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1일 금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은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친척이며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루카 1,39-56 참조)을 기념하는 날이다. 5월 31일을 축일로 정한 것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월 24일) 사이에 기념하기 위해서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9-56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성모님의 삶
오늘은 5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참으로 행복하신 성모님의 설렘과 엘리사벳의 환희의 외침이 가득 찬 날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있는 마리아의 행복을 미루어서 짐작하고,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가득 찬 축복의 말씀을 들으면서 두 분이 얼마나 행복해하셨는지 상상이 갑니다. 성모송의 기도를 매일 접해서 우리는 오늘 말씀이 낯설지 않습니다. 여인 중에 가장 행복하신 성모님의 행복을 잠시 생각해 보면서 성모님은 정말로 행복하셨는가?
성모님의 삶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으나 세상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아기 예수 잉태,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임신사실, 자랑하고 싶지만 자랑할 수 없는 사랑, 정배자 요셉에게 파혼 당할 뻔 한 일, 만삭의 몸으로 호적신고를 위해서 베들레헴으로 떠나야 하는 긴 여행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구간에서의 첫 해산, 아기를 짐승의 먹이통에 뉘여야 하는 아픔, 성전에 아기 예수를 봉헌하면서 칠고의 예언을 받으시고, 사막을 횡단하여 이집트까지의 피난과 다시 갈릴래아로 복귀하시면서 평범한 결혼생활을 포기하신 조심스런 생활, 예수님을 잃고 사흘이나 찾아 헤매신 일 등 가히 평범치 않은 생활은 그 분을 고통 속으로 늘 몰고 갔습니다.
요셉 성인을 여의고, 자유분방한 예수님과 같이 목공소를 운영하시면서 아들을 지켜보시는 성모님의 마음은 어느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시면서 며칠 씩 집에도 들어오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언제나 노심초사 기다리시는 성모님, 혹시라도 예수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걱정되어 좌불안석(坐不安席)으로 한 번도 편히 앉아 쉴 수 없었던 성모님,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에 가슴 조이기도 하고, 지쳐서 들어온 예수님의 그동안 밀렸던 빨래를 다시 챙겨 주셔야 했던 성모님, 땀에 쪄들고, 냄새나는 주님과 제자들의 수발에 당신의 하루하루의 생활은 숨 막히는 듯 쉴 틈이 없으셨던 고단한 성모님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가시고, 심문을 당하고 매질을 당하면서 비명소리를 듣고 가슴이 찢어지셨을 성모님, 십자가를 지고 조롱을 받으면서 힘들게 제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 품에 안고 울부짖으시는 성모님, 처절하게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어머니를 걱정하시는 예수님을 그냥 바라보아야만 했던 성모님, 죽은 아들을 품에 안고 그렇게 하염없이 울부짖으셨을 것입니다. 천사의 방문을 받으셨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파노라마로 기억하시며 애통해 하시고 힘든 고통으로 아파하시고, 부활의 기쁨도 잠깐, 승천하신 예수님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남몰래 아픔과 기쁨과 행복을 간직하시며 사신 성모님을 생각하면 우리가 말하는 행복은 과연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흔히 '여필종부'(女必從夫)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요즘 사람들에게 상당히 좋지 않은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여자가 남자를 섬기고 따라야 한다.'는 말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계집 녀(女)는 아기를 품듯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으로 품어 안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사내 부(夫)는 하늘의 뜻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女必從夫는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고 하늘의 뜻을 따라야 한다."로 받아들여야 한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평생을 그렇게 사셨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을 경외하면서 사셨고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하시면서 하느님을 경외하는 삶이 곧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말씀하시고 겸손과 공손함으로 세상 비천한 사람들을 섬기며, 굶주린 이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을 섬기고 이웃을 하느님으로 사랑하라는 뜻으로 평생을 사신 성모님의 삶은 과연 '女必從夫'의 삶을 사셨습니다.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서 여필종부의 삶을 우리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모두 하느님으로 알고 받들어 사셨던 성모님의 삶은 바로 순종의 삶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자신만의 삶이며, 교만과 게으름과 오만으로 장식된 삶은 아닐는지요. 그러면서도 항상 신앙 안에서 하느님을 논하고, 성모님을 논하면서 토론의 대상으로 하느님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질하면서 순종의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엘리사벳의 환희에 찬 찬송을 들으면서 5월 성모님의 달을 보냅니다. 그리고 성모님의 아름다움을 묵상하고 성모상을 다시 바라봅니다. 순결과 평화와 순종의 삶을 사셨던 성모님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