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5월28일(월)맑음
새벽3시 일어나 떠날 준비. 4:15 개양에서 인천공항 가는 버스 타다. 8시15분 제2터미널 도착. 탑승수속 마치고 출국장에 들어가니 9:10. 비행기 오른 쪽 날개 뒤쪽에 앉다. 13시간 비행. 기내에서 영화보다. Jungle, The Showman, 그리고 프랑스 영화.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것은 허공중에 떠다니는 것이다. 뿌리가 없는 나무가 둥둥 떠다니는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인간존재가 그렇다. 無根樹무근수. 뿌리 없는 나무가 인연을 만나면 가지를 뻗고 잎을 벌리며 한철을 산다. 경험할 뿐 존재하려 하지 말라. 반짝이는 경험을 지나가게 둘 뿐 잡아서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경험은 오가되 존재는 지속되지 않는다. 온전히 경험할 뿐 존재를 붙들려고 하지 말라. 존재의 뿌리나 존재의 원인, 존재의 근거라는 건 없다. ‘존재이유’라는 건 자기존재를 무슨 대단한 것인 양 만들어 오래 유지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나온 발상이다. 자기존재에 대해 없었던 의미도 갖다 붙여 멋지게 만들어 오래 지속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욕계가 성립되고 유지 존속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당신이 바로 욕계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이 욕계의 설립자요 동조자요 동업자이다. 욕계를 좋아하고 즐기며 붙잡고 늘어지는 존재가 있는 한 욕계는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있다’에 주의가 고정되어 있다. ‘없는 것’도 있게 만들고 사라져 가는 것도 붙잡아 ‘있게’ 만든다. ‘있다’고 하면 그 있음이 벌써 붕괴되어 사라지는 과정 인데, 무엇을 있다고 할 수 있으랴! 손에 떨어진 눈송이는 벌써 녹아 버렸다. 나비의 날개 짓을 잡을 수 있으랴! 꽃향기 잡을 수 없지만 정원에 가득하네. 모든 경험은 신제품. 너의 기억과 습관이 신제품을 박제품이나 기성품으로 만들고 만다. 그리고 이내 싫증이 나서 흥미를 잃어버린다. 이것이 나태와 권태에 젖은 무미건조하고 범용한 일상인의 삶이다. 그런데 욕망에 의해 돌아가고 욕망충족을 위한 욕망의 세계를 선택한 사람들이 욕구불만 아니면 욕망의 박탈내지 소외, 무열정과 무의미한 삶을 산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 얼마나 모순된 선택이었던가? 내 이럴 줄 알았다면 욕계를 선택했겠는가? 라고 한탄하리라. 그러나 그대여, 당신에게는 선택할 힘이 없어 그냥 떠밀려 들어온 것이다. 자신도 알 수 없는 엄청난 힘에 떠밀려 욕계로 던져진 것이다. 당신에게는 원했다든지 선택했다든지 이런 말은 듣기에 좋은 말일 뿐, 당신은 그냥 업력에 떠밀려 욕계로 밀려난 것이다. 욕계 말고 더 좋은 다른 곳에 갈 수 있었느냐고 묻지를 말라. 이것이 욕계중생의 한계이다.
기내에서 하루가 변하다. 한국시간으로는 다음날이 되는 2018년5월29일(화)로 될 터인데 비행기가 날자 변경선을 넘으니 5월28일(월)이 된다. 이 선을 지나면 하루를 마이너스 했다가 다시 플러스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갈 때 하루 늦어지고, 돌아올 때는 하루 앞당겨진다. 뉴욕 JFK비행장에 도착하여 입국수속 마치고 한인택시 불러 맨해튼Manhattan 미드타운Midtown으로 오다. 웰링턴 호텔Wellington Hotel에 투숙하다. 18층40호, 작지만 아담한 방이다. 짐 꺼내놓고 정리하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다. 푹 자고 일어나니 저녁7시. 다운타운을 돌아다니다. 타임스퀘어Times Square에 나가니 인파가 거리를 메우고 흐른다. 서로가 서로를 구경시켜주는 인종의 전시장이다. 뭔가 즐거운 일을 기대하면서 모여들었다가 흩어진다. 모임과 흩어짐이 물결을 이루다 밤9시쯤 되면 한산해진다. 뉴욕은 24시간 움직인다. 거리에서 밤새 일하는 소리가 들린다. 야간에 청소부들이 도시를 청소하고 공사 중인 데서는 야간공사를 한다. 자다 깨다 일어나니 아침6시.
