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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기쁨, 아름다움, 베품의 정의
글 : 이 클라우디아(해인) 수녀님
<성 베네딕도 수녀회>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좋은 관계는 대가를 치를 때 만들어지는 결과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것들이 투자되어야 하겠지요...
좋은 점을 보는 것이 눈의 베풂이요,
환하게 미소 짓는 것이 얼굴의 베풂이요,
사랑스런 말소리가 입의 베풂이요,
낮추어 인사함이 몸의 베풂이요,
착한 마음 씀이 마음의 베풂이라 합니다...
어쩌면 아쉬운 것은 흘러가버린 시간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매 순간을 기뻐하고 감사할 줄 몰라서
행복으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산책]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글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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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기적은 우리 가운데에... (사순 제1주간 수요일 복음)
글 : 윤 클레멘트 (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 신부>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하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루가 11,29)
이 복음 말씀으로부터 생각할 수 있는 배경에는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의 완고함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는 그 당시 사람들의 모습들을 예수님께서 안타까워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느낄 수 있겠습니다.
“이 세대가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 시대나 오늘날의 우리 시대나 똑같이 우리 사람들의 마음은 그 어떤 표징, 기적, 특별한 것을 보여주거나 나타내 줌 등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봅니다.
예컨대, 루르드나 파티마의 기적, 혹은 작디작은 그 어떠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현상들도... 그 곳에, 그 현상들에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열광하고 모여들곤 합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서,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의 기적들은, 하느님의 현존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는데...
우리가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
우리 자신들이 부르심을 입고 살아가는 것,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부당함과 송구함에도 우리가 한 소명인으로 살아가는 것,
세상과 그 안에 속한 우리 사람들의 어처구니없음에도 우리 교회는 존재하고 살아있는 것,
다른 여느 본당이나 공동체처럼 참으로 다양한 우리 자신들이 여기에 함께 모여 살아갈 수 있는 것...
그 모두가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오늘 여기에서 날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들려오고 묵상하며 우리의 삶에 지극한 영향을 주는 것, 성체와 성혈이 메마르고 황폐하기도 하는 우리의 부당한 가슴과 영혼을 적시고 새롭게 하는 것... 그 모두는 저는 오늘 여기에서의 기적이라고 이아침에 묵상하고 싶습니다.
이 아침의 거룩한 전례와 지금 우리들의 거룩한 모임도 분명코 지금 여기에서의 기적임을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의 첫 번째 독서에서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할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는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요나 3,10) ”
날마다 순간마다 당신의 말씀과 성체, 교회와 우리들의 모임들 안에서 당신의 성령으로 새롭게 하시고 부르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오늘도 이아침의 말씀과 성찬의 제사를 봉헌하고 싶습니다.
“주 하느님, 주님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주소서.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 (시편 51장)
오늘 축일로 지내는 십자가의 성 요한(1495-1550)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무렵에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의 기도 중에 들었다고 한다.
“요한아, 네가 나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하던 일은 바로 나를 위해 해주던 일이란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면서 만지던 손은 나의 손이었고, 네가 감싸주고 옷을 입혀주던 몸은 나의 몸이었으며, 네가 손수 씻어주고 닦아주던 그들의 더럽고 헤어진 발은 곧 나의 발이었단다...”
