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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English? - 영어 열풍, 이대로 좋은가 |
어긋난 열풍, 바로 잡을 정책 절실 |
김영명 _ 한림대 교수 / 정치학 |
199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영어 열풍은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영어 열풍이 불어닥친 직접적인 계기는 1994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를 국가 정책 과제로 선포하고 몇 해 뒤부터 초등학교 영어 교육을 강행한 것이었다. 거기다 해외 여행 자유화와 조기 유학 권장으로 영어 수요와 영어에 대한 환상이 급격히 불어나게 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계화라는 것이 그때부터 갑자기 새로 생겨난 현상도 아니었고 영어가 중요하지 않다가 그때부터 갑자기 중요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이러한 영어 중시 현상은 세상 물정이 갑자기 변해서라기보다는 세상 물정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변했기 때문에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영어 열풍과 세계화에 대한 무조건 추종은 어떻게 보면 세상의 주변부로 살아왔던 우리 역사가 일종의 유전자가 되어 무의식 속에서 우리를 통제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역사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뿌리 깊었기 때문에 우리의 세계화 추종과 영어 열풍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90년대 말에 나타나서 아직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영어 공용화 논의다. 영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나라 가운데 영어 공용화론이 국가적인 논쟁거리가 된 나라는 내가 알기로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일본에서 100년 전에도 이런 말이 나왔고 최근에도 한 정부 관련 보고서에서 이를 제안한 적도 있지만, 국민적인 토론거리가 되지는 않았다. 대만에서도 이런 말이 나왔다고 하나 일회성 에피소드로 끝나는 정도다. 영어 공용어론이 단순히 개인적인 의견에 그치지 않고 거대 언론이 나서서 공론화를 시키고 그것이 마치 현실성이 있는 일인 양 토론거리가 되는 것을 보면, 한국이 여전히 사대주의에 빠져 있고, 지성 수준이 천박하며, 고유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영어 공용어론을 비롯한 영어 열풍의 문제들을 지적하고 영어와 한국어를 통틀어 앞으로 우리 언어 교육과 언어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가당치 않은 주장들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해 불명확하다. 물론 복거일 같은 사람은 영어와 한국어를 같이 쓰는 이중 언어 단계를 지나 몇 십년이나 백년쯤 지나 영어만 쓰는 단계로 가자고 하는데, 그동안 일어날 혼란이 과연 백년 뒤 영어 공용화로 얻을 이익을 능가할 수 있을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사람이 컴퓨터나 로봇이 아니고 사람인 이상 인위적으로 한 모어를 다른 모어로 바꾸는 것은 식민 통치를 통해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러니 정말 영어 공용화를 원한다면 미국의 직접 통치를 제안해야 한다. 이런 철없는 공상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영어 공용화란 모든 공적 언어 생활에서 영어를 ‘반드시’ 써야 하는 정책을 말한다. 이렇게 되려면 모국어 수준의 영어 구사자들이 모든 공적 생활에 배치되어야 한다. 동사무소·파출소·소방서·호적계·시골 초등학교·서대문 구치소 등등…. 이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이런 일이 아니고 영어 공용어론이 혹시 외국인을 위한 영어 서비스를 늘려야 한다거나 공문서에 영문을 병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첫째 이것은 이미 하고 있는 것이고, 둘째 이것은 진정한 영어 공용화가 아니다. 물론 부분적인 영어 공용화라고는 할 수 있겠다. 그러니 대부분의 영어 공용어론자들은 전면적인 공용화보다는 부분적인 공용화를 주장하는 셈인데, 이는 이미 하고 있는 언어 정책을 대폭 확대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니 진정한 논쟁의 초점은 여기에 있다. 전면 영어 공용화는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서는 두 말이 필요 없다. 부분적인 영어 공용화는 가능하다. 그러면 그것은 필요한가? 현재 모든 공문서는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것이 불편하다고 하여 제주도 자유도시나 경제 특구에서 공문서의 영어 공용화를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결정이 없더라도 외국인과의 거래에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문제는 ‘영어만’ 공식 언어로 사용하고 한국어는 사용하지 않게 되는 현상인데, 이는 언어 주권을 해칠 뿐 아니라 분쟁이 생겼을 때 한국이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막아야 한다. 