2018년5월29일(화)맑음
7시에 호텔부속 파크 카페Park Cafe식당에서 아침을 먹다. 식당은 보통 히스패닉Hispanic사람들이 운영한다. 9시에 숙소를 나서서 메트로Metro 카드를 사서 지하철을 타다. 업타운Uptown방향으로 가서 콜롬비아 대학Colombia University에서 내리다. 10분 쯤 걸어서 리버사이드 처치Riverside Church에 들어가다. 골든존Golden Zone을 예매했기에 맨 앞쪽에 좌석이 주어졌다. 상단에는 벌써 켄포 카타르 린포체Khenpo Kathar Rinpoche께서 와계셔서 삼배 드리다. 린포체의 제자들이 작년에 91세 생일잔치를 해드렸다고 하니 꽤 연로하시다. 삼년결사 도량 카르멜링Karmeling의 유나(규율책임)를 맡은 쑬트림Tsultrim(미국스님)과 인사를 나누다. 카르마 디Karma D와도 오래간만의 인사를 하다. 쑬트림에게 진주선원을 방문하라고 초청했다. 10:30 쟐링(태평소 비슷한 티베트 악기)소리 울리고 향 연기 피어나는 가운데 시자가 일산을 받던 가운데 카르마파Karmapa존자가 들어오신다. 위엄이 깃든 풍채가 정말 사자좌에 앉으신 부처님 같으시다. 티베트 챈팅tibetan chanting이 장중하게 울려 퍼지고 난 후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로 법문이 흘러나온다. 주제는 <톡메 쌍뽀Thogeme Sangpo의 보살의 37법>이다. 12:30까지 설법하시며 오전 강의를 끝맺다. 콜롬비아 대학 근처 길 포장마차에서 아보카도 빵과 레먼쥬스를 사가지고 콜럼비아 대학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서 먹다. 미국에 유학 온 학생이 된 기분이다. 허드슨 강Hudson River가 숲속을 걷기도 하고 그랜트 장군 묘소Grant`s Tomb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
오후3:30분경에 카르마파 존자 등장하셔서 법문 계속하다. 보리심을 발한다는 것은 중생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상사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이런 중차대한 책임을 지기로 서원하신 분이다. 하사도, 중사도, 상사도의 차이는 바로 이런 책임감의 차이에서 온다. 꼭 이렇게 말씀하시진 않았어도 나는 그런 맥락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또 한 말씀: 나는 카르마파인 것처럼 산다. I pretend to be Karmapa. 나는 아마도 완벽한 스승이 못되는 모양이다. It seems that I am not a perfect master. 이 말을 통역할 때 통역자가 폭소를 터뜨렸고 따라서 대중도 웃었다. 그 말 가운데 의미심장한 의미가 깃들여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4:30에 법문을 끝맺다.
메트로 타고 콜롬버스 서클Columbus Circle에 내려 걸어서 지리를 익히면서 호텔로 돌아오다. 트럼프 타워Trump Tower, 아트디자인 박물관, LOVE 조형을 확인하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하고 좀 쉬다가 메트로를 타고 브루클린 하이 스테이션Brooklyn High Station에 내리다. 여러 사람에게 묻고 물어서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Brooklyn Bridge Park를 찾아가다. 멋진 포토존이 있는 이곳을 일명 덤보Dumbo(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의 약자)라 한다. 여행블러그에 익히 보았던 그 포토존을 생각지도 못하게 우연히 만났다. 멋진 샷을 찍고 물가로 달려가니, 이제 막 저녁 해가 맨해튼의 마천루 사이로 황금빛을 발하며 가라앉는다. 물가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황혼에 물든 스카이스크레이퍼Skyscraper를 바라보고 있다. 본다기보다는 장엄한 광경에 스며들었다고 해야 하리라. 한참 앉았다가 근처 식당에서 음료를 시켜 마시고 브루클린 다리를 걸어서 건너다. 2009년인가 한 번은 맨해튼 쪽에서 브루클린 쪽으로 걸어서 건넜는데 이번엔 반대로 브루클린 쪽에서 맨해튼 쪽으로 걸었으니 왕복을 모두 걸어본 셈이다. 맨해튼의 야경은 미국문명의 현재를 보여준다. 밤9시가 되니 거리가 한산하다.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오니 밤10시가 넘었다. 다시 샤워하고 일기를 쓴다.
