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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회주의역사] 발표자료 8장1절 이탈리아와 독일에서의 파시즘의 승리
윤교 06 한정아 추천 0 조회 413 08.07.08 07:09 댓글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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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7.08 22:17

    수정했습니다.

  • 08.07.08 20:25

    파시즘은 사회주의적 이상의 궁극적 승리에 대한 최대의 위협으로 등장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파시즘과 나치즘이 사회주의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건 세계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난항과 정치적 혼란에 있어 파시즘과 나치즘이 사회주의보다 더 효과적이고 매력적이였기 때문입니다. 또 반동적 정당이 혁명적 정당보다 훨씬 더 급격하게 성장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지 않았던 독일과 대부분 유럽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파시스트의 점증하는 위험을 거의 깨닫지 못하고 파시스트와 싸울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점은 파시즘의 대두에 사회주의자들이 잘 대응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 08.07.08 22:18

    비록 파시스트 운동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운동을 붕괴시키진 못했지만 파시즘과 나치즘의 대두는 당시 사회주의 이념과 운동이 현실과는 괴리가 있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 08.07.08 21:29

    * 강미현 : 1) 사회주의,공산주의 -> 2) 보여주고 ->

  • 08.07.08 22:18

    수정했습니다.

  • 08.07.08 20:48

    이번 절에서는 국수주의적 성격의 파시즘의 형성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요, 파시즘은 부르주아적 자유주의적 문화에 대항하면서 반근대적이었으며 민족주의 신념아래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독일의 히틀러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틈을 공략하였으며 파시스트의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역사상 최대 위기였으며 단순한 자본주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민중들은 파시즘의 반(反)공산주의, 반(反)사회주의, 국수주의, 단순하고 세뇌적인 선전 등에 매력을 느꼈으며 따라서 강제적이 아니라 선동에 이끌려 파시즘을 지지했습니다.

  • 08.07.08 20:48

    이것은 민중의 나약함이기도 하지만 집단주의 폐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만큼 이 시대적 배경이 상당히 열악하여 민중은 자그마한 희망에도 쉽게 반응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 08.07.08 21:47

    사회주의자들이 파시스트에 패하게 된 궁극적인 원인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있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의 파시스트가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배경이 있었다. 또 사회주의자들도 파시스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반혁명 세력의 성장을 당연시 받아드렸고 깊은 우려를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탈리아의 사회주의자들은 당파주의, 반뭇솔리니동맹의 비타협으로 뭇솔리니의 정권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고, 독일에서는 모스크바의 파시스트에 대한 방관, 공산주의자의 비방투쟁, 나찌스가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태도의 고수로 인해 결국 파시즘이 승리하게 되고 사회주의적 이상의 최대의 위협으로 남게 되었다.

  • 08.07.08 21:45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은 18세기 말부터 누적되어 온 사회적 불안과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만성적 공황 및 전승국·패전국을 막론한 정치적·사회적 불안에서 초래된 각종의 혁명적 기운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세부적으로 보자면 독일은 1차세계대전 패전후 승전국으로부터 철저한 응징을 당하였으며, 어느정도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으나 낙후된 국제적 지위는 국민적 불만을 낳았습니다. 또한 이탈리아는 승전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리품 배분에 있어 푸대접을 받아서 불만이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 기존 정당·의회 및 정부의 부패·무능·비능률 등 병리현상이 만연 하였고, 정치적 사회적 집단간의 충돌도 일어 났습니다.

  • 08.07.08 21:47

    그리고 경제공황으로 실업율이 극에 달하면서 국내정치의 불안정이 고조되어 갔지만 기존 정치세력이 사태를 효과적으로 수습할 능력을 상실하면서, 무정주적 진공상태를 메우기 위해서 파시즘이 등장하였습니다. 결국에는 파시즘이 기존의 기득권 세력인 사회주의, 공산주의 세력을 누르고 대중의 지지를 얻어서 권력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08.07.08 21:57

    전쟁후의 경제공황과 피폐해져서 민중의 삶이 고달파졌습니다. 이때 무너진 자존심을 치유해 주면서 ‘민족주의’를 주장하고 화려한 선전기술을 동원하면서 때에 따라서는 전쟁도 불사하겠는 ‘파시즘’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의 행동적인 모습에 민중들은 동요되었습니다. 이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마땅한 대응을 하지 않고 방관한 결과 파시즘이 독일과 프랑스를 장악 하였습니다. 결국 ‘나치즘은 자본주의의 마지막 숨결을 의미할 뿐’이라고 하였던 냉소와 자만이 사회주의적 이상의 최대의 ‘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 08.07.14 07:05

    전쟁, 실업, 공황, 사회불안정, 그리고 집단별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탄생한 파시즘은 경제적인 안정을 일으켰다. 파시즘은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이탈라아의 무솔리니가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비록, 파시즘이 나찌의 확대를 촉구하였지만, 그 당시 파시즘의 등장으로 조금이나마 사회가 공황에서 벗어나 평온한 삶을 유지하게 해 준 요소가 되었다. 파시즘 또한 사회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등장한 이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08.07.13 23:13

    * 윤지은 : 1) 이론중 하나라고 ->

  • 08.07.14 07:05

    수정하였습니다.

