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005]東坡7절-洗兒戲作(세아희작)
洗兒戱作(세아희작)
아이를 씻기며 실없이 지은 글
소식(蘇軾, 1036~1101)
人皆養子望聰明(인개양자망총명)
사람들은 모두 아이 기르며 총명하길 바라지만
我被聰明誤一生(아피총명오일생)
나는 총명으로 일생을 그르쳤으니
惟願孩兒愚且魯(유원해아우차노)
오직 바라기를 이 아이가 어리석고 노둔해서
無災無難到公卿(무재무난도공경)
재난 없이 고관대작을 누렸으면
중국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사흘째 되는 날,
아이 몸을 깨끗이 씻어주고 큰 잔치를 벌여 축복해주는 날이 있는데,
이날을 세아회(洗兒會)라고 합니다.
당시 아주 잘 나갔고 높은 관료 출신 소동파 시인은
정말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지인 왕안석에게 탄핵을 당해서
사형에 처해질뻔 했다가 겨우 목숨을 건진후 매우 척박한 동네로 전전하면서
오랜시간 유배 생활 하면서 조용히 시를 짓고 살았습니다.
모질고도 고통스런 유배 생활중에 자신의 넷째 아들이 태어났고,
세아회(洗兒會) 날을 맞아 이 시를 쓰고 있습니다.
너무 높은 벼슬 자리를 얻은 사람은
자신처럼 실로 어리석은 선택과 판단을 하기 쉽고,
이토록 나라가 어수선하고 혼탁 스러울때는 재주 많은 사람은
그 재주를 감춰서 아예 없는듯이 사는것이 화를 면하는 길이고,
조금 미련하게 어리숙하게 사는것이 차라리 더 낫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칼날같이 날카로운 재능이 오히려 큰 화를 불러 오기에,
자신의 아들은 제발 큰 재앙과 불행한 일없이 행복하고 평탄한 자기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소동파의 시를 다 읽고난후 함께 떠오르는 사람은,
조선 후기의 우리나라 천재시인 정약용입니다.
그 역시도 아들과의 수많은 서간 왕래 편지속에서,
자식들이 자신처럼 온갖 고난과 박해를 받는대신
조금 모자라고 어리석고 미련해도 좋으니,
자신이 진정 행복해지는 그런 삶을 사는것이
차라리 더 낫다고 생각 하면서,
홀로 웃으면서라는 좋은 시를 남기고 있습니다.
*公卿(공경): 삼공(三公)과 구경(九卿)
공경대부:중국 주나라시대
벼슬이었던 3공9경27대부를 일컫는말로
높은 벼슬아치를 뜻한다.
<역사> 삼공(三公)과 구경(九卿)을 비롯한
높은 벼슬아치를 통틀어 이르는 말.
삼공은 조선시대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고려시대는 태위, 사도, 사공의 총칭이다.
구경은 육조판서, 좌우참찬, 한성판윤의 아홉대신을 말한다.
소식이 살았던 중국 송나라 남송시대는 이와는 달랐을 것이다.
그래, 총명함이 일생을 그르칠 수 있다.
소식(소동파)이 정적들과 싸우고 귀양을 가고
인생이 꼬이는 순간들에 총명함이 웬수라.
미인박명(美人薄命), 미인 또한 박명이랬지.
그런데 어리석고 노둔하게 고관대작을 누릴 수 있겠는가?
내 아들이 고관대작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부디 건강하고 지혜롭게 살기를.
총명하게, 늘 깨어 있으라 말하고 싶다.
이하=동아일보
소동파의 아들 교육[이준식의 한시 한 수]〈31〉
입력 2019. 11. 8. 03:03
남들은 자식이 총명하길 바라지만
나 자신은 총명한 탓에 일생을 그르쳤나니.
아이가 어리석고 아둔하다 해도
그저 탈 없고 걱정 없이 공경대부에 올랐으면.
(人皆養子望聰明, 我被聰明誤一生. 惟願孩兒愚且魯, 無災無難到公卿.)
―‘아들 잔칫날에 장난삼아 짓다(洗兒戱作·세아희작)’(소식·蘇軾·1037∼1101)
소동파는 재능이 출중했지만 강직한 성품에 소신껏 바른 소리를
곧잘 하는 바람에 관료 생활은 파란의 연속이었다.
급기야 정쟁의 와중에서 사형의 위기까지 맞았지만
멀리 후베이(湖北)성 황저우(黃州)로 좌천되면서 목숨만은 부지했다.
그곳에서 얻은 아들이 넷째 소둔(蘇遁). 아기 출생 만 한 달이 되는 날,
풍습에 따라 배냇머리를 깎고 목욕시키는 ‘세아회(洗兒會)’ 잔치 자리에서
이 시를 읊었다. 자식이 총명하길 바라는 게 인지상정이련만 동파는
아들이 어리석고 아둔해도 무탈하기만을 소원했다.
그러고도 공경대부를 기대한다니 여간 모순이 아니다.
언외(言外)의 속내는 무엇일까.
지금 공경대부에 오른 이들이 결국은 어리석고 아둔했기에 무탈했다는
사실을 은근히 빈정댄 것이거나, 자신의 총명이 오히려 일생을
그르친 화근이었다는 회한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큰 지혜를 가진 자는 자기 재능을 과시하지 않기에
언뜻 어리석어 보인다’는 노자의 ‘대지약우(大智若愚)’를 강조한
아비의 당부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화답한 시가 있는데 청대 전겸익(錢謙益)의
‘반동파세아시(反東坡洗兒詩)’가 흥미롭다.
‘동파는 자식 키울 때 총명할까 걱정했지만/
나는 우둔한 탓에 일생을 그르쳤나니./
내 자식은 의견 굽히지 말고 수완도 잘 부려서/
수단방법 안 가리고 공경대부 되었으면.’
시제와 표현도 동파를 반박한 듯하지만,
그 역시 수단껏 수완을 잘 부린 자가 공경대부에 올랐다는
‘일그러진 총명’을 질타한 점에서는 판박이다.
재치가 번뜩인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