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18(월) 색다른 투어 cafe의 아침편지
2% 부족하게
조금은 어려운 것을 남겨 둬라.
완벽한 행복 뒤엔 불행이 기다리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육체는 숨을 쉬고
정신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 한다.
전부를 갖고 나면
다음에 올 것은 실망뿐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는 뭔가 부족함이 있어야
호기심이 일고 희망을 추구한다.
칭찬할 때도
완전한 만족을 주지 않는 것이 수완이다.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으면
두려움이 고개를 디밀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불행한 행운인가!
인간의 소망이 그치는 곳에서
바로 두려움이 시작된다는 것이!
조금은 부족한 듯, 2% 부족하게 살자.
-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미래를 보는 지혜' 중에서 -
책소개
『미래를 보는 지혜』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철학자 그라시안으 대표적인 작품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292개의 잠언을 담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처세술을 그라시안 특유의 냉철한 사유로 풀어냈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독일어로 번역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영국ㆍ프랑스 등에 번역되어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금도 전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히고 있는 불후의 명작이다.
작가소개
발타자르 그라시안
발타사르 그라시안 이 모랄레스(Baltasar Gracián y Morales, 1601년 1월 8일 - 1658년 12월 6일)은 스페인의 작가이다. 예수회 신부였던 그는 1658년 예수회를 탈퇴하겠다고 청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해 죽음을 맞는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대철학자이자 작가. 예수회의 성직자. 니체와 쇼펜하우어에 의해 ‘유럽 최고의 지혜의 대가’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시간과 역사를 초월하여 인간의 내면에 대한 절제된 언어와 통찰력 있는 표현으로 탁월한 평가를 받는 그의 그들은 20세기 중반에 들어 독일을 중심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17세기가 낳은 최고의 작가로 평가되고 있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1601년 1월8일 벨몽트에서 태어나 57세의 나이로 사망한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철학자이다.
어린시절부터 종교적인 환경속에서 성장을 했던 그는 15세의 나이로 발렌시아의 사라고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세계와 인간에 대해 남다른 통찰력을 갖게 되었다. 18세에는 제수이트 교단의 일원으로 활동을 하는 영예를 얻게 되었고 풍부한 학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한 명강의를 선보이며 수사원에서 일약 지도신부의 위치에 올라선다. 그는 또한 군목사로서 탁월한 재능을 보여 군인들 사이에서는 '승리의 대부'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스페인 국왕의 고문 자격으로 마드리드 궁정에서 철학 강의와 설교를 하기도 했다.
그의 저술은 제수이트 교단 상부의 허락없이 출판했다는 죄목으로 인해 고난과 핍박을 받고 금서가 되기도 했지만 사후 재평가를 통해 로마의 위대한 철하자 세네카와 비견될 정도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세상을 보는 지혜』 ,『영웅』,『비평가』,『신중한 사람』 등의 저서는 삶의 지혜와 양심 그리고 미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사상은 니체와 쇼펜하우어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타락과 위선의 시대에 진정한 삶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집 아파트 앞 정자로 나갔습니다. 흐린 날씨였고 간간히 가랑비가 내려서 오히려 상쾌했습니다. 인근 야산의 은행건물 앞에서는 대형포크레인이 숲속에서 무슨 철거작업을 하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엄청 큰 포크레인이라서 호기심이 났고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공사를 하는 것이 신기해 한참을 구경하면 진하게 담배 한대를 피웠습니다. 마나님이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잠시 그간 시청을 못했던 MBC 인기 드라마 '옥중화" 한편을 보았지요.
아침식사는 어제 e-mart에서 구입해온 복날 토종닭으로 끓인 죽으로 해결했습니다. 딸래미 내외가 빕을 방문했기에 온가족이 함께 아침 식사를 한 아주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지난밤 처가집에서 함께한 사위에게 "처가집에 오면 씨암닭을 주는 거라면서..." 사위가 많이 먹기를 채근했지요.
아침식사 후, 우리 가족은 가까운 세검정 성당에 미사를 참례하기 위해 사위의 차에 동승했습니다. 아들녀석은 오늘 여자친구와 함께 부모님께 자기 생일상에 초대하겠다면 이미 일찍 나간 뒤었지요. 오늘은 연중 제16주, 농민주일이었습니다.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왔기에 참 좋았습니다. 아침미사를 마친 후 집에 다시 돌아왔고, 점식 식사를 먹이고 딸아이 내외를 귀가 시켜 마음이 좀 놓였습니다.
생일잔치 행사 참가
오후 5시경, 아들과 예비 며느리가 마련한 아들녀석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았기에 우리 부부는 목적지인 종로 소재의 인도요리 전문점인 '아그라'로 향했습니다. 7210버스는 청와대 뒷편의 도로를 경유하여 조계사 방향으로 가기에 그 버스에 탔는데, 때마침 버스 차창을 통해 1968년 1월 21일 북괴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기습하고자 침투할 당시 그들과 교전을 하다가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 동상 추모비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진 그분을 위해 잠시지만 버스 안에서 묵상기도를 드렸습니다.
당시 중학교에 막 입학했던 우리들은 북괴의 124군 부대 소속의 무장공비들의 침투에 대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하는 이승복 군의 반공정신을 기리며 엄청 궐기했던 생각이 납니다. 우리 고향 근처인 울진 삼척지구에 침입한 무장공비들도 그 당시였던 생각이 납니다.
시내버스로 종로 1가 근처의 조계사 앞에서 내려 스마트폰 구글 지도를 보면서 약속장소인 을지로입구인 종로 맛집으로 표시된 "인도 커리 맛집 아그라를 찾아 한참을 헤메인 끝에 미래에셋 에비뉴점을 드디어 찾았습니다. 승용차로 갔으면 고생을 안했을터인데, 혹시 생일파티에 약주라도 한잔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어떻든 우리 부부는 아들녀석과 예비 며느리가 마련한 인도시당에서 머리 털나고 처음으로 이름도 생소한 인도요리를 이것 저젓 많이 시켰습니다. 아들녀석의 생일이라서 초대한 아들이 밥값을 내게 할 수 없어 예비 며느리에게 잘 보일려고 하여간 메뉴판에 있는 좀 고상한 것을 이것 저것 많이 시켯습니다.
아이들이 벌써 이렇게 성장한 것을 보곤, 우리 부부는 그저 대견스러웠고 또 많이 행복했습니다. 인도 요리를 안주삼아 맥주도 한잔 했기에 귀가 길은 택시를 탔습니다. 예비 며느리가 준 선물보따리도 있어서 택시를 탈 수 밖에 없었지요.
청와대 뒷길을 택시로 귀가하면서 이번에도 故최규식 경무관의 동상과 추모비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택시 기사님께 부탁하여 택시를 잠시 정차 시키고 동상과 추모비를 둘러 보았습니다.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은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 오늘의 일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