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子夏問孝 子曰 色難 有事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자하가 효도에 대하여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부형(父兄) 앞에서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니 (이것을 잘하는 것이 효이다.), (부형)에게 어떤 일이 있으면 자제(子弟)들이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과 밥이 있으면 부형에게 잡수시게 하는 것, 일찍이 이것만으로써 효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셨다.
○ 色難, 謂事親之際, 惟色爲難也. 食, 飯也. 先生, 父兄也. 饌, 飮食之也. 曾, 猶嘗也. 蓋孝子之有深愛者, 必有和氣, 有和氣者, 必有愉色, 有愉色者, 必有婉容. 故事親之際, 惟色爲難耳, 服勞奉養未足爲孝也. 색난이란 어버이를 섬길 적에 오직 얼굴빛 가지기가 어렵다는 것을 일컬어 한 말이다. 사는 밥이다. 선생은 부형이다. 찬은 마시고 먹는 것을 말한다. 증은 ‘일찍이’와 같다. 대개 효자 중에 깊이 사랑함을 가지고 있는 자는 반드시 화기가 있으며, 화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기쁜 안색이 있으며, 기쁜 안색을 가지고 있는 자는 반드시 완곡한 얼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버이를 섬길 적에 오직 안색 가지기가 어려울 뿐이고,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봉양하는 것은 효가 되기에 부족한 것이다.
新安陳氏曰 愉悅也 色見於面者 婉順也 容擧一身之容儀言之 此三句 禮記祭義篇之文 色非可以僞爲也 惟深愛之心 根於中而後 愉婉之色容 見於外 其所以難者 乃有深愛和氣之難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유는 기뻐한다는 것이고, 색은 얼굴에 나타난 것이며, 완은 순하다는 것이고, 용은 한 몸 전체의 용의를 들어서 말한 것이다. 이 세 구절은 예기 제의 편의 글이다. 색은 거짓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마음속에 뿌리를 둔 후에야, 기뻐하고 순한 색과 용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이 어려운 까닭은 오히려 깊은 사랑과 화기를 갖기가 어렵기 때문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
3 | ○ 程子曰: “告懿子, 告衆人者也. 告武伯者, 以其人多可憂之事. 子游能養而或失於敬, 子夏能直義而或少溫潤之色. 各因其材之高下與其所失而告之, 故不同也.” 정자가 말했다. “맹의자에게 알려준 것은 여러 사람에게 알려준 것이다. 맹무백에게 알려준 것은 그 사람에게 근심할만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자유는 봉양하는 것은 잘했지만 간혹 공경함에 실수를 하였고, 자하는 곧고 의롭게 할 수 있었지만, 간혹 온화하고 윤이 나는 얼굴빛이 적었다. 각자 그 재목의 高下와 그들이 잘못한 것에 따라 알려준 것이니, 그래서 같지 아니한 것이다.”
新安陳氏曰 事親以禮 人所通行 신안진씨가 말하길, “어버이 섬기기를 예로써 한다는 것은 사람마다 두루 통해 행할 바이다.”라고 하였다. 問如何見得 朱子曰 觀聖人恁地說 則知其人如此 누군가 묻길, “어떻게 알 수 있는가요?”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성인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이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告懿子無違 意思闊 若其他所告 則就其人所患說 然聖人雖是告衆人 若就孟孫身上看 自是大段切 雖專一人身上說 若於衆人身上看 亦未嘗無益 주자가 말하길, “맹의자에게 무의라고 알려준 것은 그 의미가 넓으나, 그 밖에 알려준 것이라면 그 사람이 근심해야 할 바에 나아가 말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께서 비록 대중에게 알려준 것이라고 할지라도, 만약 맹손씨의 몸 위로 나아가서 살펴본다면, 저절로 대단히 절실한 것이고, 비록 오로지 한 사람의 몸 위에서 말한 것일지라도, 만약 대중의 몸 위에서 살펴본다면, 역시 일찍이 유익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子游見處高明而工夫則疎 子夏較謹守法度依本子做 觀灑掃應對之論 與博學篤志之說 可見惟高明而疎 故必用敬 惟依本做 故必用愛 子夏之病 乃子游之藥 若以色難告子游 以敬告子夏 則以水濟水 以火濟火 故聖人藥各中其病 자유는 보아서 안 곳이 고명하였지만, 공부는 소홀히 하였고, 자하는 비교적 법도를 삼가 지켜서 책에 쓰인 대로 행하였다. 灑掃應對의 논란과 博學篤志에 대한 말을 살펴보면, 오직 고명하기만 하고 (공부에) 소홀했기 때문에, 반드시 경을 사용해야만 하고, 오직 책대로만 했기 때문에, 반드시 사랑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하의 병이 도리어 자유의 약이니, 만약 색난으로 자유에게 알려주고 경으로 자하에게 알려준다면, 이는 물로 물을 구제하고 불로 불을 구제하는 격이다. 그러므로 성인의 약은 각자 자기 병에 잘 들어맞았던 것이다.