- 신부님의 ‘순례자의 노래’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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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가르침 학습하기 >
교회생활에서의 신앙 감각 - 제 3 부 -
✓ 43. 이브 콩가르는 ‘개별신자의 신앙 감각’과 ‘믿는 이들의 신앙 감각’에 관한 교리의 발전과정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그는 [평신도 신학을 위한 지표]에서 이 교리를 교회의 예언자직무에 대한 평신도들의 참여라는 관점에서 탐구하였다. 콩가르는 뉴먼의 연구 성과를 잘 이해하고 그와 동일한 틀, 곧 교회의 삼중 직무와 예언자 직무의 표현인 ‘믿는 이들의 신앙 감각’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가 이 틀을 뉴먼에서 직접 찾은 것은 아니다, 콩가르는 ‘신자들의 신앙 감각’을 “교계와 전체 신자의 몸에 함께 주어진” 성령의 은사로 묘사하며, 전통을 이루는 신앙의 객관적인 현실과 믿음의 은총이라는 주관적 측면을 구분하였다. 이저의 저자들이 ‘가르치는 교회’와 ‘배우는 교회’의 구분을 강조했지만, 콩가르는 그 유기적 일치를 보여 주려고 노력하였다. “사랑을 실천하며 믿음을 지키는 교회 곧 신자들의 몸은 개별 행위나 판단이 아니라 생생한 신앙의 유산의 보존에서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라고 콩가르는 기술하였다. 교계의 가르침은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 44. 콩가르의 노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다양한 방식으로 반영되었다. ‘교회헌장’ 제1장 ‘ 교회의 신비’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성령께서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시고(요한 16,13참조), 친교의 봉사로 일치시켜 주시며, 다양한 교계의 은사의 여러 가지 선물로 교회를 가르치시고 이끄시며 당신의 열매로 꾸며 주신다.(에페 4,11-12; 1코린12,4; 갈라 5,22참조). 그리고 계속해서 [’교회의 헌장‘] 제2장에서 교회를 평신도와 서품된 이들의 구분에 앞서 하나의 전체, 곧 ’하느님의 백성‘으로 다룬다. ’신앙 감각‘에 대하여 언급한 항(교회헌장 12항)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령께서 도유를 받는 신자전체는(2요한 2,20.27참조)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다. ”진리의 성령“께서 일깨워 주시고 지탱해 주시는 ”초자연적 감각“은 ”하느님 백성 전체, 곧 주교로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신앙과 도덕문제에 관하여 보편적인 동의를 보일 때에“ 비로소 드러난다. ’신앙 감각‘으로 ’하느님 백성은 거룩한 교도권의 인도를 받으며 교도권에 충실히 따르는 백성은 그 가르침을 이미 사람의 말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1데살 2,13참조).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신앙 감각‘은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해진 믿음‘(유다 3절 참조)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능동적인 능력이자 감수성이다. 확실히 ’신앙 감각‘을 통해 하느님 백성은 ”그 믿음을 온전히 지킬“뿐 아니라 ”올바른 판단으로 그 믿음을 더욱 깊이 깨닫고 그 믿음을 실생활에 더욱 충만히 적용된다.“ ’신앙 감각‘은 하느님 백성이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참여하는 수단이다.
✓ 45. 이어서 교회헌장은 각각 제3장과 4장에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예언자직을 교회의 목자들만이 아니라 평신도들을 통하여 어떻게 수행하시는지를 서술한다. 공의회는 주님께서 “영광이 온전히 드러날 때까지” 이 직무를 “당신의 이름과 권력으로 가르치는 교계만이 아니라 평신도를 통해서도” 수행하신다고 가르친다(35항 참조). 이어서 평신도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평신도들을 증인으로 세우시고 ‘신앙 감각’과 말씀의 은총을 주시어(사도 2,17-18;묵시 19,10참조), 가정과 사회의 일상생활에서 복음의 힘이 빛나게 하셨다.” 성사 생활로 굳건해진 평신도들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믿음을(히브11,1 참조)알리는 힘찬 선포자들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세상의 복음화를 위하여 귀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또 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신앙 감각’은 신자들에게 선사된 그리스도의 은사로 소개되며, 신자들이 하느님 계시의 진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며 선포할 수 있는 능동적인 능력이라고 재차 묘사된다. ‘신앙 감각’은 신자들의 복음화 활동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 46. 또한 ‘신앙 감각’은 사도 신앙의 전승이라는 맥락에서 교리발전에 대한 공의회의 가르침에 언급되고 있다.‘ 계시 헌장’에서는 사도들에게서 이어 오는 이 성전이 “성령의 보호 속에 있는 교회 안에서 발전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의회는 “전해진 것들과 말씀에 대한 이해의 증진”이 이루어지는 세 가지 방법을 지적한다. 곧 “마음깊이 그것을 새겨 간직하는(루카 2,19.51참조)신자들의 명상과 공부, 영적인 것들에 대한 좀 더 깊은 인식을 통해 쌓이는 경험, 확고한 진리의 은사를 받은 이들[주교들]의 설교이다. 비록 이대목이 ‘신앙 감각’을 지칭하지 않지만, 신자들의 명상, 공부, 신앙 감각과 관련된 체험은 모두 분명히 ‘신앙 감각’과 관련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공의회 교부들이 교리 발전에 관한 뉴먼의 이론을 의식적으로 언급한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교회헌장’12항에서, 신앙 감각이 성령께서 일깨워주신 ‘초자연적 신앙 감각’이며, 목자들의 지도를 받는 하느님 백성이 신앙 감각을 통하여 자기신앙을 굳건히 지킬 수 있다고 묘사한 것에 비추어 [‘게시헌장’에 나오는]이 내용을 해석하면, 그것이 같은 생각을 표현하고 있음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게시헌장’은 사도로부터 이어져 오는 신앙의 실천과 고백에서 주교들과 평신도들 사이에 존재해야하는 ‘유례가 없는 일치’를 언급하면서, 마리아에 관한 두 교의들의 정의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바로 ”목자들과 신자들의 탁월한 합심“이라는 표현을 실제로 사용한 것이다.