2018년5월30일(수)흐린 후 맑음
오늘은 카르마파 존자의 가르침 둘째 날이다. 새벽3시경에 깨서 다시 잠들지 않는다. 와선을 하다가 좌선을 하다가 아침을 만들다. 7시에 로비로 나가니 한 떼의 중년 아줌마들이 단체사진을 찍는다. 아마도 미국 내 지방에서 단체관광을 왔나보다. 파크 카페Park Cafe에서 베이글bagel과 토마토 주스, 달걀을 아침으로 먹다. TV를 보니 남서부에 허리케인hurricane과 토네이도tornado가 맹렬해서 기상재해가 심하다는 뉴스가 나온다.
연을 날릴 때 바람을 받아 연이 하늘 높이 뜨면 연줄이 팽팽해진다. 연 날리는 아이는 물레를 돌리며 연줄을 풀었다 놓았다 하면서 연의 높이를 조정한다. 그런데 연줄이 끊어진다면 연은 어떻게 될까? 나는 줄 끊어진 연이다. 밀거나 끌어당기며 나를 조종하는 줄이 끊어졌다. 누가 나를 붙잡을 수 있으랴? 누가 나를 조종할 수 있는가? 나는 줄 끊어진 연, 어디라도 떨어져 누운 자리가 있을 곳이다. 낙엽에 주소가 없듯 내겐 주소가 없다. 왜냐?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으며 어디에도 머물지 않기 때문. 지금 있는 곳은 잠시 동안의 머묾일 뿐. 그래서 어디든지 내가 쉴 곳이며 떠날 곳이 된다. 나르는 새에게 주소가 있느냐 묻지 말라. 날다 지치면 어느 나뭇가지라도 앉는다. 가지가 무거워 지친 듯이 보이면 새는 또 날아간다. 새가 날지 못하면 새가 아니라, 들짐승이 되리라.
*카르마파Karmapa 존자님 법문:
절대적 차원의 보리심은 지금 바로 여기서 체험되는 空性공성의 마음이며, 그것은 마하무드라mahamudra와 족첸dzogchen의 경지이다.
상대적 차원의 보리심은 일체중생의 고통을 보고 연민과 자애를 일으켜 선업을 쌓고 지혜를 닦은 것을 말한다. 그런데 많은 불자들은 착각하고 있다. 자기네들이 불자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더 나은 사람인 걸로 말이다. 그래서 불자들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한다. 나는 불교를 배우고 난 이래 좋은 사람a good human being이 되었는가? 불교수행을 해서 나는 더 나은 사람으로 바뀌었는가? 대승불교 아니면 금강승불교를 한다고 금방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착각하지 말라. 불교 믿는다고 다 좋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되고 나서 성불하는 법이다.
*질의응답:
1)저는 심리상담사로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 자신이 미투와 관련된 상담자들과 만나다 보니 분노가 일어납니다. 그들이 당했던 고통과 불의를 공감하다보니 분노가 치솟습니다. 분노할 때 내 안에서 전에 없었던 에너지와 활력을 일어남을 느낍니다. 이것을 킬레사kilesa(번뇌)라고 하여 버릴 것인가, 아니면 어떤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올 수 있는 힘으로 쓸 수는 없는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금강승에서 말하길 보살이 세상의 불의를 제도하기 위해서는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 않는가? 라는 관점에서 이런 질문을 드립니다.
답)그건 분노라기보다는 용기입니다. 불의한 상황을 맞서려고 할 때 일어나는 긍정적인 현상이지요. 용기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분노와 함께한다면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상황에 맞게 그 때 그때의 지혜를 발휘하세요. 그러나 분노에 사로잡히지는 마세요.