問如何見子夏直義處 曰 觀其言可者與之 不可者拒之 孟子亦曰 北宮黝似子夏 是箇持身謹規矩嚴底人 問嚴威儼恪 非所以事親 曰 太莊太嚴厲了 누군가 묻기를, “어떻게 자하의 곧고 의로운 곳을 알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그가 사귈만하면 그와 더불어 사귀고, 불가한 자는 거절한다고 말한 것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맹자도 역시 말하길, 북궁유는 자하와 비슷하니, 몸가짐이 신중하고 법도에 엄한 사람이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누군가 엄숙하고 위엄이 있으며 엄연하고 씩씩한 것은 부모를 섬기는 방도가 아니라는 것에 관하여 물었다. 말하길, “너무 장엄하고 너무 엄하고 세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問子夏能直義而或少溫潤之色 直義莫是說 其資之剛方否 曰 只是於事親時 無甚回互處 누군가 묻기를, “자하가 능히 곧고 의로울 수 있었지만, 간혹 온화하고 윤택이 나는 얼굴빛이 적었다고 하였는데, 직의란 혹시 그 자질이 굳세고 방정함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라고 하였다. 말하길, “그저 어버이를 섬길 때 매우 완곡한 부분이 없다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問夫子答子游子夏問孝 意雖不同 然自今觀之 奉養而無狎恩恃愛之失 主敬而無嚴恭儼恪之偏 儘是難 曰 旣知二失 則中間須自有箇處之之理 愛而不敬 非眞愛也 敬而不愛 非眞敬也 敬非嚴恭儼恪之謂 以此爲敬 則誤矣 只把做件事小心畏謹 便是敬 누군가 묻기를, “공자께서 자유와 자하가 효를 물음에 답한 그 뜻은 비록 같지 않지만, 그러나 지금 살펴본다면, 봉양하되 은혜와 사랑을 믿고서 함부로 하는 잘못이 없고, 경에 주안점을 두되 엄숙하고 공손하며 엄연하며 씩씩함에 치우침이 없는 것은 모두 다 어려운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미 두 가지의 잘못을 알았다면, 중간에 반드시 저절로 그것을 처리하는 이치가 있을 것이니, 사랑하지만 공경하지 않으면, 진짜 사랑이 아니고, 공경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면 진짜 공경이 아니다. 경이란 엄숙하고 공손하고 엄연하고 씩씩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를 경으로 여긴다면, 틀린 것이다. 그저 일을 붙잡고 함에 있어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삼간다면, 이것이 곧 경이다.”라고 하였다.
