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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다-대안적 삶을 꿈꾸다] 19. 감물 귀농학교 1박2일 "귀농요? 농업 지식 쌓고 스스로 도구 만들 정도는 돼야죠" ▲ 어른 서른 명이 온종일 매달려 평상 2개를 만들었다.
평상을 만드는 게 최종 목표는 아니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땀의 가치와 노동의 대가를 배웠다.
천주교 부산교구가 지난 5월 31일~7월 13일 경남 밀양시 단장면 감물 생태학습관에서 7주 동안 진행한 1기 귀농학교 수강자들이 6일 '평상 만들기' 실습을 마친 뒤 자신들이 만든 평상에 앉아서 환하게 웃고 있다.
천주교구 차원에선 전국 최초로 지난 4월 경남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에 감물 생태학습관을 연 부산교구가 개관 한 달 여 만인 지난 5월 31일 '자립적 소농의 삶'을 주제로 한 제1기 귀농학교(이하 감물 귀농학교)를 개강해 13일 졸업미사와 함께 7주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부산귀농학교 '생태귀농학교'(현재 9월 10일 개강 예정의 제41기 모집 중·051-462-7333)에 이어서 부산권에선 드물게 선보인 '감물 귀농학교'는 학습관과 실습장(논 2천 평·밭 900평 등)을 동시에 갖추고, 1박2일 기숙형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1기 대부분의 수강자가 가톨릭 신자였지만 비신자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등 종교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
부부 3팀을 포함해 20대에서 60대까지, 총 30명이 수강한 '감물 귀농학교'의 6주차 수업이 한창이던 지난 5~6일 생태학습관에서 보낸 1박2일과 '그 이후'를 스토리텔링 기사로 소개한다.
■퇴근 후 여행하듯 밀양으로 금요일 회사 업무를 끝내고 승용차 편으로 부산을 출발했다.
본 강의는 오후 8시30분부터였지만 대개 오후 7시부터 모여서 다함께 저녁식사를 한다고 했다.
낯선 사람들과의 1박2일이라 밥이라도 함께 먹으면 더 빨리 친해질 것 같아서 서둘렀다.
천주교 부산교구 '1기 귀농학교' 경남 밀양서 7주 프로그램 진행 식량문제·GMO 다양한 주제 토론 "농사 고통·자발적 가난 수용해야" 자기 손으로 평상 만들기 실습 참가자 온종일 톱질·끌질·망치질 "자급자족 고민할 수 있어서 유익" "생명에 기여하는 농업 가치 배워" 밀양IC를 내려서 단장면에 접어들자 하루 종일 오락가락 하던 비도 잦아들었다.
해거름에 감물리로 넘어가는 여정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엔 운무가 자욱했고, 도로 좌우로 보이는 논밭에선 초록의 기운이 충만했다.
도시에서의 고단한 일상을 끝내고 마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라고 할까. 감물 생태학습관을 찾아가는 귀농학교 수강생들 기분이 매주 이랬겠구나 싶었다.
-유영일 관장신부님을 찾아왔습니다. "
저기, 식당 앞에 사람들 모여 있죠. 딱 봐도 신부님처럼 보이는 그분을 찾아가시면 됩니다.
" '신부님처럼 보이는 분'이라는 말만큼 애매한 답변이 있을까.
하지만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여느 본당 신부와는 달라 보였지만,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에, 간디 스타일의 안경, 깡마른 그분이 유영일 아우구스티노 관장신부였다.
톱질, 끌질… . 도시에 살면서 직접 해 볼 일이 얼마나 되던가. 하지만 귀농·귀촌을 하게 되면 사정은 다르다.
'농사짓는 신부' 유영일(톱질하는 이 중 왼쪽) 감물 생태학습관장도 귀농학교 수강생들과 끝까지 함께했다. "뭐, 취재할 게 있다고 왔어요? 그냥, 하루 편하게 쉬다 가세요.