✓ 47. 공의회 이후 교도권은 ‘신앙 감각’에 관한 공의회 가르침의 중요한 점들을 되풀이 강조하면서, 새로운 문제를 다루었다. 곧 교회 내부(또 외부의) 여론을 ‘믿는 이들의 신앙 감각’과 반드시 같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중요한 지적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권고 [가정 공동체 1981]에서 “초자연적 신앙심은 신자들의 합의“와 ”사회적 통계 조사 연구로 얻어진 다수의 의견“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숙고하였다. 교황은 ‘신앙 감각’이 오로지 또는 필연적으로 ‘신자들의 합의’에만 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서술하였다. 교회의 목자들은 ”모든 신자 안에 신앙 감각을 촉진하고, 그 표현의 순수성을 고찰하여 유권적으로 판단하며, 더욱 성숙한 복음적 식별로 신자들을 교육해야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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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일
2018. 2. 4
마르코 1, 29~39
♠ 복음 공부 : 하느님 나라 위대함을 드러내는 표징
* 29-31절 : 시몬의 장모를 고치시다. 마르코가 가파르나움의 하루를 엮으면서 활동 근거지를 ‘시몬의 집’으로 정한 듯하다. 시몬 베드로는 원래 벳사이다 출신이나 결혼하여 가파르나움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 열병에 걸린 장모를 치유하신다. 당대의 사람들은 마귀 때문에 열병이 걸린다고 생각하였다. 이 치유기적은 그리스인들의 치유양식인 상황묘사. 기적적 치유, 치유실증. 목격자들의 반응 순으로 엮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는 예수님께서 손수 손을 잡아 일으키고, 열이 떨어졌다하여 즉각적이고 완전한 치유가 이루어졌음을 강조한다. 짐작컨대 대외적으로 전도할 때, 설교나 교리를 가르칠 때 이적사화를 애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정신병자나 육체적 정신적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을 고쳐주셨는데 일종의 정신요법이라 하겠다. 병이 나은 부인은 예수 일행의 시중을 들었다. ‘시중들다’(diakoneō섬기다) 는 말은 예수님께서 ‘섬기러 왔다’는 말씀과 연결해 보면 치유된 이가 치유한 분에게 드리는 적합한 응답이며 예수님의 치유 은총으로 병자가 남을 섬기는 제자직의 바람직한 모습이기도 하다. 마르코가 둔한 남성과는 달리 여성 제자들의 본보기를 보인 예를 곳곳에서 소개하고 있다.
* 32-34절 : 많은 병자를 고치시는 이 대목은 예수님의 활동을 요약한 집약문으로 안식일이 지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마르코는 예수님의 능력을 강조하기 위해 온갖 질병을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냈다고 전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서 해방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다스림이 예수님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실현됨을 시사해 주는 구원의 표징이라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한편 마귀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말하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는데 이것은 메시아의 비밀과 연결된 함구령이다. 예수님의 진면모가 마귀들에 의해 드러날 수 없고, 예수님의 기적은 그분이 누구신지 드러내주는 하나의 표징일 뿐 예수님의 전인격을 드러내지 못한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그분을 따르고 그분처럼 살아야 한다.
* 35-39절 : 예수님은 외딴 곳에서 기도로 시작하며 복음을 선포하신다. ‘외딴 곳은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상징적인 의미로써 소외당하는 변두리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이 기도하고 계신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신원의식을 기반으로 아버지와 깊은 친교를 나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그 뜻에 따라 사명수행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광야는 유혹의 장소다. 제자들이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라고 유혹의 말을 던진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으려는 이 말에는 하느님 나라 실현의 궁극적 목표를 잘못 이해하고 유명해지시라는 비열한 생각이 담겨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제안을 단호히 배격하고 중요한 것은 명성이 아니라 자신이 실현해야 할아버지의 계획을 잘 알고 계셨다.
