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5일 토요일, 날씨: 그럭저럭 시원했다가 오후 늦게 세차장급 폭우 내림
오늘 아침엔 우드랜드 초입에서 차가 좀 막혔다. 부킷티마에서 5시 20분에 출발하여 오스틴하이츠 골프장에 도착하니 7시였다. 먼저 도착한 필립 님이 사다놓으신 맥도날드 햄버거를 등록 카운터 옆 소파에 모두 앉아 든든하게 먹고 라운드를 시작했다. 필립/처음/니키/달보까 님 조가 캐디를 동반하여 먼저 출발했고, 버디/수잔/봉주르 조도 라운드 내내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캐디 한 명 대동하여 뒤이어 플레이했다. 우리 뒤로는 앤디/웬이글/돈킴/부기맨 님이 캐디 없이 플레이하셨다.
모처럼 여성들끼리 치게 된 우리조는 평소 남자분들의 드라이버샷을 기다리던 버릇 때문에 18홀이 거의 끝나갈 때까지도 레드티에서 모두 넋놓고 있을 때가 많았다.
버디: (레드티에서 모두 딴짓할 때) 먼저 하세요, 잘 하신 분.
봉주르: 앗참참.. 아, 근데 저도 양파에요. 쿼드루플하신 분 먼저 하시지요.
수잔: 아, 나 먼저인가?
오스틴이 어렵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티오프한 인덱스 2의 파5홀인 10번홀은 처음부터 물도 건너고 산도 오르려니 마치 에베레스트라도 등반하는 느낌이었다. 난 처음 2개 홀 양파로 9라는 숫자부터 일단 등에 업고 시작했다. 우리가 레드티에서 나란히 드라이버샷을 날리면 거의 항상 롱기는 버디 님이었다. 그 가냘픈 몸의 어디에서 그런 파워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거리도 거리지만 대부분 중앙으로 날아갔다. 수잔의 신통치 않게 맞은 공도 내 잘 맞은 공보다 조금 더 나갔다. 아무튼 그렇게 매홀 부담스러운 숫자를 더해간 우리는 종종 필립/처음/니키/달보까 님 조를 바로 뒤에서 지켜보며 기다릴 때도 있었다. 나중에 필립 님은 우리가 계속 바짝 쫓아와 조금 압박감을 느꼈다고 하셨다. "우리가 이렇게 앞조를 지켜보며 기다릴 때도 있네요"하며 즐거워하신 버디 님은 2걸음으로 필립 님과 공동으로 니어 상금을 타셨다.
라운드를 끝내자마자 10분이라도 아껴보겠다고 나름 총알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데, 정작 오스틴 클럽하우스에서 시킨 점심은 자쿠지에서 목욕을 즐겼어도 될 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먼저 끝난 앞조가 점심식사를 끝내고 밖에서 흡연까지 마친 후라서 더 조급함이 느껴졌다. 드디어 나온 볶음밥은 칠리파디가 많이 섞여있어 아주 매웠다. 골라내기도 번거롭게 그리 잘게 쪼아놓느라 오래 걸렸나? 식당을 나오면서 우리는 "우리가 자꾸 재촉하니까 골탕 한 번 먹어보라고 저 매운 걸 듬뿍 넣었을지 모른다"는 음모론도 내놓았다.