외국인과의 문서 교환에서 영어나 다른 외국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더라도 반드시 한국어와 함께 사용해야 한다. 다른 분야, 곧 외국인과 관계되지 않는 분야에서 영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경우를 들자면 대학에서의 영어 사용 수업을 들 수 있다. 세계화를 표방하는 대학들이 영어 사용 수업을 점점 늘려가는 추세다. 학생들의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해서인데, 과연 어느 정도로 이것이 필요할지 의문이다. 그렇게 하여 학생들의 영어 능력은 향상되겠지만, 그만큼 한국어로 생각하고 학문하는 능력은 떨어지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에서 영어 수업이 점점 더 강조되고 국어 수업은 점점 더 경시되는 추세에 있다. 물밀듯이 쏟아지는 외래 용어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말 용어의 비중은 점점 떨어지고 있는데, 게다가 아예 수업마저 영어로 하게 된다면 한국어의 학문·문화력은 더욱 더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영어 수업을 하더라도 오직 일정한 한도 안에서 해야 할 것이며, 그만큼 한국어 수업을 보강하고 우리말 용어 만들기에 힘써야 한다. 한국인 교수와 한국인 학생들만 있는 교실에서 한국어를 두고 영어로 수업하는 것이 과연 한국의 발전에 얼마나 이바지하고 얼마나 손해를 끼칠지 세밀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영어가 필요한 부분은 이 정도다. 영어는 외국인과의 관계에서 필요하고, 우리들 사이에서는 필요 없다. 그런데 한쪽에서 영어를 강조하다 보면 반드시 다른 쪽으로 넘쳐흐르게 된다. 필요한 곳에서 영어를 강조한다는 것이 어느새 필요 없는 곳에까지 강조(를 넘어 ‘강요’)하게 되고, 그것이 수많은 문제들을 낳고 있다. 국력 낭비 초래하는 이상 열풍 영어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른바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다. 그러면 우리의 영어 열풍이 얼마나 국가나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을까? 학생들이 영어에 쏟아붓는 시간은 정말 엄청나다. 학교에, 학원에, 개인 교수에, 원어민 수업에, 어학 연수에, 조기 유학에 쏟아붓는 엄청난 돈과 시간이 과연 효율적인가? 돈은 그렇다 치고, 학생들이 영어 공부에만 매달리면 전공과 기술 공부는 그만큼 등한시할 수밖에 없다. 그 시간에 미국 학생들은 자기 전공 공부를 할 텐데, 이렇게 해서 경쟁이 되겠는가? 무분별한 영어 열풍이 몰고 오는 낭비와 계층 격차 확대, 모국어 훼손 등의 손해와 그것이 가져오리라 기대하는 경제적 이익을 상쇄하면 어떻게 될까? 아무도 그런 계산을 한 적이 없는데, 나는 손해가 더 많으리라 본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영어 필요성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우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 어떤 사람들이 영어를 잘해야 하나? 영어 책, 문서를 읽거나 영어로 대화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다. 영어 독해 능력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갖추어야 하고, 영어 대화 능력은 외국인과 상대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국민의 몇 퍼센트나 될까? 많게 얘기하는 사람은 10%, 적게 얘기하는 사람은 1%다. 전체 국민들 중 그렇다는 말이니 생산 활동 인구로 치면 비율이 2~3배 이상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영어 구사력을 가져야 하나? 전문직 종사자들의 독해 능력은 사전을 보면서 너무 느리지 않게 자기 분야의 문서를 읽어나가는 능력이니 지금 평균 대학 졸업자들보다는 조금 더 높은 능력이다. 영어 대화 능력 또한 자기 분야의 대화를 ‘상당한 정도’로 막히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능력이니 1년 정도 어학 연수 다녀온 대학생 수준이면 되리라 본다. 물론 더 이상의 능력을 갖춘 전문가들도 필요하다. 그런 전문가들은 아마 국민의 1%면 될 것이고, 나머지 웬만한 영어 능력 소지자는 10% 정도면 될 것이다. 우리에게 강요된(누가 강요하는지는 조금 있다 말하겠다) 영어 능력은 결코 모든 국민이 갖추어야 할 것도 아니고, 또 결코 원어민 수준의 능력도 아니다. 영어가 필요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기 분야의 사업을 외국인과 별 탈 없이 의사소통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말한다. 그런 능력과 그런 필요에 비해 우리에게 불고 있는 영어 바람이 너무 세지 않은가? 왜 영어 바람이 이렇게 셀까? 영어 바람이 이렇게 지나치게 불고 있는 것에는 여러 까닭이 있다. 우선, 우리의 뿌리 깊은 변방 근성이다. 중심부의 문물을 따르려는 주변부 열등감의 발로다. 둘째, 시장 이데올로기의 지나친 팽창 때문이다.