♠ 복음 요약 :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라는 질문이 마르코 복음서와 마르코가 선택한 주제의 핵심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초점은 ‘다가온 하느님 나라’로 보인다. 실제로 “때가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기적은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하느님의 힘이 그들 백성들에게 묶여 있던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한다. 그러나 치유 기적은 우리처럼 예수 시대 사람들은 종종 영적 평화보다는 육신의 평안에 더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1장에서 전형을 보인다. 주변 인물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시몬의 장모가 긍정적이라면 시몬을 비롯한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을 이해 못한다. 예수님의 치유 능력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군중을 피해야 했다. “다른 이웃 동네를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이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군중들은 예수님이 설교하는 것만 힘들게 한 것이 아니라 기도와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 심지어 먹는 것마저 곤란하게 한다. 예수님이 치유 받음을 함구령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육신의 치유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예수님의 설교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군중은 욕구가 충족되는지 여하에 따라 머물기도 하고 떠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는 것이다.
♠ 대화 방향 : ① 예수님은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해방시켜 줍니다.
나를 부자유스럽게 하는 것과, 내가 치유 받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② 나는 영적 건강과 육체적 건강 중에 어느 족에 더 관심이 있는지요? 그리고 어느 쪽을 우선시하는지 드러내는 행동은 어떤 것인지요? 그리고 두 가지가 어떤 연관을 가질까요?
♠ 참고 문헌 : ▪ 마르코 복음 읽기 ( E.M발란친 지음, 김수복 옮김 / 성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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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6주일 / 세계 병자의 날
2018. 2. 11
마르코 1, 40~45
♠ 복음 공부 : 예수님과 소외된 사람들
* 40~41절 : 예수님께서 당신을 공적으로 드러내신 몇몇 특징인 행동을 21-34절에 모은 반면에 가파르나움을 떠나 갈릴레아에서의 활약상에서는 변두리에 살고 있는 가장 잊혀지고 소외당하고 천대받은 나병 환자를 치유하신 하나만을 전한다. 곧 더러운 영에 대한 승리(23)와 비교되는 ‘정화(淨化)다. 나병이란 오늘날의 나병(한센병)을 포함하여 온갖 피부질환을 말하며, 병은 죄의 결과이고 천형(天刑)으로 간주되어 부정한 죄인으로 외딴 곳에서 다른 사람과 접촉을 피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겪게 되는 소외감은 물리적인 고통보다 더 심각했다. 이 이야기에는 예수님의 인간다운 면모인 병자를 치유하실 때 보여주신 “연민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일부 수사본에는 “화를 내다”로 되어 있는데, 그리스어 스프링크니조마이는 가여워서 애끓는 마음을 가리킨다. 환자는 깨끗하게 해주기를, 나병의 치유를, 다른 사람처럼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청한다. 무릎을 꿇는 자세는 존경과 탄원의 자세로 본인이 와서 치유를 청하는 첫 번째 사례다. 예수님은 “가엾은 마음“을 느껴 그의 처지를 안타까워하고, 고통을 함께 느끼시며 접촉해서는 안되는 나병환자를 스스름없이 만지시며 사람이 감이 하지 못할 일을 하신다. 사람들은 놀란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하시자, 즉시 마치 더러운 영이 떠나듯 환자는 깨끗해졌다.
* 42~45절 : 치유된 증거로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정화예식을 거쳐 사제의 확인을 받으라고 분부하신다. 이로써 그가 온전한 사회 구성원이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보여 준다. 나병을 고치는 것은 죽은 이를 되살리는 것에 버금가는 행동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음을 드러내는 표징으로 죽은 이들의 부활과 함께 메시아 시대의 은혜로 헤아려진다(마태10.8:11.5). 이런 연유로 함구령이 내려진다. 예수님은 당신의 행동이 오해 받기 쉽고, 동시에 정결법을 고수하는 사람들의 공격을 받지 않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치유받은 나병환자는 병이 나은 기쁨에 가득차서 함구령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린다. 이로 인해 예수님은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분은 나병 환자를 만졌고, 정결법에 따라 불결해졌음을 알고 계셨다. 예수님 자신이 하신 일로 몸소 소외되고 주변화된 사람이 된다. 우려한대로 곧 이어 예수님과 지도자가 충돌하게 될 것이다.