힐링이 별건가요!" 부산교구 내에서도 몇 안 되는 '농사짓는 신부' 중 한 사람인 유 신부와의 첫 만남이었다.
유 신부는 지금 천주교 부산교구 생태환경사목인 조성제 임마누엘 신부와 함께 생태학습관에 상주하면서 새로운 '생태적 삶, 공동체적 삶,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따르는 삶'의 모습을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감물 귀농학교도 그 과정 중의 하나였다.
■농사-농업-농민-농부 : 첫날 이론 강의 저녁식사를 마치고 강당으로 자리를 옮겨 강의를 들었다. 이날의 강의는 감물 생태학습관 농업교사로 있는 정경식 선생이 들려준 '유기농 38년을 돌아보며'. 제목은 유기농업이었지만 '식량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GMO와 공장식 축산, 안전한 밥상' 등 주제강의와 토론으로 이어져 온 귀농학교 1기 프로그램을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정경식 농업교사의 강의 모습. 정 선생이 던진 키워드는 크게 네 가지였다. '농사-농업-농민-농부'. 귀농·귀촌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고민해야 할 개념이다. 그가 말했다. "이제 여러분은 어떤 농사를 지을 것인가를 먼저 선택해야 합니다. 농사는 여러 가지 품목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런데 혹시 투쟁하는 농민들이 짓는 '아스팔트 농사'는 들어봤나요? 아니면, 일도 안 하고 대규모 농사를 짓는 '다방 농사'는 요?" 자본이 개입된 농업에 대한 질책이기도 했다. 그의 거침없는 발언은 이어졌다. "우리나라 농정을 위해서 농민에게 뿌리는 돈이 근 45조 원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 돈이 다 어디로 갔나요? 농민을 위해서 뿌려진 돈이 엄청 많은데 왜 농민들은 못 사냐 이거죠." 그의 푸념어린 답도 이어졌다. "오늘의 농업 구조는 한 농가를 규모화시키고, 단일화시키고(한 가지를 대량생산), 그 사람에게 정부는 지원해 주겠다는 거죠. 그게 WTO, FTA 협상 속에 들어있는 거잖아요. 농민에게 직접 돈을 주어서도 안 되고, 농산물을 국가가 직접 수매할 수도 없게 돼 있어요. 너희가 알아서 팔아라는 거죠. 그게 현대농업으로 넘어오면서 소위 과학농업, 첨단농업이 되는 거잖아요. 우리만 쩨쩨하게 아직도 호미로 풀을 매고 있는 게 현실이에요. 머리로는 농사짓기가 달콤하고 공기 좋고 물 좋지만 노동으로 들어가면 고통이거든요." 하지만 그의 경험에서 우러난 농사 철학은 분명했다.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들려주는 세 가지 충고이기도 했다. "고통을 희열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가난을 자발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불편한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풍요로운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 삶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 같았다. 그의 말처럼 생명이 무엇인지 맛을 봐야, 비로소 자연 속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테고, 생명 농사에 대한 희열을 맛보지 않고, 어찌 그 뙤약볕 아래서 온종일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만 하면 좀 더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온 지금은 오히려 '느리게 가자, 좀 천천히 가자'를 인식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뒤를 한 번 돌아보자'는 취지는 귀농학교의 본질에도 맞닿아 있었다.
본격적인 농업 이야기로 넘어갔다.
유기농업, 관행농업(관에서 주도하는 농업·농약 쳐라, 수확 많이 하라, 종자 개량시켜라 등 일종의 제도 농업), 오리농업(제초 작업을 위해 오리를 방사하는 것), 우렁농업, 자연농업, 예술자연농업, 생명역동농업, 태평농업, '되나게나'농업…. 정말 많은 농업 종류가 우리 앞에서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농업도 선택이기 때문에 자기 취향과 철학에 맞춰서 선택을 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김영삼 정권에서 친환경농업(유기농)이 정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친환경농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혜택을 준 건 맞지만 이젠 그것마저도 도를 지나쳐 상업적인 용도로 변질돼 버렸다는 것이다.
