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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요한복음 12 : 12 - 15
제목 : 예루살렘 왕 예수 그리스도
일시: 2019. 12. 15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년전 이맘 때 2017년 12월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공식 수도로 인정하고 이스라엘 주재 미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2018년 5월 14일 예루살렘으로 대사관을 이전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의 총리 베냐민 네탄야후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하고 이스라엘은 이러한 미국의 결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환영했지만 팔레스타인과 아랍세계는 들끓었다.
II. 예루살렘은 바로 이런 곳이다. 세계의 화약고는 중동이고 그 화약고를 터트릴 수 있는 뇌관은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터” 혹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도시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긴장과 갈등이 많은 지역이다. 진짜 평화가 있어서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도 평화가 없어서 평화를 갈망한다는 의미에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리라. 우리나라의 공식명칭은 대한민국(大韓民國 Republic of Korea)이다. 그런데 북한의 공식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Chosun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많이 하면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말이다. 공정한 사회라고 자꾸 말하면 공정하지 않다는 말이다. 빛을 말하면 지금 컴컴한 암흑 속에 산다는 말이다. 거짓이 난무한 사회 속에 사는 사람은 진리를 말한다.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은 평화하지 않는 도시이다.
세계는 이러한 예루살렘을 뜨거운 감자 만지듯이 제대로 다루기 힘들어 한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라 하여 거룩한 땅이라고 믿는다. 또한 모슬렘들은 예언자 모하메드가 예루살렘에서 승천하였다고 하여 그곳을 성지로 여긴다. 크리스챤들은 예루살렘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의 현장이 있었던 곳이기에 거룩한 땅으로 여기고 있다. 예루살렘은 정치적으로 인종적으로 영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사실 예루살렘을 테마로 입장을 말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는 금기처럼 지켜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결성된 UN은 예루살렘을 Special International Regime 라는 특별국제체재구역으로 설정하여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지역으로 선포했다. 예루살렘이라는 이 화약고에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 땅을 그렇게 얼려 버린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예루살렘으로 주이스라엘 미대사관을 이전한 것은 아주 과감한 행동이었다.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 국제 사회의 중동정책인데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하니 들끓을 수 밖에 없다. 대사관 이전 행사가 있는 날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 주재 86개국 대사관에 초청장을 보냈지만 30여 국만이 초대에 응했다.
이스라엘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고 왕궁을 지었던 3000년 전부터 이스라엘의 수도였다고 주장한다. 다윗이 왕궁을 지었지만 그의 손으로 피를 많이 흘렸기에 성전은 지을 수 없었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게 된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자 그곳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중심이 된다. 이후 이스라엘의 운명은 언제나 예루살렘성전의 건재와 함락여부로 결정되었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이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나뉜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BC722년 앗수루에 의해 멸망당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왕국 유다가 BC 586년에 바빌론 느브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함락될 때 비로소 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된 것이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은 유다왕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과 귀족들을 죽였다. 시드기야왕의 두 눈을 빼어냈고 쇠사슬로 결박했다. 그리고 바벨론으로 끌려가 그 곳에서 최후를 맞는다. 이후 70년의 세월이 지나 바빌론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포로들이 돌아오고 그들이 가장 먼저 심혈을 기울여 한 것이 성전재건이다. 스룹바벨을 통해서 새롭게 재건된 솔로몬의 예루살렘성전은 BC 516년에 봉헌된다. 세월이 흘러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예루살렘성전은 명맥을 이어져 가지만 그 성전은 보잘 것 없이 변해갔다. 예수님이 역사속에 등장하던 그 시기 유대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헤롯대왕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성전을 개축한다. 하지만 AD 70년에 네로황제는 로마장군 티투스를 지시하여 예루살렘성전을 완전히 파괴된다. 그때 남아 있는 것이 지금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으로 성전회복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만신창이가 된 예루살렘을 AD636년에 모슬렘이 함락하여 자신의 성지로 삼는다. 예루살렘 성전자리에 칼리프 Omar가 모스크를 짓는다. 이후 AD 1099년 십자군 전쟁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하고 그곳에 Templum Domini(하나님의 성전)으로 다시 바꾼다. 그러다가 다시 1189년 모슬렘의 지도자 살라딘이 그곳을 점령한다. 그리고 마침내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이 혼란한 때에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을 쟁취하고 시오니즘을 부르짖으며 다시 가나안으로 입성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3000년 동안 이어온 자신들의 수도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아이러니 하게 가장 갈등과 싸움이 많고 화약고와 같이 대 폭팔이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곳이다.