♠ 복음 요약 : 예수님께서는 활동근거지인 가파르나움을 떠나 가장 소외된 변두리에서 나병환자를 만나 복음을 선포하신다. 예수님의 치유행위로 이제 더 이상 소외된 자가 아니고, 그들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사회활동과 종교생활이 이 허용된다. 정화의 목적은 관계의 회복에 있고, 이런 활동은 힘없는 사람에게 복음이며, 이 자리가 바로 예수님을 만나는 특별한 자리다. 복음은 말하는데 그치지 않고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나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기적에 더 관심이 있었다. 치유가 되더라도 치유는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의 중심에 놓이지는 않는다. 치유는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과 구원을 보여 주는 표징일 따름이다. 함구령을 내렸음에도 치유 받은 사람은 가는 곳마다 소식을 퍼트린다. 청중 가운데 처음으로 나병환자가 선교활동에 가담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하신 일로 말미암아 소외되고 주변 사람이 되어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지체치 않고 통제하기 시작된다. 그리스도인이 나병환자처럼 주님께 와서 청할 것은 온 세계의 생명들이 온갖 상처에서 깨끗해지는 것, 하느님 나라와 그분 뜻의 실현이다.
♠ 대화 방향 : ① 오늘날 소외된 사람들의 사회 참여를 위축시키고 가로막는 법이나 관습이 있는지요? 실례를 들어보고 이때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나누어 보세요.
② 예수님의 권위를 가지고 행하는 구마. 이적행위가 표징으로 보여주는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순간 체험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이제 와 있는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알 수 있는 신앙의 자세가 갖추어져 있는지요? 아니면 바리사이들이 표징을 요구하듯이 어떤 표징을 바라고 있지 않은가 기도한 후 나누어 보세요.
♠ 참고 문헌 : ▪ 마르코 복음 읽기 ( E.M발란친 지음, 김수복 옮김 / 성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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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1주일
2018. 2. 18
마르코 1, 12~15
♠ 복음 공부
* 12~13절 : 공관 복음의 세 기자들은 예수께서 세례받으신 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광야로 나갔음에 대하여 모두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광야'란 성경 문학적으로 타인과 완전히 결별된 곳, 또는 귀신들의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당시 예수께서 실제로 금식하셨던 광야가 과연 어디였던가에 대해서 의견이 구구하다. 즉 혹자는 모세와 엘리야의 금식 장소였던 호렙산으로, 또는 외경 '히브리인의 복음'에서는 다볼산으로, 그리고 또 다른 이는 여리고 근처의 한 곳으로 보기도 한다.
* 14~15절 : 그 두 사람은 모두 불의한 자의 손에 의해 죽음으로써 그 최후를 맞는다. 따라서 예수의 갈릴리 사역이 막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십자가의 짙은 피내음이 풍겨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의로운 요한이 잡혔다는 것은 분명히 당시의 불의(不義)한 시대상을 반영해 준다. 예수는 나중에 세례 요한에 대해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자가 바로 그라고 평하셨다. 그러나 요한은 메시야의 선구자적 사명을 다 하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이지 그의 위대성을 인정받고 들림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그는 메시야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마친 후 역사의 무대에서 조용히 사라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관 복음서 기자들은 공히 예수님의 공생의 시작은 세례 요한의 투옥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 복음 요약 : 마르코 사가는 예수님이 세례자요한을 만나고 그에게 세례 받고 하느님의 아들임을 알게 되고, 공생활하기 이전에 광야에서 유혹을 받았다고 간략하게 기술한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승천이후 제자인 베드로와 바오로가 선교활동을 할 때에 예수님어록을 참조하여서 복음서를 준비한 반면에 마르코는 베드로의 통역관으로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들은 얘기를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마르코사가는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보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대고선 ‘이 땅에 하느님나라를 세우려 내가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려 하셨다. 그분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고 기록하셨다.
♠ 대화 방향 : 사순시기를 부활을 준비하는 시기이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낮은 자로 오셔서 공생활을 하시기 이전에 죄 없으신 분이신 데도 광야에서 40일 동안 유혹을 받으셨다고 한다. 우리의 고난도 이런 의미에서 볼 때면 축복이라고 한다. 나는 이런 어려운 시기와 특히 가까운 사람과 다툼이 있을 때에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성서형제회 공동체내에서 이런 일이 있다면 봉사자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울러 나눠 봅시다.