2)남이 나를 해치면 화가 납니다. 내가 나를 힘들게 한 것에도 화가 나요.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까요?
답)화가 나서 주체를 못하는 사람은 화에 휘둘리는 사람입니다. 화가 그 사람을 좌지우지 하니, 화내는 사람 그 자신이 자기가 낸 화의 희생자입니다. 그러니 화내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인 거죠. 화의 무서움을 보고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화내는 사람을 타산지석으로 삼으세요.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 당신이 똑 같이 화를 내본들, 화에는 화로 복수해본들 무슨 이익이 있겠어요? 다만 그 사람이 당신에게 폭력적인 언사나 행동을 하려고 할 때 ‘그만두세요. 그만해요.’라고 당차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화난 상황은 ‘후회’ 내지 ‘회한’이라는 감정입니다. 자기가 잘못해서 후회스럽다면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도록 하세요.
3)저는 아콩 린포체Akong Rinpoch(1939~2013)를 근본스승으로 모시는 제자입니다. 저 자신은 불완전한 사람이지만 스승님은 저를 항상 완전하게 보아주셨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존경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이 모시는 스승이 저의 스승보다 높다고 하면서 제 스승의 허물을 들추기도 합니다. 그래서 화가 나기도 하고 혼란스러워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답)스승이란 법으로 인연 지어진 영적인 친구사이 a spiritual friendship입니다. 친구들끼리 는 나은 친구, 못한 친구라고 차별하지 않고 이 친구는 이래서 좋고 저 친구는 저래서 좋다 하지 않습니까? 친구에게서 배울 것만 배우고 따라할 것만 따라서 하면 됩니다. 스승의 좋은 점만 보세요. 그분의 허물은 너의 것이 아니니 상관할 바가 없습니다. 지금은 말법시대라 스승들이 예전같이 완벽하기를 바랄 수는 없어요. 스승은 덕이 있는 반면에 흠도 있기 마련입니다. 다만 스승의 장점 덕분에 당신이 긍정적으로 변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그러니 스승에게 당연히 감사하고 존경해야죠. 나중에 스승에게서 보이지 않았던 허물이 보이더라도 당신이 상관할 것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자기네 스승과 너의 스승을 비교하면서 평가하고 폄하하더라도 서운해 하거나 성내지 마세요. 모든 제자들이 자기가 모시는 스승과 자기네 법맥이 제일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그건 분파주의이며, 일종의 자기중심적인 발상이지요. 그런 것 때문에 파벌이 생기고 알력과 오해가 생겨납니다. 주의해야할 일이죠. 우리는 모두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 제자들입니다.
원래 다섯 가지 질문이었는데 모두 기억하지 못해서, 인상 깊었던 세 가지만 기록으로 남긴다. 기억에 의존하여 재구성했기에 제 생각이 들어갔을 수도 있다.
3년결사 도반이었던 미국인 스님 Tsultrim쑬트림과 사진을 찍다. 그는 결사도량의 입승(티베말로 둡폰drupon)을 맡고 있다. 그는 일반 수행자처럼 결사도량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일이 있으면 출입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기에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지금 3년결사에 들어간 분들의 수행을 이끌고 있는데 2022년에 끝나면 그때 한국을 다녀가라고 초청하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와 몸을 씻고 쉬다가 라키펠러Rockefeller 플라자 68층 탑오브더락Top Of The Rock을 보러 갔다. 68층 전망대에 오르면 황혼에 물든 맨해튼의 풍광을 사방으로 둘러볼 수 있다고 해서 갔다. 그런데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표를 구하려니, 매표원이 2시간 기다려 밤9:10에 다시 오라고 한다. 그렇게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여 그만두다. 