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유령
홍일표
심장이 없고
갈비뼈도 없는
사람 이후의 사람
사람 이전의 사람
누군가가
하늘이 낳은 미래라고 부르기도 하지
분명한 건 없지
분명하고 단단할수록 거짓이라고
눈사람이 온몸으로 말하지
일용한 양식이 허공이어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미련도 후회도 없이
사나흘 세상에 머물다 슬그머니 떠나는
벌거숭이로 웃고 있는 눈사람처럼
하염없이 녹아 사라지는 줄 모르고
온종일 치고받는 흰 유령들
코가 떨어지고
수염이 날아가고
하나 남은 눈마저 사라질 때쯤
허공으로 만든 눈사람이 잘 보이지
어디에도 없는 내일의 표정이 잘 보이지
홍일표 「눈사람 유령」 전문 『조금 전의 심장』 (민음사)
<감상>
언어란 무엇인가? “어디에도 가닿지 못하고 녹아 사라지는 처음부터 없는 문자”(「설국」)라는 표현에서 언어는 눈이다.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이다. 언어로서 기표란 단단하게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는 순간임을 목도하게 된다. “문자의 기억들을 더듬어 지운다”(「여행」) 예를 들어 백합(百合)이라는 꽃의 이름의 뜻은 구근이 비늘조각처럼 여러 개로 나뉘는 모양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있다. 백합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백합은 기호일 뿐이다. 백합을 보고 어떤 이는 순결의 꽃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몸이 기억하는/ 언어 밖으로 사라진 표정들이 남실남실 떠다닌다”(「여행」) 사물은 하나의 기표나 기의를 기지지 않는다. 사물은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 언어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본 텍스트에서 시인에게 언어는 현상이 아니라 존재의 차원임을 보여준다.
존재란 무엇인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미련도 후회도 없이/ 사나흘 세상에 머물다 슬그머니 떠나는” 눈사람과 같은 시공간에 거주한다. 눈과 눈사람은 온몸 그 자체로 사라짐을 증명한다.
시인은 “코가 떨어지고/ 수염이 날아가고/ 하나 남은 눈마저 사라질 때쯤/ 허공으로 만든 눈사람이 잘 보”인다고 역설적으로 말한다. “분명하고 단단할수록 거짓이라고” “슬그머니 떠나는” 사람이란 허공 같은 존재로서 원래 무 상태의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사람을 있는 듯 없는 “눈사람 유령”이라고 인식한다.
허공을 양식으로 삼아 “심장이 없고/ 갈비뼈도 없는/ 사람 이후의 사람/ 사람 이전의 사람”으로서 기관 없는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고 미래이다.
언어와 인간 존재는 동일성이 있다.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는 눈과 같고 눈사람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존재의 유한성에 대해 “어디에도 없는 내일의 표정”이라고 말한다.
- 감상자 이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