♠ 참고 문헌 : ▪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분도 출판사) ▪ 보득솔 (청년성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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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일
2018. 2. 25
마르코 9, 2~10
♠ 복음 공부 :
* 2~4절 : 예수님께서는 3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기도하시러 변화산에 오르신다. 그런데 그들 앞에서 그분의 모습이 변하신다. 그분의 옷은 세상에서 볼 수 없는 하얗게 빛나는 옷으로 변하였다.
* 5절 : 예수님께서 모습이 변하신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갑자기 엘리야와 모세가 함께 예수님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으로 보게 된다. 제자들은 갑자기 나타난 두 사람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예수님과 대화 내용을 듣고 두 사람이 모세와 엘리아인지 알게 되었다.
* 6절 : 그리고 그들은 놀라고 겁에 질려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아에게 초막을 지어서 바치겠다고 말한다. 제자들은 전승으로만 들었던 모세와 엘리아가 나타나자 그들에게 최고의 인사를 드리는 것이 바로 초막 셋을 지어서 바치겠다는 것이었다.
* 7~8절 : 하지만 그들은 하늘에서 구름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제자들은 하느님의 음성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게 된다.
* 9~10절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활하실 때까지 지금 본 것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분부하신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켰다는 것을 성서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 복음 요약 : 예수님께서는 3명의 제자들에게 거룩한 모습을 보여 주신 것처럼, 우리들에게는 미사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보여 주신다. 사도 바오로가 고린도서에서 말한 내용이 미사 중에 이루어진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 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고린토 2서4, 17-18) 우리는 끊임없는 기도를 통한 주님의 체험함으로써 내적 변화와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기도를 통한 깊고 풍요한 내적 삶이 된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의 시작은 기도였다. 끊임없이 기도할 때 하느님께서는 적절한 때 당신 최상의 방법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신다. 하느님께서 구름 속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이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그의 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말씀이다. 성서이다. 따라서 기도와 더불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역시 주님의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말씀과 기도가 하나로 결합된 매일의 미사와 성무일도이다. 요한바오로 2세를 추기경시절 폴란드에서부터 수행했던 치비시 추기경은 이렇게 회고하였다. “그분의 모든 활동, 즉 사람들과의 만남, 현안에 대한 결정, 사목방문, 하느님의 말씀의 선포, 학술활동 등은 그분의 기도에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정말 바쁘게 사셨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기도가 있었습니다. 이점에서 저는 그분께 강한 인상을 받았고, 그것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비서였던 카봉고 신부는 말한다. “교황님은 매일 기도하기 위해 일찍 일어 나셨습니다. 그리고 아침 7시에 그분의 개인 경당에서 거룩한 미사를 거행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는 그분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미사 후에는 감사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 대화 방향 : 우리는 주님 사랑 안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서서히 변화되어 간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음으로써 우리 역시 변할 수 있다. 일상 삶 안에서 우린 하얗게 빛나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해 주신다. 이런 빛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옆에 있는 성서형제회 형제들이다. 그 사람들은 입에서 감사와 칭찬이 나오며 험담과 비판은 나오지 않는다. 그 사람들의 입에서는 항상 웃음소리가 나오며 평화의 말이 나온다.
♠ 참고 문헌 :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 강론 (성요셉 수도원) ▪ 천금 말씨 (차동엽 신부)
▪ 나의 삶을 바꾼 사람 (요한 바오로 2세,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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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구청 방문 신년 인사 >
교구장님과 함께...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ㆍB
차기 전국조정 봉사자 : 오 스테파노 (광근)
+ 찬미 예수님
어제 좋은 날! 교구장님과의 만남을 위해 직장에 하루 연가 신청을 냈다.
새벽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내의 투정 섞인 말을 들으며 아침을 먹고(밥 빨리 먹고 가라는..), 서울 당산동 성당에서 만남을 위해 길을 나선다.
오늘따라 겨울의 모질고 매서운 바람이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 정도로 세차게 분다. 그래도 함께 하기로 한 여정이니 마음속으로 체념하며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옮긴다. 안산역으로...
영등포구청역에 내리니 오전 7시 41분. 역전 5번 출구로 나와 급한 대로 성당 안으로 들어가 몸을 녹였다. 약속한 여덟시가 다 돼가는 데 모이기로한 사람들은 보이질 않았다. 성당 청소원인 듯한 형제와 몇 명의 형제들만 눈에 띌 뿐...
