라진 자리.
그 자리가 무아無我입니다.
거기에는 나 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기적인 나, 자기 중심적인 나 가 없습니다.
나가 없기 때문에 아주 공정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있을뿐 남과 나를 비교를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나가 있다(유아:有我)고 생각하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이기심이 작용하여, 모든 생각을 나에 맞게 생각하고, 나 쪽으로 끌어들여 다른 사람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를 다른 사람과 계속 비교 하면서
자기 학대를 합니다.
사실 모든 학대는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지 남이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오히려 괴로우면 남을 탓 하고,
주변에 있는 분을 탓 합니다.
그리고는 더욱 깊은 괴로움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입니다.
이제 눈을 뜨십시요.
우리의 본래 모습은 무아 입니다.
나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 본래 모습입니다.
제법무아諸法無我 !
저 하늘에 구름이 걷히면 해가 나오듯이 우리가 무아임을 아는 것과 동시에 굉장한 지혜智慧가 발동이 됩니다.
아울러 나를 가장 잘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되며 남과 더불어 반목과 갈등 없이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 입니다.
짚과 새끼줄을 예를 들어 우리는 새끼줄을 나로 보고 있습니다.
겉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새끼줄에 집착하듯이, 나가 있다는 생각이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새끼줄이 아닙니다. 새끼줄을 만들어 낸 것은 짚 입니다. 무아입니다.
나가 있다는 생각. 새끼줄이 나라는 생각은 진실이 아닙니다.
착각이요.
허구입니다. 착각이요 허구이기 때문에
그 나에 집착하면 집착 할 수록 괴로움이
더 커지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착각을 깨고 우리의 존재 원리 그대로 새끼줄과 짚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허망하고 무상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밝은 지혜가 나와 자주적이고 편안하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입니다.
실로 무아임을 알고 사는 것.
이것 이야말로 자기를 가장 잘 보호하는 방법이요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무아임을 알고 살면 결과적으로 남을 돕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남을 돕는 것이 나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곧 무아이기 때문에 남과 나를 함께 살릴 수 있는 것 입니다.
서로가 돕고 서로를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세계.
만약 우리의 가정이나 사회가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불국토가 펼쳐지는 것 입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스 님! 감사합니다.
도반님! 감사합니다.
☆참고서적
조계종 신도전문 필수교재 '불교개론'에서

대한불교 조계종 천년고찰 백양산 운수사
불교대학 제40기 -寶雲 合掌-
첫댓글 우리의 본래 모습은 무아 입니다.


나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 본래 모습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