III. “이런 곳”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시끄럽고 골치 아픈 땅에 왕으로 오신 것이다. 예루살렘이 평화로운 곳이고 왕이 살만한 곳이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소란과 갈등을 평정하러 그런 곳에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오신 것이다. 동방박사가 별을 보고 찾아왔을 때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사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느라”(마태2:2)라고 하면서 찾아 다녔다. 이때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다. 뻔히 헤롯왕이 있는데 어찌 그런 소문이 나면 어떻게 하겠는가! 눈치 없는 동방의 세 퀘니쉬가 그렇게 찾아다녔던 것이다. 헤롯은 정치적인 권력욕이 많았는데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의 아내와 아들 셋도 처형도 시키기도 했다. 그런 그가 유대인이 왕이 났다고 하는데 가만히 있을리 있겠는가! 헤롯이 유대인들의 지도자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묻는다. 그 지명이 미가서 5장 2절에 예언되어 있는데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그들을 인도하실 것” 이라는 것이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의 남쪽 약 6킬로 정도에 있다. 차로 가면 5-10분 거리이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마태2:7)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마태2:8)고 거짓부탁을 한다. 하지만 이후 천사의 지시를 받은 동방박사들이 몰래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고 베들레헴에서 난 아기들 가운데 두 살까지의 아기는 다 살해하기도 했다. 예루살렘과 같이 갈등이 심하고 평화가 없는 곳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강의 왕으로 오신 것이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비로소 예루살렘은 평화의 터가 되었다. 오늘은 세 번째 아드벤트 주일이다. 다음 주면 네 번째 주일이 되고 바로 수요일 크리스마스가 된다. 그때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오신 메시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왜 그렇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를 기다렸을까? 평화가 없고 로마의 압제가 있고 평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통과 좌절이 있는 그 땅에 유대왕으로 오셔서 평화를 주시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그분이 그렇게 오시는 것은 평화를 주시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주실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메시야를 기다린 것이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던 그날 밤 목자들이 천사들로부터 그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소식을 전하고 천군천사들의 합창이 있는데 그 가사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2:14).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평화롭지 못한 예루살렘에 평화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런 예수님은 십자가 사역을 앞에 두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데 나귀를 타고 왕으로 입성하신다. 예루살렘의 다스리는 자요 예루살렘의 왕으로 오시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외친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요한12:13). 이러한 것은 이미 선지자가 예언했었다.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스가랴9:9). 시온의 딸은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은 왕으로서 들어오신 것이다. 예루살렘이 평화의 도시이기에 평화로운 것이 아니라, 평강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로 인해 평강이 있게 되는 것이다.
IV. 예루살렘은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로 평강의 도시가 된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임마누엘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왕으로서 우리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 예루살렘이 평화의 터이기에 평화스러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평강의 왕으로 우리 가운데 임재해 계시기 때문에 평화가 있는 것이다. 내 삶의 현장은 예루살렘과 같다. 즉 갈등이 있고 다툼이 있고 좌절이 있고 슬픔과 고통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예루살렘의 왕이 나귀타고 입성을 하실 때 우리 가운데 샬롬 평화가 있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평화의 예루살렘이 되기를 바란다. 평화가 있으니 안식이 있고 새 힘을 얻는 장소가 된다.
