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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신약교회시대의 이단주의자들
초기 신약교회시대 당시의 이단주의자들의 주장들과 그들의 결과들에 대해서 정리한다. 이단주의자들의 주장과 그들의 결과는 이미 앞 장에서 어느정도 소개했기 때문에 중복되겠지만 앞으로 전개하게 될 기독교 신학정립의 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다시 한번 정리한다.
하나님의 종들이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는 곳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이비 이단자들이 등장하여 비진리적 사상들을 퍼트렸기 때문에 당시의 교회 내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각종 이단주의 사상들이 침투되었다.
특히 당시의 상황은 아직 성경이 정경으로 정립되지 않았고 교회 지도자들도 아직은 하나님의 섭리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이단이고 어떤 것이 또한 진리인지를 구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은 각종 사이비 이단주의자들의 비진리를 정확하게 가려내어 그들을 퇴출 시켰다. 이러한 사이비 이단자들의 주장과 그들을 가려내어 퇴출시킨 하나님의 종들의 수고롭고 아름다운 승리의 역사를 일일이 고찰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중에 매우 중요하고 심각했던 것들만을 선별하여 소개한다.
1.영지주의.<Gnostic Dualism>
아직 성경이 정경으로 정립되어 공급되지 않았고 반면에 사도적 권위가 있는 지도자들이 은퇴하거나 또는 그들이 돌보던 지역 교회들이 너무 많아서 교회에 약간의 지도적 틈이 생겼을 때에 교회를 크고 강력하게 공격했던 것은 그노시스교의 이원론<Gnostic Dualism>적 철학 사상이었다. 그노시스교 이원론은 우리 용어로 영지주의<靈知主義>로 번역된다.
1)그노시스교의 역사.
그노시스교 또는 그노시스주의<Gnosticism>라는 어원은 지식을 의미하는 헬라어 그노시스<Gnosis>에서 비롯되어 졌다. 그노시스교의 역사적 기원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다르다. <A.D.80-150년>사이에 기독교 안에서 자생한 후에 기독교로부터 이탈한 분파라는 주장이 있고 리밴트지방<Levantine-동부지중해 여러 섬과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등등의 연안제국>에 흥성하였던 각종 혼합종교들을 총칭하여 그노시스교라고 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가장 믿을만한 전승에 의하면<행8:9-24>에 등장하는 시몬마구누스<Simon Magunus>가 영지주의의 근원이다.
시몬마구누스가 영지주의의 근원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사도바울이 이미 고린도교회의 영지주의에 대하여 책망하고 있으며 영지주의 자들 중에 어떤 분파가 시몬마구누스를 구세주로 섬기고 있었고 그들이 주장하고 전파하는 구원의 방법론 중에 시몬마구누스가 직업적으로 행했던 주문과 마술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전승들을 종합해 볼 때에 시몬마구누스에 의해서 시작된 이단적 행위가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리밴트지방에 계속적으로 전수되어 지다가 2세기에 이르러 사토르닐루스<Satornilus> 바실리데스<Basilides>에 의하여 교리적으로 발전되어지게 되었고 3세기에 이르러 발렌티누스<Valentinus>에 의하여 더욱 체계적인 교리로 확립되어 졌다고 추정된다.
이러한 사실은 영지주의가 처음부터 단일 체제적 교파와 교리를 통하여 발전되어지지 않고 여러 개의 수많은 분파로 전래되어 오다가 2-3세기에 이르러서야 오히려 어떤 체계적인 교리를 세우게 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2)그노시스교의 사상.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신학사상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신학사상이 아니라 철학사상이다. 그들의 철학사상은 이원론<二元論>적 철학사상인데 본인들은 부인하지만 플라톤주의 철학사상을 많이 따르고 있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의 사상은 하나로 통일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한 가지로 정리할 수는 없다. 역사 학자들의 연구조사에 의하면 그노시스교 분파는 최소한 12개에서 수십 개로 추산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가장 크게 활동했던 몇 개 분파의 사상들을 소개한다.
(1)발렌티누스파<Valentinus>
발렌티누스파는 영지주의를 대표하는 분파이다. 발렌티누스파는 로마출신의 플라톤주의자인 발렌티누스와 이집트출신의 플라톤주의자인 바실리데스<Basilides>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그러나 바실리데스의 사상은 매우 조잡스럽고 앞 뒤가 전혀 맞지 않아서 영지주의의 교리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영지주의라 함은 대체적으로 발렌티누스의 영지주의 사상을 말한다.
①우주 기원론.
발렌티누스파를 비롯한 대다수 영지주의자들의 창조론은 기독교의 창조론과는 다르다. 그것은 창조론이라고 할 수없고 우주 기원론이라고 하는 것이 적합하다. 저들의 우주 기원론은 선한 영적 세계와 악한 물질적 세계로 구분되는 이원론적 우주 기원론이다. 그러나 저들의 이원론은 마니교도를 비롯한 타 종교들의 이원론과는 전개 과정상에서 약간 다르다. 영지주의자들의 우주 기원론은 철학과 기독교의 연합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의 우주 기원론은 출발부터 이미 기독교의 창조론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저들의 우주 기원론은<창세기1장>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해석하지 않고 플라톤의 티마에우스<Timaeus>에 기록된 우주 진화론<cosmogony>에 접목시켰다.
'영지주의자들의 우주 기원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존의 절대적 존재가 우주를 창조할 때에 물질세계는 창조하지 않았고 다만 영적인 세계<정신의 세계>만을 창조했다. 절대적 지존이 물질세계를 창조하지 않고 영적세계만을 창조한 것은 그의 주권적 섭리의 결과다. 이때에 창조된 영적 세계는 1년12개월에 해당되는 365개이다. 이때 365개의 영적 존재 중 하나인<지혜>가 독자적으로 무엇인가를 창조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하여 지존의 존재로부터 멀리 이탈하여 창조한 것이 물질세계이다.