아침에 부킷티마를 출발한 차에서는 웅얼거리는 창법의 정태춘 노래를 배경으로 부기맨 님의 커피, 정치, 미국인 지인 등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갔고, 조호바루에서 돌아올 때는 수잔이 틀어놓은 방탄소년단 노래를 들으며 왔다. 수잔은 어떤 곡은 78개국에서 1위한 노래고 어떤 곡은 미국에서 1위를 한 노래라며 설명을 해주었는데 내 귀에는 서로 다른 곡이었는지 분간도 안 갔다. 그런 최신 유행 노래를 들으며 버디 님의 파란만장한 싱가폴 정착기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수잔과 버디 님은 12월 초에 3박 4일 동안 바탐으로 전지훈련도 가신다고 한다. 나도 휴가만 남아 있다면 합류했으면 싶었다. 돌아오는 차에서 버디 님은 그동안 너무 바쁘게만 살아왔는데 요즘 골프라는 취미라도 있어서 정말 다행스럽다고 하셨다. 한국 출장에서 오늘 새벽 1시에 귀가하신 달보까 님은 팔에 알레르기가 생길 정도로 피로가 누적되었다는데 쌩쌩한 얼굴로 자신이 기원전 69년생 클레오파트라와 같은 닭띠라는 농담까지 하셨다. 왕피곤해도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는 그런 얼굴이 부럽다.
오늘 땀과 흙탕물로 맘껏 더럽혀온 빨래를 뜨거운 물의 세탁기에 맡겨 놓고 노트북 앞에 앉으니 왼쪽 발바닥이 시큰거린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만족도가 높았던 Thai Imperial 마사지숍에서 난 아무래도 마사지사를 잘못 만났었나보다. 왼쪽 발바닥의 특정 부위만 너무 줄기차게 힘주어 눌러대서 아프다고 했더니 내 아랫배가 안 좋아서 그렇단다. 어디든 아프게 해서 내 발바닥과 연관된 특정 신체 부위의 불량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한데.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먼저 헤어진 필립/처음/니키/돈킴 님을 모두 이 마사지숍에서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바로 옆의 라벤더 빵집으로 몰려가 각자 듬뿍 빵을 사고 잠시 빵과 함께 달보까 님이 사주신 진한 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렸다. 오늘 버디도 하고 핸디 대비 1언더 쳤다고 뿌듯해하신 돈킴 님은 이 마사지숍과 라벤더 빵집에 무척 감동하며 부킷티마 형님들 동네로 이사할까도 잠깐 고려하셨다. 바로 지난 주에는 처음으로 본인 핸디(24)를 쳤다고 하시더니만 아주 야금야금 강적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도 오늘 핸디 대비 2언더 치신 앤디 님은 이길 수 없었다고 한다. 내일도 골프를 친다는 웬이글은 2주 연속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하고 다녔다. 이젠 지갑도 아니고 카드를 긁어야 한다며 자칭 조호바루의 열린 카드라는 부기맨 님은 후각이 예민해서 고약한 냄새를 맡으면 골프를 못 친다고 하시니 다음에는 부기맨 님과 한 조가 될 경우를 대비해 썩은 장갑이라도 준비해가야 할까 보다. 아무튼 골프를 치는 주말이면 새벽부터 온종일 분주하지만 많이 웃고 말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다음주 토요일에는 골프 점수까지 좋아서 더 많이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봉팔이의 일기 끝~
첫댓글 모든 분들 덕분에 비샨 촌놈 조호바루 읍내 구경 잘 했습니다. 매주 맛사지를 받고 싶으니 저도 끼워주세요. 감사합니다.
ㅋㅋ 우리가 참 조호바루 덕을 많이 보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 뵙겠습니다.
내년에 보아요~ 미리 해피 뉴이어 2018! ^^
게임후에 마사지 받고 나면 개운하죠. 담엔 저도 껴 주삼. 명랑 마사지 조 결성 해야 겠네요 ㅋㅋ
명랑 마사지조 좋네요 ㅎㅎㅎ
2조의 승부는 어땠나요?
우리 걍 명랑하게 쳤어요. 그러나 핸디 대비 따지자면 버디 님 승리 ^^
하하하 봉팔이 일기 짱!
송년골프에 못 나온다니 아쉽네...
이제는 라운드후 봉님의 일기를 읽는게 당연해진듯합니다. 고맙습니다 ^^
언제 시들해질지 한번 가보려고요 ㅎㅎ
언제 읽어봐도 생생 생생하네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레드불 님 ^^ 이번 토요일에 뵙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