잠시후 보나벤뚜라 형제와 미카엘 형제님이 오고, 레오 형제님께서 오셨다... 레저형 최고급형 카니발을 몰고...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8시 20분쯤 전주를 향하여 출발했다.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서부순환 도로를 빠져나오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그 후론 쌩!!
전주 회원들과 전동성당에서 만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아 취소하고 대신 교구청 가까이 있는 호림식당에서 보니파시아 전국봉사자님께서 마련한 다슬기 비빔밥을 먹으며 오늘 교구장님과의 만남을 조정하고 교구청에 도착하니, 오후 1시 40분...
박 보나 자매님을 비롯한 여러 자매님들께서 우리보다 먼저 와 있었다.
조금 의아했다. 애초 교구장님을 5층 집무실에서 만나 뵈려 했지만 워낙 많은 인원이 들어갈 수 없어서 4층 식당에서 뵙기로 비서 수녀님과 조율, 오후 2시부터 교구장님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교구장님께서는 권위주의적일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모임 내내 교구장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그저 편안하게 해주셨다.
그리고 활동이 정체되어 있는 성서형제회에 따끔한 충고의 말씀도 해주셨다.
그것은 성서형제회원들이 현재 자각하고 있는 문제, 즉 이웃사랑 실천에 대해 소극적 행동보단 실천하는 회원이 되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 말씀은 우리 성서형제회 회원들이 새겨두어야 할 말씀 같다.
교구장님과 사진을 찍고 여러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오늘 교구장님 뵙길 참 잘했다는 다짐(?)과 함께 귀로에 올랐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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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봉사자 월례회의 스케치 >
높은 곳 이문동 성당에서 시작하다...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ㆍB
서기보 : 권 토마 (순)
+ 찬미 예수님
겨울 한파가 누그러들 무렵 이문동에서 전국 봉사자 월례회의를 가졌다.
시작은 이문동본당신부님이 하셨다. "성서형제회는 어떤 단체입니까?" 라고 조심스럽게 질문하시자, 어느 단원이 "성서를 사랑하는 모임입니다."라고 답하자, 준비해 오신 것을 풀어내기 시작하십니다.
40분여 강의는 우리가 성서를 어떻게 보고 있는 지부터 시작하십니다.
그동안 성서에 관해 개신교에 비해서 열등감을 가졌고, 때로는 평신도로서 한계를 느끼는 우리로서는 새로운 접근일 수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신부님은 올바르게 처신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깊은 관심을 갖고, 각자 노트에 빼곡히 적어들 간다...
성서는 교회의 것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개인성화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지 못해서 활동중심이고 지식적으로 접근하는 기회를 많이 가졌다. 공동체성, 영성의 오해, 십자가 등으로 성경의 주요 내용을 언급하신다.
힘없고 약한 자를 통해 드러내시고, 그들을 통해 이루시는 주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셨다...
오늘 내용은 제가 한 번에 써내려가기에는 주제넘게 보이기도 하여 일부만 적어본다
우리가 그동안 말씀을 개념적으로 받아들인 이유가 분명히 있었음을 느끼게 한다.
방 레오 형제님께서 준비한 점심식사를 맛있게 먹고 난 후 월례회를 계속하였다.
복음은 연중2주일 ‘첫 제자들’이었다. 나눔은 전원이 참석하였는데, 오전 신부님의 강의가 우리에게 강하게 남아있음을 각자 고백 안에 묻어 내린다. 이어 2017년 동안의 활동을 전국조정봉사자가 설명하시고, 나눔 중간에 3시가 되어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구하는 기도’를 봉헌하였다.
3월의 ‘FB묵상회’ 일정과 팀별 분담을 조율하고, 다음 2월 월례회의는 50년사 준비를 위한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정지품신부님이 계시는 천안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교구장과 영적지도신부님에 대한 애기도 나누었다.
인천의 방레오 형제님 부부가 참여하셔서 그 자매님의 육순생신과 아나스타시아의 영명축일을 케이크를 마련 조촐하게 축하드렸다.
높다란 언덕위의 이문동성당에서 한해의 시작을 내려다보면서 다들 따뜻한 봄날을 기대하며 기쁜 맘으로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갔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유다인과 모든 예루살렘 주님 앞에 선포한 요엘예언은 우리의 길을 밝힌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 그리하여 너희 아들딸들이 예언을 하고, 너희 젊은이는 환시를 보고, 너희 노인들은 꿈을 꾸리라..."