이와같이 물질세계는 절대적 지존자의 섭리를 무시하고 불법으로 창조되었기에 불법적인 것으로서 악한 존재가 되었으며 또한 절대적 지존자에 의해서 창조되지 않았음으로 완전한 실재적인 것이 되지 못하고 허상에 불과한 미완성적인 것이 되었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의 눈에는 우주만물의 세계가 실재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고차원적인 통찰력을 가진 지혜로운 사람들은 물질세계가 단지 시각적인 착각이거나 또는 가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저들의 물질세계에 대한 이러한 개념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에 대한<가현설-Docetism>이 제기되었다. 예수그리스도는 육체를 가진 실제적 인간으로 강림한 것이 아니라 다만 가시적인 육체로 강림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편 영지주의자들은 물체의 실재가 영적인 것으로서 하나의 정신이라고 믿었다. 이와같은 사상도 결국은 플라톤의 철학사상에서 비롯되어진 것이었는데 저들은 이러한 원리를 인간에게 죄가 도입되는 과정에도 적용했다. 저들은 아담과 하와의 원초적 범죄를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해석하지 않고 플라톤의 철학으로 해석했다. 그리하여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인간의 실재적 사상과 행동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지 않고 정신에 의한 것으로 연결시켜서 여성적 힘<Female Power>또는 모성<the Mother>이 신의 뜻을 거스린 불법적, 범죄적 행위로 해석했다. 따라서 인간세계에 죄가 도입된 것은 실재적 사상과 행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만 정신에 의한 불법적 범죄 행위라는 것이다.
②구원론.
영지주의자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구원에 대한 문제였다. 저들은 인간의 죽음을 영혼의 자유로 보았다. 저들은 플라톤의 사상이었던 영혼의 불멸을 근거로 하여 기독교의 영혼 부활교리에 반대했다. 저들은 인간의 영혼이란 죽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죽을 때에 육체만 죽고 영혼은 죽지 않은 채 다만 분리된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이 각각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는 기독교 교리를 반대했고 특히 육체적 부활을 무시하고 부인했다. 저들은 영혼불멸 사상을 오해하여 인간은 영혼만이 실체이고 전부이며 육체는 악이거나 또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저들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이원론적 차원에서 해석한다. 저들에 의하면 인간은 육체 속에 유배되어 갇혀있는 영원한 정신이다. 그리고 육체는 정신의 감옥일 뿐만 아니라 오감<五感>을 통하여 인간의 윤리적 도덕적 정신을 쾌락적인 방향으로 오도<誤導>시킴으로서 악한 존재이다.
그러나 저들은 자신들의 이원론적인 우주관이 인간의 구원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간의 세계는 지존적 존재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지존적 존재로부터 창조된 피조 중에 하나<지혜>가 지존적 존재의 섭리를 무시하고 임의로 창조한 것이며 따라서 부족하고 불완전한 비물질적 실재로서 하나의 가시적 형상에 불과하고 또한 악한 세계에 속해있기 때문에 그 불안전하고 악한 세계로부터 해방되어야 하지만 인간을 악한 영역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하게 해줄 수 있는 능력은 악하게 물질세계를 창조한 자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지존의 절대적 존재만이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들은 인간의 구원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묘안<그러나 참으로 괴상한 엉터리 사상>을 만들어 내었다.
저들은 물질세계가 비록 지존자의 허락 없는 불법적인 창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존재에 의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속에는 비록 완전하지는 못하나 일종의<영적섬광들> 또는<영적파편들>이 들어있다는 사상을 만들어 내었다. 저들은 물질 속에 들어있는 영적기능을<살전5:23>의 <영, 혼, 몸>에 연결시켜 괴상한 3분설을 만들어 내었는데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영지주의자들의 구원론>
우주만물은 세 가지 차원의 기능적 영역으로 3등분 된다.
1차원은
절대적 지존자에 의하여 창조된 완전한 영적 영역으로서 곧 천국이고 본향이다.
그러나 그 세계는 현재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2차원은
1차원과 3차원의 중간지대로서 선한 영적 영역이나 악한 육적영역이 아니다.
2차원의 영역은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영역으로서 3차원을 제외한 우주 영역이다.
3차원은
7개의 혹성에 속한 영역으로서 악한 존재들에 의하여 지배되는 현세적 영역이다.
인간들도 같은 차원에서 3등분 된다. 1차원의 인간들은 <영>의 존재들로서 최고의 영적기능을 가진 그노시스교 추종자이다. 그들에게는<영적섬광> 또는<영적파편>이 있어서 구원 받을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 안에<영적섬광> 또는<영적파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력으로는 깨달을 수 없고 영적 세계로부터 능력 있는 존재<메신저>가 와서 그 사실을 깨우쳐주어야 한다. 한편 인간의 불행함을 마음아파하신 절대적 지존자가<메신저>를 보내어 인간들에게<영적섬광><영적파편>이 있음을 알려주었는데 그 메신저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이다.<영적섬광>또 는<영적파편>을 가지고 있는 영지주의자들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들의 존재와 능력을 깨달은 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지식을 통하여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자신들의 본향인 천국으로 들어간다.
그들의 영혼은 육체가 죽은 후에 각종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7개의 혹성계를 통과하여 1차원의 세계인 천국으로 가게 된다. 이때에 7개의 혹성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각종 악한세력들을 막아내기 위하여 강력한 부적이나 정확한 주문들을 외워야하기 때문에 그것을 열심히 배워 익혀야한다.
2차원의 인간들은<혼>의 존재들로서 신앙은 있으나 진정한 지식을 소유하지 못한 일반 성도들이다. 그들은 다만 의식<Psyche-정신의 미세한 영역>적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은 내세에서 약간의 중간적인<연옥적 차원의>행복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3차원의 인간들은<몸-육체>의 존재들로서 비 기독교인들을 말하는데 그들은 구제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흙덩어리에 불과하다.
(2)사토르닐루스파<Satornilus>
사토르닐루스는 안디옥 출신으로서 시리아 영지주의파의 시조이다. 그의 사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알 수 없는 아버지 신이다. 아버지 신이 7명의 천사를 창조하였는데 가장 하급적 천사였던 마지막 천사가 물질세계를 창조했다. 사람도 그 천사가 만들었는데 사람은 처음에는 영이 없고 혼만 있는 동물적인 존재로서 벌레처럼 기어 다니었다. 인간을 비롯한 물질세계를 창조한 7째 천사는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또한 저급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들을 사랑으로 인도하지 아니하고 공의로만 인도하며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사정없이 징계로 다스렸다.