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경제·경영 관련 사람들인 것은 이상하지 않다. 경제적 이익밖에는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그 경제적 이익을 좀 계산이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셋째, 우리의 척박한 지성 수준 때문이다. 아직도 물질적 풍요에만 매달리고 고유 언어나 고유 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넷째, 우리의 그 대단한 냄비근성 때문이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그 냄비근성이 나쁘게 나타나는 경우다. 나라가 작고 단일 민족이다 보니 너도나도 한 바람에 휩쓸린다. 다섯째, 가장 중요하게, 국내외 자본의 힘 때문이다. 최첨단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바람이 영어를 타고 온 세상을 뒤덮는데, 여기서 영어 사업가들이 엄청난 이익을 본다. 세계화 자본 중 영어 자본은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한다. 마치 햄버거나 콜라가 좋지 않은 줄 알면서도 광고의 유혹을 떨칠 수 없는 것처럼, 사람들은 영어의 유혹과 세뇌와 강요를 떨칠 수 없다. 영어를 중시하는 정부 정책도 결국은 이런 세계화, 영어 자본의 힘에 굴복한 결과다. 앞서 본 까닭들 때문에 한국에서 이런 현상이 유독 강하다. 언어 교육 방향을 틀어라 우리에게 영어가 얼마나 필요하며 그 필요한 영어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현실성 있는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교육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학계·경제계·문화계·시민단체들이 모두 참여하여 언어 정책을 새로 세워야 한다. 외국어 정책은 국어 정책과 함께 포괄적인 언어 정책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지금 교육부가 내세우는 영어 교육의 목표는 전혀 현실성이 없다. 예를 들어 중 3의 교육 목표를 외국인과의 자연스러운 대화로 잡고 있다. 초등·중등·고등교육에서의 영어 교육 목표를 다시 잡아야 하고, 이는 결국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영어 수준과 그 대상을 명확히 설정하는 일이다. 우선 모든 사람들에게 기초 영어를 가르쳐서 교양의 하나로 삼고 간단한 인사말과 기본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이것은 중등 교육까지의 목표다. 고등교육의 목표는 전문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정도의 상급 영어를 가르치는 것인데, 이 또한 모든 사람들의 고급 영어 구사를 목표로 삼을 수는 없다. 이 정도가 학교에서의 공식적인 영어 교육이고, 그 다음은 개인의 영역에 맡겨야 한다. 공교육도 제대로 하면 전문 분야에 진출할 정도의 영어 능력을 갖출 수 있으니 그 역할은 다하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부분별한 영어 사교육도 많이 줄어들 수 있다. 공교육에서 그 정도의 영어 구사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하려면 지금과 같은 영어 수업으로는 되지 않는다. 우선 영어 교사들의 질을 높여야 한다. 한 영어 전문가의 한탄을 들으니, 독어나 불어 또는 다른 과목을 가르치던 사람들을 짧은 기간 재교육시켜 영어 교사 자격증을 주는데, 이들 중에는 중학교 2학년 영어도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런 형편이니 영어 사교육이 더 기승을 부린다. 영어 예비교사들을 철저히 교육시키고 기성 교사들을 주기적으로 재교육시켜 영어 교수법뿐 아니라 본인들의 영어 구사 능력을 향상시키지 않는 한 우리 영어 교육의 미래는 없다. 이들을 가능한 한 많이 영어권 나라로 보내 연수시켜야 한다. 영어 원어민에 대한 지나친 평가나 의존도 바람직하지 않다. 언어 전문가들 중에서도 원어민 교사의 중요성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더구나 자격도 없는 원어민 강사들이 원어민이라는(특히 백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격 있는 재미 교포보다 우대받는 현실을 고쳐야 한다.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영어를 강요하여 가계를 주름지게 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현실은 사라져야 한다. 가만히 따져보면 영어가 생업에 정말로 필요한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공교육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영어를 가르치고 나머지 더 필요한 부분은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공부하면 된다. 언제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미리 배워두어야 한다는 말도 일리가 없지는 않으나, 마치 언제 감기에 걸릴지 몰라 항상 감기약을 가지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감기약은 싸기라도 하다. 말의 땅 싸움: 한국어 대 영어 영어 열풍이 야기하는 다른 문제들인 국력 낭비나 계층 간 격차 확대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영어가 우리말을 잡아먹고 있는 현상이다. 