대신 라키펠러 센터 앞 분수와 조각을 감상하다. 여기서 보는 풍경은 영화에서 종종 보이는 명소이다. 라키펠러 건물의 대문 위에 써진 글은 이렇다. Wisdom & Knowledge Shall be The Stability Of Thy Times. 지혜와 지식이 너희 시대의 안정을 가져오리라는 바이블에 있는 말이다. 전철을 타고 유니언 스퀘어Union Square로 가서 블루보틀blue bottle이라는 명품커피를 맛볼까 하다가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내려가서 5번가를 따라 걷기로 하였다. 트럼프 타워Trump Tower 앞에는 중무장한 경비원들이 배치되어 있어 지나치다. 삭스 핍쓰 에비뉴Saks Fifth Avenue, 베르사체Versace, 굿찌Gucci,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버그도프 굿맨Bergdorf Goodman,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ast at Tiffany`s’이란 영화로 유명한 티퍼니 상점Tiffany & Co은 문이 닫혔다. 그런데 그 문은 금속제 금고문처럼 생겼다. 그리고 위대한 갯츠비Great Gatsby의 무대였던 프라자 호텔Plaza Hotel을 들러다. 플라자호텔의 외관은 중세의 거대한 성을 연상시킨다. 지하1층에 음식코너가 유명하다해서 가보니 우리나라 백화점 지하에 있는 음식코너와 비슷하였다. 숙소로 돌아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길 가운데 서서 사진을 찍는다.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니 마천루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의 장관이 펼쳐지는 중이다. 자연과 인공이 이렇듯 조화를 발휘하는가 싶다. 우유와 스무디smoothie를 사오다. 피곤하여 일과를 정리하다. 일기를 대충 정리하다.
2018년5월31일(목)흐림
푹 자다. 일기예보에서 오후에 약간 비를 뿌릴 수도 있다고 해서 우산을 챙기다. Park Cafe에서 아침을 먹다. 오늘이 가르침의 마지막 날이다. 10:30 강의시작하다. 보리심을 면면히 지속하려면 마음챙김mindfulness와 깨어있음vigilance가 있어야 된다. 자기 마음이 올바른 상태에 있는지 아닌지, 자기의 마음상태를 알아차려야 한다. 자신을 염탐하라 Spy oneself. 자신을 감독하라Supervise oneself. 불교수행이라 하면 보통 집을 떠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이라 생각한다. 명상은 쉬는 것일 수도 있으나 마음을 훈련하는 하나의 과정인바 번뇌를 엄정하게 대처해야한다. 명상을 호락호락하게 여기지 말라. 군대 훈련소에서 신병을 훈련시킬 때 훈련병들을 엄하게 대하는 것처럼 자신의 번뇌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엄한 훈련discipline이 요구된다. 번뇌의 힘이 얼마나 끈질긴데 어떻게 너희는 번뇌를 쉽게 다스려질 것이라고 기대하는가? 불교수행자가 그런 점에 있어 너무 순진하고 무지하다. 번뇌를 다스리는 데는 마음챙김, 알아차림, 깨어있음이 중요하다. 대승불교나 금강승을 한다고 번뇌를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회향한다.’는 말의 의미를 아는가? 보시나 수행을 조금 한 공덕이라도 자기 것으로 남기지 않고 일체를 중생에게 주는 것이 ‘회향한다.’는 의미이다. 회향은 거저 주는 것, 모든 것을 주는 것, 나의 것으로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그렇게 줄 수 있느냐? 보살은 자기가 닦은 것-비록 적더라도-모두 중생에게 주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공덕이 더 불어나고, 그 불어난 것을 다시 중생에게 주기 때문에 공덕은 더더욱 불어난다. 이것이 중생이 다하고 번뇌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허공계가 다하도록 회향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보살행은 무진장, 무한의 행이 된다. 한 방울의 물이 바다에 떨어지면 흔적도 없이 스며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너희는 한 방울의 물처럼 바다에 떨어져 스며들 수 있느냐? 네가 비록 바다와 같은 공덕을 쌓았더라도 한 방울의 물처럼 여길 수 있느냐? 어쨌든 너는 잘했다는 ‘너’를 내세우고 싶지 않느냐? 오전 강의가 끝나다.