때문에 인간들은 그로 인하여 항상 고난의 삶을 살았다. 이러한 상황을 보신 아버지 신은 인간을 불쌍하게 여기시어 인간들에게 생명의 빛을 주어 영적인 존재가 되게 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었음으로 아버지 신이신 하나님께서 영적 존재인 아이온<Aeon-하급적 신중의 하나>을 보내어 인간들을 구원하시기로 결정했는데 그가 곧 예수그리스도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실재적 존재가 아니라 가시적 존재인 환영인데 그는 인류를 악마로부터만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창조한 신의 징계로부터도 구원한다.
인간은 3종류의 영적차원으로 구분되어 졌는데. 그 중에 가장 영적인 존재가 영지주의자들이며 그 이외의 사람들은 영적으로 매우 미숙하다. 때문에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할 수 있는 영적지식과 지혜가 있어서 아버지 하나님께 구원 받을 수 있으나 나머지 두 종류의 사람들은 그러한 지적 영적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구원에 참여할 수 없다. 반면에 영지주의자들도 구원받기 위해서는 독신<獨身>으로서 금욕생활을 해야 한다.
(3)기타 종파.
영지주의에 있어서 발렌티누스파를 제외하면 거의 오합지졸들로서 뚜렷한 분파적 명칭으로 전승되어 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교리라는 것도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이어서 소개할 만한 가치도 없다. 따라서 그중에 몇 가지 분파들의 이야기만 소개하기로 한다.
영지주의 분파 중에 오파잇파<Ophites-뱀을 숭배하던 자들>은 창세기의 우주 창조기사를 아예 헬라적 신화로 바꾸어 버렸다. 저들은 아담과 하와를 타락으로 유도한 뱀을 입으로 꼬리를 물고 우주를 둘러싸고 있는 레바이어단<Leviathan-리워야단>이라고 주장했다. 저들은 리워야단이 매우 높은 지혜를 가지고 있는 선한 존재로서 열등한 창조주와 그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를 물리쳤다고 믿었다. 그들에게는 리워야단이 선한 존재이고 예수그리스도가 악한 존재였다. 때문에 그들은 예배를 드릴 때에 예수그리스도를 저주했다. 어떤 종파는 시몬마구누스<Simon Magunus>를 구세주로 믿었고 또 어떤 종파는 희랍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Heracles>를 구세주로 믿었다.
또 어떤 종파는 구약성경의 예언서들에서 히브리 문학의 특성들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하나님의 섭리까지도 완전히 제외하고 자신들의 철학적 상상력을 적용하여 전혀 다른 이야기들로 바꾸어 놓았다. 예를 들면 아마겟돈<Armageddon>을 우주창조의 첫 번째 창조물로 해석하거나 또는 인간들이 갖게 되는 심리적인 현상으로 묘사하는 것 등등이다. 또 어떤 종파에서는 물질세계를 비롯한 현실 세계는 실상이 아니고 허상이기 때문에 그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함으로서 성도들로 하여금 염세주의에 빠지게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종파에서는 현실세계가 절대적 지존자에게 의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 악의 세력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주장했고 따라서 절대적 지존자에 의하여 선택 되어진<영지주의자>들은 현실 세계의 질서와 법에 순종할 책임과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때문에 영지주의자들은 사회나 정부 당국의 법과 질서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또 어떤 종파들은<진리 안에서의 자유>를 함부로 곡해하여 자신들은 최고의 영적 지혜를 소유한 자들이기 때문에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일반적인 기독교인들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사도들보다도 더욱 심오한 지혜와 깊은 신비적 체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자신들은 초자연적인 영적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일반 기독교인들과는 전적으로 다르다고 호언장담했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과 개념이 다른 기독교인들을 무시하였고 따라서 교회 안에 파벌이 형성되었다. 그들의 자유함에 대한 오류로 인하여 교회 안에 매우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범죄가 발생했다. 저들은 자신들이 성적인 문제로부터 자유하다고 주장하면서 윤리적, 도덕적으로 문란한 성적범죄를 행하는가 하면 또 어떤 자들은 반대로 정결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여 부부간에도 일체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저들은 우상의 제물을 마음대로 먹거나 또는 우상에게 경배하는 것까지도 자유롭게 했는데 그것은<우상은 실상이 아니라 허상이기 때문에 그것에 경배하거나 또는 그것들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는다고 하여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라는 개념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상 때문에 스페인 등지의 기독교인들 중에 어떤 자들은 황제숭배의 사제<司祭>직을 맡아 행하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당당했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이 모두 다 동일한 사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완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같은 영지주의자 간에도 서로 맞지 않고 충돌하는 일이 빈번했다.
3)그노시스교의 활동.
영지주의자들은 각처에 존재했지만 다른 곳의 세력들은 대체적으로 미비했던 반면에 고린도교회와 골로새교회를 중심으로 한 분파들의 활동은 매우 활발했다. 영지주의가 고린도교회와 골로새교회에서 특히 성행했던 것은 고린도와 골로새 지방의 문화적, 역사적 전통들과 관련되어 진다. 이 두 도시는 오래 전부터 헬라문화의 영향을 받아 헬라철학에 익숙했다. 특히 고린도는 일리어드와 오딧세이의 저자인 호머가 말할 정도로 헬라철학 문화에 젖어 있었다. 고린도에는 각종 우상숭배와 퇴폐적 향락문화가 번창했기 때문에 영지주의가 성행할 수 있는 바탕이 충분하게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바울이 활동하던 시대부터 이미 영지주의가 성행하여 교회에 침투되어 있었고 따라서 바울은 이에 대한 문제들을 신학적으로 다양하게 정립했다.
4)교회의 조치.