'자립해야 한다, 소농해야 한다,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여전히 주변부를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 역시 현재 유기농업을 하고 있지만 상업적으로 흘러가는 현실 앞에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유기농업도 결국 상업적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미래농업은 아닌 것 같다는 말만 숙제로 던져주었다.
그렇다면 미래농업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톱질, 끌질… . 도시에 살면서 직접 해 볼 일이 얼마나 되던가.
하지만 귀농·귀촌을 하게 되면 사정은 다르다.
"농사짓는 백성 '농민'의 '농(農)'은 별 진에 노래 곡이 합해졌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농이란 것이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농이라는 것은 씨를 뿌려서 가꾸고, 거두는 작업까지 해야 하는데 그것을 농부가 해야 한다는 겁니다.
농민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귀농학교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겐 농부가 되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새로운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가라지라 여겨지면 불태워야 합니다. 물론 도시문명 자체를 불태울 순 없으니까 새로운 씨앗, 생명의 씨를 뿌리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혼자는 되지 않기 때문에 공동체로 하라는 것입니다." 약간은 충격이었다. 귀농·귀촌이라는 막연한 개인적 바람만 생각했지, 그것과 맞물린 우리 농업 현실과 생명농업에 대해선 무심했던 것 같아 부끄러웠다. 이어진 시간은 자유토론. 식당으로 삼삼오오 모여서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다.
정해놓은 한계선은 자정이었지만 이야기가 깊어지면서 현실의 시간은 새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집 짓는 마음으로 평상 만들기 : 둘쨋날 실습 다음날이 밝았다.
오전 6시30분 새벽미사와 함께 새로운 일과가 시작되었다.
오전 8시30분부터 6주차 이틀째 수업이 시작됐다.
이날의 강사는 이경수 건축가와 박재열 작가. 두 사람은 아침 일찍 소나무를 트럭에 잔뜩 싣고 생태학습관으로 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자기 손으로 가구 만들기와 집짓기 실습'을 해야 하지만 1박2일 짧은 일정으로 그 주제를 소화하기에는 무리겠다 싶어 '평상 만들기'로 대체됐다.
10여 명씩 2개 조로 나눠서 가로 2.4m×세로 1.8m×높이50㎝ 평상을 만들기로 했다.
한옥 제작 기초 원리를 익힌다는 의미에서 톱질이든 끌질이든 모두 수작업으로 하고, 전통 목조 건축물을 만들 때처럼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는, 짜 맞춤 방식으로 전개했다.
나무에 줄긋기부터 시작됐다. 한 사람이 연귀자와 직각자를 들고 정해진 규격에 맞춰 나무마다 연필 표시를 했다.
다른 사람은 표시 눈금을 따라서 톱질을 시작했다.
생각만큼 톱질은 쉽지 않았다. 힘을 빼고, 톱으로 길을 내고, 톱질을 하라고 일러 주었건만 아차 하는 순간, 삐딱선을 타기 일쑤였다.
누군가 '죽 먹고 할 일'은 아니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실제가 그랬다.
오전 10시가 넘어가면서 끌을 쓰기 시작했다. 딱딱딱! 볼망치 치는 소리가 여기저기 울려 퍼졌다.
'끌질은 야금야금! 결 방향으로! 연장은 살살!' 다루라는 강사의 조언도 이어졌다. 한 방에 끝내겠다고 내려치다가는 손을 다치거나 파내야 할 부분에서 엇나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작업을 해나갔다.
평상 다리 9개 중 한 짝 작업을 겨우 끝낸 유 신부가 말했다.
"평상 하나 만드는 것도 예삿일이 아닌데 집은 우째 지을꼬~" 그러자 톱질을 하던 장송범(대건안드레아·덕계성당) 씨가 말을 받아서 "흥부네 집에선 도대체 어떻게 작업을 한 건지…"라고 혼잣말처럼 말하자 사람들이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전나미(율리안나·구포성당) 씨도 한마디 했다.