  • 08.07.08 22:07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자유주의와 같이 복잡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지지자를 확보해 온 사상들과 달리 파시즘은 단순하고 전근대적인 이론과 감정에의 호소로써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보이며 효과적으로 대중을 사로잡았습니다. 전쟁이 더 이상 먼 얘기가 아니었던 혼란한 시기에 프롤레타리아의 국제화를 말하는 사회주의는 받아들이기에 따라 대안이 엇갈렸고, 파시즘은 자기방어적임과 동시에 가장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며 무솔리니나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의 출현을 가져왔습니다. 사회주의가 반동의 사상이라면 파시즘은 반동에 대한 반동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파시즘은 사회주의가 당면한 가장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 08.07.08 22:09

    이탈리아의 파시즘은 무솔리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원래 사회주의자였지만 마르크스이론과 거리를 두었고 반정부주의자, 조합주의자, 반실증주의자였으면 혁명보다는 전쟁을 더 선호하였습니다.그래서 당에서 배척당했지만 사회주의 혁명후 소부르주아는 정부의 관심이 미흡하다 여겨 무솔리니를 구원자로 수용하였습니다.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등장하였고 그는 국가사회주의를 내세워 KPD를 억압하고 노동조합을 해체시켰습니다. 또한 이탈리아보다 단기간에 파시즘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패배를 의미하였고 결국 파시즘은 공산주의의 최대적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 08.07.08 23:19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파시즘의 선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표를 들으면서 그는 참 영악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회주의의 일체성을 흡수하고 소부르주아의 옹호를 통해서 즉 대립하던 양자를 혼합해서 공산주의에 소외되던 세력의 구미에 딱 맞는 이론을 만들어냈으니까요. 그는 확실히 자기 편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명백히 그 결합의 추구는 대공황의 루즈벨트나 레닌의 것처럼 긍정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가 영상물을 통해 익히 살펴보았던 철저한 살육전(제 2차 세계대전)의 발단이 된 사상이었으니까요.

  • 08.07.08 23:28

    어쩌면 일체성의 강조조차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거나 ‘가진 자’를 보호하기 위한 구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파시즘을 미친 민족주의 혹은 일체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독일의 나찌즘도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겠지요. 아무것도 모르고 이렇게 철저하게 변장한 사상들에 환호했을 민중들을 상상하니 소름이 끼칩니다. 눈에 빤히 보이는 사상의 파괴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 시대의 민중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할만큼 눈멀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겠지요. 아니면 폭력에 지나치게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 08.07.08 22:33

    세계 대공황, 정치적 불안 등을 위기로 느낀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국가가 필요했습니다. 당연히 나치즘과 파시즘의 강력한 방식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겠지요. 결국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는 파시즘이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파시즘은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이념으로서, 민족주의는 사회주의자들이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던 계급주의의 산물입니다. 때문에 파시즘은 사회주의적 이상의 궁극적 승리에 대한 최대의 위협이 되었던 거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표면적으로는 패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주의자들은 파시즘의 등장으로 많은 고민 후에 공산주의 운동을 다양화 시킵니다.

  • 08.07.08 22:33

    공산주의자들에게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주고, 사회주의의 질적 발전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파시즘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08.07.08 22:41

    파시즘의 등장은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등을 부정하며 민족주의와 극단적인 사회주의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체주의의 등장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일시적인 과시적 성과에서 국민들의 지지로 인해 단기적인 파시즘의 승리를 가져왔으며, 서구사회주의자들 뿐 아니라 공산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 08.07.08 22:46