고린도교회와 골로새교회로부터 시작된 영지주의자들의 활동은 처음에는 미약하였으나 점차 세력이 확장되는 가운데 기독교 전체 교회들로 확산되었다. 이때에는 아직 성경이 정경으로 확정 되어지지도 않았고 따라서 기독교 조직신학이 정립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신학 자체가 아직은 부족하였고 수준 높은 신학적 지도자들도 별로 없었을 때였다. 영지주의의 교회 침투는 매우 심각한 것으로서 자칫하면 기독교 전체가 이단사상에 빠질 수도 있는 위기적 상황이 되었다. 이에 교회의 지도자들이 일치단결하여 영지주의를 맹렬하게 공격하면서 교회를 보호했다.
<A.D.110년경>안디옥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감독들의 권위는 사도들의 권위를 계승 한다>라는 것을 전제한 후 하나님께서 주신 감독의 권위로 영지주의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했다. <A.D.170년경>에는 역시 안디옥의 감독이었던 이레니우스<Irenaeus>가 같은 감독의 권위로 영지주의자들을 정죄했다. 감독들을 비롯한 교회지도자들의 맹렬한 공격과 기독교 신학에 대한 계속되는 정립과 교육을 통하여 영지주의의 허구성이 들어남에 따라 3세기에 이르러 영지주의는 더 이상 교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사멸되었다.
2.마르시온주의<Marcionism>
영지주의자들의 교회침투와 쌍벽을 이룬 것이 마르시온주의자들의 교회 침투이다. 마르시온주의란 마르시온<Marcion>에 의해 형성된 사상을 말한다. 마르시온은 포투스<Pontus-본도>지방의 시노페<Sinope>감독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기독교사상에 익숙해 있었다. 그는 유대교적 사상과 물질세계에 대한 깊은 반감을 가지게 되었고 따라서 반유대적, 반물질적 사상을 기독교신학에 대비시켰다.
마르시온의 교리는 영지주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마르시온은<A.D.140년경>에 쉬프스리더<Schiffsreeder>의 초청을 받고 로마에 갔다. 그는 로마에서 크레도<Credo>라는 사람으로부터 영지주의 사상을 전수 받았는데 그때에 크레도에게 배운 핵심적인 사상은 다음과 같다.
<율법과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선포된 신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율법과 선지자들이 소개한 야훼하나님은 알려진 하나님이었고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은 알려지지 않았다. 야훼하나님은 부족하고 공의로운 반면에 우리 주님의 아버지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마르시온은 크레도의 교리에 크게 감화를 받았으며 이때부터 크레도에게 배운 영지주의를 위주로 한 나름대로의 종교사상을 조립했다. 그는 영지주의 이원론을 변형시켜서 또 하나의 독자적인 사상을 전개시켰다. 그는 영지주의 자들이 말하는 지존의 절대적인 하나님을 기독교의 하나님이라고 했고 구약의 하나님 곧 유대교의 하나님은 “데미우르고스”<Demiurgos-Demiurge>로서 지존의 절대적 존재인 하나님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악한 물질세계를 창조한 열등한 신이라고 했다. 마르시온이 구분한 두 하나님은 존재적 차원에서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능력과 속성에 있어서도 완전하게 구분된다. 유대교의 야훼하나님은 기독교의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영적 존재 중의 하나로서 불완전하고 무지하며 독선적이고 악한 하나님이다.
때문에 그가 창조한 물질세계는 그의 능력과 속성을 따라 부족하고 불완전하며 악하다. 그는 물질세계를 창조 한 후에 인간을 창조하였는데 인간이 악한 존재로 창조되자 그것이 자신의 무지와 악함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화가 나서 인간들을 악한 물질세계에 가두어 버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도움을 주지만 자신에게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가혹한 징벌과 심판을 내려 복수한다. 그가 히브리인들만을 선택하여 구별한 것은 그의 독선적 속성 때문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인들을 멸망하게 한 것은 그들의 불순종에 대한 진노와 복수 때문이다.
마르시온은 성경의 증거들을 일일이 예로 들면서 유대교의 야훼하나님을 무지하고 악한 신으로 평가 절하했다. 마르시온에 의하면 유대교의 야훼하나님 은 무지하고 원칙이 없어서 어떤 일에 대처할 능력이 부족했으며 따라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즉시 해결하지 못하고 더듬적거리거나 우왕좌왕했다. 그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였을 때에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아담아 어디 있느냐?>하고 아담을 찾아 다녔고 소돔과 고모라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하여 천사들을 둘씩이나 데리고 직접 확인하러 내려왔으며 우상을 만들면 죽이겠다고 엄포하고서도 그것을 잊어먹고서 모세에게 구리 뱀을 만들게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능력이 부족하여 아담과 하와를 범죄와 무관한 존재로 창조하지 못하고 시시하게 뱀 따위에게 속아 넘어가서 죄를 범하는 허약한 존재로 만들었다. 세상이 이토록 악하고 불완전한 것은 결국 야훼하나님이 불완전하여 완전하게 세상을 창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죄에 대한 창조자이며 따라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인간들을 영원히 구원할 능력이 없음으로 인간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능력 안에서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야 한다. 마르시온은 다윗과 같이 성적으로 문란하고 악한 살인자를 왕으로 삼은 것과 솔로몬같이 패역하고 부도덕한 악의 씨앗을 계속하여 왕으로 세운 것은 야훼하나님의 독선적 성격과 그 자신이 부도덕하고 악하기 때문에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함으로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심지어 다윗을 음흉하고 무식하고 비루한 산적 출신이라고 했다. 다윗이 율법 책을 가까이 하지 않은 것과 자녀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은 그가 산적 출신이라 무식하여 글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며 다윗이 정신없이 여자를 끌어드린 것은 그가 저급한 산적이므로 여자를 밝혔기 때문이고 심지어 우리야 까지 죽이면서 여자를 빼앗아 온 것도 그에게 산적 기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르시온은 인간이 남녀의 결합을 통하여 후손을 이어가게 된 것도 수치스럽고 저속한 것으로서 역시 야훼하나님의 무능력 때문에 이루어진 결과라고 주장했다. 저속하고 추잡한 남녀의 성적관계를 통한 후손 양성방식이나 임신의 불편과 임산부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 그리고 해산때의 고통들은 야훼하나님의 무능력 때문에 비롯되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반면에 기독교의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의 아버지하나님<성부하나님>으로서 절대적 지고의 주권과 능력을 가지신 완전무결, 영원무궁, 의지존적 하나님이시다. 그는 복수심이나 진노하심이 없는 자비와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때문에 그는 복종이나 경배를 요구하지 않으며 단지 사랑의 교제를 원한다. 그는 오직 순수하고 선한 영적세계만을 창조하셨다. 때문에 유대교의 야훼하나님이 창조한 물질세계에 대한 어떤 책임과 의무가 전혀 없다. 그러나 그는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자비와 긍휼과 사랑 때문에 인간들의 불행을 좌시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독생자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어 인간들을 구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요셉의 정혼녀인 마리아에게 서 태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에 예수그리스도는 야훼하나님의 악한 세상에 속하게 됨으로서 구원자로서의 직무를 행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기독교인들, 특히 사도들이 조작해 낸 날조극이라고 했다.
