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에서 돌아와 의욕을 가지고 진행하던 성전 건축이 어느 날 중단되었다. 그리고 공사장은 방치된 상태로 여러 해를 보냈다. 마치 공사 대금을 지급하지 못해서 부도난 건물이나 폐허처럼 방치되어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그 때에 하나님은 다시 백성들을 고무시킬 종들을 일으켜 세웠다.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였다.
학개 선지자는 포로기 선지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바벨론을 정복한 바사왕 고레스의 피정복민 화해 정책에 힘입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무리는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일단 기초를 놓았지만, 주변의 반대를 직면 할 수밖에 없었다. 사마리아인들은 조직적으로 거짓 보고서를 올려서 건축을 방해하려고 하였다. 그 결과 반대를 만난 사람들은 의욕을 잃고 한사람, 한사람 사업장을 떠나가고 성전 건축은 부진하다가 마침내 중단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다리오가 바사의 왕위에 올랐을 때 학개 선지자는 부름을 입어서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였다.
(학 1: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학 1: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학 1: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 행위를 살필지니라” 사실 하나님은 저들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렸다”라는 말이 있다. 사실 저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성전 공사를 피할 핑계를 찾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웃 거민들이 방해를 한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변명하였다.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변명과 핑계가 된다. 왜 수 많은 사람이 선한 일에서 쉽게 돌아서고 신앙에서 떨어져 나가는가? 그 이유는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들은 믿음을 발휘하기보다 반대와 어려움이 예상되는 봉사의 현장에서 서둘러 도망하고 거기에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를 댄다.
하지만 “그분의 사업은 그분의 종들이 믿음으로 전진할 때만 진척이 있을 것이다.”(화잇주석, 학 1:1,2) 하나님의 사업은 반대 없이 진행된 적이 없다. 원수가 있고 세상이 하나님의 사업에 협력하지 않는 한 반대란 자연스러운 일이며 시련과 어려움은 당연히 받을 우리의 몫이다. 그럼에도 자신들은 편안한 집에서 살고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소극적이면서 헌신과 희생은 외면하고자 한다면 어찌 그리스도의 군병이라고 하겠는가?
(학 1: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학 1: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그렇게 살면 잘 먹고 잘살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 없이 혹은 하나님의 일보다 더 먼저 세상을 구하고 살면 잘 될 줄 알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재물이 오히려 재앙이 되고, 아무리 벌어도 만족은 없다. 마치 구멍 뚫린 전대처럼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것이 하나님 없는 삶이다.
선지자는 두 번에 걸쳐서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는 기별을 주고 있다. 나는 언제나 하나님 먼저인가? 믿음으로 구하는 삶인가? 헌신을 피하려는 변명은 정당한가? 지난날 자신의 행위를 다시 한번 돌아본다.
하나님 아버지! 반대를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하고 고난을 때가 아닌 것으로 결정한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길보다는 쉬운 길, 간단한 길을 가고자 했던 영적 게으름을 용서해 주시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뭐를 해도 잘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을 살피게 하시고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했던 허물을 돌아보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을 섬겨 일하길 원합니다. 주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어서 다시 열정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