問孔子答問孝 四章雖不同 意則一 曰如何 曰 彼之問孝 皆有意乎事親者 孔子各欲其於情性上覺察 不使之偏勝 則其孝皆平正而無病矣 曰如此看恰好 누군가 묻기를, “공자가 효를 물음에 답한 4개의 장은 비록 같지 않지만, 뜻은 하나가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어째서 그런가?”라고 하였다. 말하길, “저들이 효를 물은 것은 모두 부모를 섬기는 것에 뜻을 둔 것입니다. 공자께서는 각자 그들이 정과 성 위에서 깨달아 살펴서, 그들로 하여금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 우세하지 않도록 바라신 것이니, 이렇게 하면 그 효가 모두 균평하고 올바르게 되어 병폐가 없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와 같다면 딱 좋아 보인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事親之道非貴於聲音笑貌也 而以色爲難者 色非可以强爲也 非其眞有深愛存乎其心惟恐一毫拂其親之意者 安能使愉婉之狀貌見於顔面也哉 其告子夏者 所以發其篤於愛親之念也 或曰 敬與愛兩事 常相反也 敬則病於嚴威 愛則病於柔順 今其告二子者如此 得無擧一而廢一乎 曰 敬與愛 皆事親之不能無也 父母至親也 而愛心生焉 父母至尊也 而敬心生焉 皆天理之自然而非人之所强爲也 然發之各有節而行之各有宜 或過或不及 則二者常相病也 故聖人因其所偏者而警之 所以勉其不足而損其有餘也 四章問孝 其一則不辱其親 其二則不辱其身 三則敬 四則愛 學者於此四者而深體之 事親之大義 盡於此矣 述論語者 聚而次之 警人之意 深矣 면재황씨가 말하길, “부모를 섬기는 도가 듣기 좋은 소리와 웃는 모습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서, 얼굴빛을 어려운 것으로 여긴 것은 색이란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로 깊은 사랑이 그 마음에 보존되어 있어서, 오직 터럭 하나라도 자기 부모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기쁘고 순한 모습이 안면에 나타나도록 할 수 있겠는가? 자하에게 알려준 것은 부모를 사랑함에 독실한 그 마음을 드러내는 것들이다.”라고 하였다. 혹자가 말하길, “공경과 사랑은 두 개의 일이니, 항상 서로 반대되는 것입니다. 공경하면 엄숙하고 위엄 있음에 병폐가 있고, 사랑하면 유순함에 병폐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두 제자에게 알려줌이 이와 같으니, 하나는 들어주고 다른 하나는 없애버리는 것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경과 애는 모두 부모를 섬기는 데에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부모는 지극히 친밀하니 사랑의 마음이 생기는 것이고, 부모는 지극히 높으시니 공경의 마음이 생기는데, 모두 천리의 자연스러움이지, 사람이 강제로 할 수 있는 바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드러내는 데에는 각자 절도이 있고 행하는 데에도 각자 마땅함이 있는 것이다. 혹 지나치거나 혹 못 미친다면, 두 가지는 항상 서로를 병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께서는 그가 치우친 것을 바탕으로 그를 경계해준 것이니, 그가 부족한 것을 권면하고 남는 것을 덜어내기 위한 것이다. 4개의 장에서 효를 물었는데, 그 첫 번째는 자기 부모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이고, 그 두 번째는 자기 몸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이며, 그 세 번째는 공경하라는 것이고, 그 네 번째는 사랑하라는 것이다. 배우는 자가 이 네 가지에서 깊이 체득한다면, 부모를 섬기는 대의가 여기에서 다 행해질 것이다. 논어를 기술한 사람이 이를 모아서 편차하였으니, 사람들을 경계하고자 한 그 뜻이 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問孝四章乃記者以類序次之 一則欲不違禮以事親 二則欲謹守身而不憂其親 三則欲其敬親 四則欲其愛親 學者合四章而深體之 事親之孝 可得矣 聖人之言 如化工隨物賦形 凡一部論語中 其敎人不同及問同答異者 皆如此不但此四章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효를 물은 4개의 장은 기록한 사람이 비슷한 것으로써 편차한 것이니, 첫째는 예를 어기지 않음으로써 부모를 섬기기를 바란 것이고, 둘째는 삼가 몸을 지킴으로써 제 부모를 근심시키지 않기를 바란 것이며, 셋째는 부모를 공경하기를 바란 것이고, 넷째는 부모를 사랑하기를 바란 것이다. 배우는 자가 4개의 장을 합하여 깊이 체득한다면, 부모를 섬기는 효를 터득할 수 있다. 성인의 말씀은 마치 조화옹이 사물에 따라 형체를 부여하는 것과 같으니, 무릇 일부 논어 안에서 사람을 가르침이 다르거나 질문은 같은데 대답이 다른 것은 모두 이와 같은 것으로서, 단지 이 4장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