마르시온은 자신이 직접 작성한 누가복음 역문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티베리우스<Tiberius>황제 치세 때에 하늘로부터 직접 내려와 메시야로서의 직무를 마치고 다시 올라갔다고 주장했다. 마르시온은 이와같은 개념 때문에 성경을 부인했는데 구약성경은 악하고 완전하지 못한 야훼하나님의 것이라는 이유로 거부했고 신약성경 중에서는 바울서신과 누가복음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거부했는데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직계 제자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진의<眞義>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경을 잘못 기록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마르시온은 결국 그것들까지도 불신했는데 이유는 유대교도들의 음흉한 술책으로 인하여 원본이 많이 훼손되었거나 또는 본래의 내용이 수정되어져서 진리가 오류 되어졌다는 것이었다.
마르시온은 자신이 직접 원본을 회복시키겠다는 생각으로 누가복음을 개편하고 바울서신 중에서 저급한 야훼하나님에 관한 내용을 모두 삭제하여 새로운 성경들을 만들어 내었는데 역사학자들은 그것을 마르시온의 정경<Marcionitc Canon>이라고 부른다.
마르시온은 유대교와 기독교는 전혀 별개이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유대교에 관한 모든 것을 완전히 배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의 기독교에는 율법이 있을 수 없었고 오직 복음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복음도 예수그리스도 중심의 기독교 복음이 아니라 마르시온 중심의 제한적 복음이었다.
마르시온이 정립한 교리는 결국 크레도에게 배운 영지주의사상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가 예수그리스도의 실재적 강림을 거부하고 가현설을 주장한 것이나 현상세계의 실재성을 거부하고 환상설을 주장한 것도 모두 영지주의로부터 전수 받은 교리들이었다. 때문에 그의 신앙적 요소도 거의 영지 주의적이었다. 그는 현상세계가 모두 악한 것이라 하여 현실세계로부터 초월하고자 했으며 육식<肉食>이나 성교<性交>는 유대교의 창조신의 악한 계획을 따르는 것이라 하여 철저하게 금지했다. 마르시온은 로마교회에 막대한 헌금을 하고 정착한 후에 많은 추종세력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제한적 교리가 기독교의 신학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이단으로 정죄 받고 파문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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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우르고스<Demiurgos-Demiurge>
데미우르고스라는 명칭은 숙련된 노동자를 가리키는 헬라어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이 명칭은 플라톤의 사상 체계에서는 조물주의 이름으로 사용되었고 헬라 철학적 기독교 신학자들은 그 용례에 따라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했다. 반면에 영지주의 자들은 이 단어를 물질세계를 창조한 신으로서 영적세계를 전혀 알고 있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최고의 신인 것으로 착가하고 있는 열등한 신적 존재에 적용했다. 영지주의 자들은 이 열등한 신 데미우르고스<Demiurgos-Demiurge>가 성경에서 자신을 참된 신이라고 공언하면서 사람들을 미혹시킨다고 주장했다.
3.마니교<Manichaeism>
마니교는 기원3세기경 페르시아사람인 마니<Mani-A.D.216-276>가 창건한 이란<페르시아>의 종교이다. 마니는 본래 조로아스터교의 성도였는데 인도와 중국을 여행하면서 알게 된 불교의 교리와 기독교 교리를 혼합하여 하나의 교리체계를 만들었다. 마니교는 기독교역사에 적지 않은 누를 끼쳤는데 아우구스티누스도 한때 마니교에 심취하여 10여 년간이나 마니교를 신봉하였다. 마니교의 교리는 조로아스터교의 근본 원리를 따라 2원론적인 체계를 이룬다. 이 세계는 원초적부터 광명<선함>과 암흑<악마>으로 이원화되어 있으며 그 두 세력은 상대적인 존재를 견지하기 위한 필연성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광명의 세력과 암흑의 세력은 자연세계와 인간세계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끊임없이 대결한다.
반면에 인간의 구원 문제에서는 불교의 교리로 변한다. 인간은 광명과 암흑의 대결로 인하여 죄악 된 세상에 살게 되었는데 그 죄악 된 세상으로부터 해탈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금욕을 해야 하며 육식을 먹는 것과 망령된 말을 금해야 한다. 따라서 마니교는 세 가지의 인봉<印封>을 한다. 첫째는 입의 인봉으로서 육식과 망령된 말을 금하는 것이고 둘째는 손의 인봉으로서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가슴의 인봉으로서 정욕과 모든 악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마니교의 교직제도에는 기독교의 교리가 적용된다. 마니교는 인간 예수는 거부하지만 신의 아들<그리스도>를 거룩한 구원자로 인정한다. 그러나 마니교가 인정하는 그리스도는 기독교의 그리스도하고는 전혀 다르다. 마니교의 그리스도는 구원자이지만 인간의 구원을 완전하게 책임지는 구원자가 아니라 다만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안내자에 불과하다.
마니교에는 아담, 에녹, 석가, 조로아스터, 예수 등등의 선지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지역적 전도자들로서 민족적 전도자에 불과하며 마니는 세계적 전도자이고 최후의 전도자이다. 마니 밑에는 12명의 사도가 있고 12명의사도 밑에 70명의 감독이 있다. 감독들 밑에는 많은 교사들이 있으며 교사 아래에 수도사들이 있다. 수도사들은 택한 자와 듣는 자로 구분되는데 택한 자들은 세 가지 인봉을 가진 자들을 말하며 듣는 자들은 듣고 배운 후에 택한 자의 반열에 올라가게 된다.