예)지난 주 말씀 성회를 했는데 보통 목사님들이 오셔서 우리 교회 공동체에 은혜를 끼치기도 하지만 다들 스스로 은혜를 받으시고 가신다. 특히 성가대와 따뜻하고 활기찬 젊은 형제자매들로 인해서 말이다. 특히 미국에서 오시는 목사님들이 은혜를 많이 받는 듯 하다. 저는 라이프찌히 교회를 미국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들의 무덤”이라 한다. 그 동안 여러 분들이 오셨는데 박완주목사님이 있다. 그는 미국에서 목회를 잘 하셔서 15년 동안 교회성장을 이루고 건축도 잘 하셨다. 그런데 이곳에서 집회도 하고 함께 교제하면서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한다. 이전 15년동안 최선을 다해 목회해왔는데 앞으로 15년동안 어떻게 목회를 계속 할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짚시선교에 필이 꽂이시고 미국에 가셔서 곧바로 교회를 사임하셨다. 설훈목사님이 있다. 딸이 대학을 들어가면서 그동안 사역하느라고 가족을 돌아보지 못했고 이제 타지로 떠나는 딸과 대화하고 해줄 얘기가 있는데 함께 하지 못해 가족여행을 한달간 한 것이다. 라이프찌히에서 말씀성회를 가지고... 스탠포드 대학 앞에서 엘리트들과 함께 하고 한달의 세만 2천만원가량으로 들었다. 그러나 그 속에 모르는 뭔가 있었는지 미국에 가서 바로 사임을 했다. 박주동목사님이 왔다. 이건욱집사님 친구이다. 귀한 말씀과 좋은 교제를 나누었다. 그리고 미국 가셔서 얼마 후 사임을 하셨고 들었다. 그리고 작년에 오셨던 정세영목사는 페닌슐라에서 목회를 잘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면서 막내가 대학을 졸업하는 5년 후 정도에는 사역지를 아시아로 옮겨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에 가서 바로 사임했다.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들은 그런 케이스가 없지만 미국에서 오신 목사님들에게는 사역자들의 무덤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아주 긍정적인 생각이 든 것이다. 무덤이 아니라 부활의 장소이다. 얼마나 새 힘을 얻고 은혜를 받았으면 미국에 가서 결단을 하고 사임을 할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지금 박완주목사님은 헝가리에서 짚시사역을 10년째 잘하고 있다. 설훈목사는 미국 선교부파송을 받아 한국과 중국에서 사역한다. 박주동목사님은 청주에서 가장 대표적인 순복음교회담임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직 정세영목사는 다른 소식과 사역이야기는 말하지 않아도 페북에서 보면 평안해 보이는 듯하다.
교회에 오면 평안함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지난 주 강보은자매도 왔다. 그러니 오늘 전현애 교수도 왔다. 그러니 1월 첫주에는 김재준 이유정집사 가족도 온단다. 마치 친정집에 오는 딸과 같고 저는 그 친정아버지와 같은 느낌이다. 집에 오면 평안하도록 웬만큼 추워도 하이쭝을 따뜻하게 하라고 아내에게 말한다. 그러나 아내는 처음 독일 올 때는 추위를 많이 탔는데 이제는 두꺼워졌는지 이정도면 괜찮다고 하면서 절약한다. 집에 들어 올 때는 들어오고 싶은 생각이 나도록 따뜻한 얼굴과 미소로 맞으라. 아이들 앞에서는 결코 싸우지 말라. 싸우다가도 바로 웃어라. 연기라도 하라. 다른 곳에서는 무시를 당해도 집에서는 최고로 대우해라. 뉘집 귀한 아들로, 존경받는 남편으로 사랑받는 아내로... 이 무식한 여편네야가 아니다.
V. 예루살렘이 어디인가? 우리 집이다. 우리 가정이다. 우리 공동체다. 우리 나라이며 이 세상이다. 예루살렘의 환상을 갖지 말라. 평화를 소망할 뿐이지 평화가 있는 곳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 임마누엘 하실 때 평화가 있는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이 평화의 왕이 통치하시는 평화의 터가 되도록 하라. 내 가정이 성지가 되어야 한다. 내 직장이 성지가 되어야 한다. 내 교회가 평화가 넘치는 성지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