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의 고사리 장소에 가면 한 가방은 채워올 수 있을 정도로 고사리는 넘칩니다. 수산한못을 기준으로 근방에 고사리따러 다니는 사람들이 매일 여러 명씩인데도 그 장소는 놓치는지 고사리가 가득입니다. 간밤에 비가 뿌린 후 급속히 싹을 올렸는지도 모릅니다. 하룻밤새 10센티는 올리는 듯, 2-3일에 한번씩 뿌려대는 4월 고사리장마 덕인지 하루가 다른 상황인 듯 합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한가방 채워오긴 했는데 너무 열심히 땄는지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반복적 동작이 근육도 좀 뻐근하게 합니다. 그러니 오늘은 아침먹고 모두 휴식모드. 두 녀석 한바탕 낮잠도 때리고 이제 준이도 한 주의 반복 속에 체감적으로 주말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아는 듯 합니다.
갑자기 여름을 연상케하는 날씨가 되자 겨울옷 급정리모드로 진입하게 됩니다. 봄이 오고 화려한 꽃들이 만발해도 아직 봄결에 묻어있는 냉기는 기분내키는대로 심술을 부리곤 합니다. 그러니 따스한 햇살 속에서도 도톰한 옷들을 버릴 수가 없었는데 드디어 그 끝을 알리는 듯 합니다.
이렇게 또 계절은 서서히 오다가, 급격히 제자리를 찾아가며 곧이어 다음 계절의 예고를 불쑥불쑥 던져주곤 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이런 나날의 변화 속에서 식물들은 어찌 그리 정확히 자기에게 필요한 반응을 하고 결과물들을 일제히 보여주는지 진정한 생명력은 역시 식물들에 있습니다.
후대개념보다는 분할해가는 방식으로 번식을 택하는 단세포동물처럼 식물은 정중동 속에 모든 번식 양식에 아주 능숙합니다. 하나를 잃으면 또 열 개를 내어놓고, 둘을 잃으면 백을 내어놓으며 재생과 대량번식의 달관유전자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 온 이후 나무에 부쩍 관심이 높아집니다. 바람이 워낙 센 지역이라 끝없이 변덕스러운 바람에도 버티는 법은 말해주는 것 같아 눈 앞의 나무 하나하나에 애정의 눈길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마치 똑같은 모양과 자세로 자라고 있는 두 나무처럼 훗날 저는 태균이와 그런 모양으로 세상을 관조하고 싶습니다. 하긴 이생의 삶의 모습이 딱 이런 모양새이긴 합니다. 분신처럼 태균이와 함께하는 삶이 그렇습니다.
남들보다 훨씬 긴시간, 퇴직이란 시간이 미뤄졌던 관운이 뛰어난 태균이아빠에게도 그걸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자 우울한 기분이 드는가 봅니다. 아직 날짜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드디어 결정해야 하는 순간들은 다가오게 되어있고, 예측해야하는 그 순간들은 인생에 있어 아픔의 전환기이기도 합니다.
평생 태균아빠에게 태균이에 대한 양육부담을 준적이 없는 듯 합니다. 아빠라는 사람은 그저 개념으로 존재하는 듯, 모든 성장단계를 엄마와 함께 했으니 태균이가 똑같이 자라나는 두 나무처럼 엄마에게 오리엔티드되는 것은 태균이의 운명입니다. 태균이 아빠가 80살쯤 되면 그 때부터 한 울타리에서 살리라했던 막연한 예상치들이 앞당겨져야 할 지 모를 일입니다.
직장생활에만 충실했던 성격이라 한 울타리에 있으면 일상생활이 마치 제게는 두 사람을 돌봐야하는 형국같아서 편할 수가 없었는데, 한집살이가 아직은 아니지만,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아야한다는 제안은 제게는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도시의 복잡한 생활, 사람들과의 일상교류, 숨쉬기힘든 도시의 길 위에서 또다시 탈출을 기획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주도에서의 일상환경이 얼른 안정모드로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해가 기울어지는 4시경에야 아이들데리고 만보걷기를 합니다. 오조리 둘레길을 걸어보는데 딱 만보길입니다. 오조해녀의 집 근방 공영주차장에 차세워놓고 오조리일대를 쭉도는 코스인데 아주 만족스러운 산책길입니다. 태균이도 얼굴에 송골송골 땀을 맺혀가며 만보를 채웠습니다.
미리미리 이건 몇시까지하고 다음에는 이걸하자 라고 활동예측치를 언질해놓으면 준이도 순순히 움직여주어서 다행입니다. 아직 엉거주춤 걸음을 하긴해도 몸동작마비 증세도 풀려난 듯 한데 아직은 예측불허 상황이니 그저 현재를 열심히 보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기분좋은 만보행 뒤에 기분좋은 저녁식사, 또 휴일하루는 저물어가고 여전히 마음은 분주합니다.
첫댓글 가내 모든 일들이 잘 풀리길 기원합니다.
나만 아는 고사리 서식지, 행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