마니는 페르시아왕궁에서 환대를 받으며 교세를 확장했으나 조로아스터교에 의하여 제소되고 정죄 받아 십자가에 달려 가죽을 벗긴 후 화형 당했다. 마니교는 한 때 크게 융성하여 중앙아시아 일대와 인도, 중국, 로마, 북아프리카, 스페인 등지에서 크게 발전했으나 13세기에 이르러 쇠퇴하기 시작한 후 14세기 완전히 소멸되었다. 마니교의 교리는 사실상 보잘 것 없는 것이었지만 기독교가 아직 교리적인 정립을 이루지 못했을 때에 기독교에 여러모로 누를 끼쳤다. 그러나 기독교에 정경이 확립되고 교리가 조직적인 체계를 이루어 정립되어짐에 따라 더 이상 기독교내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축출되었다.
마니교의 교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공격한 것은 과거 마니교에 심취하였던 아우구스티누스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의 이원론적 교리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를 근거로 하여 마니교의 이원론을 반박했다. 세계는 하나님에 의하여 본래부터 선한 것으로 창조되었으며 인류사회에 존재하는 악의 세력은 선에 대항하는 필연적인 상대세력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발생시킨 범법적 결과라는 성경의 증거를 근거로 하여 마니교의 이원론 교리를 주저앉힌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인간이 부패한 죄인이 된 것은 첫 사람 아담의 원죄와 부패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라는 원죄의 교리를 적용하여 마니교의 이원론 사상에 종지부를 찍어주었다.
4.몬타누스주의<Montanism>
몬타누스파는 창시자인 몬타누스<Montanus>의 이름을 따라서 명칭 되어진 이단 분파이다. 몬타누스는 본래<A.D.156년경>소아시아의 프로기아<Phrygia>지방에 존재하였던 시벨레<Cybele>종교의 제사장이었다. 그는 <A.D.172년>에 기독교로 개종했으나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았던 시벨레 종교의 흔적을 버리지 못하고 시벨레적인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는 방언과 입신과 예언을 특히 강조했는데 예언을 할 때에는 반드시<나 여호와가 말하노라>로부터 시작했다.
몬타누스는 두 여자 성도인 프리스카<Prisca>와 막시밀라<Maximilla>를 대동하고 다니면서 예언을 했는데 그들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무의식적 황홀<ecstacy>상태에서 예언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성령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고 주장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입을 통하여 새로운 예언을 하신다고 주장했는데 그 내용은 영지주의자들의 주장들을 공박하는 것이었다. 몬타누스파의 3총사라고 불리어졌던 그들은<A.D.177년>페푸자<Pepuza>에 여성형<形>예수그리스도가 재림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거짓말로 판명되었다. 그
들이 모두 사망한 후 데미소<Themiso>가 지도자가 되어 몬타누스파를 조직적으로 관리했다. 설교자에게 월급을 주었으며 그것을 위하여 교인들에게 헌금을 부과하였고 재정을 철저하게 관리하여 부정을 막았다. 그는 한 때 감옥 생활을 하는 등 박해를 받았으나 그것을 순교자의 일생이라고 자랑했다. 몬타누스주의가 서방에 전파되었을 때에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몬타누스주의를 받아 들였는데 <A.D.207년경>에 터툴리안이 몬타누스주의자가 되어 열열 하게 몬타누스주의를 변호했다. 한편 아우구스티누스는 몬타누스주의를 반대하여 그들의 집회를 금지시켰으며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는 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몬타누스주의자들의 교리 중 중요한 것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몬타누스주의 교리.
(1)기독교의 역사.
기독교의 역사는 구약시대-복음서시대-성령시대-로 구분 되어지며 성령 시대가 가장 우월하다.
(2)계시의 계속.
성령시대에도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시가 여전히 계속적으로 주어지며 따라서 성경은 계속하여 기록되어 질 수 있다.
(3)성령의 은사.
성도가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받아 방언과 예언을 하게 되고 입신에 들어가게 된다. 세례를 받은 성도에게 이와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는 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한 것이다.
(4)예수그리스도의 재림.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이 곧 임하게 될 것이다. <A.D.177년 페푸자<Pepuza>에 여성형 예수그리스도가 재림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거짓말로 판명되었다>
(5)금욕주의 신앙생활.
구원 받기 위해서는 철저한 금욕주의적 신앙생활을 해야 하며 따라서 결혼이나 재혼을 하지 않아야 한다.
(6)순교자.
몬타누스 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순교자들을 기뻐하신다고 강조하여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에 자원적 순교자들이 발생했다. 그러나 데키우스황제의 박해 때를 제외하면 몬타누스 주의자들의 순교는 거의 없었다. 그들이 박해를 피하여 뿔뿔이 흩어져버렸기 때문이다.
(7)여성들의 지도력 인정.
몬타누스는 기독교가 여자들의 지도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두 여자성도 인프리스카<Prisca>와 막시밀라<Maximilla>를 대동하여 함께 일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몬타누스의 3총사>라고 불렀는데 그들의 예언들이 모두 거짓으로 들어났고 반면에 그들의 연합적인 활동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하게 됨에 따라 많은 불신과 비난을 받았다.
2)교회의 대응.
