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깝게 지내는 김 목사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자꾸 보은에 가자는 겁니다. 왜? 사과 따러요.
잘 들어보니까 거기 사과보다 더 좋은 분들이 계세요.
김 목사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 장로님이 계세요.
30여년 전, 김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입니다.
보은군 송죽 교회를 섬겼어요. 아주 시골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신학교를 다녔어요.
처음엔 막막했다고 해요. 신학교를 어떻게?
월요일 새벽 6시에 옥천에서 기차를 타야 하는데, 송죽교회에서 차로 1시간이 걸려요. 30년 전이니 차도 없어요. 어떻게 하나? 그 먼 길을 걸어가야 하나?
월요일 새벽 예배를 마치고 막막한 마음으로 집을 나서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안 장로님이 트럭을 세워 놓고 기다리고 계세요.
“전도사님, 타세요. 옥천역까지 모셔다 드릴께요.”
정말 눈물 나도록 감사했다고 해요.
부족함을 채워주시니까, 그리고 신학교 다니는 3년 동안, 월요일 그 시간만 되면, 한결같이, 그 바쁜 농번기에도, 얼마나 고마웠던지,
30여년이 지났는데, 그 장로님을 잊지 못한대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시원해요. 그 장로님 가정이 그냥 좋아요. 부족함을 채워주면 마음이 시원해져요.
그런데 그 장로님과 부인 권사님이 저를 보고 싶대요.
늘 극동방송을 듣는데, 극동방송 가족 여러분 하는 저를 보고 싶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좋은 분들, 진실한 분들을 만나면 한동안 유쾌해요.
바울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 사도를 돕고 싶어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돕지 못하는 부족한 것을 이 세 사람이 채운 겁니다.
에베소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 사도에게 부족한 것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첫 째가 스데바나의 집은 아가야의 첫 열매요.
바울 사도가 아가야 지방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처음 예수 믿은 가정이 스데바나의 집입니다.
그런데 스데바나 혼자 예수 믿는 게 아니라 가족 전체가 예수를 믿었습니다. 이게 바울 사도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 첫 번 째 이유였습니다.
어느 장로님의 간증을 참 의미 깊게 들은 적이 있지요. 삼 남매를 두었습니다. 다 가정을 이루고 손주들을 둘씩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삼남매, 손주들 다 모이면 14명입니다.
그 장로님이 명령을 했다고 합니다.
“주일이 되면 애비 집으로 다 모인다.”
그리고 14명이 주욱 교회를 갑니다.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게 그렇게 행복했습니다.
예배를 마치면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난 다음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희는 이제 효도 다 했다. 다른 효도 안해도 된다.”
온 가족이 예수를 믿고 주일이면 나란히 예배를 드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전승시킨 것이지요.
가족 모두가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 모두의 기도 제목이지요.
바울 사도의 마음을 시원케 한 것은 스데바나의 집은 성도 섬기기로 작정했다는 사실입니다. 섬기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았어요.
주님이 섬기려고 오셨는데, 누군가를 섬긴다는 것은 주님을 닮아가는 일이지요. 주님의 십자가는 처음부터 작정했던 일이니까요.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처음부터 십자가였으니까요.
우리교회가 선교사님을 돕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처음부터 작정한 일이지요. 땅 안사고 건축 안하는 일도, 재정을 카페에 다 공개하는 일도, 상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것도 처음부터 작정한 일이지요.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것 때문에 바울 사도의 마음이 시원했어요.
셋 째는 무엇보다도 바울 사도의 부족함을 알고 그 부족함을 채워 줬어요. 그러니 바울 사도의 마음이 시원할 수 밖에 없지요.
바울 사도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그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면 그들도 바울 사도와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지요. 이게 영적인 믿음의 공식이지요.
오늘 내가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그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줄 수 있다면, 섬기기로 작정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주님을 조금 더 닮아가는 하루가 되겠지요.