카르마 디(Karma D는 린포체의 조카이다)와 함께 켄포 카타르 린포체를 모시고 린포체 숙소로 가다. 린포체께서는 90세의 연로한 몸이라 무릎이 안 좋아 휠체어에 의지하신다. 카르마 디는 작년에 환속하여 ‘체리Cherry’라는 대만 아가씨와 결혼했다. 페이스북에서만 체리의 얼굴을 봤는데 이제 실물을 본다. 참하게 생겼고 지혜와 복을 갖춘 것 같았다. 카르마 디는 좋은 반려자를 찾았다. 카르마 디는 자기가 환속할 수밖에 없는 주변환경과 개인적인 성향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티베트승려로 미국에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다가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국에서 정신적인 스승의 역할을 할 배짱도 없으니 정서적으로 불안해보였는데 이제 결혼해서 의지할만한 부인을 얻었으니 미국에서 정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린포체께서도 두 사람의 관계를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다가 나중에 받아들였다고 한다. 티베트에 계신 자기 아버지도 처음에는 서운하게 여기셨다고 하니 환속이란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승과 가족과 아는 승려들이 모두 반대했을 텐데 그걸 무릅쓰고 자기의지를 관철해서 무리 없이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카르마 디는 영민하게 처신을 잘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그의 반려자인 체리가 스님들께 처신을 잘한다. 처음 보는 내게도 빨간 봉투보시를 올리는 것을 보면 신심 있는 불자이다. 카르마 디가 린포체께 원담(티베트 법명으로 카르마 쿤상 걋쪼Karma Kunzang Gyatso)이 사진을 찍고 싶다고 전하자 린포체께서는 내 손을 꼭 잡는다. 간직할만한 순간의 사진이 이렇게 찍혔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다시 리버사이드 처치로 돌아갔다. 오후에는 카르마파 존자께서 바즈라사트바(티베트 말로 도제셈빠dorjesempa) 관정을 주신다. 티베트스님들이 인도하는 장엄한 행렬이 선도하며 존자님이 등장하신다. 먼저 바즈라사트바 자기 관정을 먼저 실행하시고, 이어서 법단에 오르셔서 대중을 위해 관정을 베푸신다. 관정의례가 끝나고 대중이 백자진언을 합송하니 교회내부 공간이 공명을 일으켜 백만의 바즈라사트바가 꽃비가 내리듯, 무지개가 서린 듯, 빛의 빗방울에 되어 대중의 몸속으로 스며든다. 사실 리버사이드 교회내부는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어 있어 찬송가가 장중하게 울려나올 때면 천국에 온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모든 행사가 마무리 되자, 다시 대중이 스승의 은혜에 화답하기 위해 칠지공양을 올린다. 미국불자 뿐만 아니라, 부탄, 네팔, 티베트, 홍콩, 대만, 중국, 멕시코, 흑인들도 제각기 공양을 올린다. 불법으로 한 가족이 된 것을 느낀다. 카르마파 존자께서는 행사를 주최하고 진행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신다.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워하면서 성대하게 끝맺음을 하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쉬다. 부슬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콜럼버스 서클까지 걸어가서 타임워너 백화점을 둘러본다. 학생들에게 어떤 선물을 사다줄까 생각하며 기웃거리다. 메트로를 타고 브라이언트Bryant 공원으로 가다. 저녁 얇은 어둠에 물든 공원은 아담하게 꾸며졌다. 사람들이 곳곳에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공원을 한 바퀴 돌며 분위기를 맛본다. 핸드드립hand drip으로 커피를 내려 유명해진 블루바틀Blue Bottle 커피점을 찾았는데. 방금 영업시간이 끝나 문이 닫혔다. 아쉽다. 근처를 배회하다 타임스퀘어를 지나 브로드웨이를 거쳐 본래의 숙소로 돌아오다. 타임스퀘어의 기프트샵Gift Shop에서 뉴욕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30장 샀다. 이것으로 선물은 장만했으니 이제 쉬어야겠다. 긴 거리를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다.