    파시즘은 대두는 무능력한 정부와 지도자, 그리고 혼란한 경제상황이 맞물리면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나타났다. 이 같은 시대적 상황은 권위주의, 특히 군사적 덕목을 찬미하는 정치적 분위기로 이어졌고 이러한 파시즘은 개인보다 국가를 우위에 두고서 그것에 대표 격인 지도자에 대한 믿음으로 표현되면서 무솔리니를 통하여 이탈리아 파시즘의 형태를 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파시즘은 독일에서 히틀러를 통한 나치의 형태로 보여 졌지만 그것은 파시즘의 연장선상의 모습이었고 이러한 파시즘은 그 당시 이탈리아와 독일의 시대적 산물이 되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08.07.13 23:14

    * 이우인 : 1) 강력함 힘을 ->> 2) 근시안적 이었습니다. ->

  • 08.07.08 22:56

    이탈리아의 파시즘의 주역은 무솔리니였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에 빠져들지 않았고 교리적, 도덕적 고려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극적이며 폭력적이었고 전쟁을 무엇보다 매력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독일은 히틀러를 내세우며 나치즘에 열광했다. 둘 모두 자국 민족주의 원리를 내세웠고, 그 결과는 학살과 전쟁으로 나타났다. 자기 민족을 위한다는 명제가 어떻게 다른 이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 08.07.08 23:11

    공산주의를 위협하는 나치즘이 걸출한 마르크스를 배출한 독일에서 생겨났다니 재밌습니다. 파시즘이 점차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서구에서 그 세를 더해가는 데에는 전쟁, 대공황 등 어려운 시대적 배경도 있었지만, 그보다 그 상황을 개선시킬 러시아 스탈린주의와 같은 강경한 개혁이 없이 미적지근한 대응의 답답함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 러시아와는 대조적으로 불안에 빠진 사람들을 강하게 선동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파시스트가 승리를 하기 쉬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비 온 뒤에 땅이 더 단단히 굳듯, 이후 각성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거대한 재성장이 이뤄진다는 것에 기대를 해 봅니다.

  • 08.07.08 23:19

    무솔리니의 권위주의 통치방식은 이탈리아 국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끊임없는 파업과 소요 속에서 시달려온 국민들은 파시즘의 현란한 선전기술과 중세풍의 의장에 마음을 빼앗겼으며 경제가 안정궤도에 오르고 조국이 지난날의 영광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독재정치에 복종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무솔리니는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가져다줄 인물로 인식되었다.

  • 08.07.08 23:33

    사회주의적 성격을 띤 파시즘은 공통점도 가지고 있었지만, 반근대적이고, 침략과 파괴적 성향을 옹호하였습니다. 무솔리니 그 자신은 애국적 사회주의자에서 국수주의, 반공주의로 성향이 점진되어졌습니다. 무솔리니도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아니, 히틀러보다 먼저 세계 대공황 타개와 국내적 정치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의 힘을 뭉치는 구심점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됩니다.

  • 08.07.08 23:36

    파시즘은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기반으로 삼아 더욱 군국주의로 치달았습니다. 이 파시즘은 사회주의적 이상의 궁극적 승리에 대한 최대의 위협으로 등장했습니다. 독일에서의 파시즘은 독일민족지상주의와 뭉쳐 나치즘으로 발전됩니다. 그 정점에 히틀러는 우상화 되고 독일에서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 08.07.08 23:37

    옹호-擁護, 애국-愛國, 국수주의-國粹主義, 점진-漸進, 타개-打開, 구심-求心, 참전-參戰, 기반-基盤, 승리-勝利, 위협-威脅, 패배-敗北

  • 08.07.09 02:06

    이탈리아와 독일에서의 파시즘의 승리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춥고 배가 고프더라도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까지는 버리지 않았었는데 파시스트들은 그들이 편리한 방향으로 세상을 해석하여 개방적이지 못하였으며 인종차별등의 추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됩니다.

  • 08.07.09 02:15

    1차 대전 후의 불안과 공황, 전쟁에 대한 압박 속에서 사회주의는 민중들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하였고 이러한 요소들은 파시즘의 등장을 초래 하였습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정권은 독재적이고 권위주의적이지만 그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불안한 사회 속에서 민중들은 파시즘에 기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의 민족주의적 성향과 과감한 행동력은 사회를 안정시켰지만 전쟁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 08.07.09 12:44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파시즘이 승리, 파시스트의 등장 배경에는 전쟁후의 정치적, 사회적 요소들이 있다. 이탈리아 정부에서 농촌과 도시의 소부르즈와의 특권과 재산을 보호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유일한 해결책은 파시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독일의 히틀러는 전쟁을 겪으면서 생긴 정치적, 사회적 불안에서 강력한 민족주의적 이념으로 지도자가 된다. 결국 파시즘은 희망을 안겨주지 못하는 지도자와 상황 속에서 새로운 세계로의 열망에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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