'너희 젊은이는 환시를 본다.'의 영어는 'Your young men will see Visions'
특히 어려움에 처해있는 젊은이들에게 성서의 힘으로 그들이 비전을 보게 하리라... 아멘...!
< FBI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크든 적든 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7년 12월 입출금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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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소식란 >
♠ 2월 <F·B봉사자 월례회의> 안내
- <FB 봉사자 월례회의>를 다음과 같이 갖고자 하니, 각 팀 봉사자들은 모두 참여 부탁드립니다...
※ 일시 : 2018년 2월 3일 (토) 오전 11시 시작
※ 장소 : 정지풍 (아킬레오) 신부님 계시는 곳 (충남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성불사길 41 번지 )
※ 교통편 : 전철 (급행) 두정역 하차한 후, < 81번 버스 > 를 탈 것, 신안25통 정류장 하차.
※ 안건 : ① 각 지구, 팀별 현황 보고 (팀 월례보고서, 지구 월례보고서를 2부씩 작성, 발표, 1부 제출)
② FB 동계 묵상회 검토 및 협의
③ 기타 안건 협의
※ 참가 대상 : 각 지역, 각 팀 봉사자 (교구 및 팀 말씀선포자) 형제자매님 (각 팀 1명 참석 요망 )
※ 문의 사항 : 전국 조정 말씀선포자 : 이 보니파시아 (정혁) ☎ 010-3228-5328
♠ 3월 <FB 묵상회> 안내
※ 일 시 : 2017년 3월 3일(토) ~ 4일(日)
☞ 집합 시간 : 3월 3일(토), 오후 1시까지 도착바람 (점심식사는 본당별로 미리 해결하고 오실 것))
※ 장 소 : 천호성지 성당 (교육관) <☎ 063-263-1004 / 전북 완주군 비봉면 천호성지길 124>
☞ 가능한 한 네비게이션을 이용하여 성당까지 올라오세요... (서행 안전 운전 필수 )
※ 참가 대상 : 각 지역 각팀 모든 형제자매님과 비회원도 대환영
※ 참가비 : 60,000원 ( 장애우는 면제 / 팀 봉사자는 참고 바람)
※ 준비물 : 성경, 교본, 미사준비물, 묵주, 필기도구, 여벌옷, 세면도구, 개인 비상약 등....
※ 협조 사항
① FB 연수회를 위한 ‘준비 9일기도’ 를 바칩시다.
☞ 청원기도 : 2월 22일 ~ 3월 2일 / 감사기도 : 3월 3일
② 각 회원들은 평소 좋아하는 ‘짧은 성경구절을 하나씩은 꼬옥 암송’ 해오세요.
③ 각 팀봉사자는 2월 22일까지 ‘참가자 인원수와 명단, 팀명칭’ 을 홈페이지 <FB자료 제출방>에 제출
☞ 음식 및 장소 준비, 조편성 및 명찰 제작에 절대적으로 필요.
④ 명찰 준비하지 말 것 --> 본부에서 일괄 제작 배부.
⑤ 행사 음식 및 후원금 협조
☞ 팀 또는 개인별로 후원할 분은 전국봉사자 및 회계에게 미리 연락 요망
⑥ 전국조정 봉사직 임명 및 차기 전국조정 봉사자 선출
☞ 이번 묵상회 때 오 스테파노(광근) 전국조정 봉사자님의 임기가 시작되고, 차기 전국조정 봉사자를 선출하는 뜻깊은 날입니다... 우리 주님이신 성령께서 함께 해주시도록 기도 부탁드려요...
♠ <FB 창립50주년 준비위원회> 봉사자 추가모집 안내
- < FB 창립 50주년 준비위원회 > 의 각 분과에서 봉사하실 ‘분과장’과 ‘분과위원’ 봉사자를 추가로 찾습니다. 많은 분들이 가지고 있는 성의와 달란트를 봉헌하는 마음으로 봉사에 자원 바랍니다...
희망자는 이 보나벤뚜라 (강진 / ☎ 010-3066-5147)에게 신청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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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의 겨자씨
“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 마르코 복음 1장 15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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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의 기도 지향
- 교황님의 기도 지향 -
물질적, 정치적 또는 영적 힘을 지닌 이들이 온갖 부패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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