교회지도자들은 몬타누스 주의자들의 사상이 교회에 유입되기 시작하자 교회로부터 그것을 몰아내기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했다. 몬타누스주의 반대운동에 가장 앞장섰던 것은 교황 엘레우테리우스<Eleutherius-175-189,재위>였고 밀티아누스, 아폴리나리우스 등등이 그 뒤를 이었다. <A.D.230년>이고니움교회 회의가 몬타누스파에게서 받은 세례의 무효성을 선포했을 때 몬타누스파는 사실상 파문당한 것이었다. 몬타누스 주의자들은<A.D.250-251년>에 있었던 데키우스황제의 박해 때에 대부분 몰락하여 소멸되었으나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중 기원 4세기 후반에 이르러 점점 쇠퇴하다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5.니골라당<Nicolaism>
니골라당은 에베소교회와 버가모교회에 존재했던 이단종파 중 하나다. <계2:6,15>니골라당의 창시자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동방교회 최고의 신학자 중 하나였던 이레나에우스<Irenaeus. A.D.130-200경>와 히폴리투스<Hippolytus>의 견해이다. 그들은 니골라당의 창시자를 예루살렘교회 7집사 중 하나였던 니골라집사<행6:1-6>라고 주장했다. 니골라 집사가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자 변질되어 이단적인 종파인 니골라당을 창시했다는 것이다.<Irenaeus. Against heresies I.26. 3. III. II.I><Hippolytus, Philosophoumenavil.36>
두 번째 견해는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였던 클레멘스<Clemens Alxandrinus Titus Flavius A.D.150-211경>의 견해이다. 그는 예루살렘의 니골라집사는 본래 엄격한 금욕주의자이기는 했으나 매우 경건한 신자였는데 후에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신앙을 제대로 본 받지 아니하고 그의 신학사상을 잘못 해석하여 변질된 신학사상과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이다.<Stromatis.II.20.III.24> 한편 에우세비오스도클레멘스의 주장에 동의한다.<Hist.III.29>
니골라당은 예루살렘 회의에서 규정한 명령<우상에게 드린 것과 음행을 피해야 할 명령-행15:20,29>을 거역하고 그러한 것들로부터 자유 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비윤리적, 비도덕적 신앙에 빠졌다. 전승에 의하면 그들은 우상의 제물을 함부로 먹었고 문란한 성적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중세시대에 사제들의 독신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들이 결혼한 사제들을 비웃어 니골라당이라고 불렀다.
요한은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서신을 통하여 니골라당을 책망했고 버가모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는 니골라당이 발람과 같은 방식<신24:1-25; 31:16>으로 가르친다고 정죄했다.<계2:6,15> 니골라당은 별로 위세를 떨치지 못했고 2세기 후반에 이르러 자취를 감추었다.
6.유대교적 분파들.
사도들이 활약하던 시대를 전후한 기독교에는 유대교적 분파들이 있었다. 그들은 기독교로 개종한 후에도 여전히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고수했으며 자신들의 전통적인 신앙적 삶을 고집했다. 이러한 유대교적 분파는 여럿이 있었으나 그중에 몇 개 분파만 소개한다.
1)나사렛파<Nazarenes>
나사렛파는 예수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동정녀 탄생을 거부했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 부활, 승천 등등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인성<人性>만을 인정했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가 율법적으로 온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하늘로부터 어떤 신비한 느낌이 주어졌으며 이때부터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이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후에 많은 사람들이 따르며 추종하게 되자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여 스스로 구세주를 자처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기독교내에 신성을 거부하는 사상들과 예수그리스도의<메시야 자천설><예수 인간설>이 나오게 된 근본 동기는 나사렛파의 주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나사렛파의 활동은 지극히 미비하여 기독교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지 못했고 교회로부터 거부되어지다가 스스로 자멸했다.
2)에비온파<Ebionites>
유대인 기독교인들 중에 몇몇이 자신들을 에비온<ebionites>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명칭은 요단동편 지방에서 유행되었던 종교적 명칭이었는데 히브리어로<가난한자>라는 의미를 가진 용어였다. 이러한 명칭은 유대인들<특히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추종한 성도들이 대부분 가난했던 것을 비꼬아 부른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에비온파는 그 명칭을 스스로 사용하면서 하나의 분파를 형성했는데 그들은 반드시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한다고 강조한 분파들 중에 하나였다. 그들은 할례, 안식일, 금식 등등의 율법준수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바울과 대립했다. 그들은 바울이 예수그리스도의 직접적 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의 사도성을 부인했고 바울이 이방인들을 기독교로 인정했다는 이유로 그가 유대교를 배신했다 하여 그를 배반자라고 불렀으며 따라서 바울서신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거부함으로서 교회에 많은 말썽을 일으켰다. 예수는 본래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보통 사람이었는데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순간 그의 완전한 성결<聖潔>함이 인정되어 메시야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께 받은 메시야로서의 신적인 능력에 의하여 이적과 기사를 행 했으나 그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신적 능력이 떠났는데 이때에 예수가<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다시 그에게 신적능력을 부여하시어 그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할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에비온파는 자기들 끼리 따로 교회를 세워 신앙생활을 했는데 마태복음만 사용하고 다른 성경들을 거부했다. 에비온파는 로마감독이었던 클레멘트를 추종하여<클레멘트의 인식>과<클레멘트의 설교>라는 자서전 형식의 문학서적을 사용했다. 그 책의 내용은 서로 비슷한 것으로서 클레멘트가 바나바를 만나게 된 과정과 베드로를 만나서 복음전도 한 것에 대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에비온파는 한때 많은 추종세력을 얻었으나 2세기 이후에 점점 쇠퇴하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3)엘카이파<Elkaites>
엘카이파는 2세기 초에 활동했던 유대인 엘카이<Elkai>에 의하여 창설된 분파다. 엘카이는 동양철학에 심취했다가 나중에 기독교인이 되었으나 동양철학의 매력을 버리지 못하여 동양철학과 기독교사상을 연합했다. 엘카이는 자신의 사상을 기록한 책을<엘카이서>라고 했는데 그것을 페르시아에서 기도하던 중에 천사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책의 구성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인용했으나 아주 조금만 인용했고 바울서신들은 모두 제외했다.
그 책의 내용은 거의 모두가 동양철학, 동양종교 사상들을 근거로 하며 그것에 기독교사상을 약간 연합시킨 것이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동양의 무속적 종교사상이 그대로 나타난다. 엘카이는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메시야가 아니라 보통 인간들과 같은 하나의 인간에 불과하며 어쩌면 아담이 예수로 환생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또 다른 예수가 태어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엘카이는 성도들이 세척의식<洗滌儀式>을 자주 행함으로서 정결한 몸을 유지해야 신<神>과의 교류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율법의 준수와 자기 정결의 유지와 금욕주의 고행적 신앙의 삶 등등을 통하여 신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상 때문에 신과 만나기 위한 각종 방법들이 계속하여 추가 되었는데 나중에는 각종 점성술들이 등장했고 주문들과 부적들까지도 등장했다. 한편 엘카이파는 안식을 비롯한 율법준수를 철저하게 했으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고 경배하는 신앙적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제사는 드렸으나 희생제사는 거부했다. 엘카이파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을 대부분 인정했지만 그들은 일시적인 선지자들인 반면에 엘카이는 최후의 선지자이며 또한 최고, 최상, 최대의 선지자라고 했다. 엘카이파는 기원2세기 말에 요단강 하류 사해의 동편에서 집단적인 생활을 했고 3세기 초에는 알키바데스라는 사람이<엘카이서>를 가지고 로마에 가서 전도했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했으며 점차 쇠퇴하다가 사라져버렸다.