"가족들끼리 모여서 인내심을 갖고 평상 하나 짜고 케익 하나 자르면 정말 기분 좋겠는데요.
" 오전 11시20분. 얼음까지 띄운 수박화채가 참으로 나왔다.
뙤약볕 아래서 두세 시간 정도 노동을 한 뒤여서 그런지 꿀맛이었다.
하지만 다들 조금씩 지쳐갔다.
오죽했으면 박경진(나자로·양정성당) 씨는 "차라리 밭에 가서 풀을 베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낮 12시. 점심시간을 알리는 꽹과리 소리가 들렸다.
'이제 해방이다~' 싶었다.
새벽까지 이야기꽃을 피우고, 아침 일찍부터 몸을 움직였더니 식사와 함께 피곤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졸업을 앞두 1기 임원진(회장 김명복·에드몬드·남산성당)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방으로 올라가 살짝 오수를 즐겼다.
오후 2시, 작업이 재개됐다.
평상 한 개당 상판 17개씩 34개에 대한 따내기 작업이 이어졌다.
18㎜를 남겨두고 끌로써 따내기 작업을 한다는 게 만만찮았다.
한쪽에선 루터기로 골 파기를 했다. 가장 나이 어린 손성진(26·밀양두레기금 너른마당 회원) 씨는 라우터(Router)기 작업을 하는 이 작가를 거들기는 했어도 감히 직접 다룰 엄두는 못 내었다.
오후 3시가 되자 겨우 상판 끼워 넣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정말이지 이런 식이라면 일요일이 다가도록 작업을 하거나 아예 평상을 못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힘든 마무리 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자를 재고, 금을 긋고, 톱질과 끌질, 망치질을 했건만 원 치수에 착오가 있었던지 상판 쪽 1㎝ 정도가 벌어지고 말았다.
어쨌든 최종적으로 평상이 완성되기는 오후 4시15분께. 한 순배 자축의 막걸리가 돌았다.
그리고 평상에 하나둘 걸터 앉아보았다.
단체로 기념촬영도 했다. 땀 흘린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의 웃음을 그제야 마음껏 터뜨렸다.
꼬박 하루 걸린 평상 만들기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어서 그나마 가능했으리라.
땀의 가치, 노동의 대가는 거저 얻어지는 법이 없다는 걸 깨우칠 수 있었다.
■그리고 1주일 후… 졸업미사가 포함된 7주차(7월 12~13일) 수업이 진행되던 날, 수강생 중 몇몇은 새롭게 만든 평상에서 단잠을 잤다.
몇몇은 윷놀이도 했다.
1기를 수료한 하원종(안토니오·이기대성당) 씨는 "막연히 귀농·귀촌에 관심이 있어 참석했지만 강의와 체험을 통해 우리가 현재 먹고 있는 먹을거리 문제와 앞으로 다가올 식량위기를 느끼면서 자기가 먹을 것이라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한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유 신부는 특히 마지막 특강에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오로지 자신의 몫이지만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니까 나도 그렇게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건 주체적이지 못하며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에 내 삶을 내가 온전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귀농학교를 마치면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이 시대가 무엇이 잘못돼 있는지,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어떤 길을 가야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면서 특히 신앙인으로서, 어떤 길을 가든, 어떤 취지에서든 하느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조 신부는 "농업의 가치, 이것이 작게는 내 가정에서부터 세상의 평화, 생명의 살리는 데 이바지했다는 것에 대해서 배웠을 것"이라면서 이것을 디딤돌로 세상에 나가서 생명의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기원했다.
한편 2기 귀농학교 일정은 현재로선 미정이지만 감물 생태학습관에선 '정농회' 연계 프로그램 및 대 시민강좌 월례모임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문의 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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