2018년6월1일(금)보슬비 온 다음 맑아지다
아침에 콜럼버스 서클 쪽으로 걸어가 베이글bagel과 계란, 우유로 아침을 먹다. 짐을 대충 싸다. 택시를 타고 굿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으로 달리다. 센트럴 파크를 가로질러 이스트east 쪽을 향한다. 일찍 도착했기에 줄을 섰다가 드디어 입장하다. 마침 작품을 교체하는 공사 중이라 간단하게 스파이럴 계단spiral stairway(나선형)을 중심으로 개장된 전시실만 둘러보다. ‘한손으로 손뼉을 치다.’라는 뜻의 單手拍掌단수박장이란 타이틀이 붙은 중국계 미술가의 자의식세계를 표현한 작품을 감상하다. 고대로부터 물려받은 오래된 고정관념에 찌든 중국정신이 21세기의 문명의 충격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칸딘스키Kandinsky(1866~1944, 러시아)의 작품을 보다. ‘원을 중심으로 돈다,Around the Circle’는 추상화는 작가가 나치스의 박해를 피해서 파리로 이주한 후 일종의 정신적인 각성이 있었기에 그 경험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uncusi(1876~1957, 루마니아)가 대리석을 쪼아서 만든 추상조각인 나르는 거북flying turtle과 물개seal를 감상하다. 브랑쿠시는 루마니아 촌구석에서 태어나 세 번째 가출에 성공하여 타고난 손재주로 목공과 조각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로댕의 조수로 일하며 수업을 쌓아갔다. 특히 29살에 밀라레빠 전기를 읽고 정신적 충격을 받아 이후 내내 독신으로서 살면서 파리의 작업실을 동굴 삼아 지냈다. 휴게실에서 마키아토를 마시며 창밖으로 보이는 센트럴 파크의 푸르름을 누리다. 이어서 노이에 갤러리Neue Gallerie로 향하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1862~1918)를 비롯한 오스트리아와 독일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개인 소장 갤러리이다. 8년 전에 왔다가 문 닫는 시간에 늦게 도착해서 보지 못했던 곳이다. 이제 다시 보게 된다. 클림트는 자기가 사랑했던 여인들의 에테르적인 뉘앙스ethereal nuance를 표현했다. 화려한 색감과 황금색 터치로 여인들의 영혼을 그려내려 했다. 클림트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했던 심리적인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클림트는 자기가 그린 여인에게서 무엇을 느꼈으며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는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 느껴 보아야한다. 그 여인이 되었다가 다시 화가가 되어보자. 그려지는 대상이 되었다가 그리는 주관이 되어보자. 이것이 감정이입empathy이며, 공감화sympathization이다. 1900년대 유럽문명의 중심지였던 오스트리아 비인Wien에 모여든 사람들의 인연을 생각한다. 비엔나 서클Vienna Circle이라는 모임(1924~1936)이 있었다. 빈 대학을 중심으로 정기적으로 모인 지식인들은 자연과학, 사회과학, 논리학과 수학의 제 문제를 토의하면서 교류하였다. 그들은 주로 수학자나 과학자였다. 루돌프 카르납Rudolf Carnap, 쿠르트 괴델Kurt Goedel, 비트겐스타인Witgenstein과 칼포퍼Karl Popper, 에른스트 마하Ernst Mach, 다비드 힐베르트David Hilbert, 고틀리프 프레게Gotlieb Frege등인데 그들의 관점은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였으며 다원주의Pluralism, 계몽주의Enlightenment였다. 특히 그들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이 통합된 <통일과학Unity of Science>를 지향하였다. 아인슈타인도 이 시대정신의 총아였다. 그런데 여기에 반기를 든 철학자가 있었으니 에드문트 훗설Edmund Husserl, 그는 현상학Phenomenlogie를 개척하였는데 불교로 말하면 唯識유식과 유사하다.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와 사르뜨르Marcel Sartre, 메를로퐁띠Merleau Ponty(1908~1961)는 실존주의로 가져갔다. 당시 빈Wien은 벨에포크belle epoque(1880년에서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유럽이 행복했던 시절)에서 핑데시에클fin-de-siecle(세기말)적인 분위기로 변모해가면서 보여주는 빛과 어둠이 교차되던 무대였다. 그러기에 세기말적인 황혼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와 프로이드Sigmund Freud와 에곤쉴레Egon Shiele(1890~1918)였으며, 새벽이 밝아오는 여명은 클림트와 코코슈카Oscar Kokoschka(1886~1980)와 칼 융Carl Jung이었다. 결국 인간정신은 양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넘어 표현주의와 탈구조주의에서 해체주의, 그리고 다시 세계체제의 위기를 논하면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인 주제로 돌아가는 듯하다. 물론 환경주의, 다원주의, 과학주의라는 큰 흐름 속에 우리는 몸을 담그고 있다.