7.신<新>플라톤학파.
기독교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자 로마의 재래종교들이 기독교로 인하여 완전히 사멸될 것을 우려한 자들이 등장했는데 그들 중에 기독교를 가장 적극적으로 공격한 것이 신<新>플라톤학파다. 신플라톤학파는 영지주의자들과 같이 포괄적인 종교 형태를 형성하지는 않았으나 플라톤의 철학사상을 개조하여 종교적 요소를 추가한 새로운 학문을 형성했다. 신플라톤학파의 시조는 암모니우스삭카스<Ammonius Sakas.-243년사망>이다. 그는 양친으로부터 기독교 교육을 받았으나 성장한 후에 로마의 재래 종교로 돌아갔다. 그는 특히 플라톤 철학에 심취하여 모든 것을 플라톤식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그의 학문이 전해지지 않으므로 그의 학설은 알려지지 않았다. 반면에 신플라톤학파를 본격적으로 지도한 것은 플로티누스<Plotinus-A.D.208-269>이다. 플로티누스는 암모니우스사카스로부터 영향 받아 새로운 사상체계를 수립했다. 신플라톤주의가 주장하는 신적존재는 플라톤이 주장한 것과 같은<초월적, 지고적 존재>이다.
신플라톤 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종교적 사상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영원히 존재하는 초월적, 지고적 존재는 형이상학적으로는 신적인 빛을 발하여 이데아의 세계를 끝없이, 그리고 영원히 주관한다. 반면에 그 존재는 형이하학적으로는 이성도, 생명도 없는 암흑의 수렁에 까지 주관한다. 부족한 상태의 인간은 이러한 초월적 지고적 존재로부터 신비한 조명을 받아 영적, 정신적 부족함을 채움으로서 차원 높은 영적상태를 이루고 높은 사고<思考>를 갖게 되며 악하고 저급한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수준 높은 이데아적 세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인간의 이러한 상태는 이데아적, 영적 영역에서는 가능하지만 인성을 포함하는 육체적 영역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육체적 영역과 이데아적 영역 사이에는 영원히 평행선으로 존재하는 선<善>과 악<惡>이라는 무한하고도 질적인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과 인간의 관계는 신학적으로 인간에게 하강하는 것이며 신앙적으로는 신에게 귀의하는 것이다.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얻는 길은 물질의 속박을 벗어나 신에게 귀의하는 것이다. 신에게 귀의하는 방법은 덕<德>이다. 그러나 덕은 신을 직관하고 신의 조명에 자신의 모든 것을 일치시킬 때에 비로소 완성된다. 인간이 온전한 덕을 형성했다는 증거는 사랑<에로스>를 통하여 입증된다.*
이러한 사상 때문에 신플라톤 주의자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했고 그리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실제적 존재가 아닌 환영<幻影>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플라톤이 말한 사랑<에로스>를 강조하여 진정한 신앙은 에로스를 통하여 확인되고 입증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플라톤 주의자들은 그들을 체계적 조직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이끌어 갈만한 지도자가 없었으므로 스스로 와해되고 말았다.
신플라톤주의 사상으로 기독교를 공격했던 자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다음과 같다.
1)플로티누스<Plotinus-A.D.208-269>
플로티누스는 이집트에서 출생하여 암모니우스사카스에게 배운 후 고리티아누스황제가 페르샤와 전쟁할 때에 종군하면서 페르샤로부터 동양학문을 배웠다. 그는 전쟁이 종료된 후에 로마에서 신플라톤주의를 열심히 가르쳤으며 기독교에 신플라톤주의를 접목시키기 위하여 노력했다.
2)포르피리우스<Porphyrius>
포르피리우스는 로마의 전통종교들을 신봉하는 다신론 주의자로서 15권의 저술을 통하여 기독교를 공격하고 비판했다. 그가 기독교를 비판하고 공격한 것 중에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구약과 신약은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모순투성이다.
*예수그리스도는 거짓말을 하였고 제자들에게 전혀 본이 되지 못했다. 때문에 사도들은 교리적인 문제로 일치할 수 없어 자기들이 편리한 대로 해석하거나 사족<蛇足>을 달았고 그로 인하여 언제나 분쟁할 수밖에 없었다.
8.기타.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붕괴시키기 위하여 박해와 탄압을 가할 때 철학자임을 자부하는 자들이 기독교 음해에 열심 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자들은 다음과 같다.
1)루키아누스<Lucianus-A.D.120-200>
에피크로스학파였던 루키아누스는 수리아의 사모사타 출신으로서 풍자<諷刺>와 조소<嘲笑>의 문장으로 기독교의 신앙적 삶을 공격했다. 그는 A.D.180년경에 기독교인들과 키니크학파를 조롱할 목적으로<페레그리누스의 죽음>이라는 소설을 발간했다. 이 소설은 A.D.165년의 올림피아경기 때에 키니크학파인 페레그리누스가 불속에 투신하여 순교한 것을 토대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빗나갔고 오히려 그 소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입문했다.
2)셀서스<Cesus>
셀서스는 2세기 후반 사람으로서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다. 그는 플라톤학파 소속이었으나 에피크로스를 더욱 추종했다. 그는<참말>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기독교를 비판하고 공격했는데 당시에 많은 지식인들이 그 책을 즐겨 읽었음으로 상류 사회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편견이 심각했다. 때문에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 오리겐이<셀서스를 반박 한다>라는 저서를 발간하여 셀서스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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