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ㅡ콜리지
모든 생각 모든 정열 모든 기쁨
무엇이든 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모두 사랑의 신의 머슴에 지나지 않으며
그 정결한 불꽃을 자라게 하는 양식이다.
깨어 있는 상태의 꿈에서 나는 자주
즐거웠던 그 때를 돌이켜 생각한다
선허리의 황폐한 탑 옆에
누워 있었던 그 한 때.
달 그림자는 소리 없이 주위에 밀려와서
황혼의 빛과 어울렸고 그리고
거기에 그가 있었다. 나의 희망 나의 기쁨
나의 그리운 사람 제네비브.
그이는 무장한 한 사람
무장한 기사상(像)에 기대어 있었고
사라져 가는 빛 속에 그이는 서서
내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거기에는 슬픔이 없었다
나의 희망 나의 기쁨 나의 제네비브
내가 그에게 슬픔을 주는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이는 더욱 나를 사랑하였다.
나는 고요하면서도 슬픈 가락을 연주하였고
감동스런 옛 이야기를 노래하였다ㅡ
그 황폐한 옛 폐허에 어울리는
옛날의 소박한 노래를 불렀다.
그이는 때로 얼굴을 붉히며 눈을 내려깔고
다소곳하게 귀를 기울였다
내가 그 얼굴을 뚫어질 듯이 본다는 것을
그이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방패에다 번쩍이는 검을 새긴
기사의 이야기를 그이에게 들려 주었다
또한 그 기사가 십 년 동안이나 그 나라의
공주를 사모한 이야기도 말하였다.
그 기사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나는 말하였으니
아아 내가 다른 사람의 사랑을 말하던 때의
깊숙하고 나즈막하며 애원하는 듯한 가락은
바로 나 자신의 감정을 말했던 것이다.
그이는 때때로 알굴을 붉히며 눈을 내려깐 채
다소곳하게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내가 너무도 뻔뻔스럽게 그 얼굴을
쳐다본 결례를 용서하였다.
그러나, 이윽고 그 용감하고 미남인 기사가
쌀쌀한 공주의 비웃음 때문에 미쳤다는 것
그 기사가 낮이나 밤이나 쉬지 않고
산과 숲을 방황한 일이며ㅡ
어떤 때는 들짐승의 굴에서
어느 때는 어두컴컴한 나무 그늘에서
또 어느 때는 햇빛 빛나는 빈 터에
갑작스럽게 뛰어 나온 일이며ㅡ
눈매가 이상한 아름다운 천사가 나타나
기사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으나
그 가련한 기사는 그것이
악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일이며ㅡ
또한 그 기사가 무엇을 하는지 모른 채
성난 무리들 한가운데 뛰어들어
죽음보다 더한 욕된 부끄러움으로부터
그 나라의 공주를 구출해 낸 일이며ㅡ
공주는 울며 기사의 무릎에 매달려
진심으로 기사를 섬김으로써
자기가 미치게 한 죄를 용서 받기 위하여
노력했으나 보람이 없었던 일이며ㅡ
https://blog.naver.com/hanjy9713/220823294467
또한 공주가 동굴 속에서 기사를 간호하며
기사의 미친 증세가 겨우 치유되었을 때에
기사는 숲 속 누런 낙엽 위에 쓰러져
거의 죽게 된 일! 그리고ㅡ
기사의 임종의 말ㅡ내가 노래 중에서도
가장 가슴을 울리는 그 가락에 이르렀을 때에
나의 더듬거리는 소리와 끊어지는 거문고 소리는
그이의 가슴에 연민의 정을 일으키게 하였다.
영혼과 감정의 온갖 충동으로
순진한 제네비브의 가슴은 설레었고
음악 소리와 가련하고 슬픈 이야기에
향긋하고 붉게 물든 해거름.
그리고 희망과 그 희망을 낳는 가공스러운
분별조차 할 수 없는 떼거리와
오래 억눌리고 억제된, 그리고 또한 오래 오래
가슴에 품고 있던 상냥한 소원!
그이는 연민과 기쁨 때문에 울고
애정과 처녀의 수줍음으로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꿈 속에서 중얼거리는 것처럼
내 이름을 속삭이듯 말하였다.
그이의 가슴이 솟아 올라 옆으로 한 걸음 비키며
내 눈을 의식한 듯 한 걸음 물러섰다ㅡ
그리고 갑자기 쭈빗쭈빗 하는 눈매가 되어
내 품에 안기더니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이는 양팔로 내 등을 안으며
조용히 나를 껴안았다
그리고 머리를 치켜 얼굴을 들어
내 얼굴을 한참 동안 빤히 보았다.
그 모습은 반은 애정이고 반은 두려움이었고
또 반은 수줍은 계략이었다
그 가슴의 설렘을 내가 보게 하기보다는
느끼게 하려 하는 행동이었다.
나는 그이를 달랬고 그 이는 침착함을 되찾아
처녀의 긍지로써 사랑을 고백하였다
나는 나의 아름다운 제네비브를
아름다운 나의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출처] 사랑ㅡ콜리지(2)|작성자 고전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