택시를 타고 다시 웰링턴 호텔로 돌아와 체크아웃하고 짐을 보관하다. 저녁 9시까지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예약해놓은 택시를 타고 JFK공항으로 가면 된다. 오후에 탐오브더락Top of the Rock 67층 전망대에 오르다. 미국 대 공황기에 일자리 창출을 위해 록펠러 가에서 로키펠러 센터 빌딩을 지었다. 67층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68층과 69층을 걸어서 구경하게 되어있다. 뉴욕 전망을 한 바퀴 둘러보며 뉴욕을 느끼다. 다시 내려와 센트럴 파크까지 걸어가서 벤치에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센트럴 파크는 뉴욕시민의 안식과 소일을 책임지고 있다. 오후9시에 택시 타고 JFK 공항에 가서 출국수속하다. 비행기 날다. 날자 변경선을 넘으니 6월2일에서 6월3일로 바뀐다. 기내에서 영화감상하다. 뮤직오브사일런스The Music of Silence를 보다. 시력장애를 타고난 아이가 타고난 목소리로 역경을 넘어서서 유명한 테너가수로 성장해가는 인생역정을 그린 영화이다. 주인공은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1958~)라는 실존인물이다. 특히 좋은 스승을 만나서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수업하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노래는 침묵에서 나온다. 노래하지 않는 내내 침묵을 지킬 수 있느냐? 그렇게 되면 너는 네 호흡을 보게 될 것이고 온 몸의 떨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성악에 네 인생을 바치겠느냐? 너는 노래에 자신을 희생할 수 있을 만큼 열정이 있느냐? 라는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본다. 너는 담마Dhamma에 네 인생을 바치겠느냐? 너는 담마Dhamma에 자신을 희생할 만한 열정이 있느냐?
2018년6월3일(일)맑음
새벽4시20분 인천공항 제2청사에 착륙하다. 입국수속마치고 짐 찾다. 간단한 요기를 하고 진주 개양까지 오는 7:30 버스를 타다. 너무 피곤하여 졸다가 깨다가 하여 진주에 도착하다. 문정과 현정 마중 나오다. 선원에 돌아오니 아미화와 연경이 점심을 해놓고 기다린다. 뉴욕의 공기가 눅눅하고 먼지가 많았는지 목의 쉬어서 말하기 힘들다. 짐을 풀어서 정리하다. 씻고 누워 쉬다. 사진을 정리하고 일기를 쓰다.
2018년6월4일(월)맑음
모든 사람이 자기의 그림자를 끌고 다닌다.
모든 사람은 자기 그림자를 밝힐 빛을 간직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삶의 짐을 지고 다닌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짊어진 삶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사는 곳에서 이방인이며 여행자이다.
모는 사람은 자기가 사는 곳에서 주인인 듯 손님이 되고, 손님인 듯 주인이다. 그래서 영원히 머물 듯 살지만 결국 떠나야한다.
안정과 존재보다는 변화와 생성이다. 각성과 평정이다.
공간화된 시간도 아니고, 시간화된 공간도 아닌 시공간의 연속체로 살라.
아미화가 아침 9시에 와서 이비인후과 병원에 함께 가다. 목소리가 안 나오는 까닭이 성대가 부어서 좁아졌기 때문이라 한다. 5일치 약을 처방해준다. 그래도 차도가 없으면 큰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 저녁 강의하다. 목소리가 안 나와서, 내가 쓴 일기를 초당거사가 읽어주는 것으로 강의를 대신했다. 모두 흥미로워 했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진 것 같다.
첫댓글 스님, 먼길 건강하게 다녀오셔서 기쁩니다 잠긴 목소리도 빨리 회복하셔서 감로법을 설하여 주시옵소서^^
카르마파존다 법회의 일기를 읽는 내내 감동이었습니다. 낭독의 기회를 주신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빨리 목소리 회복하시어 옥구슬같은 음성으로 감로법을 설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