언어는 원래 섞이고 변하는 것이니 별 문제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나, 그것도 정도 문제다. 필요 이상으로 영어 열풍이 불다 보니, 원래는 외국인을 겨냥한 영어 열풍이던 것이 어느새 ‘우리끼리의’ 영어 열풍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영어 점수가 입사나 승진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 좋은 증거다. 심지어 보일러 기술자가 승진을 위해 보일러 기술 책이 아니라 토익 시험 공부를 하고 아나운서(물론 한국어 아나운서) 시험에서도 영어 성적이 당락을 좌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에는 영어 숭배 현상뿐 아니라 표준 점수화가 잘되어 있는 영어 시험 제도가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이제 우리 일상에서 영어가 한국어의 자리를 밀어내고 그 땅을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언어 생활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정작 자기 말은 경시하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말인데, 자기 말을 천시하고 남의 말만 따르려는 사람을 세계가 과연 인정해 줄까? 영어를 도구로서 중시하자던 정책과 풍조가 이제 영어를 도구가 아니라 하늘처럼 숭배하는 지경에까지 다다른 것이 우리 현실이다. 영어 열풍이 한 10년 몰아치다 보니 젊은이들의 영어 실력은 상당히 늘어났다. 하지만 국어 교육을 경시한 결과 국어 실력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각종 조사 결과들이 이를 증명한다. 텔레비전에는 엉터리 자막이 가득하고, 신입사원들은 기획서 하나 작성하지 못하고, 대중들 앞에서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언어는 문화의 기본일 뿐 아니라 의사소통의 필수 수단이기 때문에 정확하고 바른 언어 사용은 문화 발전뿐 아니라 경제 발전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영어가 경쟁력이라면 그 이상으로 모국어가 경쟁력이다. 효율적인 의사소통은 시장주의자들의 목표 달성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국어 교육을 반드시 강화해야 한다. 그 국어 교육 역시 영어 교육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교육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 한문 사자성어나 외우게 만들고 고전 소설이나 해설하고 시에 ‘밑줄 좍 그으면서’ 통조림 파는 듯한 교육 말고, 정확하고 아름다운 한국어를 쓰고 말하는 교육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한국어 능력 시험도 활성화화고 표준 점수화하여 입사·승진 시험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국어기본법이 얼마 전 국회를 통과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나, 그 조항들을 강제할 규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것은 큰 문제다. 외국어, 외국 글자 남용을 규제할 강제 규정이 없는 것이다. 사회 현실이 이를 허용하지 않아 그런 것이니, 사회 현실도 고쳐야 하고 법 규정도 고쳐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의 언어 정책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올바른 언어 정책 세워야 지금 우리나라에는 언어 정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 모국어가 한국어 하나이고 한국어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한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으니 언어 정책이라는 것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기껏 한글 전용이냐 국한문 혼용이냐 하는 논쟁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많이 바뀌어 언어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한국어를 국어로서 갈고 닦으며 외국어의 위치와 교육 목표를 정립할 언어 정책을 세워야 한다. 소수이지만 정치인들도 언어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제 학계·정계·관계·문화계·경제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언어 정책의 틀을 잡고 세부 규정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 원칙은 다음과 같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한국어는 국어로서 발전시키고 영어나 다른 외국어는 외국어로서 교육 목표를 잡아야 한다. 외국어가 한국어의 자리를 잠식하여 한국어를 고사시키는 일은 문화 국가로서 반드시 막아야 한다. 한국어 발전과 외국어 구사 능력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한국 언어 정책의 기본 뼈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